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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사랑하는 나의 친구에게
작가 : 율혜
작품등록일 : 2018.11.5

[펜팔 친구/초반 편지 형식/귀여운 주인공/언어 배우려고 펜팔 시작한 주인공/사서 주인공/다정한 남주/차분하고 침착한 남주/피아니스트 남주/서로 존댓말 쓰는 주인공들/일상물]

[(저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해요. 햇빛이 맑은 날 강가를 거니는 것도 좋아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의자에 파묻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요. 곁에 캐모마일 차가 담긴 찻잔을 올려둔 테이블이 있다면 더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안젤라 그린스타이들의 노래를 무척 좋아해요. 스테판도 알고 있죠? 아인슈페너의 유명한 가수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꼭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라 몹시 행복해지곤 해요.
스테판,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안녕하세요, 안나.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것들을 좋아하시는군요. 당신이 말한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죠.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하셨죠. 저 또한 그 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케이크로 유명한 가게 중 리스트레토에 있는 가게로는, '판도로'와 ‘파네토네’를 꼽을 수 있겠군요. 그 두 가게는 가끔 리스트레토를 방문할 때마다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당신도 그곳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 알기도 전부터 우연히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조아라 닉네임 '김연정'으로 동시 연재 중입니다!

예쁜 표지는 하레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르되브르hors-d'oeuvre
작성일 : 18-12-13 17:54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1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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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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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장된 손끝이 목덜미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안나가 전투적인 눈빛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긴장으로 뱃속이 졸아붙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손 끝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년여 만에 만나는 친구다.

 정말 극적으로 소식이 닿은.

 

 어떻게 변했을지, 그간 잘 지냈을지 궁금해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다 흘려보냈다. 원래 계획은 미리 체리 파이도 사다두고, 레아의 입맛에 맞춘 식당을 알아둔 뒤 완벽하게 짜놓은 코스대로 움직이는 거였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계획한 것에서 단 하나도 준비해두지 않은 채로 23일의 아침이 밝고야 말았다.

 

 안나가 끙끙거리며 거울 앞을 배회했다.

 

 이 원피스 그대로 입고 나가도 될까? 되겠지? 아니, 별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거울 속의 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제 미리 옷을 골라둘 때까지만 해도 깔끔하고 우아해보였는데, 고작 하루의 시간이 지났다고 옷에 대한 인식이 이리도 달라질 줄은 미처 몰랐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또 정장이네.

 

 안나가 갈색 치마의 허리 단추를 잠그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칠 정도로 지겨운데, 휴일마저 정장이라니. 그녀가 치마를 탁탁 털어 주름을 폈다. 흰 블라우스를 꾹꾹 잡아당겨 옷자락을 정돈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빗어 내리며 긴장된 기색으로 흐트러진 곳이 없는지 점검했다.

 

 작은 핸드백에 이런저런 소품들까지 챙겨 넣은 그녀는 그제야 단화에 발을 꿰고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새파란 하늘은 오늘이 그녀에게 어떤 날인지 알기라도 하듯 맑은 햇살을 고요히 흘려보내고 있었다. 레몬색 눈을 굴려 하늘을 한 번 흘긋 바라본 안나가 핸드백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순서를 되짚어보자. 그녀가 잔뜩 굳은 얼굴로 숨을 짧게 몰아쉬었다.

 

 첫 번째, 레아와 만나기로 한 디저트 가게에 도착하기 전, 가는 길에 작은 선물을 산다. 선물은 시계 종류,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다면 그걸로 변경. 두 번째, 가게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한다. 나는 차가운 초콜릿 음료, 레아는 설탕이나 시럽을 넣지 않은 커피. 세 번째, 레아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완벽해!’

 

 안나가 뿌듯해하며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아낌없이 칭찬을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레아의 선물을 사기 전, 자신을 위한 선물부터 고른 그녀는 입에 초콜릿 조각을 넣으며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평소에는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더니만 어쩐지 오늘만큼은 별달리 눈에 띄는 물건이 없었다. 어쩌면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콩알만큼 들었다. 이걸 사자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주기는 소박해 보이고, 저걸 사자니 레아와 어울리지 않고.

