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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3화. 눈과 눈
작성일 : 18-12-12 18:27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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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클럽 안에서 열광하는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신기한 것처럼 우주는 아직 타고 다니는 스쿠터와 옥탑의 5평짜리 작업실이 그의 세계다.

 

 원래 힙합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열여덟이 아니었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 해는 여러 모로 우주에게 많은 걸 남기고 가져갔다.

 

 6곡으로 준비 중인 첫 앨범은 아무래도 처음이라 욕심이 많다. 여태껏 주어진 비트에 랩을 올리던 것과 달리, 작곡에 도전했는데 어렵다. 형들한테 이런 저런 도움을 받아도 겨우 아장거리는 수준이라 썼다 지우기의 반복이다.

 

 기술적인 토대를 가장 많이 알려주는 건 제로다. 래퍼 둘이서 창립한 회사 ‘더 히든 The hidden’은 기대보다 우려가 훨씬 컸다. 용기가 가상하네, 수준. 그런데 3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상징과도 같은 힙합 레이블로 성장시켰다. 그 핵심엔 제로가 있다.

 

 초창기 영입 멤버이긴 했지만 음악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사랑 받는 힙합 곡에는 죄다 참여했다. 작곡으로든, 프로듀서로든. 여기저기서 협업 제의가 물밀 듯 밀려오고 미디어에 얼굴을 내비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사내 정산 순위로 치면 탑이다.

 

 일할 땐 지독하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완벽주의자인데 그만한 성과를 낸다. 다들 “군주님”이라고 부르는 건 녹음실에서 군림하는 모습도 있지만 레이블을 성처럼 축조한 인물이라 그렇다. 게다가 평소엔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상담자이자 다정한 형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뿐인데도, 선의 눈빛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무대의 모습에서 반할 수도 있긴 하지만 선의 눈은 좀 더.

 

 정직한 벨소리가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왜?”

 “-위생가설이 뭔지 알아?”

 “그게 뭔데?”

 “-위생상태가 개선되고 세균이 줄어드는 게 알레르기의 원인이라는 거야. 어릴 때 질병에 노출된 애들이나 시골에서 자란 애들이 도시에 자란 애들보다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더 적게 나타난대. 그러니까.”

 “네가 심심하다는 말이지.”

 “-응.”

 

 방학이 되고 선은 남는 시간이 영 지루한 모양이다.

 

 “-작업한 거 들려줘.”

 

 자신의 미완성곡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자신 다음으로 선이다. 선은 어울리지 않지만 피아노 전공이다. 허밍을 듣고 기본 멜로디를 맞춰주는 일이나 예전에 길거리 공연을 할 때 필요했던 베이스 녹음도 다 도와줬다.

 

 “-뒷부분 이런 진행이지?”

 

 피아노 소리가 울렸다. 제가 컴퓨터로 만진 기계음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맑은 소리로. 선은 제가 원하는 걸 금방 캐치한다. 애초에 그걸 가진 사람처럼.

 

 “어, 맞아. 그거야.”

 “-내일 갈게.”

 

 매번 앉아서 주로 세상사에 관한 시답잖은 이야기나 자질구레한 헛소리를 하지만 음악에 관한 내용도 빠지지 않는다. 가끔은 앉아 밤새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주로 우주가 떠들긴 하지만. 그 시간들이 단순한 수다를 지나 많은 공부가 된다. 자신이 이만큼 역량을 가지게 된 것도, 앞으로 늘려가는 데도, 여러모로 선의 부분이 크다.

 

 “-아이스크림 사 줘.”

 

 고마워 라고 말하지 않아도 선은 알아준다.

 

 “밥은 먹었어?”

 “-나중에.”

 

 1시간이나 넘은 전화 통화 동안 빠르게 진전된 곡은 새벽에 와서 작업해도 될 듯하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다. 모임 시각이 아홉 시니까.

 

 “밥 먹게 나와.”

 “-귀찮은데. 아이스크림만 사줘.”

 “모자 쓰고 나와. 지금 갈게.”

 

 꿍얼거리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잘 먹으면서 혼자선 잘 챙겨 먹지 않는 선은, 업을 때마다 놀랄 정도로 가볍다. 가끔은 등 뒤에서 날아가 버린 것만 같다. 나비처럼. 선이 좀 더 무거워졌으면 좋겠다. 존재를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게.

 

 식사를 끝내고 선을 데려다주다 보니 조금 늦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 소고기집 제일 끝 방의 문을 열었다.

 

 “여어. 막둥이.”

 

 회사의 모든 형들은 우주를 어린이 보듯 한다. 어마어마한 나이차도 아니면서. 그 중 회사 설립 멤버인 활동 이름 우디, 본명 정 세민은 자기 아들인 것처럼 감싸고돌아서 별명도 우주맘이다. 그것도, 극성맘.

 

 자연스럽게 우주를 옆자리에 앉히는 세민을 보고 다들 키득키득 거렸다.

 

 “극성맘 아들까지 왔는데 이제 초 불어요."

 

 기다렸다는 듯 꺼내진 케이크 위 꽂힌 초에 불이 붙고 옆 방에선 흠칫 놀랄 정도로 낮은 목소리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 라니.

 

 아기자기한 광경에 세민은 후-하고 바람을 불곤 어둠이 가라 앉은 방에 한 마디 뱉었다.

