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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라스트 위스퍼(Last Whisper)
작가 : PamC
작품등록일 : 2018.12.12

공연을 위해 들른 마을에서 수수께끼의 소년과 만난 유랑악단의 소녀 레나. 그 둘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02. 2년 후 - 레나, 그리고 악단(2)
작성일 : 18-12-13 00:19     조회 : 201     추천 : 0     분량 : 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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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비 한 번 정말 끝장나게 오는구만.”

 

  조니가 툴툴대면서 몸에 감고있는 담요를 여몄다. 그가 세고 있지는 않겠지만 벌써 그 말도 다섯 번째였다. 애초에 입 밖으로 내는 말 중 불평이 아닌 말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항상 불만이 가득한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불평할만한 상황이긴 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끝내고 보수도 두둑히 챙긴 것까지는 좋았지만, 다음 마을을 향해 길을 나서자마자 날씨가 이 모양인 것이다. 아침, 밤에만 춥고 낮은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하던 괴상한 날씨도 이제 끝내겠다는 듯,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기 전 하늘은 비를 구멍 뜷린 것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그 탓에 여기저기서 비가 줄줄 새는데다가 거친 길을 달리느라 덜컹거리기까지 하는 포장마차에 여러 명이 낑겨앉아있는 상황이 거의 반나절 정도 지속되고 있었다. 조니의 입이 평소보다도 바쁜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돈이 좋다지만 이렇게 처량하게 빌어먹을 놈의 비까지 맞아가면서 궁둥이에 불 붙은 것처럼 급하게 가야할 건 뭐람. 이 짓도 앞으로 3년만 더 하고 때려 치워야겠어.”

 

  조니가 빼빼 말라 광대가 그대로 드러난 얼굴로 떨어진 빗방울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마부석에서 말을 몰고 있는 단장이 멋쩍은 듯 이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내가 3년 전에도 들은 것 같은데.”

 

  파티마가 추위에 곱은 손을 담요 속에서 비벼대며 대꾸했다. 그녀는 더운 지방에서 와서인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다.

 

 “내가 언제 그랬어? 하여간 이 여편네는 없는 말 지어내는 데에는 선수라니까.”

 

 “내 기억에도 그런데 뭘. 그 때는 마을에서 밤늦게까지 공연하고는 제 명에 못 죽겠다며 때려친다고 했었지, 아마?”

 

  조니의 변명이 무색하게도, 대니가 킬킬대면서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비 새는 포장마차 안의 모두가 다 대화가 그리웠나보다. 대니의 대꾸에 빈정이 상했는지, 조니는 언성을 높이며 ‘나는 절대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허사였다. 마차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등불이라도 조니의 당혹스런 표정을 비추기에는 충분했으니까. 파티마와 대니는 이때다 싶었는지 그간 조니가 뱉었던 은퇴 선언과 반복의 역사를 바깥에 쏟아지는 비처럼 쉴새없이 쏟아냈다. 그 때마다 조니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탈레키아 유랑악단의 마차 뒷켠에서 종종 벌어지는 풍경이었고, 대부분은 같은 이야기였음에도 항상 우스웠다. 이번에도 레나는 소리 죽인 코웃음을 치면서 그들의 열띤 논쟁을 듣고 있었다. 그게 기회다 싶었는지, 조니는 레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헤이, 이런 거 애가 들으면 뭘 배우겠어? 이쯤하자고. 참, 어른이라는 작자들이 말이야.”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레나의 교육을 위해서 대범하게 참고 넘어가준다는 듯 조니가 헛기침을 하면서 자세를 고치고 앉았다. 하지만, 그런 조니에게 쐐기를 박는 건 레나였다.

 

 “대니 아저씨하고 파티마 언니, 왜 조니 아저씨가 저 처음 왔을 때 자긴 금방 그만둘 거니까 이름 기억할 필요 없다고 했던 건 빼세요? 그건 아직 사 년밖에 안 됐잖아요.”

 

 “아, 맞네! 그런 일도 있었지. 하여간 저 양반 입은 참 뱉은 소리가 많기도 해. 먹는 입은 그렇게 짧으면서.”