 

 결국 집은 것은 원래 계획했었던 시계였다. 꽃팔찌를 모티브로 삼은 것 같은, 은색의 시계. 덩굴 같은 시계줄이 예쁜 시계였다.

 

 시계까지 꼼꼼히 핸드백 안에 챙긴 안나가 가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약속 장소로 비장하게 걸어갔다. 크지 않은 가게였다. 통나무집을 닮은 외관과 벽에 장식된 나뭇가지 위로 사뿐히 앉은 봉제인형 새들이 꼭 어울리는. 동화 속에서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잘그랑 잘그랑 울리는 종소리마저 싱그럽게 들렸다. 안나가 퍽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주문을 한 다음, 제일 햇빛이 잘 드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가게라 그녀도 처음 방문해보는 곳이었는데, 앞으로도 종종 찾게 될 것 같았다. 가게 이름이, 그러니까. 노케를Nockerln이던가? 폭신한 의자 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가 다시 들려온 종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안나!”

 

 가게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고개를 휙휙 돌리던 레아가 안나를 눈에 담고서 활짝 웃었다. 그녀가 긴 금발을 휘날리며 안나가 앉아있던 탁자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새파란 눈동자 가득히 기쁨이 스며든 채였다.

 

 “저기, 레아, 우선…….”

 “그동안 잘 지냈어? 아니, 어떻게 편지 한 통 없이, 어?”

 

 레아는 그녀가 마치 커다란 곰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품에 꼭 껴안았다. 어찌나 세게 안았던지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아, 아니, 얘가 이 정도로 힘이 센 애였나? 안나가 끙 소리를 내며 레아의 품에서 벗어나려 꾸물거렸다.

 

 그러느라 안나는 레아의 뒤로 들어오는 남자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건 미안해. 그런데 네 소식을 접하지 못하기도 했고-”

 “괜찮아! 지금이라도 연락한 게 어디야!”

 “어, 일단 나 좀…….”

 

 안나가 기어이 레아의 팔을 두어 번 툭툭 치고 나서야, 그녀가 아쉬운 기색으로 팔을 풀었다. 눈 끝을 늘어뜨린 레아가 안나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말랑한 빵 반죽 같은 볼이 그녀의 손을 따라 쭉 딸려 올라왔다. 색이 희어 더 반죽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레아, 우선 앉는 게 어떨까?”

 “그래요. 우선 앉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나가 제 볼을 붙들고 있는 레아의 손을 꼭 잡으며 차분하게 제안하는데, 문득 레아의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안나가 영문 모를 얼굴을 하고서 눈을 끔벅거리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녀에 비해 10cm는 더 큰 레아보다도 20cm는 더 커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다.

 

 그리고 안나는 그 남자를 알았다.

 

 “……프란츠 그린스타이들?”

 

 설마?

 

 안나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럴 리가 있나? 그는, 그는 연습을 하고 있을 텐데? 아니, 그녀가 그의 일정을 죄다 꿰고 있는 것은 아니니, 그가 이곳에 있는 것 또한 충분히 있을 법한 선택지이기는 했다. 그래도 너무 갑자기……! 물론 ‘제가 모월 모일 몇 시에 이곳에 방문할 예정입니다.’하고 예고한 뒤 방문하는 건 아니지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아, 안나, 마리안나 돌체예요.”

 “그렇군요. 안나.”

 

 그가 외우려 노력하듯 그녀의 이름을 두어 번 속삭였다. 사뭇 다정한 목소리였다. 눈을 가늘게 접어 웃어 보인 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건가? 잡으라는 거겠지? 안나가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슬며시 그의 손끝을 잡자, 프란츠가 그녀의 손을 제 손 안에 가두듯 다시 잡고서 위아래로 두어 번 흔들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나.”

