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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막;궁전_3화
작성일 : 18-12-12 02:57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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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린은 로렌스가 깊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슬며시 침대에서 벗어났다. 아이린과 혼인하기 전, 로렌스 황제가 깊은 잠에 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던 궁인들은 아이린이 처음으로 잠든 로렌스를 깨우지 않고 황제의 침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귀신이라도 본 듯 까무러칠 뻔하였다.

 

  아이린과 로렌스가 혼인한 지 일 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굉장히 꺼리는 일이기도 했다.

 

  "마마."

  "쉿."

 

  아이린이 예쁘게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아이린의 향과 체온이 있어야만 깊은 잠에 들 수 있는 황제는, 아이린이 없어진 이상 언제 깨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였다. 아이린이 침대를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 탁월한 수면제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린은 본래 낮잠을 좋아하는 사람. 밤공기를 사랑하고 새벽의 향기를 즐기며 따스한 햇살 아래 잠들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궁인들은 그저 원망스러운 눈빛을 애써 숨기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금방 올게요."

 

  물론 당장은 로렌스가 깊은 잠에 들어 있기 때문에 황제의 방에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쓴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어느 순간 잠에서 깬 그가 아이린을 찾으며 온 궁 안을 뒤집는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아이린은 시녀와 시종들을 대동하는 것을 아직까지 불편해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늘 홀몸으로 어두운 궁을 거닐었다. 그것은 -황비 된 자로서- 굉장히 위험한 일인 동시에, 로렌스가 급히 찾는 아이린을 당장 그의 눈앞에 대령하지 못함으로써 엄청난 파국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였다.

 

  "제발 동행인을 두시옵소서."

  "정말, 금방 올게요. 약속해요."

 

  아이린은 나이 든 궁녀의 손을 직접 잡아 토닥였다. 궁녀는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황비 마마."

  "노케린 궁에 다녀올 거예요. 로렌스가 깨면 노케린 궁에 갔다고, 금방 온다고 말해줘요."

 

  노케린 궁이라니. ‘노스케이린 궁’은 본궁의 북쪽에 붙어 있는 궁이었다. 그 아무리 본궁과 가까이 있는 궁이라 하여도 거대한 대 제국 궁전의 규모를 생각하면 걸어서 왕복 반 시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게다가, 그 궁은 현재 쓰이지도 않는 빈 궁이 아닌가. 아이린의 말을 들은 궁녀는 밤길 무서운 줄 모르고 대체 어딜 간다는 거냐고 게거품이라도 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린은 벽에 걸린 호롱 불빛 아래에서, 궁녀를 향해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행선지를 알려주었으니, 이제 보내달라는 뜻이었다. 궁인은 차마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린 채로 물러났다. 아이린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조용히 인사했다.

 

  "금방 올게요. 약속해요."

 

  금방 올게요, 그녀가 세 번이나 다짐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

 

 

  아이린은 레이에게 배운 대로 소리 없이 사뿐사뿐 걸었다. 딱딱한 구두가 아닌 천 신발을 신는 유일한 황족으로서, 그녀가 지나가는 길목엔 아주 작게 천 스치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밤공기는 서늘했고, 아이린은 따뜻한 황제의 침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리 한기를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처 망토를 두르지 못했던 아이린에게 생각보다 차가운 밤공기는 그녀가 속으로 정말 금방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 일등 공신이 되었다.

 

  아이린은 한참을 걸어 노케린 궁에 들어갔다. 동서남북 중에 가장 햇볕을 많이 받는 북쪽에 위치한 궁으로, 황비들의 궁이었다. 하지만 현재 유일무이한 황비인 아이린은 예외적으로 본궁에 침실을 갖고, 그마저도 거의 황제와 같은 침실을 썼기 때문에 지금은 쓰이지 않는 궁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로렌스에게 전황비들에 대하여 물어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로렌스가 아이린과 결혼하기 전에 혼인하였던 세 명의 여인들. 그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빼어나고, 다방면에서 귀족적인 교양을 완벽히 갖추고 있으며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좋은 집안의 여식들이었다.

 

  클라우디아 카이샤하스, 레베카 베닉스 리카론, 켈리 필리아 페트리엇.

