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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별을 준비하는 다섯 가지 방법
작가 : 멀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일상물/잔잔물/결혼 이후로 시작하는 이야기/시한부남주/와 지켜보는 가족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이상형은 아가사 당신이니까요.”
“나 나쁜 사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 있어요, 당신.”
“별말씀을.”

시원스레 응수하고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튼 레슬리는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야 어디 도망을 안 가죠.

“누가 들으면 도망갈 준비만 하는 사람인 줄 알겠어. 도망갈 사람은 당신 아니에요?”
“저런. 아가사 말은 바로 해야죠. 나는 남겨질 사람이고, 앞으로 가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죠. 앞으로 나아가기. 순간 부는 바람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고 공기마저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정적을 가져다주었다. 설풋 고운 눈매가 일그러지기가 무섭게 레슬리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싫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하죠.”

뒷말을 짐작이라도 한 모양으로 가라앉은 표정에 가벼이 입을 맞춘 레슬리는 누가 들을 새라, 조그맣게 속닥였다.

“세상 누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어요? 몇 없는 특권을 누리는 중이랍니다, 나는.”
“말은 참 잘해요, 레슬리.”
“그럼. 사업가인데.”

그래서, 레슬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아가사는 짙은 녹음 속에 잠긴 자신의 남편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멋진 준비를 하는 중인가요?”
“그럼요.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2화
작성일 : 18-12-11 13:50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6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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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지에서의 나날은 그저 느긋하고 안온했다. 영지의 성에 머무를 수 있음에도 아가사는 영지 외곽의 마을을 택해 한적한 오두막 하나를 통째로 개조했고,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주변에 그들을 위한 의사 등을 데려왔다. 모든 것은 레슬리 모르게 아가사의 손을 거쳤고, 레슬리는 어느 날 통보하듯 자신에게 짐을 싸라는 부인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자신의 부인이 자신보다 더 자신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다 자신이 미처 해내지 못한 것을 대신해주는 그 노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목상,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로 레슬리의 건강을 위한 요양이 맞았으나 레슬리는 거기에 아가사의 여유, 라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가사는 너무 많은 짐을 홀로 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것도 보고 말이지. 일에 치이고 사교 활동에 치여 이 시기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든 부인은 아들을 안고 햇빛이 쏟아지는 침실에서도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혹여 눈이 부실까, 캐노피를 끌어다 내린 레슬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깊게 잠든 사랑하는 이들을 내려다보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백작가의 도련님으로 떠받들어지며 살아오긴 했다지만, 사람은 늘 자신의 사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 사정으로, 자신이 먹을 음식 정도는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레슬리는 준비된 식재료를 훑어보다 간단한 메뉴를 선택했다. 사용인들이 오기 전까지 간단한 것은 자신이 좀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베이컨을 굽고, 계란을 깨서 익히고, 아스파라거스를 물에 대치고. 빵을 구워 잼을 준비하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간단한 요리를 간단하게 해낸 레슬리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다시 침실로 올라갔다. 이 잠꾸러기들을 어떻게 깨우면 좋을까? 문득 장난스런 미소가 레슬리의 입가를 스쳐 지나갔다.

 

 “부인님, 아드님. 일어나실까요? 해가 중천이에요.”

 

 곱게 말로 깨워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모자가 아주 똑같았다. 캐노피를 걷고 바깥의 창문에 길게 늘어트린 얇은 커튼마저 걷자, 밝은 여름의 햇살이 그대로 침실 안으로 퐁당 뛰어들어 왔다. 눈이 부신지 인상을 찡그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제지한 레슬리는 두 사람을 한 번에 껴안으며 눈에 보이는 곳마다 사정없이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일어나요, 안 일어나면 계속한다?

