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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6. 동백아가씨(4)
작성일 : 18-12-12 21:33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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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이 잔뜩 무거운 몸으로 정신을 차린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꼬박 하루를 잠으로 보냈다.

 

 잠에서 깨고 나니 온몸이 축축했다. 식은땀을 흘린 것인지 이불을 걷고 침대에 걸터앉으니 한기가 몰려왔다. 유진은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놓은 핸드폰의 전원을 켜보지만 물에 빠졌던 핸드폰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유진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겨우 지갑만 챙겨 두툼한 점퍼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강한 햇살이 아니었음에도 현기증이 일었다.

 

 연락 올 곳이라곤 자료를 건네주기로 한 윤영이 전부이겠지만, 핸드폰을 살려야 했고 또 몸살 약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약을 먼저 사먹어야 이 빌어먹을 한기가 가실 것 같아, 동네 약국으로 들어가 감기몸살 약과 소화제를 달라고 하니 친절한 약사는 안색이 너무 안 좋다며 병원을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어차피 바로 한층만 더 올라가면 병원이니 수액이라도 맞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얼마나 안 좋은 건가 싶어 약국의 거울을 보니 몰골이 못 봐주겠다.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 약사의 조언대로 병원에 들러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맞으면서 또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나아진 것도 같다. 여전히 땀을 흠뻑 흘린 유진은 병원처방전을 들고 다시 약국을 방문하여 약을 받아들고 거리로 나왔다.

 

 어느새 머리 꼭대기에 머물러 있던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가까운 휴대폰 매장에서 새로 핸드폰을 구매하고 나오는 길에 동네의 작은 서점에서 동백아가씨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유진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핸드폰 전원을 연결한 채 침대에 누워 동백아가씨 책을 들여다봤다. 지금 당장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중반까지 읽고 있었다. 아마도 휴대폰 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이대로 끝까지 읽었을 것 같다.

 

 “여보세요.”

 

 -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돼?

 

 “핸드폰을 지금 살렸어. 자료는?”

 

 - 연락이 안돼서 이메일로 넘겼어. 확인해봐.

 

 “알았어. 연락할게.”

 

 - 그리고 임피디.

 

 “왜?”

 

 - 아니야. 나중에 정리되면 연락 줘.

 

 “알았어.”

 

 윤영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유진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놓고 노트북을 켰다.

 

 이메일에 전달된 자료를 다운 받은 유진은 자료 속에서 정인철을 찾았다. 흑백 사진 속 정인철의 모습이 젊은 시절 할머니의 옆에 서 있는 남자와 닮아 보였다.

 

 “정인철.”

 

 유진은 사진 속 남자가 북에서 망명한 정인철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방금 읽다만 동백아가씨의 마르그리트의 삶과 저절로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됐다.

 

 신분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에 상처 입은 채 생을 마감한 마르그리트의 삶을 보며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음날 유진은 정인철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국정원으로 향했다. 방송국 명함을 내밀며 정인철의 인터뷰를 시도하지만 정인철의 코빼기도 보지 못하고 쫓겨났다.

 

 방송국 10년 짬에 남아있는 건 오기와 깡뿐이었다. 유진은 급기야 할머니의 앨범 속에 든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정인철과 임춘희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딸, 즉 손녀라고 주장했다.

 

 정인철이 임춘희를 임신시키고 월북했노라고 외쳤다. 그러나 생떼 부릴 곳이 따로 있지. 이곳은 국정원. 씨알도 먹히지 않고 유진은 단박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럴 거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적어도 제 말이 정인철 귀에 조금이라도 들어갔으면 해서 무모하지만 덤벼들었다.

 

 국정원에서 쫓겨난 유진은 북한 노동당 간부인 정인철과 국극배우 임춘희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도 궁금했다.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차를 돌린 유진은 1950년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문을 펼쳤다. 그곳에는 여성국극단 동천의 광고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국극 배우시절 할머니의 얼굴도 보였다.

 

 유진은 계속 신문을 검색했다. 그러다 1951년 신문에서 인민군 선전대로 활동했던 예술인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됐다. 그 곳에서 임춘희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임춘우’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던 할머니의 이름이 이 기사에서는 ‘임춘우’가 아닌 ‘임춘희’로 표기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

 

 *

 

 인철과의 재회했던 그 날부터 춘희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재회하던 날, 인철은 춘희와 재회의 인사를 나눈 후, 곧장 책상으로 가 타자기에 손을 올려 타이핑을 시작했다. 여성국극단 ‘동천’이란 조직에 관한 기사였다.