 

  그들 중 황후의 신분으로 승하한 클라우디아의 초상화만이 노케린 궁 중앙 복도 가장 안쪽에 걸려 있었다.

 

  아이린은 클라우디아의 이야기를 삼가는 로렌스의 모습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아직 살아있고, 폐비된 후 각자 본가로 돌아간 레베카와 켈리의 이야기를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로렌스는 레베카와 켈리를 귀찮아했다. 그는 그녀들을 '평범한 여자들'이라고 칭했다. 카이샤하스 제국 황제 앞에 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가져와 인정받길 바라며, 자신의 아들들을 단 한 번이라도 황제의 눈에 더 많이 띄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이 그의 대략적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달랐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의 그녀는 늘 조용히 로렌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레이안 샤누 레- 루시카 공작’의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제국 유일한 황태자인 카우라 카이샤하스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클라우디아는 몸이 좋지 않아 황제가 내려준 불로약까지 먹었지만, 결국 50대 초반의 나이로 이 세상을 등진 비운의 황후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이린은 그녀의 거대한 초상화 앞에 멈춰 섰다. 옅은 호롱불이 일렁이며 그림 속 고요한 여인을 비췄다. 청명한 달빛을 받은 그녀는 우아한 흑발을 틀어 올린 모습이었다. 햇빛을 잘 보지 못한 탓인지 새하얀 피부는 그녀의 검은 머리칼과 완벽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리고 진한 자수정과 꼭 같은 보라색 눈동자. 아이린은 늘 그녀의 초상화를 볼 때 마다, 정말 이 초상화와 클라우디아가 똑같이 생겼다면, 그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언제 보아도 고고한 여인이었다. 아이린은 초상화 앞에 서서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말이 없는 그녀는 레이와 꼭 같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린은 그녀의 미소를 볼 때면, 그리고 그녀와 꼭 같은 레이의 미소를 볼 때면, 늘 알 수 없는 공간에 빠져 들어가 무한한 편안함에 몸을 담그는 기분이었다.

 

  아이린은 그 중독성이 강한 편안함에 이끌려 외롭고 슬픈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 이 초상화를 처음 본 날로부터 쭉 이어지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아이린이, 이 너른 황궁에 단 한 명의 아는 사람 없이 홀로 입궁하였을 때의 외로운 기억이 날 때 마다 말없이 그녀를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정말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저렇게 부드러운 미소로 아이린을 응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별안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아이린을 앞세워 보였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이린은 그런 일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레베카와 켈리는 황빈 자리에서 더 이상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고, 아이린과 로렌스가 혼인하였다고 해서 클라우디아가 폐비 당하지도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저 아이린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을 것만 같았다. 이 위험한 황궁에서 몸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해주었을 것만 같았다.

 

  아이린은 늘 그녀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그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죽은 그녀의 남편을 빼앗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그럼에도 만약에 살아 있었다면 자신을 향해 웃어주었을 것 같은 그녀의 생생한 초상화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 모순적인 느낌. 아이린은 그런 불편한 편안함을 느끼면서 조용히, 클라우디아의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달빛을 응시했다.

 

 

 *

 

 

  카우라는 계단 뒤에 숨어 있었다. 평소 쓰이지 않는 궁이다 보니 꼭 필요한 곳에만 불을 놓아서 카우라가 물러서 있는 곳은 어둠에 휩싸인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려진 거대한 초상화와, 그 초상화를 조용히 올려다보는 아이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는 여길 왜 온 거야. 카우라는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말없이 계단에 주저앉았다. 부러 조심히 행동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아이린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미동이 없었다. 저거, 저거. 쉽게 위험에 빠질 처자일세. 카우라는 단 한 명의 시종도 없이,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어두운 북궁에 홀로 들어온 아이린이 어이없다 못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카우라도 황태자 된 귀한 몸으로서 어느 누구도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는 적어도 수준급의 검술능력을 가진 건장한 청년이 아닌가. 게다가 카우라는 어렸을 때부터 하도 시온과 싸워대서 오히려 시종들에게 감시를 받는 입장이었다. 감시를 받는 사람이 감시를 피하길 원하는 것은 본능이 아닌가. 카우라는 되도 않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카우라는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의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핏기 없이 창백하게 그려진 피부는 그가 어렸을 적 보았던, 그리고 지금까지 기억하는 클라우디아의 피부색과 꼭 같았다. 카우라는 자신의 어머니의 초상화를 올려다 볼 때 마다 황실 화가들이 너무나 쓸데없이 극사실주의를 추구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 조금 더 생기 있게 고쳐 놓으면 누가 벌이라도 주나. 그리고 저 곧 죽을 것 같은 미소라니.