 

 간지럽다며 칭얼거리던 윌리엄은 이내 키득거리며 레슬리와 똑 닮은 미소를 지닌 채, 아가사의 품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아빠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얼굴에 쪽, 입을 맞췄다. 잠에서 깨우려는 부자의 노력을 몰라주는지, 고개를 돌려 머리카락으로 가려낸 아가사는 윌리엄 모르게 허리에 감은 레슬리의 팔이 자신을 간지럽히기 시작하자 항복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깨워도 어떻게 이렇게 깨워요?”

 “효과는 만점이죠?”

 “엄마는 나보다 늦게 일어난대!”

 

 생글생글 웃으며 아빠의 품으로 쏙 안겨든 윌리엄은 이상한 노래를 지어 부르더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레슬리를 재촉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아가사에게 다가가 머리칼을 마저 정리해준 레슬리는 윌리엄을 안고 남은 손으로 아가사를 끌어당기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그려냈다. 우리 밥 먹을까요?

 

 여느 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식사 시간이었지만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화려한 음식이 사라지자,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다며 윌리엄은 한참이나 밥을 먹으며 종알거렸다. 간혹 손님이 찾아와 무겁게 짓누르는 분위기가 아닌, 서로 대화도 나누고 한참을 웃다가 느지막이 밥을 먹고, 먹은 후에도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을 갔을 때랑 비슷할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아가사는 이 경험이 앞으로의 생활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찻잔으로 입매를 가려냈다. 어디든 익숙해진다면 소중한 것을 모르게 된다지만, 이 안온하고 따스한 분위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퍽 마음에 들었다. 진심으로.

 

 먹은 음식을 다 같이 치우고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편안한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자, 이미 오래전에 책을 다 읽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윌리엄은 레슬리와 아가사 사이를 번갈아 움직이며 열심히 밖으로 나가자 재롱을 피웠다. 엄마! 밖에 꽃이 예뻐! 아빠! 밖에 햇살이 반짝거려!

 

 아들과 남편에게는 책을 읽게 시키고 본인은 서류 처리를 하고 있던 아가사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턱을 괴고 남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좋아하던 소설의 마지막 즈음을 읽고 있던 레슬리는 아쉽다는 표정을 애써 숨기곤 윌리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가, 아빠 이것만 마저 읽고 가면 안 될까?

 

 “엄마랑 먼저 나가 있을까? 아빠는 책이 더 좋다고 하시네?”

 

 급한 것은 이미 다 처리했으니 문제없겠지. 겸사겸사 마을로 가서 서류를 다시 수도로 보내야 하기도 했고. 꽤 오랜 시간을 지내야 하는 마을 구경도 아이에게 시켜줄 겸. 꼼꼼하게 종이 뭉치를 봉한 봉투를 챙긴 아가사는 한 손에는 양산과 서류를, 한 손에는 윌리엄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당신은 일만 하지 말고, 좀 쉬엄쉬엄 있다가 따라와요. 우체국에 없으면, 뭐 어디서 먹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네, 그럴게요. 부인. 더우니까 너무 오래 밖에 나가있지 말고요.”

 

 현관까지 굳이 따라 나와 배웅해준 레슬리는 강한 햇볕 탓에 유독 어두운 내부의 문을 열고 나가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나가는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좋아하던 소설을 마저 읽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숨이 조금 가빠오는 것이 좋지 못한 꼴을 보일 것도 같아서. 약이 어디에 있더라. 조곤조곤 가지고 다니는 약 외의 비상약이 어디 있는지 일러주던 아가사의 목소리를 따라 레슬리는 조금 불안한 발걸음을 휘청휘청 움직였다.

 

 

 

 사람이 유독 적은 마을은 한낮엔 더욱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 정도까지는 신이 나서 힘차게 걸음을 내딛던 윌리엄은 우체국에 들러 서류를 보내고 마을을 쏘다니는 와중에 점차 느려지더니 종래엔 칭얼거리며 안아 달라, 아가사에게 팔을 뻗었다.

 

 “아들, 더우니까 카페에 가자고 했잖아.”