 

 그 내용을 보자면 여성 국극을 폄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천이란 조직이 깡패 집단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춘희는 동천의 사업부들이 그를 폭행한 탓에, 여성 국극을 하급예술이라 폄하하는 정인철을 보면서 자신이 그 극단에 소속된 남장배우라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곡에서처럼 어느 때는 오누이 같다가, 어느 때는 연인 같은 모습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춘희는 정인철과 함께 어울리며 댄스홀에서 춤을 추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그를 부르는 호칭도 바뀌면서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담았던 마음은 그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그 크기를 점점 부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그가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에 만족해했는데, 이제는 그와 함께 그의 일상을 얘기하는 것조차도 성에 차질 않았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와 헤어지는 시간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춘희는 인철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마다 그를 속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게 한 죄책감에 괴로워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를 잊을 수 있는지 방법을 알 수 없었기에 그를 향한 마음을 끊어낼 수도 없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문화가 거리를 점령하고, 좌우익의 이념이 대립하는 시대가 펼쳐졌다.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다방은 언젠가부터 지성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토론장이 되었고, 웃음소리보다는 이념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인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춘희 또한 이러한 것들을 접하게 되면서 국극을 현대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동천의 백단장은 춘희의 제안을 반대했다.

 

 “잘 나가는 판에 변화는 무슨. 하던 대로 해.”

 

 단원들과 동고동락하는 춘희와 달리 백단장은 단원들을 이용해 먹는 악랄한 여자였다. 춘희가 백단장에게 반기를 들자 민정란을 필두로 단원들 모두 춘희의 편에 섰고 결국 백단장은 동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춘희가 이끄는 여성국극단 동천이 지방공연을 갈 때마다 플랜카드가 걸리고, 현대적으로 변화를 시도한 <동백아가씨>는 또다시 흥행 열풍을 일으켰다.

 

 예전처럼 춘희가 민정란과 남장을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사라졌지만 동백아가씨의 열풍으로 인해 인터뷰 요청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팬들의 광적인 사랑과 선물공세는 줄어 들 세가 없었다.

 

 춘희는 점점 더 커가는 동천을 볼 때마다 지금 자신의 일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임춘우의 동천이 아니라 극단 모두의 동천이 되게 해야 했다.

 

 춘희의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기골은 그런 춘희를 볼 때마다 불안했다. 그녀가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생활이 그녀의 맘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춘희는 배우로서 카리스마 넘치지만 정인철 앞에서는 촛불처럼 연약한 여인이 되었다. 기골이 보기에 지금 춘희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지켜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느껴지게 했다. 결코 지금 춘희의 모습이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인철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춘희는 자연스런 수순이 된 것처럼 찬장에서 위스키 하나를 꺼내왔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는 춘희의 모습에 기골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기골, 한 잔 할래?”

 

 “네. 주십시오.”

 

 평소 같으면 거절했을 기골이지만, 오늘은 춘희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멀리서 지켜봐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인철과 춘희가 다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바보 같지?”

 

 안주도 없이 독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난 춘희가 기골에게 물었다. 하지만 기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기골은 춘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고 있었고, 유일하게 인철과 춘희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춘희는 저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만해야 할 것 같아.”

 

 “그게 무슨……?”

 

 “너무 오래 했어. 이젠 동천도 자리 잡았고, 나도… 나도 이젠 임춘우가 아닌 임춘희가 되고 싶어.”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전부라고 하셨잖습니까? 어떤 소중한 것과 바꾼 인생이라 남은 건 이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춘희는 기골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랬지… 그랬어…….”

 

 그래서 이제 놓아야 할 것 같아. 그래서 그 소중한 것 때문에 버린 이름이었고, 새로 얻은 이름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제는 새로 얻은 이름도 버려야 할 것 같아.

 

 춘희는 차마 그 다음 말들을 할 수 없어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술이 목을 할퀴며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피곤하네. 그만 자야겠어.”

 

 “네.”

 

 기골을 남겨두고 방으로 들어온 춘희는 두꺼운 보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묵직한 통증에 말아 쥔 주먹을 가슴에 가져가 치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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