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나. 우선 이번 원문을 리스트레토 어로 번역하자면,
(키쉬가 칼을 뽑아들었다. 달빛을 잠시 머금다 흘려보내는 칼날이 매섭다.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해 있음에도, 리나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서 키쉬의 눈만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 시선에 도리어 불편해진 것은 키쉬였다. 마치 칼끝이 자신을 향해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정도가 되겠군요. 당신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아 기쁩니다. 부디 끈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아인슈페너 어를 공부하셨으면 합니다. 이런 쪽으로는 무지하여 확신을 담아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당신께선 언어를 배움에 있어 재능을 가지신 것 같군요.
단편집이 당신의 마음에 드셨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내드리겠습니다. 단편집보다는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되어있지만, 그 또한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책으로요.
저는 얼마 전 팽 페르뒤에 다녀왔습니다. 책을 기부하고자 함도 있었고, 나이프와 포크 사이처럼 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책이 있다면 걸러낼 겸 해서요. 나이프와 포크 사이를 제외하곤 딱히 눈에 띄게 유해한 책은 없더군요. 물론 대충 훑어본 것에 불과하니 충분히 더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 부분은 사서에게 따로 언질을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플루오린 교수님뿐만 아니라 제게 가르침을 주셨던 라핀 교수님도 만났습니다. 두 분 모두 정정하신 것 같아 안심이 되더군요.
벌써 11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곧 겨울이군요. 언제나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스테판!
날이 부쩍 추워졌지요. 코끝이 알싸해질 때마다 정말 겨울이 오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앗, 그러고 보니 슬슬 겨울옷도 꺼내야 하는데…….
지지난주 즈음까지는 적당히 두툼한 이불로 버틸 수 있었는데 지난주 즈음부터는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간만에 겨울 이불을 꺼내 덮기 시작했어요.
말간 햇살 냄새와 함께 향긋한 비누 냄새가 배여 있어서, 두툼한 이불에 폭 파묻힐 때마다 기분이 노곤해지곤 해요. 아침이면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어질 정도로요. 사실 그건 언제고 똑같지만, 겨울에는 특히 나가기 싫어지지요.
춥기는 하지만, 저는 겨울 특유의 시린 느낌을 좋아해요. 겨울 아침을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하게 벅차오르기도 하고요.
아, 말하다보니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하네요. 곧 겨울이 될 테고, 첫 눈이 내리겠죠? 함께 눈을 맞을 사람은 없지만, 커다란 머그컵 가득 따뜻한 코코아를 타서 큼직한 마시멜로를 동동 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드디어 단편집을 다 읽었어요! 당신의 칭찬을 들어서 더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편집도 다 읽었겠다, 얼마 전부터는 쉴러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초반부라 어떻다 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당신이 보내주신 책이 도착하기 직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당신이 보내주신 책 또한 감사히 읽을게요.
책 감사해요, 스테판!)]
[(쉴러의 책을 읽기 시작하셨군요. 제가 보내드린 책은 천천히 읽으셔도 좋으니, 언제든 당신이 내킬 때 읽으셨으면 합니다. 당신의 의향을 묻지 않고 보내드렸으니까요.
겨울을 좋아하시는군요. 겨울의 아침은 어쩐지 마법이 일어날 것 같은 신비함이 있죠. 저는 여름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당신께서 말씀하신 설렘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겨울의 얼어붙은 길거리를 걷는 것, 목도리로 목을 감싸고서 고요한 숨을 내뱉는 것, 광장을 휘도는 바이올린 선율 같은 것들.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았을 때 아득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들이 설렘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저도 얼마 전부터는 겨울 이불을 꺼내어 덮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11월의 말에 다다랐고, 곧 12월이 시작되니까요.
연말이 되며 점차 바빠질 것 같습니다. 12월과 1월에는 이전처럼 자주 편지를 드리지는 못할 것 같지만, 언제고 반드시 당신께 답장하도록 하지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안나.)]
[(앗, 그러고 보니 연말과 연초에 많이 바쁘시겠네요……. 도서관은 오히려 그 때 즈음이면 유난히 고요해져요. 사실 저 같아도 그 때에 딱히 도서관에 걸음 할 것 같지는 않지만요.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2주 정도만 버티자,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2주만 지나면 사람들이 싹 빠질 테니까요. 그 때는 마치고 어디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는 말이 슬슬 나오고 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저를 포함해서 서너 명 정도만이 참석하는 작은 행사였는데, 올해는 사람이 더 붙어서 예닐곱 명 정도가 함께 갈 것 같아요.
