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만나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나.

　저 또한 당신과 몹시 만나고 싶고, 당신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이번 공연에서 제가 맡은 일이 너무도 큰지라 만나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야할 듯 성싶습니다. 부디 제 답변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참, 안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전에 보냈던 편지를 제게 전해주었던 사람이 당신을 아는 것 같아서요. 예전에 보냈던 제 편지를 기억하십니까? 리스트레토 출신의 플루티스트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바로 그녀가 제게 당신의 편지를 전해다 주었는데, 무심코 봉투에 적힌 당신의 이름을 본 모양이더군요.

　그녀의 이름은 ‘레아 마르체티’입니다. 편지를 전해주며 당신을 아느냐 묻기에,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그녀를 아는지 물어보고 싶어서요.)]

　[(아이고, 그렇군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다음을 기약하도록 해요!

　레아 마르체티라면 제 친구예요. 팽 페르뒤를 졸업한 후로 소식이 끊겨 이따금 잘 지내고 있을지, 뭐하고 지낼지 궁금해 하던 친구였는데, 스테판과 함께 일하고 있었군요! 이렇게 소식을 접하게 되니 어쩐지 신기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네요.

　팽 페르뒤 재학 중일 때부터 악기 종류는 유난히 잘 다루던 친구였어요. 그 친구도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같아 괜히 기쁘네요. 좋은 소식 알려줘서 고마워요, 스테판. 조만간 연락이라도 해야겠어요.

　앗, 또 잊을 뻔했다. 스테판, 제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이전에 편지를 보낼 때 덧붙인다는 게 깜박하고 그냥 보내버렸더라고요. 제게 궁금한 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참고하시라고 적어둡니다.)]

　[(당신의 동창이었군요. 제가 편지를 부치려할 때 제게 편지를 부탁한 것으로 보아, 그녀도 당신에게 편지를 쓴 모양입니다. 그녀의 것과 제 것이 함께 도착하겠네요.

　궁금한 점이요……. 그러고 보니, 그 번역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환불 되었나요? 이따금 궁금해지곤 하는 사항이었습니다만, 이제야 질문을 하게 되었군요. 부디 관장님께서 당신의 의견을 받아들였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스테판!

　짐작하신대로, 레아와 당신의 편지는 함께 도착했어요. 그 애의 편지를 읽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었어요. 눈물을 참아가면서 몇 번이고 곱씹었죠. 레아와 약속도 잡았어요. 리스트레토에 조금 일찍 도착할 예정이라 22일에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번역기는 환불했어요! 관장님을 설득하는 데 좀 애를 먹기는 했지만, 예시로 한 문장을 쓴 다음 아인슈페너 어로 번역했다가, 다시 리스트레토 어로 번역해 보여드리니 곧장 마법사 조합에 연락하시더라고요.

　번역기를 만든 하얀 달 마법사 조합의 조합장이신 루소 씨가 직접 와서 환불 해주셨어요. 관장님께서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쪽에서 피해 보상을 명목으로 준 돈이 좀 많아서요……. 나름 만족하시는 것 같았어요.

　사실, 당신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고, 그러면 제 일상을 조금이라도 털어놓는 게 좋을까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음……. 한참 생각해봤는데도 떠오르는 게 없네요. 그냥 제가 평소에 어떤 일들을 하는지 말씀드릴게요.

　지루할 테니 그냥 넘기셔도 좋아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조금 지루할 것 같거든요…….

　제가 사서라는 것은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렸었지요? 리스트레토의 사서는 아인슈페너와 로크포르와는 조금 다르리라고 생각해요. 일이 조금 독특하거든요.

　저랑 함께 일하는 분-편하게 A라고 해요-과 저는 매일 아침, 도서관 앞에 놓인 포대자루를 안으로 들여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 포대자루 안에는 책이 들어있는데, 절대 이 책들을 맨손으로 만지면 안 돼요. 책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을지 모르거든요.

　실제로 몇 년 전,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만졌던 한 사서 분께서 짓궂은 함정에 빠져 한 달 동안 병가를 낸 적도 있다고 해요. 듣기로는 손이 두 배로 커졌다고 하던가? 직접 뵌 적은 없어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그래서 반드시 보호마법이 걸린 포대자루를 사용해야만 해요. 그런 다음에는 마찬가지로 보호마법이 걸린 장갑을 끼고, 책상 서랍 속에서 동그란 통 하나를 꺼내죠. 통 속에는 마법석 가루가 들어 있어요.

