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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Pay first.
작가 : 바울
작품등록일 : 2018.12.1

인기 없는 작가와 찌질한 팬의 아슬아슬한 관계 유지.

 
#8
작성일 : 18-12-11 23:33     조회 : 302     추천 : 1     분량 : 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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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8.

 

 

 - 고아 씨 (13)

 

  토요일 아침. 이틀 전 보낸 문자가 데이트 신청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승아가 데이트라고 생각한대도 아무 상관 없다. 그래 봐야 고아 씨가 설렐 일이라곤 없을 테니까. 오늘 만남의 목적은 그저 쐐기를 박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비밀 유지가 명시된 정식 계약서라도 나눠 가져야 안심이 될 것 같지만, 그건 가해자 입장에서 먼저 꺼낼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종이에 찍은 지문만큼 효과가 있진 않겠지만, 사과를 빙자한 만남으로 승아가 변심하지 못 하게 할 생각이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볼수록 뒤통수를 치기엔 더 껄끄러울 것이란 게 고아 씨의 생각이었다. 걸려있는 게 크다 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혹시라도 지장을 찍게 만들 일이 있을까 싶어 자필 계약서도 두 장 복사해 두었다. 강제적인 건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그저 만약을 위해서다.

 

  초커 꾸러미를 집어든다. 유행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고아 씨는 여전히 초커를 애용한다. 언젠가 승아가 초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고아 씨는, 자신이 초커를 좋아한다고 말하진 않았다. 승아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번 만남으로 그 호감을 더 깊게 만들 생각이다. 마치 어장관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필요한 때다. 이것저것 껴보던 고아 씨가 결국엔 얇은 초커를 선택한다.

 

  얇고 파인 티를 입고 바지를 고른다. 이 짧은 옷들은 겨울에 입긴 좀 추워 보인다. 깊은 한숨. 완벽한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야겠다. 나는 지금 내 이상형을 만나러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쁘게. 원래 모습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답게. 괜찮은 핫팬츠와 두꺼운 스타킹을 꺼내둔다. 전체적으로 노출이 좀 있긴 하지만 여기에 두꺼운 가죽 재킷을 걸치면 잘 어울릴것이다.

 

  평소보다 긴 화장을 끝내고 거울을 본다. 자기애가 거침없이 솟아나는 모습이다. 이 모습이 승아를 위한 것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다시 깊은 한숨. 승아를 돌려보내고 나면 어디든 돌아다녀야겠다. 기분전환이 중점, 승아는 덤. 어제 생각해둔 노래방, 카페, 피시방으론 부족하다. 정말 오랜만에 클럽이라도 갈까 싶다.

 

  집 밖을 나가자마자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고아 씨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팍 쓰고 움츠러든다. 괜한 짓거리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고아 씨는 일하러 가는 중이다. 인생 한 번도 없을 줄 알았던 진한 감정노동을 향해 짐짓 당당하게 걸어간다.

 

 

 - 강승아 (13)

 

  머리 한 번 만져주는데 2만 원이나 들 거라 곤 생각해본 적도 없다. 승아의 서투른 손놀림으로 만지는 것보다야 훨씬 괜찮은 머리스타일이 나왔지만, 결코 다시 하고 싶진 않은 가격이다. 그의 통장이 주인에게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난, 대학생의 오랜 친구.

 

  어제 들어온 아르바이트 급여를 서둘러 쪼개놓고 오늘 만남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 승아는 오늘을 데이트라고 여기진 않으려 했다. 고아 씨는 사과를 위해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만남을 데이트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도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아서 버틸 수가 없다.

 

  4년 전에 봤던 승아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스무 살을 넘긴 성인이다. 아무리 승아가 연하라고 해도 더 이상의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어린 팬이 아닌 남자로 보이고 싶다. 분명 긴장하면 다 망칠 것이다. 데이트가 아니다, 데이트가 아니다 라며 기대치를 낮추려 해도 머릿속 어딘가엔 흥분이 가득 차있다. 만나게 된 경위는 어이가 없지만, 결과가 좋으니 아무래도 좋다.