 

 양산을 고쳐들고 기꺼이 아들을 안아든 아가사는 주위를 둘러보며 쉬어갈 곳을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조금은 엄격한 목소리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을 내리깐 윌리엄은 무어라 중얼거렸으나 다른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더운데 여기 서서 뭐해요. 아가, 엄마 힘드니까 아빠한테 올까?”

 

 불쑥 나타나 윌리엄을 안아든 레슬리는 아가사의 동그랗게 변한 눈매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살짝 기울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부인?

 

 “시간 있으시면 저랑 데이트 어떠세요?”

 “아빠-, 나는?”

 “멋진 신사분도. 해주시겠어요?”

 

 약을 먹고 진정되기가 무섭게 식은땀 범벅이 된 몸을 씻고 나왔더니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온 레슬리는 마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로 한 복판에 오도카니 서 있던 가족을 발견하고 곧장 다가온 참이었다.

 

 새까만 머리칼 끝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땀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순식간에 허전한 손끝을 들어 레슬리의 머리를 가볍게 잡아당긴 아가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감기 걸려요. 아니면 뛰어왔어요? 힘들지 않아요?”

 “나야 뭐, 늘 똑같은 걸요. 어디 가서 뭐라도 먹을까요? 시원한 거?”

 

 말은 아가사를 향했지만 시선은 좋아서 방방 뛰는 윌리엄을 향해 있었다. 거절할 명분이 없던 아가사는 마지못한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 양산을 쥔 손을 더 높이 들어 올려 비스듬히 기울였다.

 

 “아가사. 당신이 써요. 햇볕에 약하잖아.”

 “그 정도는 아니에요. 봐둔 곳은 있어요?”

 “이제부터 찾아야죠. 나도 이곳은 처음인걸.”

 

 전쟁 탓도 있었다곤 하나, 그가 영주로서 행동하기에 제약이 따랐으니까. 웃는 낯 뒤에 숨겨진 말을 찾는 것은 아가사에겐 이미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흐려지는 표정에 눈을 느릿하게 감고 고개를 저은 레슬리는 아가사의 볼을 한차례 쓸어주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대가 있어서, 다 괜찮아요. 정말로.

 

 크림이 듬뿍 올라간 크레페를 신나게 쥐고 다리를 동당거리며 오물오물 먹는 모양새를 바라보단 아가사와 레슬리는 문득 마주한 시선에 눈을 휘어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윌리엄에게 눈길을 옮겼다. 녹음을 닮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에 웃음을 터뜨린 아가사는 의문어린 시선에 부드럽게 웃으며 레슬리를 흘끗 바라보았다.

 

 “어쩜 당신이랑 똑같지?”

 “난 단거 좋아하진 않아요.”

 “근데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눈이 반짝거리잖아요. 좋아하던 작가 신작이라던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뒤펭의 그림이라던가.”

 “그건 누구나 그럴 텐데요? 아가사 당신도 남 뒤 캐낼 때 꽤 신나하는 눈치에요. 감찰관으로 일했어도 이름 날렸을 거야.”

 “어머, 그건 누구나 그러죠. 생각해봐요. 내가 잘못한 건 아니니까, 남 잘못한 거 캐내는 건 꽤 즐거운 일인걸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무자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요?”

 

 실망인데. 장난스럽게 흘기는 눈동자에 말없이 아가사의 몫을 입가에 밀어 넣어준 레슬리는 빤히 마주하는 시선에 어쩔 줄 모르다가 이상한 기류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윌리엄을 향해 웃어주었다. 우리 부인이 참 이럴 때는 무섭다니까.

 

 “뭐,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레슬리.”

 “네? 불렀나요?”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는 몇 없는 마을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자 소식 교환지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주말 오후쯤에나. 주중의 늦은 오후에 들이닥친 영주 부부는 한동안 서로밖에 없는 듯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잔을 닦으며 그들을 흘끗 바라보던 마틴은 점장의 눈치에 재빠르게 카운터 뒤로 넘어갔다.

