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우리가 사랑한 우주에서 (2)

　#6. 해적선 신천지호

　 간디048의 뒤로 김진욱076이 다가갔다. 간디048은 전망 스크린을 통해 ‘해적의 별’성역을 지켜보고 있었고, 김진욱 역시 전장의 상황을 시종 보고 받고 있던 차였다.

　 “알고 있었나?”

　 간디048의 물음이었다. 김진욱076은 침묵으로 답변에 대신했다.

　 내가 이 몸으로 너무 오래 살았구나. 진작 새로운 복제 육체에 기억을 옮겼어야 했는데…… 간디048은 30세대 가까이 차이가 나는 전생테를 떠올리며 김진욱076의 침묵의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이 친구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 이상의 어떤 비밀까지 알고 있는 것을 아닐까?

　 과거의 인연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해 본류의 동료들에게서 한 조각을 나누어 떠나온 후 신천지호를 재생시키고 우주 안의 한 세력으로 다시금 자리하기까지 내가 보인 독단적인 행동들에 대해 저 친구는 늘 너그럽게 따라주었지. 내가 가진 고충을, 내 심중에 숨겨져 있는 한 조각 애착의 비밀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 일시 주역인 양 행세하였지만 잠시의 외도를 수습위한 편법이었을 뿐 과거 600년 동안 언제나 김진욱가(家)의 조력자였고, 지금도, 또 미래의 어느 시대에도 그럴 것이다. 나는 김진욱 가계로 대표되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재생의료 담당 전문가 파란눈 간디가 신분의 전부이고 그에 만족한다.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부하들을 보냈네.”

　 다음 말은 들어보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김진욱076은 “아무 것도 찾지 못했네”의 말을 생략하고 있었다.

　 “항성계 전체를 우주도에서 지우도록 명령을 내렸네.”

　 ‘해적의 별’의 가족들을 모셔간 친구들이 우리에게 기대한 것도 그것이었겠지. 잘했군. 역시 우리 대장이야. 간디048은 속으로 김진욱076의 결단에 찬성을 보냈다.

　 전망 스크린 속에서 항성계 전체가 원자 분해되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 사이에 전설의 ‘해적의 별’이 있었던 공간은 허공으로 돌아갔다.

　 “적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부하 해적의 보고였다. 황금빛으로 장식된 선체를 자랑하는 은하연방 우주군 함대의 지원군이 공간 가득 몰려오고 있었다. 신천지호의 해적들은 무장을 갖추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홀연 통신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흐린 화면이 새로운 초점을 모으면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간디048과 김진욱076은 동시에 신음소리를 토했다.

　 “이 친구였군. 역시……”

　 통신 스크린의 영상은 류우408을 떠올려 놓고 있었다. 양측은 통신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잠시 오랜 숙적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는 것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증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해적선 신천지호에서 단승 공격기들이 떠오른 것은 그 직후였다. 은하연방 우주군 지원함대에서도 단승 공격기들이 떠올라 벌떼처럼 날아왔으므로 곧 우주는 포화가 난무하는 전장으로 변해 갔다.

　 신천지호 측 단승 공격기 부대의 선두에는 간디048이 있었다. 그는 만류하는 동료들을 뿌리치고 스스로 선봉을 맡았다.

　 “너무 오래 살았어. 후신은 만들어 놓았으니 죽거든 두뇌나 옮겨 주게.”

　 간디048이 남긴 말이었다. 그는 적선이 밀집한 속으로 뛰어들며 중얼거렸다. 두뇌가 없으면 어떻다는 말인가. 이 못난 기억 따위 버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게 내게 남은 유일한 욕심인데. 지쳤거든. 그 길고 길었던 그리움의 세월…… 나는 영원한 조역을 자처하면서도 주역인양 그리워했었어. 본류의 동료들이 우리의 고향을 지운 이유는 그 벌칙이었겠지. 그리움의 순위와 권위를 본래의 소유자에게 돌리고자하는……

　 간디048은 자신의 단승 공격기가 연방군 함정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역시 전투 중에는 잡념을 끓이면 안 돼. 기어코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군. 간디048의 두뇌를 회수하기 위해서 신천지호로부터 단승 공격기들이 발진했다. 그 선두에는 김진욱076이 있었다.

　 우주가 요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7. 앞장면의 연속. 세 개의 블랙홀 성역 ‘마의 삼각지대’

　 ‘마의 삼각지대’의 세 축을 이룬 블랙홀 삼형제가 서로 궤도를 침범하여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블랙홀 삼형제의 집합은 상궤를 벗어난 고에너지의 탄생을 부르고, 그 반작용으로 폭발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거대항성의 탄생을 알리는 화이트홀의 구현이었다.

　 장미13호는 급작스러운 신성 탄생의 현장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왔다. 수선013은 대피에 성공한 장미13호의 사령실에서 전망창을 통해 불의 분노로 들끓고 있는 우주를 보았다. 소위 빅뱅으로 부르는 태초의 우주시작의 축소모형이 거기에 있었다.