 

  파티마가 한껏 신랄한 투로 말끝을 올리는 걸 듣고 대니는 또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기 허벅지를 두들겼다. 그 바람에 마차가 기우뚱거리며 한가운데의 등불이 가물거렸다.

 

 “레나, 네가 어떻게 나한테-”

 

 “어떻게는 무슨! 당신이 레나한테 뭘 해준 적이 있어야지!”

 

  한층 더 뜨거워진 대화가 마차 안을 달궜다. 조니의 자기변호는 치열했지만, 정확하지는 않았고 레나까지 가세한 대니와 파티마 측의 공격은 치열한데다 정확하기까지 했다. 한참을 시끌거리며 이어졌던 조니의 과거사 되짚기는 언제나 그렇듯, 빈정이 상한 그가 등을 돌리고 앉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젠장, 셋이서 잘 해보셔! 이번엔 정말 때려치든가 해야지, 원. 내 정말 더러워서…”

 

 “아, 저 친구 또 삐졌구만. 뭐든지 삐지는 것만큼만 꾸준히 했으면 저 친구는 뭐 하나는 돼있었을텐데.”

 

  대니가 배까지 부여잡으며 웃어댄 탓에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어내며 말했다. 그건 파티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간만에 실컷 웃었다는 듯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레나에게 속삭였다.

 

 “자, 레나 출동! 저 쫌생이 삐진 것 좀 풀어주고 와라!”

 

 “넵!”

 

  파티마가 레나의 엉덩이를 한 번 탁 쳐주자, 레나가 슬그머니 조니 뒤로 다가갔다. 이번만큼은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듯, 팔짱을 낀채 돌리고 있는 조니의 등이 꼿꼿했다.

 

 “아저씨, 화났어요?”

 

  레나가 콧소리를 잔뜩 섞은채 말꼬리를 길게 늘리면서 조니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조니는 움찔거리지도 않고 콧방귀를 내뀔 뿐이었다. 이런, 평소보다 한층 더 심하게 삐졌나보네. 레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다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니에게 말했다.

 

 “아이, 죄송해요오. 저희가 너무 심했죠? 너무 오랜만에 이런 얘기 하는 거다보니까 그랬어요. 화 푸세요, 네에?”

 

  이번엔 먹혔다. 조니가 몸을 조금 움찔거리면서 코웃음에 가까운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 때다. 레나는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조니가 삐진 걸 풀어주는 방법은 그가 삐지는 경우만큼이나 뻔해서, 언제나 레나가 애교로 살살 꼬드기다가 조금 슬퍼하는 척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곤 했다.

 

 “저, 고아가 되어서 외롭게 살다보니까 이렇게 신나게 이야기하면 저도 모르게 심한 말이 나와서… 죄송해요. 저 앞으로는 말 안 할게요…….”

 

  보지 않아도 한 소녀가 잔뜩 움츠러든 채 어쩔 줄 몰라하며 금방이라도 울 듯한 목소리를, 레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물론 레나는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었지만.

 

 “후우, 이런 젠장.”

 

  조니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몸을 돌렸다. 레나는 이것으로 조니 삐짐 풀어주기 통산 47회째라는 대기록을 경신한 셈이었다. 아마도 조니가 결혼해서 레나 닮은 딸을 낳지 않는 이상 경신될 확률이 매우 적은 기록이었다.

 

 “알았다, 알았어. 이 얄미운 꼬맹아. 하여간 이 녀석 때문에 뭔 장난도 못친다니까.”

 

 “장난은 무슨. 그냥 뒀으면 사흘동안 밥도 혼자서 먹었을 거면서.”

 

  대니가 수염이 까끌까끌 올라온 턱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오래된 마차가 덜컹거리면서 바닥에 놓인 등불이 한 번 희미해졌다가 이내 가물거리면서 밝아졌다.

 

 “아, 시끄럽고. 이번만은 내가 레나 봐서 참는다. 하여간, 어른들이 돼서 말이야. 남들 놀리는 못된 심보나 길러가지고서는.”