 

 프란츠 그린스타이들이 나하고 악수했어!

 

 안나가 금방이라도 혼이 빠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손을 주섬주섬 거둬들였다. 세상에, 꿈인가? 진짜? 진짜 프란츠가, 나하고, 악수를 했다고?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전보다 화사하고, 더 활기차게만 느껴졌다. 이 모든 게 악수 때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원래도 아기자기하고 예쁘다고 생각했던 가게는 두 배로 아름답게 보였고,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좋아해요…….”

 

 안나가 홀린 듯 웅얼거렸다.

 

 레아의 날선 시선이 단숨에 그녀에게로 쏠렸다. 너 미쳤냐고 묻는 환청이 귓가에서 왕왕 울렸다. 프란츠는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언뜻 휘청 기울어지는 것도 같았다. 안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정말 좋아해요.”

 

 종이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아쉬울 줄이야! 그녀가 탄식했다. 종이가 한 장만 있었다면 프란츠에게 싸인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을 좋아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당신의 팬이에요.”

 “아하, 팬.”

 

 프란츠가 곱씹듯 말했다. 그의 미소는 한결 편안하게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슬쩍 고개를 기울이다가, 부드럽게 물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렇듯 아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언가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달리 해드릴 게 없네요.”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료는 주문했나요?”

 “네, 아까 처음 가게에 들어오면서-”

 

 안나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음료를 주문하고 받았던 보라색 마력석이 탁자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안나가 화들짝 놀라 재빨리 그것을 챙겨들고 카운터를 향해 뛰듯이 걸어갔다. 잔 두 개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와 탁자 위로 그것을 내려두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고 나니 이번에는 잔이 두 잔 뿐인 것이 신경 쓰였다.

 

 “어쩌죠? 이렇게 만날 줄 모르고 제가 주문할 때 두 잔밖에 안 시켰는데…….”

 

 안나가 말끝을 흐렸다. 아니, 누가 동네 카페에서 유명한 사람을 만나리라고 상상이나 하겠어? 그녀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그녀 또한 믿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어쩐다? 내 음료라도 드려야 할까? 그녀가 끙끙거리며 열심히 고민하는 동안, 프란츠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안나. 그보다 특별히 좋아하는 케이크가 있나요? 케이크로 당신의 애정에 보답하려는 것은 어쩐지 부족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케이크 종류라면 다 좋아하는 편이에요. 생크림 케이크를 좀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요. 그리고 그렇게 막, 보답하려고 안 하셔도 돼요! 이미 당신의 연주만으로도 충분한 걸요!”

 

 안나가 손을 휘저었다. 옆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지켜보던 레아가 코웃음을 쳤다. 잔에 담긴 커피를 후루룩 마신 그녀가 일부러 소리 나게 잔을 탁자 위에 턱 내려두었다. 언짢은 기색이 담뿍 담긴 행동이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제 순수한 호의입니다."

 

 그렇게 말한 프란츠는 제 몫의 커피와 함께 큼직한 딸기가 올려져 있는 생크림 케이크는 물론, 진한 초콜릿 케이크와 윤기가 흐르는 라즈베리 무스,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케이크에 쫀득한 마카롱까지 쟁반에 알차게 담아서 돌아왔다.

 

 "맛있게 먹어준다면 저 또한 기쁠 것 같군요."

 

 안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 아까 보니까 한 조각에 50브릴이던데……. 200브릴이면 서민들이 외식 두 번 하는 금액과 맞먹지 않나.

 

 게다가 마카롱까지 있었다. 케이크 보다야 싼 편이었지만,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는 가격이었다. 자, 저만한 크기의 마카롱이 하나에 20브릴이니까……. 그런데 마카롱이 다섯 개……. 그러면 100브릴…….

 

 안나의 동공이 자잘하게 떨렸다.