　 전쟁에 열중하던 해적선 신천지호의 세력들과 은하연방의 실력자 류우 가문의 사설함대 황금전함 함대의 모든 병력은 화염에 삼켜져 불꽃으로 사라졌다. 신성의 탄생이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그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진하는 데 익숙한 전사들이었고, 신성 탄생의 한 요소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8. 우주력 6세기 말. 앞장면의 2년 후. 태양이 없는 행성의 상공. 우주선교선 장미13호

　 -지켜보아 주세요.

　 ‘해적의 별’전투 참관 2년 후, 우주선교선 장미13호는 항성이 보이지 않는 적막한 우주공간을 여행하고 있는 소행성의 상공에 배를 멈추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도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의 전쟁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전망창에 떠오른 별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별’이었다. 장미13호의 기술진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빛과 열을 공급해 줄 항성을 갖지 못한 별이 우주를 떠돌게 된 이면에는 자체 동력이 있었다.

　 -저 별은 한 세기 전 우주로 나왔습니다. 미래세기에 존재할 초문명이 스스로 과거로 온 경우로 보이는데, 최근에 저 별에서 생명 반응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9. ‘죽음의 별’. 앞장면의 연속. 어느 낙오병의 독백

　 -본대로부터 소식이 끊긴 지 반 년, 우리는 여기에 뼈를 묻는다. 친구여, 고향별에 내 이야기를 전해다오. 젊은 무명용사의 한 토막 무훈담을……

　 유언시 비슷한 노랫말 따위를 백지에 적는 동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처지가 더욱 실감 되었다. 본대에서 떨어져 고군이 된 지 여섯 달, 우리는 적진 중에 버림받아 적의 패잔병 소탕전에 휩쓸려 들 운명에 있었다.

　 제2차 은하대란 명색의 회전이 일승일패로 결말이 난 후, 은하연방군의 주력 황금전함 함대는 새로운 병력을 투입하여 반격을 해왔다. 아군은 사력을 다한 방어를 했으나 적은 강력한 함대를 끝없이 전선으로 보내 왔으므로 전세는 갈수록 아군에게 희망이 없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더구나 우리 부대로 말하면 진작 전선이 지나간 적 후방의 외로운 행성계에 머물러 아군의 반격을 애타게 기다리는 낙오병대의 처지였다.

　 듬성듬성 푸른 숲이 있을 뿐 동물이라고는 토끼 한 마리 살지 않는 이 ‘외로운 행성’에 우리가 처음 상륙했을 때는 아군이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수도에서 개선식을 거행하고 있었을 때였다. 우리는 늦은 참전으로 승리의 맛을 보지도 못한 데다 수도의 영화를 구경할 겨를도 없이 이 ‘외로운 행성’에 배치된 불운한 군인들이었다. 상부의 명령에 따르면 ‘외로운 행성’은 적이 반격을 해 올 경우 적의 동향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유니콘의 뿔’과 같은 위치에 있으므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요충지라고 하였다.

　 ‘외로운 행성’에는 우리 부대 외에도 일개 대대 정도의 전문용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소문난 해적 출신이라는 용병들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병영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었다. 전쟁 귀신, 혹은 파괴예술의 전문가 등으로 불린다는 그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든든한 이웃을 가진 셈이었다.

　 우리가 처음 적의 공격을 접한 것은 전선이 ‘외로운 행성’을 지나가면서였다. 우리 부대는 본래 주둔한 목적에 따라 부지런히 적의 동향을 관찰하여 본부에 타전했는데, 우리의 첩보가 전쟁에 썩 도움이 되지 못했던 모양으로 아군은 급격히 패퇴하고 전선은 아득히 멀어져 갔다. 오히려 우리의 타전이 부른 것은 적의 내습이었다.

　#10. 앞장면의 연속. 6개월 후

　 적은 2개 별동함대급의 대군이었다. 우리 부대는 원래 적 행성이나 전함에의 상륙을 목표로 훈련을 받은 육전대가 주력이었으므로 우주전에 필요한 전함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적은 그러한 우리의 형편을 고려해줄 아량이 없었던 모양으로 열 곱절 이상의 대군으로 공격해 왔다.

　 ‘외로운 행성’의 외계 우주에서 벌어진 전투는 당연히 우리의 패배였다. 병력도 훈련도 시원치 않은 우리 부대의 전투정들은 여지없이 분쇄되어 겨우 몇 척이 ‘외로운 행성’으로 도망쳐 왔을 뿐이었다.

　 모를 일은 용병들의 태도였다. 우리 부대의 지휘관이 출전을 알렸지만 그들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당연히 주력이 되어 줄 것으로 믿었던 용병들의 배신에 치를 떨면서도 우리는 전함들을 발진시켰고 당연한 결과로 패퇴했던 것이다.