 

  카우라는 황제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만에 하나 등이라도 떠밀려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가장 먼저 어머니의 초상화를 새로 그리게 할 생각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좀 더 밝은 미소를, 좀 더 붉은 피부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앞으로도 쭉 침묵을 지키며 미미한 미소만을 지어보일 것이다.

 

  카우라는 더 이상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렇죠, 어머니? 카우라는 대답 없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고동색 머리칼, 색이 짙고 맑은 푸른색 눈동자. 새하얀 피부에 깊은 눈매.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 물론 이 어두운 곳에서 그녀가 그렇게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카우라는 황궁에 입궁한 아이린을 처음 보았을 때를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그가 그토록 찾던 소녀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로, 그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박혀 있던 얼굴이었으니까.

 

  그녀는 카우라가 요양을 가는 클라우디아와 동행하여 지방에 있는 후작 령에 갔을 때 첫눈에 반했던 아이였다. 카우라는 시골 성에서의 매일매일을 그녀를 찾아 헤맸고, 겨우 며칠을 만난 게 전부였던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카우라는 로렌스가 서쪽에 있던 성들을 순회 차 돌다가 들렀던 한 백작의 성에서 별안간 네 번째 혼인을 올리겠다고 황궁에 통보한 것을 들었을 때,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가 양심이 있다면, 20살인 첫째 아들과 19살인 둘째 아들, 그리고 그 이외의 네 명의 아들들을 둔 그의 아버지가 양심이 있다면, 95살을 먹은 그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더라면.

 

  18살짜리 소녀를 황비로 맞겠다는 개소리를 지껄이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제의 통보를 들은 황궁 식구들은 어디 시골 성에 나이 차고 예쁜 귀족영애라도 있었나보다, 싶었다. 황제가 불로불사약으로 약 30대 중반의 외모를 유지하는 것을 감안하여, 아주 좋게, 아아주 좋게 보아서 20대 중반 정도의 영애를 떠올렸다.

 

  황제가 새파랗게 어린 소녀를 데려왔을 때, 그리고 그녀가 카우라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소녀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카우라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칼을 들고 결투 신청이라도 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그랬던 그가 18살짜리 소녀에게 온 정신이 팔린 아버지의 등에 칼을 꽂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아이린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카우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터질 듯 꼭 쥐고 있던 주먹을 놓았다. 비릿한 핏내가 베어 나왔던 입술을 놓았다.

 

  사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받은 충격은 그 무엇과도 헤아릴 수 없었다. 그 충격이 아이린을 향한 가시가 되어 날아갔다.

 

  카우라는 아이린이 상처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 아무리 아름답고, 그 아무리 사랑스럽더라도 자신이 주는 사랑을 받지 않겠다면, 그리고 하필 그녀가 사랑받는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라면 그녀가 차라리 상처받기를, 너무나 상처받아서 자신이 이제는 발견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린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이렇다 할 반론 한 번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지만 올곧은 자세로 늘 아버지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카우라는 그녀를 바라볼 때 마다 옥죄어 오는 심장을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

 

 

  아이린은 쌀쌀한 밤기운을 느끼곤 팔을 감쌌다. 아이린은 멍하니 바라보던 클라우디아에게 마음 속으로 인사를 남겼다.

 

  다음에 올게요. 그때 볼 때도 웃어줘요.

 

  아이린이 뒤돌려다말고 멈춰 섰다. 누군가 있었다. 어둠 속에 가려졌지만, 분명한 인영이었다. 아이린은 누군가가 서 있는 어둠 속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반짝이는 두 눈과 마주쳤다. 아이린은 눈길을 피하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어두운 곳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대치중인 상황이었지만 아이린은 그 새카만 사람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왠지, 어둠 속의 그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본인이 황비라는 자각이 없나?"