 

 한 사람이 삼시세끼를 밖에서 먹는 가격과 맞먹는 금액의 디저트들이 그녀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제발 그녀가 자신을 먹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물론 케이크는 몹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안나는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진짜 먹어도 되는 거 맞아? 호의로 사주기에는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부담스러운 것 같은데…….

 

 "안나?"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그녀를 향해 프란츠가 걱정스럽다는 기색으로 말을 걸었다.

 

 “미안합니다, 배려가 부족했군요. 혹시 꺼리는 종류의 케이크가 있습니까? 그것부터 물었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뀌었네요.”

 “아뇨, 그건 아닌데.”

 

 안나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디저트 종류는 죄다 잘 먹는 편이었다. 없어서 못 먹을 뿐이지. 그녀가 다시 한 번 케이크를 향해 부담스러운 심정이 듬뿍 배어든 시선을 흘긋 던졌다. 케이크는 여전히 환한 조명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호의라고 해도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가격은 물론이고, 이런 케이크를 한 번에 네 조각씩이나 먹은 적이 없었던 탓에, 다 먹을 수 있을지도 고민되었다. 어쩌다 한 조각, 많아봐야 두 조각씩 먹어 왔던 그녀에게 케이크 네 조각은 온전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설마 나 혼자 다 먹으라는 거겠어? 아니겠지?

 

 “와, 이 사람 나한테는 한 번도 이런 거 사준 적 없으면서…….”

 

 게다가 배신감 어린 레아의 중얼거림을 듣는 순간, 안나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니, 함께 일하는 사람한테도 한 번도 사준 적이 없는데 나한테 사준단 말이야? 대체 왜? 단지 팬이라는 이유로? 나 말고도 그간 만나 본 팬은 많을 텐데! 그녀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프란츠는 레아의 말에 그저 눈썹만 휙 꺾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레 고개를 안나의 쪽으로 돌렸다. 옅은 라벤더색 눈동자가 오롯이 안나만을 담았다. 그가 부드러운 기색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정하게 말했다.

 

 “더 먹고 싶다면 언제든 얘기해요.”

 

 마디가 도드라진 큰 손이 탁자 위에 올라와 있었다. 길쭉한 손가락들이 피아노를 치듯 탁자를 톡톡톡 두드리다 제 앞에 놓여 있던 쟁반을 안나의 쪽을 슬쩍 밀어주었다. 케이크들이 질질 밀려 그녀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날 먹어.' 케이크들이 속삭였다. '어서 비싼 날 먹어줘.'

 

 "레아, 이상한 흉내는 그만 둬."

 

 안나가 투덜거렸다. 그녀의 말에 손을 입가에 모으고서 속삭이던 레아가 입을 비죽거렸다. 프란츠는 몹쓸 것을 봤다는 얼굴로 레아의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제겐 부담이 되지 않으니, 편하게 드셔도 좋습니다."

 "아."

 

 안나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그린스타이들 가는 작위가 있다고 하던가? 일가가 대대로 유명한 음악가를 배출해내어, 이름뿐이지만 자작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언뜻 들은 것도 같았다.

 

 그린스타이들은 작위를 받을 만큼 유명한 음악가들을 많이 배출해내었고, 그만큼 재산도 쌓여 있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가격이 프란츠 그린스타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어쩌지…….'

 

 그러자 이번에는 프란츠 그린스타이들이라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명한 부자가 내 앞에…….

 

 안나가 속이 불편한 얼굴로 생크림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조심스레 끌어왔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접시를 하나씩 끌어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자 쟁반과 프란츠, 레아를 차례로 바라보다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기, 다들 안 먹어요?"

 "당신도 먹을 겁니까?"

 

 프란츠가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것 같은 얼굴을 하다 레아를 향해 물었다. 레아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혀를 끌끌 찼다.

 

 "아, 됐네요. 먹을 생각 없어요."