 

  분수대 앞에 온종일 서서는, 쉴새 없이 머리스타일을 확인하고 옷차림을 매만지는 승아를 지나가는 사람 몇몇이 흐뭇하게 보고 간다. 누가 봐도 소개팅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정작 승아는 타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저 코트에 먼지가 묻지는 않았나 신발에 때가 타진 않았나 확인하느라 주변을 살필 정신이 없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느닷없이 쌩하고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눈에 먼지가 들어갔는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렌즈가 빠지지 않게 조심스레 눈을 비빈다. 비벼도 비벼도 눈 따가움이 가라앉질 않아 무심코 세게 문지르다 렌즈 한쪽이 빠져버렸다. 다행히 검지 위에 잘 붙어있다. 허리를 숙이고 제발 잘 붙어라 하며 몇 번이고 눈을 찔렀다. 몇 분이나 렌즈를 맞추다 겨우 맑은 시야를 되찾을 때쯤에야, 눈앞의 검은 구두가 보였다. 너무나도 작고 예쁜 신발이다.

 

 

 - 고아 씨, 강승아 (14)

 

  이 놈은 이런 데서 허릴 숙이고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바로 앞까지 가도 눈치채지 못하는 승아를 굳이 부르진 않았다. 그저 승아가 하는 일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승아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안, 안녕하세요 작가님."

 

  첫 인사부터 삑사리가 났다. 한쪽 눈이 충혈된 꼴로 어색한 웃음을 짓는 승아의 얼굴이 보인다. 어제만 해도 반나절 넘게 친절함을 가장할 생각에 속이 울렁거렸었지만, 지금 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졌다. 고아 씨는 반 발자국 물러나 고개를 살짝 숙이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

 

  "안녕하세요 승아님."

 

  승아의 시선이 럭비공처럼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만나자마자 할 말을 몇 가지나 준비해뒀었는데, 직접 만나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떠오르는 말이 없다. 진짜 고아 씨는 흐릿했던 기억 속에서 떠올린 것 보다 훨씬 더 예쁘다. 가까이서 보려니 제대로 숨을 못 쉬겠다. 차마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일단 아무 말이나 지껄여본다. 더워지기 시작한다. 옷을 너무 두껍게 껴입은 모양이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요즘에.. 어떠세요? 아니.. 요즘 어떠셨어요?"

 

  고아 씨는 생각한다. 차라리 자기를 놀리던 때가 나았을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대답 하나 없이 승아를 뚱하게 쳐다본다. 승아의 두 손이 불그스름하다. 그러고 보면 귀도 새빨간 것이 꽤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다. 고아 씨가 약속에 늦어서가 아니다. 고아 씨는 칼같이 정각에 도착했다. 작고 고운 손이 승아의 손으로 향한다. 살짝 잡았음에도 스산한 느낌이 선하다. 승아가 얼마나 일찍 왔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30분은 넘게 기다린 모양이다. 미련한 놈. 이젠 한심함보단 짠한 마음이 앞선다.

 

  고아 씨가 아무 생각 없이 잡은 손에 승아는 뇌 정지가 왔다. 사람이 차에 치일 땐 아무 반응도 못 한다던데, 처음으로 비슷한 일을 경험해본다. 바짝 굳은 얼굴을 못 본척하고 아예 양손으로 붉은 손끝을 잡아 어루만져준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효과가 이렇게 좋으니 조금 더 놀려먹어도 될 것 같다. 승아의 얼굴이 귀만큼이나 빨개졌다. 과장 조금 보태 어디까지가 얼굴이고 귀인지도 구별이 안 간다.

 

  "얼마나 기다리셨어요? 일찍 오셨으면 어디든 들어가 계시지 않고."

 

  이 걱정은 의도가 8할, 진심이 2할이다. 선수와 대련하는 유치원생 마냥 여유로움의 크기가 비교도 되지 않는다. 고아 씨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다. 승아는 어찌나 경련이 심한지 이목구비가 뒤바뀔 것 같다. 바이러스 잔뜩 먹은 구식 컴퓨터처럼 애처로운 버퍼링이 걸렸다.