 

 주변의 사람이 물린 아가사는 여전히 크레페에 정신이 팔린 윌리엄을 흘끗 바라보곤 천천히 손을 뻗어 레슬리의 손을 잡았다. 미지근한 온기에 적잖아 안심이 되는 것은 어떤 마음이 앞선 탓일까. 잠시 주저하던 아가사는 입술을 잘근거리다 조심스럽게 그를 저지하는 레슬리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늘 여전하게 따스한 미소를 띤 이는 천천히 손등을 감싸고 쓸어내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지만, 당신이 조금 더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곳에 왔어요.”

 “응, 알아요. 그리고 난 반대하지 않았고요.”

 “-사실, 인정하기 싫었어요. 내가 관리하는 무언가에 오류가 났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아가사.”

 “그저 단순히 물리적인 실수를 범했다면 되돌릴 수야 있을 텐데. 매일 눈을 감으면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 수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라요.”

 “부인, 아내님? 그 영민한 머리를 이상한 방향으로 쓰지 말아줄래요.”

 

 심상치 않은 부모의 분위기에 윌리엄은 눈을 댕그랗게 뜨고 둘을 바라보다 레슬리가 주문한 또 다른 간식에 활짝 웃으며 그것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시려, 아가사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곤 사이좋은 부자를 한 눈에 담았다. 너무 밝아서, 그래서 도리어 하얗게 흩어져만 가는 것 같아서.

 

 매일 밤, 매 순간 새로운 후회로 점철되는 머릿속은 자신의 가족을 볼 때마다 다시 싹을 틔워 자라나고 있었다. 그 많은 수 가운데에서 자신이 예상한 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아가사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레슬리의 건강을 해치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일조했다는 사실을. 그런 아가사의 생각을 꿰뚫는 것처럼 느릿하게 다가온 온기는 그를 품에 안고 천천히 도닥였다.

 

 “그대는 결정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습관이 있어요. 물론, 나는 그것마저 좋아하지만.”

 

 아가사를 품에 안은 채, 아이의 손에 묻은 크림을 마저 닦아준 레슬리는 고개를 기울여 아가사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가져다 대곤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설마 그 사람이 끈질기게 발목을 잡을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뿌리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나의 탓일지도 몰라요. 맺는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아가사는 다정한 녹음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에 말을 잃고 입술을 벙긋거리다 레슬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늘게 떨리는 손은 무언가라도 붙잡아야 할 것만 같아서, 레슬리의 옷깃을 쥐고 느릿느릿 숨을 뱉어 말을 골라냈다.

 

 “여보, 레슬리.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대 탓이 아니라고 말을 해도, 나는 내가 실수한 것을 알아요.”

 “누구나 실수를 해요. 그대도, 나도. 나의 실수라면 뿌리를 뽑고 말려 죽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고. 내가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 않아요.”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그대가 울상이면 나는 어떡하나요? 나대신 울어주니, 나는 울면 안 될까?”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며 강한 자신의 부인이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내어준 레슬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을 바라보는 윌리엄을 향해 손을 뻗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에 안았다. 엄마, 울어? 아이의 물음에 애써 울컥 솟아나는 무언가를 꾹꾹 눌러 삼킨 아가사는 고개를 흔들고는 웃는 낯을 만들어내고, 윌리엄의 머리를 느릿하게 헤집었다. 아니, 안 울어.

 

 아가사는 그제야 느릿하게 인정했다. 자신을 안고 있는 미지근한 체온과 품에 안긴 따뜻한 체온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편이 되어 주리라는 것을. 실수를 했으니, 이제 다시 털고 일어나 걸음을 옮겨야 함을. 수많은 눈물을 삼켜내며 아가사는 레슬리에게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요.”

 “그리고, 또?”

 “고마워요.”

 “또?”

 “사랑해요.”

 “응. 나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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