 

 손을 내저은 그녀가 턱을 괴고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안나는 조금 더 불편해졌다. 작은 포크를 쥔 그녀가 묵묵히 케이크들을 노려보다가, 레아의 앞에는 치즈 케이크를, 프란츠의 앞에는 라즈베리 무스 케이크를 끌어다 놓고서 선언하듯 말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도 지금부터 열심히 먹어볼 테니 너희들도 열심히 먹어야 할 것이다.

 

 어쩐지 그런 말이 이어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레아가 떨떠름한 얼굴로 포크를 집어 들고 케이크를 쿡 찔렀다. 프란츠 또한 묘한 얼굴을 하다가, 케이크를 작게 조각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쩐지 비장함마저 감도는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던 안나는 그제야 케이크를 열심히 맛보기 시작했다.

 

 우유의 고소한 맛이 사탕처럼 입 안을 데굴데굴 굴렀다. 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크림 맛을 음미하다가, 조금 전보다 약간 더 크게 한 조각 잘라 입에 쏙 넣었다. 달콤하고, 고소했다. 생크림 케이크로 유명한 판도로와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맛이었다.

 

 안나의 얼굴이 사르르 풀어졌다.

 

 “입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입에 맞느냐 물으려던 프란츠가 그녀의 얼굴을 살피곤 말을 바꿨다.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조용히 해, 이제부터 내가 네 취향이니까.’하고 박력 있게 선포할 맛이었다. 행복하게 미소 짓는 안나를 보며 프란츠 또한 달콤하게 웃어보였다. 웃고 있지 않은 것은 오로지 레아뿐이었다.

 

 이 자식, 설마 우리 안나한테 관심 있나……?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프란츠를 열심히 노려보았다. 어느새 호칭은 ‘이 자식’이 되어 있었다. 레아는 케이크에 포크를 푹 찔러 넣었다. 안나가 봤더라면 레아가 케이크를 살해했노라 우는 시늉을 할 만큼 험악한 기세였다. 케이크 부스러기에게 입이 달려 있었다면 ‘죽……여……줘…….’하고 신음했을 만큼 거친 손길이기도 했다.

 

 레아가 고기를 뜯듯 케이크를 씹어 먹었다. 입가심으로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전투적으로 케이크를 해치운 그녀는 탁자를 한 번 둘러보고, 안나의 앞에 짙은 남색의 작은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뭐야?”

 “아아, 그거 네 선물이야.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케이크를 오물거리던 안나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상자를 그녀의 쪽으로 밀어주었다. 부드러운 겉면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매만진 레아가 슬며시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나가 자신을 위해 준비해준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어느새 기분은 산뜻하게 풀려 있었다.

 

 "어머."

 

 레아가 눈을 큼직하게 뜨고서 손으로 입을 살포시 가렸다.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는 시계는 몹시 섬세했고, 아름다웠으며,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안나의 선물이었으니 뭔들 마음에 안 들었겠느냐마는.

 

 "마음에 들어?"

 

 케이크를 꿀꺽 삼킨 안나가 조금쯤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혹시 시계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이미 가진 시계가 너무 많다고 하면? 이런저런 걱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먹구름처럼 채워나갔다.

 

 "물론이지!"

 

 레아는 안나의 걱정들을 햇살처럼 환하게 몰아냈다. 당장에 시계를 손목에 차본 그녀가 황홀한 것을 바라보듯 이리저리로 돌려보다가, 기쁨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 안나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 고마워, 안나.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야!"

 "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안나가 말갛게 웃었다. 레아는 행복한 눈빛을 하고서 손목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제 옆에 놓인 핸드백을 뒤적거려 길쭉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자, 이거. 네 선물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안나가 고개를 외로 슬쩍 기울이다가, 기대 어린 얼굴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어, 이건-"

 

 내용물을 확인한 그녀가 놀란 눈을 하고서 레아를 바라보았다. 레아는 쑥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슬슬 피하다가,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다.

 

 "너, 팽 페르뒤 때부터 차 마시는 거 좋아했잖아. 나는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네가 아직 좋아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널 생각하니까 당장에 차부터 떠올라서."