 

  "네, 아뇨, 그, 그렇게 막, 저는, 오래는.. 아니고.. "

 

  고아 씨는 승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겠지. 아주 작은 즐거움이 느껴졌다. 관심 위에 깔린 우월감과 비슷하다. 생각보다 오늘 반나절이 힘들 것 같지 않다.

 

  "점심 뭐 드시고 싶으세요?"

 

  여전히 손끝이 닿아있다. 슬슬 놓을 때도 됐을 텐데, 기왕 안 놓을 거라면 계속 잡고 있으면 좋겠다. 승아는 그런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결심이 서면 손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맞잡을 수 있다. 이제 곧,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를 하면. 아니 준비고 뭐고, 손을 떼기 전에 당장에라도.

 

  "따뜻한 거 먹을까요?"

 

  아. 손끝이 떨어졌다. 동시에 승아의 정신이 돌아왔다. 숨을 몰아쉬고 온 몸에 부르르 하는 진동이 왔다. 잠깐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한 타이밍이라도 늦었으면 저 작은 손을 덥석 잡아버렸을 것이다. 방금 설마 변태처럼 보이진 않았겠지. 그럴 리가 없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표정을 지었다고.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 문제도 없다. 정신없는 시선, 수시로 꿈틀대는 안면근육. 당연히 그 일련의 과정을 고아 씨가 못 봤을 리가 없다. 고아 씨는 속으로 킥 하고 웃는다. 비웃음보단 조금 더 밝다.

 

  "네. 네.. 우리.. 그.. 아니 따뜻한.. 빵이요."

 

  따뜻한 빵이요.

 

  고아 씨는 잠시 벙쪄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그리곤 작은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큼은 터지는 웃음을 못 막았다. 빵 좋아한다고 그리기는 많이 그렸다. 보나 마나 고아 씨가 좋아하는걸 생각했을 텐데, 얼마나 급했으면 뜬금없이 빵이라니. 따뜻한 빵이라니.

 

  속사정을 모르는 승아는 참 빨리도 저질렀다는 생각에 움찔한다. 정말 한심한 답변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면에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한숨이라니. 사과받는 자리란 것 조차 잊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당장은 상처받고 벙쪄있는 것 조차 사치다. 이 이상 찌질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고아 씨가 더 실망하기 전에 더 괜찮은 식사를 생각해야 한다. 예쁜 사람에게 어울리는 예쁜 메뉴가 필요하다. 피자? 파스타? 스파게티? 이것들이 정말 예쁜 메뉴인가?

 

  "네. 빵 먹으러 가죠."

 

  네? 라고 반응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언제 고개를 들었는지 웃음기 하나 없는 고아 씨가 승아를 보고 있었다. 빵 먹으러 가자는 그 간단한 말이 승아 에겐 '더 실망할 것도 없으니 아무 곳이나 들어가자'라는 말 처럼 들렸다. 완전히 망했다. 끔찍한 시작이다. 차마 대답조차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아 씨는 승아를 버리고 가듯 휙 돌아서서 걸어간다. 승아는 저 작은 뒷모습을 넋 나간 듯이 쳐다보다가, 허둥지둥 보폭을 맞춰 걷는다. 친구에게 죽으라고 붓던 욕을 이번엔 자신에게 부으며.

 

  두 남녀가 연인이라기엔 널찍한 거리를 두고 인파를 헤친다. 남자는 차마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고 간신히 거리만 유지한다. 여자는 이따금 고개를 숙이곤 한숨을 쉰다.

 

 .

 
작가의 말
 

 너무 추워서 이젠 머플러 없이는 못 나가겠어요ㅠ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과하객 18-12-12 04:22
 
불쌍한 팬더씨.... 너무 고생시키지 마세요. 저렇게 착한 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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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18-12-12 13:13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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