 

  어둠 속의 그가 물었다. 역시나. 혹시나 하고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린은 안도의 숨을 들이쉬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아이린이 눈을 내리깔며 무릎을 살짝 굽히고 인사했다.

 

  "밤이 늦었는데 잠들지 못하고 나와 계셨군요, 황태자님."

  "여긴 왜 왔지?"

 

  카우라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흑색 눈동자는 파란 달빛을 받아 청명하게 빛났다. 레이와 꼭 같은 새카만 흑발도 푸른빛을 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린은 그가 아직 제복 차림인 것을 알고는 자신의 침의 차림이 민망해져서 반걸음 물러섰다.

 

  "가끔, 생각이 나면 들립니다."

  "이 분이 누군지는 아나?"

 

  '이 분'.

  아이린은 카우라가 턱짓하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미미한 미소를 지은 클라우디아가 아이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카우라가 유일하게 마음속 깊이 존대하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린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님의 어머니이신 고 클라우디아 황후 전하 이십니다."

  "그걸 알고도 왔다고?"

 

  카우라가 쌀쌀맞게 물었다. 네가 올 곳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이린은 입술 안쪽을 깨물며 조금 더 뒷걸음질 쳤다. 사실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안심했을 뿐이지, ‘카우라’가 있었기 때문에 안심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카우라는 황궁의 그 누구보다도 아이린의 마음에 상처를 많이 내는 사람이었다.

 

  "저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

  "병약하시어 병고로 돌아가신 것으로 아옵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느냔 말이야."

 

  카우라의 날카로운 물음에 아이린이 멈칫했다. 그녀는 고 클라우디아 황후가 정확히 몇 년도에, 어디에서 어떻게 서거하였는지 몰랐다.

 

  "그것까진 모릅니다."

 

  아이린의 조심스런 대답에 카우라가 으득, 이를 갈았다.

 

  "키튼하첼 성."

 

  카우라가 분노를 참으며 읊조렸고, 아이린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서부에 있는 키튼하첼 성은 온천이 특산품인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많은 노귀족들이 생의 마지막을 마감하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따지고 보면 병약하였다던 클라우디아가 임종을 맞은 장소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린이 놀란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키튼하첼 성의 실질적인 주인, 키트 벨시아 후작가는 아이린에게 있어서 특별한 집안이었다. 그 가문의 하나뿐인 아들 '체니엘 키트 벨시아'는 아이린의 결혼식 하객으로도 참석했던, 아이린 친오빠의 절친한 친구였다.

 

  카우라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키튼하첼에 갔을 때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보았던 아이린도, 그녀의 친오빠 친구들이라는 여러 인물들도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었다.

 

  표면상으로, 평소 병약하던 클라우디아가 요양을 하던 중 서거한 것에 아이린이 죄송하고 미안해 할 일은 없었지만 카우라는 그 곳에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아이린에게 설명해 줄 만큼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린과 재회한 첫 날, 카우라는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수년간 쌓아온 무수한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몇 년 만에 우연과 필연이 겹쳐 재회하게 된 그녀는 아이보리색 황실 혼인 정복을 입고 황제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혼자 참고 참아낸 마음의 골은 그 한계를 모르고 깊어만 갔다.

 

  나의 어머니는 키튼하첼에서 돌아가셨고, 넌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자리를 꿰 차고 앉아 있으니 양심이 있다면 여기에 오지 말아라. 이 정도가 친절하지 않은 카우라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설명과 최고의 협박이었다.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카우라가 으르렁거렸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린이 눈물이 차오르는 눈동자를 급히 숨기며 상체를 숙여보이자 카우라가 먼저 그녀를 쌩하니 지나쳤다. 그의 걸음걸이도 소리 없이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복도의 호롱불들 사이로 일렁이던 카우라의 큰 인영이 사라지자, 아이린은 진정으로 혼자 된 느낌에 슬픈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선 클라우디아가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그 고요한 미소가 그녀를 향해 웃어주는 것인지, 자신의 아들을 향해 웃어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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