 

 진하고 달콤한 과일향의 홍차였다. 안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차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취향을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점이 고마웠다. 관심 없는 분야라 고르기도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선물로 준비해줬다는 점도 감동적이었고.

 

 “진짜 고마워! 잘 마실게.”

 

 안나가 레아의 손을 잡고서 애정을 담아 달랑달랑 흔들었다.

 

 감동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프란츠에게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제 몫의 케이크를 마저 조각내 먹다가, 조금 남은 커피마저 죄다 마셔버린 후 커다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대화 주제였다면 몰라도, 친구간의 대화인지라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

 

 안나와 레아의 대화는 그가 밖으로 지나가는 비둘기를 열세 마리 즈음 세었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머리가 벗겨진 비둘기와 다리를 절룩거리는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며 소란스레 싸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프란츠는 문득 드는 허탈함에 미간을 슬쩍 좁혔다.

 

 그리고 우연히 시선을 돌리다 미간을 찌푸린 그의 모습을 눈에 담은 안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걱정을 느끼고 있었다. 엇, 우리가 너무 우리 얘기만 했나……? 안절부절 못하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던 그녀가 입을 우물거려 프란츠에게 말을 걸었다.

 

 “저어, 케이크 정말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입꼬리만 슬쩍 들어 올려 어쩐지 맹하게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인 안나가 꾸벅 인사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색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프란츠가 눈매를 누그러뜨리며 대꾸했다.

 

 “갑작스레 합석하게 되었는데도, 기꺼이 받아들여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보러 오십니까?”

 “앗, 네네. 내일 공연이요.”

 “그렇군요. 부디 내일 공연이 당신께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안나.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아쉽게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그러면 내일 뵙도록 하죠.”

 

 그가 슬쩍 목례하고, 겉옷을 팔에 걸쳤다.

 

 프란츠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던 안나는 그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주먹을 옹골차게 말아 쥐고서 테이블을 쿵쿵 두드렸다.

 

 “미쳤어! 프란츠 그린스타이들이 나한테 케이크를 사줬다고!”

 “진정해, 안나. 저 사람이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내가 팽 페르뒤 졸업하는 날부터 좋아했는데!”

 

 레아가 서먹한 얼굴로 안나의 팔을 도닥였다. 으응, 그래. 그럴 수 있지. 좋아하는 음악가 한 사람 정도는 있을 수도 있지, 응.

 

 ‘……그래도 저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레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거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지금껏 그녀가 함께 일하며 봐온 프란츠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보다는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요 며칠 사이에는 뭘 잘못 먹었는지 조금 이상한 면모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하기는, 뭐 어때. 둘이 연애할 것도 아닌데.

 

 엉켜가는 머릿속을 단순하게 정리한 레아가 고개를 저었다. 둘이 연애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팬으로서 피아니스트를 좋아하겠다는데 말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녀 또한 프란츠의 실력은 인정하는 바였다. 어쨌든 그 사람 실력이야 대단하기는 해.

 

 “그래그래, 그럴 수 있지.”

 “응?”

 “아냐, 그래서 어쩌다 그를 좋아하게 된 건데?”

 “으응, 우리 졸업식 날 있잖아. 그가 우리 졸업식에서 연주했었던 거 기억나?”

 

 안나가 신난 얼굴로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가기 시작했다. 레아는 턱을 괴고 그녀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다가,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는 등의 가벼운 반응을 하곤 했다.

 

 프란츠 그린스타이들이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는 몰라도, 이것으로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고 봤다.

 

 레아가 그를 가만히 떠올려보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우며 생각했다.

 

 안나가 이렇게나 좋아하니 된 거라고.

 어쨌든, 다시 만날 일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작가의 말
 

 프란츠: 괜찮습니다. 이 정도의 금액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안나: (부자다)(완전 부자다)(짱 부자다)

 안나: ((부담스러워...))

 프란츠:

 

 늘 감사합니다!

 쫀저녁 보내셔요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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