명예 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루소 씨도 참석하기로 했어요. 관장님께서 근엄한 얼굴로 어깨를 두드리시면서 '자네, 참석하지 않겠나?' 하셨더니 단박에 찬성하시더라고요.
많이 바쁜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걸까요……? 하얀 달 조합원 분들과는 연말을 함께 보내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구태여 묻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그 분의 일정이고, 제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루소 씨는 명예 직원으로 인정받으실 만큼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계셔요. 이제는 다들 루소 씨가 자리에서 책을 들여다보시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요. 연구해야 할 마법이 있어서 도서관을 드나드는 거라고 하시던데, 글쎄요, 그런 것 치고는 딱히 열심히 공부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책을 꽂거나, 아침마다 책에 걸린 마법을 해제시키는 걸 도와주시는 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딱히 불만은 없어요. 그 분께서 하는 말들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인간적인 호감도 있고.
앗, 맞아! 그 분이 도서관에 상주하시게 되면서 아침마다 가루를 뿌리는 절차가 많이 간편해졌어요. 루소 씨가 아침에 도서관으로 출근하시면서 자루를 한 번 훑어보고, 손을 대충 휘적거린 다음에 몇 권만을 허공에 둥둥 띄워 마법을 해제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거든요.
그 분은 실제로 그렇게 힘들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고, 자리도 만들어준 만큼 기꺼이 이 정도는 할 용의가 있다고 못 박아두신 덕에 한결 수월하고 느긋한 오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분께서는 쉬운 일이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 이렇게 쉽게 처리되기도 했고, 또 여러모로 감사하기도 하니 조만간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드려야지, 하고 생각 중이에요. 그렇게 하는 편이 좋겠지요? 스테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제 의견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도서관 사람들이 그에게 보여줬던 호의에 대한 보답과 비슷한 것 같고, 그러니만큼 굳이 그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연말에 다함께 식사 하러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고요.
물론 당신의 선택이 가장 중요합니다만,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저는 요즘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한 달 뒤면 또 일정이 비겠지만, 한 달 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예정이고요. 많이 피로했지만, 당신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다시 읽다 보니 조금쯤은 피로가 풀리는 것도 같습니다.
새삼 즐거워지더군요. 문득 당신과 만나게 된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당신 역시 행복한 하루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당신의 의견은 그렇군요. A씨도 당신과 비슷한 의견이셔서, 그냥 다음에 적당한 쿠키 종류만 사다 드리려고요.
벌써 연말이네요. 당신과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간격이 커지다 보니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저께에는 마친 뒤 다 같이 미리 봐뒀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어요. 워낙에 인기가 많은 식당이라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는 게 불가능할 정도인데, A씨 여동생 분의 남편 분께서 그곳 주방장과 아는 사이셨더라고요. 덕분에 근사한 곳에서 식사할 수 있었어요.
'애플 플럼 코코넛'이라는 식당인데, 크림파스타가 맛있었어요. 저는 술을 못 마시는 편이라 다들 와인으로 건배할 때 혼자 에이드를 마셨지만, 듣기론 와인도 괜찮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에이드도 맛있었어요! 오렌지에이드를 마셨는데, 너무 새콤하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윽, 말하다보니 또 마시고 싶네요. 스테판, 당신은 즐거운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안나.
저는 퍽 나쁘지 않은 연말을 보냈습니다. 역시 바쁘기는 했지만, 다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의 틈은 생겨서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죠. 공연과 관련된 것들, 아니면 사소한 일상 같은 것들을요. 그런 뒤에는 곧장 술잔이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이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당신처럼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편이라 술 대신 다른 음료로 대체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다들 정신을 놓을 정도로 취했고, 뒷수습을 하느라 꽤나 정신없기는 했으나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퍽 다정한 기억으로 남을 일이 되었지요.
당신께서도 즐거운 연말을 보내신 것 같아 기쁩니다. 어쩌다보니 답장을 보내는 것이 미뤄져, 연말 인사 대신 새해 인사를 드리게 되었군요. 부디 올 한해가 당신에게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