　 추적해 온 적의 대군이 행성에 상륙한 후에야 우리는 용병들이 왜 전쟁 전문가로 불리는지 알았다. 일방적인 승전으로 만심을 가진 상태에서 행성에 상륙한 적들이 진용을 정비하기 직전에 용병들의 반격은 시작되었다. 용병부대의 단승 공격기들이 일순에 날아올라 미처 방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던 지상의 적을 강타했다.

　 ‘외로운 행성’에 상륙했던 적의 육전대를 전멸시킨 용병부대는 기세를 몰아 적 본대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우리는 소문 높은 ‘우주전에서의 로마군단’의 전법을 구경할 기회를 가졌다.

　 단승 공격기로부터 하선한 해적들은 연방군 함정들을 향해 육탄으로 돌격했다. 입대 전에 다차원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동료의 말에 의하면 용병들이 펼치는 ‘우주전에서의 로마군단’의 정체는 다차원 물리학을 응용한 초광속 공격으로 적의 화포가 발사되기 전에 장약을 파괴하는 형식의, 소위 ‘원인이 발생하기 전에 봉쇄’하는 전법이라고 하였다. 사관학교 출신인 우리 소대의 지휘관은 ‘기왕에 발생한 사건은 거스를 수 없다’는 인과론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용병들과 용병들이 탑승했던 단승 공격기의 사이에는 연결 체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용병대가 함정에 상륙하는 동안 무인이 된 단승 공격기들은 그들을 엄호하여 연방군의 함정에서 발진한 전투정들과 공중전을 벌였다.

　 우리가 감탄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연방군 별동함대는 차례로 주력 함정을 잃고 겨우 잔존 병력 몇 척이 목숨을 연명하여 도주했다. 일개 대대 남짓의 군세로 2개 함대 규모의 적을 격파시킨 용병들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의 환영사를 대하는 용병들의 안색은 밝은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전투 이후 6개월, 우리는 용병들이 파격적인 승전에도 기뻐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적은 우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보루를 짓고 감시탑을 세우고 보초병을 세워 적을 기다렸지만. 적은 단 한 척의 함선도 보내지 않았다.

　 적은 우리를 스스로 지쳐서 무너지게 만들 심산인 듯했다. 우리는 전선의 후방 적의 영역에 고군이 된 채로 적과 아군 모두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병사들이었다.

　 고군이 되어 행성을 지킨 세월도 6개월을 넘긴 며칠 후, 대망의 적이 나타났다. 기다리던 적의 내침에 우리는 환성을 올렸다. 우리는 군인이었고, 군인의 본분은 싸우는 것이었으므로 적은 환영받아 마땅했다.

　 상공에 가득한 적의 대군을 보면서 용병대대의 장은 우리 앞에 나서서 말했다.

　 “이번의 적은 6개월 전의 패전을 만회할 대비책을 갖고 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전투는 우리의 무조건적인 패배로 보아도 좋다. 우리는 용병이므로 계약기간 동안에는 용병으로서의 계약이행 외의 선택권을 갖지 못한 신분이지만 그대들은 자유로운 몸이니 항복해도 좋다.”

　 우리 중의 몇몇은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했다. 물론 나도 그들을 따라 단승 공격기에 올랐다. 나는 내게 자리를 나누어 준 해적에게 물었다.

　 “계약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답했다.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승리할 것.”

　 나는 그때에야 6개월 전 우리 부대의 참패에도 죽은 듯 침묵하고 있던 용병 대대의 뜻을 알았다. 그들은 약체인 우리 부대를 희생물로 삼아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고 적의 자만심을 키운 후 초전의 승리에 만족하여 대오가 흩어진 적 부대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새로운 적은 철저한 준비 끝에 나선 대군이었다. 일개 대대급의 용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연합함대급의 함정들이 출동했고, 아마도 특별히 조직된 듯싶은 육전대가 용병들과 거의 대등한 전력으로 같은 전법을 활용하여 대적해 왔다. 우리는 전멸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적 육전대의 칼에 맞아 죽음 직전에 있던 내게 용병대대의 장이 위로의 말을 건네 왔다. 그 역시 몇 개의 깊은 상처를 입고 죽어 가는 처지였다.

　 “젊은 친구가 제법 용기가 있군. 용기는 해적의 가장 큰 재산이고 자랑할 만한 덕목이지. 나는 코넬095라고 하네. 해적선 신천지호의 단위부대장인 코넬095의 수평복제로 기억을 공유하는 존재이기도 하지.”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게 희망을 남기려는 노력이었다.

　 “나는 죽어도 동료들에게 구함을 받아 재생될 걸세. 물론 전생테가 하나쯤 늘어날 것이고 그 시기가 언제일지도 모르지만. 시신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배에 보유된 유전정보로 복제되기도 하지만 나와 내 부하들은 위치를 알려 두었으니 구함을 받는 쪽이겠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내 곁에 꼭 붙어 있게. 자네가 죽으면 내가 자네의 세포 한 조각을 갖겠네. 훗날 내가 재생될 때 해적으로 만들어 줌세.”

　 그래서 나는 먼저 죽었다. 언젠가 해적이 되어 영원히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