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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사랑하는 나의 친구에게
작가 : 율혜
작품등록일 : 2018.11.5

[펜팔 친구/초반 편지 형식/귀여운 주인공/언어 배우려고 펜팔 시작한 주인공/사서 주인공/다정한 남주/차분하고 침착한 남주/피아니스트 남주/서로 존댓말 쓰는 주인공들/일상물]

[(저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해요. 햇빛이 맑은 날 강가를 거니는 것도 좋아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의자에 파묻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요. 곁에 캐모마일 차가 담긴 찻잔을 올려둔 테이블이 있다면 더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안젤라 그린스타이들의 노래를 무척 좋아해요. 스테판도 알고 있죠? 아인슈페너의 유명한 가수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꼭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라 몹시 행복해지곤 해요.
스테판,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안녕하세요, 안나.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것들을 좋아하시는군요. 당신이 말한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죠.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하셨죠. 저 또한 그 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케이크로 유명한 가게 중 리스트레토에 있는 가게로는, '판도로'와 ‘파네토네’를 꼽을 수 있겠군요. 그 두 가게는 가끔 리스트레토를 방문할 때마다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당신도 그곳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 알기도 전부터 우연히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조아라 닉네임 '김연정'으로 동시 연재 중입니다!

예쁜 표지는 하레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르베sorbet
작성일 : 18-12-13 18:08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6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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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편지를 수도 없이 읽다가, 소리도 한 번 꽥 질렀다가, 다시 읽다가, 편지를 껴안고 침대 위로 풍덩 뛰어들어 뒹굴 거리는 일을 정신없이 반복했다. 안나는 안젤라가 제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편지와 동봉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표를 다시 한 번 불빛에 비춰보던 안나는 끄응 침음을 흘렸다.

 

 그녀는 현재 아인슈페너의 슈톨렌 역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기차 여행은 퍽 오랜만이라 덜컹거림에 익숙해지느라고 벌써 반절 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기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자려던 계획은 이미 어그러져 버렸고,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잔뜩 쌓인 피곤을 풀려면 남은 시간만이라도 잠으로 보내야했다.

 

 열차는 로크포르를 지나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천초목이 낯익다. 중간에 정차하는 역 없이 곧장 슈톨렌으로 달려가는 탓에 카술레는 둘러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익숙한 길을 더듬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 카술레를 지나면, 정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사실이 그녀를 설레게 했다. 설렘과 동시에 찾아온 긴장감 탓에 목이 탔다. 그녀는 손을 뻗어 출발 전 미리 사두었던 레모네이드를 조금 마셨다. 달콤한 액체가 목 뒤로 넘어가자 긴장이 풀리는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좌석 깊숙이 몸을 파묻은 안나가 입을 작게 벌려 하품했다.

 

 슬슬 잠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모래성처럼 위태롭게 서있던 의식이 끝내 잠에 밀려 힘없이 쓰러졌다.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처럼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의식의 흐름들을 잡아채려 애쓰다가, 그녀는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베일이 그녀의 눈앞에 드리워졌다. 아른거리는 은빛 점들이 그녀의 의식 한 구석을 툭 건드렸다가 금세 발을 빼고 도망갔다.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은 끊임없이 잠든 그녀를 깨우려 애썼다. 안나는 잠결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눈가를 팔로 가린 뒤에야 수렁에 빠지듯 다시금 잠에 빠져갔다.

 

 의식이,

 멀어져갔다.

 

 “슈톨렌 역에 도착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혹시 놓고 가는 짐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고…….”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역무원의 고함소리가 들려온 직후였다.

 

 햇살을 막아보려 끙끙거리던 때가 조각처럼 떠오르다 의식 저편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다. 비몽사몽간에 짐을 챙겨들고 비틀거리며 기차에서 빠져나온 안나는 거하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쭉 폈다. 오랜 시간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몸이 굳어져 있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풀어졌다.

 

 얼굴을 찡그린 그녀는 여전히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서 천천히 그늘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음…….”

 

 잠긴 목소리가 우물에 돌을 던지듯 먹먹한 파동을 그리며 흐리게 번졌다. 안나는 머리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두통에 잠시간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 통증을 털어내려 애썼다.

 

 아직까지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정신 탓에 생각들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머리를 정리할까. 마차를 잡아서 극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데 어디였지? 아, 배고프다. 점심 먼저 먹을까? 공연 시간은 언제였더라. 점심을 가볍게 먹고 공연장으로 가는 게 좋겠다.

 

 그런데 우선 화장실부터 갔다가…….

 

 안나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우선은 거울을 보며 머리부터 정리하는 게 나을 듯 성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했을 때, 그녀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예상대로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더 헝클어진 모습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안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머리를 빗어 내린 뒤 짙은 남색의 리본으로 단정하게 묶었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아악, 어쩐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흥미롭다는 얼굴로 구경하더라……!

