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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라스트 위스퍼(Last Whisper)
작가 : PamC
작품등록일 : 2018.12.12

공연을 위해 들른 마을에서 수수께끼의 소년과 만난 유랑악단의 소녀 레나. 그 둘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02. 2년 후 - 레나, 그리고 악단(1)
작성일 : 18-12-12 17:20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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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수확을 마친 건 얼마 전이었다. 올해의 수확은, 좋은 말로 해도 암담한 수준이었다. 거기에서 얼마 후면 찾아올 세금 징수관이 다녀가고 나면 지금보다 더 휑한 곳간을 표현할 말을 찾기 힘들 터였다. 풍족한 것이라고는 내쉬는 한숨 뿐이었다. 그런 때에 찾아온 유랑악단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 마을 회관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소녀의 목소리가 걱정으로 꽉 막힌 귓구멍을 비집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녀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는, 이내 그 사이에서 노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미 흘러나오고 있던 반주에 얹힌 목소리는 이내 그다지 크지 않은 건물 안을, 그리고 사람들의 귓속을 메웠다. 소녀가 첫 소절을 채 다 부르기도 전에, 사람들은 푹 떨궜던 고개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하나둘씩 얼기설기 쌓아올린 무대 위, 지금까지 그들이 들어봤던 어떤 목소리보다도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녀를 보기 위해서였다. 의자에 눌어붙은 듯 느슨하게 앉아있던 몇몇 사람들은 빼고 있던 엉덩이를 당기고 바로 앉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연쇄적으로 허리를 세우고 제대로 앉아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소녀의 목소리도 조금은 더 활발해진 듯 했다.

  예쁜 아이. 그것도 꽤. 목소리에 먼저 이끌린 사람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소녀를 보고 내린 결론은 비슷했다. 갓 뽑아낸 밀가루처럼 하얀 피부에 뒤로 길게 땋아내린 금색 머리. 아직 어려보였다. 그럼에도 저런 어린애가 의미를 알기나 할까, 싶은 옛 사랑 노래를 부르는 소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의외로 꽤나 제대로여서 나이를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소녀의 노래가 끝났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은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반가운 손님이라도 만난 듯, 소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 웃음을 보이자마자 박수소리가 조금 더 커진 건 기분탓이 아니리라.

 

 “반가워요, 여러분! 조금 늦었지만 인사드릴게요. 저희는 탈레키아 유랑악단이에요!”

 

  말을 마친 소녀는 한 발을 뒤로 빼고는, 치마의 양 끝을 들어올리고는 몸을 살짝 굽혀 인사했다. 조금 더 달아오른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소녀는 예의 함박웃음을 띈 채로 제 오른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가자, 얼굴 한쪽에 세로로 길게 흉터가 뻗어있는 남자가 보였다. 짧은 머리에 각진 얼굴을 보면, 군인이었던 듯 했다. 그런 얼굴과는 안 어울리게, 기타 위에 한 손을 올리고 있는 그는 이내 시선을 떨어뜨렸다.

 

 “저희 탈레키아 유랑악단의 단장님인 폴이에요! 저희 악단이 이 나라 안에서 얼마나 잘 할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한 단장님을 모시고 있다는 거죠.”

 

  사람들 사이에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다지 웃길 것도 없는 우스갯소리지만, 적어도 그들의 곳간 사정보다야 훨씬 유쾌했다. 그것도 저렇게 예쁜 여자아이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하는 말이라면. 레나라는 여자아이는 관중들의 눈가에 진 주름살에서 웃음기가 가기도 전에 또 입을 열었다. 웃음은 달리는 말의 발걸음 같은 것이어서, 한 번 멈추면 다시 가게 만들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제 뒤에 앉아있는 이 곰같은 아저씨는 대니. 덩치에 맞게 북 하나는 기차게 두드려준답니다! 여러분이 인심을 좀 후하게 쓰셔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덩치만 봐도 아시겠지만, 어어어엄처어어엉 많이 먹거든요!”

 

  소녀는 팔을 한껏 벌려보이고는 자기 뒤에 앉은 남자를 볼 수 있도록 슬쩍 비켜주었다. 요즘같은 때 뭘 먹고 저렇게 덩치가 커졌는지 모를 거구의 남자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덩치와는 별개로 곳간에 든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잡을 것처럼 순박한 미소를 지닌 그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고개를 까딱였다. 사람들이 탄성과 웃음이 반반 섞인 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빼꼼거렸다. 아마 대니는 유랑악단보다는 서커스단이 더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니 아저씨 옆에 여기 보이세요, 여기? 잘 안 보이시겠지만, 이 쬐끄마하고 꾀죄죄한데다 입도 거칠고…”

 

 “아니, 그런데 저 망할놈의 계집애가 남의 소개를-읍!읍읍!”

 

  소갯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대번에 걸쭉한 욕설을 한 동이 쏟아내려던 조니의 말이 대니의 손에 가로막혔다.

 

 “보셨죠? 거기다 성격까지 괄괄한 조니 아저씨에요! 대니 아저씨랑 어렸을 적부터 친구라고 하는데, 그래서 저렇게 삐쩍 말랐나봐요. 그래도 자기 닮아서 작달막한 바이올린은 끝장나게 켜준답니다!”

 

  어느새 만담 조금 비슷하게 되어버린 소갯말에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여전히 대니의 냄비뚜껑만한 손바닥에 입이 막혀 읍읍거리고 있는 조니의 꼴도 우습기야 했겠지만.

 

 “또 여기 이 예쁜 언니는 우리 악단의 얼굴, 몸매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바이올린까지 맡고 있는 파티마라고 해요! 좋은 남자한테 시집 가는 게 꿈이라고 하시니까, 자신 있는 분은 한 번 들이대 보세요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넉살 좋게 말을 마친 소녀는 무대의 가장 왼쪽에 앉아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낯설었지만, 눈만큼은 누구보다도 파랬다. 숱 많은 곱슬머리를 뒤로 동여맨 파티마가 관중들을 향해 입꼬리만 살짝 올려보이자 늘 그랬듯 젊고 옆구리 비어있는 총각들이 몽당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탈레키아 유랑악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레나예요!”

 

  정작 제 소개는 가장 짧게 끝낸 레나였다. 하지만 굳이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이미 처음 부른 노래만으로도 가장 많은 것을 보여줬으니까. 당돌하고 깜찍하게 소개를 마친 소녀에게, 사람들은 한층 커진 박수를 한층 긴 시간동안 보내주었다. 흔치 않게 희고 고른 이빨이 한껏 드러나는 미소로 박수에 대답한 레나는 등 뒤를 향해 고갯짓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더욱 띄워줄 다음 곡이 나올 차례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도 잦아들었고, 숨소리조차 죽인 정적이 찾아왔다. 이미 작년보다 더 휑한 곳간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다. 레나가 입을 열고 또다시 어디선가 흘러온 사랑 노래를 불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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