　웬만한 마법은 무효화시키는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석을 가루로 낸 거라, 그걸 책 구석구석까지 뿌리기만 해도 마법사들의 장난은 무효화시킬 수 있거든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작업해야 해서 조금 지루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끝내고 나면 나름 뿌듯해요. 뿌듯하다고 해서 즐거워지지는 않지만요.

　가루를 책에 꼼꼼하게 뿌리고,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뒤 마법을 무효화시킨 책들을 구석에 쌓아두면 오전이 훌쩍 지나가버려요.

　그래도 요즈음은 책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퍽 수월한 작업이 되었어요. 가끔 포대자루 안에 책이 한 권도 없는 날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 날에는 A씨와 함께 느긋하게 라즈베리 차를 우려 마시기도 해요.

　오후 시간은 오전에 비해 조금 더 느긋한 편이에요. 사람들이 반납한 책들을 제자리에 꽂아두고, 자료를 찾아주는 등의 일만 하면 되거든요. 물론 새로 들어온 책을 분류하고 번호를 지정해 도서 목록에 올리는 일은 귀찮지만, 가루를 뿌리는 것보다는 나름 괜찮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막상 다 적고 나니 역시 많이 지루한 것 같네요……. 하지만 달리 어떻게 제 일상을 풀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도. 어쩐지 하루 일과를 검사받는 것 같은 느낌의 편지가 되어버렸네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스테판, 당신만 괜찮다면 당신도 제게 당신의 일상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인상 깊었던 일 같은 거요. 불편하시면 알려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안나.

　당신께서 알려주신 정보는 몹시 재미있었고, 또 새로웠으므로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법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설렘을 선사하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제게 작은 설렘을 선물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루소라면, 알렌 루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는 타고난 재능이 몹시 뛰어난 마법사죠. 아인슈페너까지 이름을 떨칠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런 자가 직접 오갔다니, 조금 놀랍군요.

　제 일상이 너무도 재미없어 지루해하실까 조금 걱정이 됩니다만, 부족한 솜씨나마 최대한 지루해하시지 않게끔 열심히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간밤에 왔던 편지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답장을 해야 하는 것들과 불쏘시개로 쓸 것들을 구분하고, 급히 답장해야 하는 것과 아닌 것으로 구분한 뒤, 펜에 잉크를 적셔 답장을 쓸 준비를 하죠.

　개중에는 제 것이 아닌 것들도 섞여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대체로 답장을 보낸 뒤 아침을 먹는 편입니다. 그런 뒤에는 안젤라에게 편지를 가져가 일정을 조율하죠. 그녀가 참석할 공연과 연회 등의 일정이 잡히면, 답장을 잠시 미뤄두었던 편지를 가져와 답장을 마저 쓰고, 하인을 시켜 그것을 마르텔의 아인슈페너 지부로 보냅니다.

　공연 일정이 따로 잡혀 있지 않다면 그 뒤로는 온전히 제 시간이죠. 일정이 잡혀 있든 아니든 악기 연습을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요즈음은 따로 북부의 언어를 배우거나, 정치, 경제 쪽의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매일이 비슷하고, 때문에 당신께서 읽기에는 지루한 일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적고 나니 퍽 무안하군요.

　이제 공연이 이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당신께 행복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네요.)]

　[(스테판,

　우선 루소 씨는, 스테판이 알고 있는 그 알렌 루소가 맞아요. 사실 저도 아직까지 안 믿기지만……. 몹시 유명하고, 또 대단한 사람이라 이름만 들어왔는데, 그런 사람이 번역기 환불 문제로 도서관에 올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기왕 온 김에 고장 난 것이 있다면 고쳐주겠노라 큰 소리를 떵떵 칠 때까지만 해도 사기꾼은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헌 물건이 새 것으로 바뀌는 걸 보니까 의심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참, 그리고 그는 예상 외로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마냥 애칭을 부르며 저와 디저트 가게에 대해 수다를 떨 정도로요.

　제가 처음 만난 사람한테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적으면서도 어리둥절하네요.

　스테판의 일정 또한 전혀 지루하지 않은걸요! 오히려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당신을 본받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공연은 완벽할 거예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해질 만큼이요.)]

　[(안나. 당신의 응원 덕에 공연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납니다. 물론 저는 공연의 아주 작은 부분만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작은 부분이 모이고 모여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법이죠. 당신이 실망하지 않도록 조금 더 연습하여 완벽한 공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헌 물건이 새 것으로 바뀌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적지만, 오로지 알렌 루소 하나 뿐인 것도 아니니 조금 더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혹여 사기꾼이기라도 할까 걱정되는군요. 만약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제든 제게 연락하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당신을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