 

 차가운 물에 손을 씻던 안나는 조금 전 봤던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다 우는 소리를 냈다. 가엾은 아기 곰이 우는 소리와도 같은 괴괴한 소리에, 그녀의 옆에서 손을 씻던 사람이 흠칫 놀라 화드득 몸을 떨었다.

 

 그러나 상심한 안나의 눈에는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기 어린 손으로 가방을 야무지게 틀어쥔 그녀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 타박타박 걸어갔다. 어디로 가야할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마냥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담긴 걸음이었다.

 

 [아가씨, 혹시 길을 잃었나요?]

 

 방황하던 안나를 잡아 세운 것은 인자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목소리에, 그녀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가슴팍까지 새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새파란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잃었어요?]

 

 그가 걱정스레 눈썹 끝을 늘어뜨렸다. 안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

 

 아인슈페너 말을 어느 정도 해석할 수는 있었지만, 빠르게 쏟아지는 말들을 죄다 해석하는 것은 무리였다.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을 뒤지고 뒤져 간신히 찾아낸 단어는, 그녀가 당장 가야할 곳이었다.

 

 그래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한 안나는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글루바인, 글루바인. 그러니까…… 제가 글루바인으로 가야 하는데……."

 

 말끝이 절로 흐려졌다. 생각을 오렌지처럼 쥐어짜자 과즙처럼 단어 몇 가지가 더 떠올랐다.

 

 [저 왔어요, 리스트레토에서. 그리고 가야만 해요. 글루바인으로.]

 "아하, 그러니까 글루바인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앗."

 

 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스트레토 말을 할 줄 아세요?"

 "그럼요. 관광객들을 목적지로 데려다 주는 게 제 일인 걸요."

 

 노인이 눈을 찡긋거렸다.

 

 "도움이 필요한가요?"

 "네, 오늘 열리는 안젤라의 공연을 보러 가야 해요. 공연 시작 시간이……."

 "아마 오후 1시일 거예요. 우리 딸도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갔거든."

 

 그러더니 그가 안타까이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어쩌죠? 지금은 12시 30분인데…… 시간이 조금 빠듯해요."

 "헉……."

 

 안나가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노인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제안했다.

 

 "아가씨, 그러면 혹시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노인이 제 등 뒤를 가리켰다.

 

 "관광객들을 마차에 태우고 아인슈페너 시내를 도는 게 제 일이라서요."

 "그러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안나의 얼굴 위로 아침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공연에 늦을 뻔 했으니.

 

 이인승 마차의 뒷좌석에 냉큼 올라탄 안나는 그제야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둘러보았다.

 

 붉고 노란 물이 든 단풍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었다. 새파란 하늘 위로 조각 같은 솜털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고, 실낱같은 바람은 가을 향을 물씬 풍기며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행복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경쾌한 걸음으로 블록이 깔린 길을 걷고 있었다. 흰색의 블록 사이사이로 붉은색 블록이 그림처럼 놓여 있었다.

 

 때마침 말고삐를 쥔 노인이 돌아왔고, 마차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하자 어쩐지 그제야 아인슈페너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공연을 보려고 아인슈페너에 온 거예요?"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안나는 그의 물음에 잠시간 말을 고르다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친구와 만나기로 했거든요."

 

 노인은 자신의 이름을 페터라고 소개했다.

 

 이것저것 질문하던 페터는 웃으며 안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가끔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좋은 대화 상대였다. 부드럽고 차분한 말씨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힘이 있었고, 배려가 엿보이는 질문은 절로 재잘재잘 답변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페터의 마차를 타고 둘러보게 된 아인슈페너의 첫 인상은 '깔끔하다.'였다.

 

 길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사람들도 소박할지언정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거리마다 음악이 가득했고, 나무 의자 위에 걸터앉은 화가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캔버스 위에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안나가 기분 좋게 웃었다.

 

 삼각형 모양의 지붕들은 제각기 다른 키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었고, 집집마다 문가에 가을꽃을 몇 송이 꽂아 장식하고 있었다.

 

 인상이 나쁠 리 없었다.

 오히려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살고 싶을 정도였다.

 

 "자, 도착했어요, 안나."

 

 활기 넘치는 거리를 정신없이 구경하는 사이 페터의 마차가 웅장한 건물 앞에서 서서히 속도를 줄여갔다.

 

 "아, 감사합니다."

 

 안나가 주섬주섬 돈주머니를 꺼내려 하자, 그녀 쪽을 돌아보고 있던 페터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돈은 받지 않을게요."

 "하지만……."

 "당신을 보니 우리 딸이 생각나서, 그래서 도와준 거예요. 그러니 안나가 이곳에서 즐거운 기억을 쌓고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활짝 벌렸다.

