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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King's Road
작가 : Xien
작품등록일 : 2018.11.2

왕도(王道)란 무엇인가? 왕이 될 자는 누가 선택하는 것이고 누가 그 길을 것는 것인가?

강대국 리엔왕국에서 소리없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왕이 되는 자는 누구인가?

 
22화
작성일 : 18-12-11 22:11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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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하렌은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는 스케리브의 얼굴만 한 커다란 날의 도끼를 쥐고 무시무시하게 휘두르고 있었고, 그 얼굴은 매우 일그러져 있었다. 저 도끼에 한번 맞는 순간 얼굴 전체가 날아갈 것 같았다.

 

  “왔군! 건방진 꼬맹이! 룰은 간단하다. 다른 한명이 무기를 놓치거나 쓰러지거나… 혹은 죽으면 이기는 거다.”

 

  죽는다는 소리에 스케리브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허리춤에 꽂혀있던 검을 뽑아 연병장 안으로 들어갔다. 구경꾼은 거의 없었다. 몇몇의 남성들이 연병장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무심하게 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투기장 직원들 같았다. 체칠리아도 연병장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스케리브를 응시했다. 스케리브는 체칠리아를 한번 슬쩍 봤으나 그녀는 그의 시선을 느꼈음에도 어떤 응원의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응원이라도 해주면 좀 좋아.’

 

  스케리브는 속으로 그녀에 대한 소심한 불평을 늘어놓고 다시 하렌을 바라보았다. 하렌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손에 침을 뱉어 문지르고 도끼를 고쳐 잡았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리자 하렌은 커다란 기합소리를 내며 그에게 돌진했다. 마치 그 모습은 우람한 들소와 같아서 스케리브는 어떻게 해볼 생각도 못하고 본능적으로 그를 피했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몸 움직임이 가볍고 너무 빨라 연병장 바닥에 넘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겁 많은 놈이군! 그래, 어디 한번 쥐새끼처럼 피해봐라!”

 

  하렌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스케리브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하렌이 그의 뒤를 노리며 도끼를 휘두르는 것을 스케리브는 가볍게 몸을 젖혀 피하고 그의 가슴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하렌은 움찔하며 뒤로 몸을 피해 엉거주춤한 상태가 되었다. 스케리브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공격을 하자 하렌은 예상 했다는 듯 그의 검을 도끼로 받았다. 종잇장처럼 가볍게 떨쳐낼 수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스케리브의 검은 묵직했다. 스케리브도 자신의 힘이 하렌보다 우위라는 것을 느꼈는지 검에 더욱 힘을 주자 하렌의 발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하렌이 가까스로 스케리브의 검을 흘려버리고 그와의 간격을 넓히며 소리쳤다.

 

  “어이! 하렌! 연기 잘하는데? 휘익!”

 

  “너무 갖고 놀지 말고 얼른 끝내버리라고! 나 배고파!”

 

  연병장 한켠에서 구경하던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하렌을 놀렸다.

 

  “이 자식들아! 이 새끼 힘 장난 아니게 세다고!”

 

  하렌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으나 그의 동료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그를 계속 놀려대자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울긋불긋해진 얼굴로 하렌은 스케리브에게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스케리브는 도끼를 쳐내고 그의 가슴 쪽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도끼는 파괴력은 강하지만 검에 비해선 속도가 떨어지는 무기였기에 하렌은 파고드는 스케리브를 저지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스케리브가 검 손잡이로 그의 명치를 힘껏 치자 그는 윽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뒤로 넘어졌다.

 

  “일어나! 이 버러지 같은 놈아! 일어나라고!”

 

  하렌이 넘어지자 동료들은 흥분을 하며 욕설과 함께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스케리브가 그의 도끼날을 발로 밟고 목에 칼을 겨누면서 동료들의 고함소리도 잦아들었다.

 

  “소년의 승리입니다!”

 

  어디선가 스케리브의 승리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스케리브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휘몰아 쉬며 검을 거두었다. 스케리브는 아직도 땅에 주저 앉아있는 하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케리브는 자신이 쓴 일종의 반칙과 부당하게 이긴 것에 대한 미안함의 마음으로 내민 손이었지만 하렌은 그런 스케리브를 노려보며 그의 옆에 침을 뱉었다.

 

  “약속대로 네게 선수등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이따가 사무실로 와라!”

 

  하렌은 몸을 일으켜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거친 욕설과 함께 연병장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그의 동료들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잘했어. 여관에서 점심 먹고 선수 등록하자.”

 

  스케리브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연병장에 주저앉았다. 손도 의지와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체칠리아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난 스케리브는 연병장을 빠져나왔다. 연병장 앞에는 투기장 선수로 보이는 몇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고 스케리브를 보며 서로 속닥였다.

 

  “저 꼬마가 그 하렌을 이겼대.”

 

  “정말? 엄청 약해 보이는데?”

 

  “크큭. 하렌녀석 이제 얼굴 들고 다니긴 글렀군.”

 

  아무래도 스케리브는 본의 아니게 투기장에서 유명해진 듯 했다.