 

 “레나, 다음엔 저런 말 못하게 삐지면 그냥 냅둬. 알겠지?”

 

 “그럴까요?”

 

 “내일 모레면 마흔 되는 남자가 저렇게 속이 좁아서야. 쯧쯔.”

 

  파티마가 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허벅지 쪽으로 끌어당겼다.

 

 “좀 자두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대답을 숨긴채, 레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마자, 조니는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잠드는 줄로 생각하고 있는 아저씨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전에 파티마가 몇 번이나 애가 잘 때는 조용히 좀 하라고 말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자고 있는데 뭔 상관이냐고 말하는 조니였기에, 얼마 전부터는 핀잔을 주는 대신 아예 레나의 귀 위에 손을 슬며시 올려놔주었다. 파티마의 손 안에서 들려오는 고동치는 듯한 소리가 조니의 걸걸한 목소리를 조금 줄여주었다.

 

 “그 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가 이번에 가는 곳 있잖아? 하브만 마을이던가. 되게 오랜만에 가는 것 같은데. 한 2년만 아닌가?”

 

 “그러게. 한동안 소식도 못 들어본 것 같아. 레나도 한 번인가밖에 못 가봤을걸. 아직 노래도 못 하는 신참이었을 때?”

 

  하브만 마을. 가을걷이가 막 끝났을 때로 기억한다. 그러니 아마도 악단에 들어온 지 1년이 좀 안 됐을 때였을게다. 그 때는 지금처럼 노래를 부르지는 않고 악단 허드렛일만 도맡아 하는 정도였다. 아직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레나는 단원들의 공연을 먼발치에서 지켜봤던 기억이 났다.

  그 때 어떤 아이를 만났었지. 레나의 감긴 눈 안에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 밤에도 빛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가진 어떤 소년.

 

 ‘왜 여기 숨어서 보고 있니?’

 

  레나보다 조금 어린 듯 했던 그 소년은 악단이 공연을 하고 있던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집 뒤에 숨어서는 빼꼼히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 역시 먼 발치에서 공연을 보다가, 지루해져 산책을 다니던 중 멀리서 공연을 보고 있던 꼬마가 눈에 띄어 다가갔더랬다. 왠지 꼬마 혼자 그러고 있으면 으스스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레나는 그 꼬마가 귀신이나 악마일 거란 생각이 안 들었다. 악마라도 축제 공연이나 훔쳐보는 악마라면 무슨 큰일이야 있겠냐 싶었던 걸지도. 그리고 그 꼬마는 레나가 몰래 다가가서 말을 걸자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디딤돌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지. 레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무뚝뚝했지만, 어지간히 귀여웠던 얼굴의 그 소년에게 자기 이름과 글자를 가르쳐줬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레나의 생각을 멈춰 세운 것은 뭔가가 퐁, 하고 빠져나오는 소리였다. 대니가 포도주가 든 가죽부대의 뚜껑을 열었다는 뜻이다. 걸쭉한 포도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가 몇 차례 나고,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니가 마시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이, 아줌마. 드실거유?"

 

 "좀 줘. 쌀쌀하네. 그리고 다시 아줌마라고 부르면 그 때는 다신 턱으로 바이올린을 괼 수 없게 만들어 주겠어."

 

  파티마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대답하고는, 포도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뭐, 원래도 그럭저럭 잘 살던 마을이었고 전쟁 피해 입은 지역이랑도 좀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냥 잘 있겠지.”

 

 “암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어.”

 

 “이번에도 거기서 돈 좀 넉넉하게 챙겨주면 좋겠네. 저번엔 그래서 다음 마을에서 재미 좀 봤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다음 마을에서 시원하게 다 말아먹었잖아. 그거 얼마였지? 거의 한 달치-"

 

 "에헤이. 거기까지."

 

  레나의 귀에 닿는 단원들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파티마의 손 안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가 점점 더 짙어졌고, 머릿속에 떠올랐던 소년의 얼굴은 그만큼 옅어졌다. 이번에 가면 그 아이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를 기억은 하고 있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물던 레나의 생각도 이내 깜깜한 잠 속으로 삼켜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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