 

 "환영해요, 안나. 부디 아인슈페너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안나는 멍하게 눈을 깜박이다가, 멀어지는 페터를 향해 거듭 인사하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스테판도, 안젤라도, 프란츠도, 페터도. 지금까지 제가 만난 모든 아인슈페너 인들은 그녀에게 과한 친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인슈페너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사람들인가 봐. 안나는 무심코 생각하며 극장 앞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자리를 찾아 앉고, 불이 꺼지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친절에 대해 수없이 곱씹다가.

 

 마침내 불이 꺼지고, 무대 위로 새하얀 빛이 한 줄기 쏟아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안나가 눈을 깜박였다.

 

 그녀의 머리칼처럼 짙푸른 색의 드레스를 입은 안젤라가 당당한 미소를 띤 얼굴로 무대 위에 꼿꼿하게 서있었다. 색이 고운 라벤더 색 눈동자는 좌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이 좋았다. 마치 여왕을 보듯, 무대 아래에서 안젤라를 올려다보는 그 순간이.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을 불러 들였고, 그녀의 노래는 사람을 홀렸다. 정신을 쏙 빼놓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했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느낄 만큼 몰입해서 그녀의 노래를 듣던 안나는 마지막 곡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박수를 쳤다. 생그레 미소 지으며 우아하게 인사한 안젤라는 무대 아래를 매끄럽게 훑어보곤 천천히 무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라벤더 색 눈동자가 좌중을 바쁘게 훑었다.

 

 ‘슬쩍 시선을 틀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그 뒤에 짓던 고운 눈웃음도?

 

 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자신이 가야할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곤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표를 들고 직원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했는데. 그녀를 발견한 남자가 그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전까지, 안나는 난감한 얼굴로 정처 없이 복도를 서성거렸다.

 

 “혹시, 마리안나 돌체 양 되십니까?”

 

 주황색 머리칼과 콧잔등을 살짝 덮은 주근깨가 돋보이는 남자였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서 비로소 안심한 얼굴을 했다. 몹시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막연히 머리색만 알려주어 난감하던 참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찾게 되어 다행이다. 하소연하듯 토로하는 속내에서 단어 하나를 잡아챈 안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색? 내가 스테판이나 안젤라에게 머리색을 알려준 적이 있던가?

 

 “저는 스테판이라고 합니다.”

 “……네?”

 

 안나가 멈칫했다.

 

 스테판이라고? 그런데 왜 나를 모른 척 하는 거지? 혼란한 눈을 한 그녀를 보며, 스테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아차, 싶은 눈으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돌체 양이 편지를 주고받은 스테…… 판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이름을 발음하며 말끝을 슬쩍 흐리다가, 주섬주섬 단어를 긁어모으는 것처럼 문장을 마쳤다.

 

 스테판은 난감한 듯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가 이내 결심한 얼굴로 그녀의 세 걸음 앞에서 서둘러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성큼성큼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 치는 수밖에 없었다. 엉겁결에 따라가면서도 안나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복도는 복잡하게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꺾고, 쭉 걷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고, 그 다음에는 왼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쭉 걷다 나오는 계단을 오르고,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비로소 나오는 복도 끝의 문을 보며, 안나가 긴장한 얼굴을 했다.

 

 남자는 단정한 손놀림으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그 잠깐의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져서, 안나는 괜히 들고 있던 가방의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답이 돌아온 것 같진 않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안나를 보며 스테판이 슬쩍 미소 짓곤, 왔을 때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복도 너머를 향해 사라졌다. 흡사 도망가는 것과도 같은 다급한 걸음걸이였다.

 

 ‘들어가면 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멀어지는 스테판의 뒷모습만 멀뚱히 바라보던 안나는, 잠시간 머뭇거리다가 이내 용기 내어 문을 슬쩍 밀었다. 꽤나 묵직할 것 같던 문은 의외로 부드럽게 밀렸다. 조금의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없이, 가볍고 부드럽게.

 

 “안녕하십니까, 안나.”

 

 그리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프란츠 그린스타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엥?”

 

 안나가 당황한 눈초리로 엉뚱한 말을 흘리자, 그는 묵묵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들었다. 얼떨결에 그에게 가방을 빼앗긴 안나가 맹한 얼굴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하자, 프란츠는 설핏 웃으며 그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당신께 제대로 된 소개를 한 적이 없는 것 같군요.”

 

 그가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전에 리스트레토에서 만났을 때 인사 했었잖아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끄응 앓는 소리만 내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마주치던 프란츠가 속삭이듯 말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반가워요, 안나. 저는 스테판이라는 이름으로 약 일 년 간 당신과 편지로 교류했던 사람이자, 아인슈페너의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그린스타이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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