 

  점심을 먹고 스케리브와 체칠리아는 사무실에 가서 선수 등록을 했다. 하렌은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스케리브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 미성년자이니 누나가 보증을 한다는 서명을 하면 된다.”

 

  스케리브는 법적으로 미성년자였기에 체칠리아는 자신을 그의 친누나라고 속이고 그를 보증한다는 서명을 했다.

 

  “꼬마야. 여기 네 서명도 하렴.”

 

  “그런데요. 아저씨. 여기 경기 중 일어나는 부상 및 사망에 대해서는 투기장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은 뭐죠?”

 

  서명을 하려던 스케리브가 멈칫하며 물었다.

 

  “말 그대로야. 선수등록은 자유이고 이 일이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온 것이니까 그런 경우에 우리는 일종의 변상이나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거지. 뭐, 죽게 되면 유족에게 소량의 애도비는 지급해 줄거다. 그건 네 누나 앞으로 해놓을게.”

 

  직원의 무덤덤한 말에 스케리브는 체칠리아를 슬쩍 쳐다보았다.

 

  “뭐해. 빨리 서명해.”

 

  그녀의 말에 스케리브는 작게 한숨을 쉬며 서명을 하였다.

 

  “이름이 스케리브? 이제 너도 정식 투기장 선수야. 일단 오늘은 경기가 꽉 차서 안 되고…. 어디보자. 아, 내일 오전 11시 경기 자리가 비어있네. 경기에 늦으면 안 되니까 좀 넉넉하게 와라.”

 

  직원은 선수증이라는 것을 스케리브에게 주며 내일 투기장에 오면 이것을 직원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집에 가기 전에 선수대기실이 어딘지 알려줄게. 따라와.”

 

  “누나도 같이 가도 돼요?”

 

  직원은 체칠리아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직원을 따라 사무실 옆 선수 대기실로 들어갔다. 어린 스케리브가 들어오자 선수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벽에는 공용으로 쓰는 것으로 보이는 각종 무기들이 보였지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또 한 쪽에는 체력 단련을 할 수 있는 여러 운동 기구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고 몇몇의 남자는 거기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여기서 필요한 거는 써도 돼. 쓰고 나선 꼭 제자리에 놔둬. 슬쩍하다 걸리면 그 뒤는 상상에 맡기마. 내일 여기로 바로 오면 돼. 그럼 좀 더 구경하다 가거라.”

 

  직원이 나가고 체칠리아도 자신은 먼저 여관으로 가있겠다고 하며 나갔다. 혼자 남은 스케리브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어이, 꼬마야. 못 보던 얼굴인데? 너도 선수냐?”

 

  벤치에 앉아 검을 갈던 중년의 남자가 스케리브에게 말을 걸었다.

 

  “네. 오늘 등록했어요.”

 

  “엄청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냐?”

 

  “15살이요.”

 

  “잔혹한 베렌이 투기장에 발을 들였을 때의 나이군.”

 

  운동을 하던 근육질의 남자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 뒤로 이런 어린애가 들어온 건 네가 처음일거다.”

 

  “잔혹한 베렌이란 사람은 누구인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스케리브의 표정에 운동을 하던 남자는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잔혹한 베렌을 모른다고? 뭐, 다른 나라나 시골에서 왔으면 모를 수도 있지. 그는 말이지. 여기 최고의 선수다. 사실상 투기꾼들의 절반은 그의 경기를 보러온다고 할 정도지.”

 

  “그가 출전하는 시간 때에는 좌석 전석이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지지. 요새는 잘 출전을 안 하던데. 항간에는 이제 은퇴한다는 얘기도 들려오기도 하더라고.”

 

  중년의 남자의 말에 근육질의 남자가 말했다.

 

  “그 얘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았지. 누구는 베렌이 귀족의 첩과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하는 거라고 하고, 누구는 베렌이 유흥가에서 재산을 탕진해 사채에 쫓기도 있다고도 하지. 물론 신빙성 없는 이야기야. 베렌의 명성을 시기한 자들이 지어낸 뜨내기 소문일 거라는게 내 생각이지. 하지만 그가 은퇴를 준비하는 건 맞는 것 같아.”

 

  “그동안 돈 좀 만졌으니 편하게 살려는 거겠지. 하지만 아직 은퇴한 건 아니란다. 내일 12시에 베렌의 경기가 있거든!”

 

  스케리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베렌의 경기보다 앞에 있는 자신의 경기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걱정되었다.

 

  “너도 내일 베렌의 경기를 한 번 봐라. 분명히 도움이 될 거다.”

 

  “저는 내일 11시에 경기가 있어서요.”

 

  스케리브의 말에 중년의 남자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11시? 아, 잠깐. 11시라…. 그럼 네 상대는….”

 

  중년의 남자의 말에 저도 모르게 스케리브는 귀를 기울였다.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지. 내일 와서 확인해봐라.”

 

  그 말에 아쉬워하는 스케리브를 보고 피식 웃으며 중년의 남자는 스케리브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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