 

 “한우주 파이팅!”

 

 애교 넘치는 목소리에 금방 웃음바다가 되었다. 정석으로 잘생긴 미남 래퍼로 유명해서 거만하거나 재미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세민은 오히려 중심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타입이다.

 

 “많이 먹어.”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고갤 올려다보자 피로해 보이는 눈을 문지르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제로가 보였다.

 

 회사 붙박이, 작업실 귀신, 일중독자. 이 모든 건 제로의 또 다른 이름이다. 틈만 나면 술자리를 갖는 형들과 달리 제로는 중요한 모임에만 참석했다. 오늘처럼, 세민의 생일 같은 날.

 

 “아들이 엄마 생일 위해서 건배사 한 마디 하자.”

 

 형들의 등쌀에 자리에서 일어난 우주가 힐끗 눈치를 보곤 조금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야, 정 세민.”

 “오오오! 야, 정 세민!”

 

 형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 고깔모자까지 쓴 주인공 세민은 놀란 눈을 껌뻑였다.

 

 “생일 축하하고.”

 “생일 축하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제창이 기본인 건배사가 크게 울리고 자리에 앉은 우주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세민이 만족스러운 듯 헝클였다.

 

 “아, 너무 귀여운 거 아냐. 한 우주 내 새끼. 오구오구.”

 

 격한 칭찬에 귀가 다 빨개진 우주가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씹어 먹었다. 도베르만처럼 생겨서는 병아리처럼 행동하는 막내가 귀엽지 않을 수가 없다. 스스로는 전혀 이해 못 하는 것 같지만.

 

 고기를 먹고 나와 노래방에서도 신나게 여자 아이돌 그룹 노래부터 시작해서 애절한 발라드, 90년대 댄스곡까지 섭렵한 형들 사이를 비집고 열을 식히러 우주는 밖으로 나왔다.

 

 약한 폭탄주에도 벌써 취기가 올라 습관처럼 편의점에서 초코우유를 사서 나와 혹시나 형들이 찾을까 노래방 앞에 쪼그려 앉아 빨대를 쪽쪽거렸다.

 

 내일은 비가 올 건지 한층 습기가 오른 바람은 그래도 기온은 조금 떨어져 산산하게 얼굴에 닿았다.

 

 “괜찮아?”

 

 담배를 입술에 물고 선 제로가 물었다.

 

 “넴.”

 

 입에 빨대를 물고 있어서 발음이 조금 씹혔다. 제로는 강아지라도 쳐다보듯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곤 길어버린 앞머리가 귀찮은지 쓸어 넘겼다.

 

 제가 같은 머리색을 했다면 양아치 같단 소리만 들었을 텐데 그는 혼혈 모델처럼 이국적이면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거기다가 연한 눈매에 나른한 눈동자하며 얼굴을 이루는 얇은 선들이 합쳐져 풍기는 분위기가 양초로 켜진 밤이다.

 

 초콜릿이 녹아내리듯 웃는 얼굴은 어떻고. 제가 여자였어도 제로에게 반했을 거다.

 

 “형, 좋겠어요.”

 “왜?”

 “섹시해서.”

 

 생각도 못한 대답이었는지 제로가 무릎을 접으며 웃었다. 진지한 표정인데 취기에 눈이 풀려있고 손에 초코우유를 들고 섹시함을 논하는 막내를 세민이 알았더라면 한바탕 귀엽다고 난리 났을 거다.

 

 “왜? 누가 섹시한 남자가 좋대?”

 “그런 건 아닌데……, 아닌가.”

 

 우주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선의 눈은, 반했다고 표현하기보다 좀 더 어렵고 복잡했다. 소복소복 쌓인 눈에 밟힌 발자국을 보는 사람의 심정 같달까. 하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누가 왔던 걸까하고 궁금하고, 설레면서도, 어딘가 그립고, 희미한 안타까움 마저 묻어나는.

 

 “형.”

 “왜요, 우리 막내.”

 

 가까이 온 제로는 손을 뻗어 장난스럽게 짧은 제 앞머리를 만져줬다. 여름과 어울리지 않게, 아주 서늘한 손가락이었다. 얼굴을 좀 더 가져다대고 싶을 만큼,

 

 “형은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눈이 감정의 창이라면, 제로는 달빛에 가려놓은 것 같다. 그저 다정하게 웃음으로 무마했다.

 

 “우주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 누굴까."

 

 눈이 감정의 창이라면, 우주는 바다에 잠겨버린 것 같다. 서서히, 그러나 이미 벌써 깊게.

 

 “전 형도 엄청 진짜 좋아하는데요.”

 “뭐야. 지금 군주님한테 고백하는 거야? 안 돼! 저런 남자는.”

 

 언제 나온지 모를 세민이 뒤에서 덥석 우주를 안으며 외쳤다. 곧이어 따라 나오던 이들이

 

 “시어머니, 이제 돈다발 뿌리셔야죠.”

 “어디 감히 내 아들을!”

 

 하고 깔깔거리며 드라마 하나를 완성시켰다.

 

 흔들리는 밤거리와 휘청거리는 달빛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우주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작가의 말
 

 눈 내리는 풍경이 보고 싶어요, 사진으로 대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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