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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용오름-영웅의 기준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18.12.6

슈퍼히어로 '용오름'이자 대학생인 정일은 여러 범죄를 해결하던 중 잠깐의 휴식을 가지며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정일을 갉아먹기 시작하는데...... 대홍수의 슈퍼히어로 시리즈 <증인들>의 첫 번째 이야기!

 
2화
작성일 : 18-12-11 12:26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1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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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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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아는 침대에 드러누워 크게 기지개를 켰다. 동글이를 찾기 위해 일 주일 동안 첫 등장 지점을 중심으로 대전 시내의 모든 CCTV를 돌려 보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힘든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뭐…….”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사람을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심지어는 현 위치도 파악이 가능한 사람보다 먼저 찾는다는 것은 힘들다는 말로도 부족한 일이었다. 동글이가 가면을 쓰기 전에는 눈앞에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도 구분할 수가 없으니 시아가 MH그룹보다 먼저 동글이를 찾으려면 행운으로도 턱없이 부족했다.

 시아는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쿡쿡 찔렀다. “귀찮아.” 성과도, 성과가 보일 가망도 전혀 없으니 의욕도 사라진다.

 “정일 오빠는 오늘 여행 간다고 나갔으니 급할 필요는 없겠지. 우씨! 그러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 가지고!”

 자리에 없는 정일에게 화를 풀던 중 전화가 오자 누운 채 한 바퀴 굴러 휴대폰을 잡았다. 정일의 동생이자 시아의 절친, 정석이었다. 시아가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심심해. 운동하러 가자.”

 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야, 난 바빠.”

 “안 바쁠 것 같은데.”

 “야, 너 설마!”

 시아가 기겁을 하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15층의 고층 아파트지만 정석에게는 1층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창문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보겠냐 내가? 그런데 반응을 보니 안 바쁜 건 맞네. 빨리 와. 치킨 사줄게.”

 “치킨 따위에 내가 유혹이 되지. 지금 나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시아가 전화를 끊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한때는 절친의 형이 죽을지도 모르는 취미생활-시아는 슈퍼히어로는 직업이 아닌 취미생활이고,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가 없고, 자유롭지 못하면 영웅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에 빠져 있는 것을 말리기는커녕 부추긴다는 미안함에 정석을 피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정석은 시아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감정에 따라 설레거나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지만 시아에게는 어느 쪽도 해당되지 않았다.

 “바쁘면 어쩌려고 그랬니.”

 “집까지 뛰어가면 또 운동이지 뭐.”

 시아와 정석은 평소 함께 가곤 하던 헬스장에 들어갔다. 정석은 시속 15킬로미터에 경사도를 최대로, 시아는 경사도 0에 시속 8킬로미터로 지정했다.

 아마 두 고등학생을 계속해서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석의 체력에 경악했을 것이다. 시아 역시 체력이 좋은 편이었지만 30분이 지나자 땀에 절어서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정석은 누워서 자는 것처럼 숨이 고른 상태를 유지했다. 시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정석의 등짝을 가볍게 쳤다.

 “야, 과하다.”

 정석은 그 형과 마찬가지로 증인이다. 정일이 농담으로 밀당이라고 불리는 제한적인 염력을 지녔듯, 정석은 비인간적인 힘과 체력,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아는 정석이 개 같다고 생각했다. 욕설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체력과 힘이 남아돌지만 좁은 집 안에서는 체력을 제대로 소모시키지 못해 집안 물건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대형견처럼 정석 역시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해 정신병에 가까운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정석은 시아의 말에 순순히 머신을 끄고 내려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더니 정석은 어느새 일반인은 어느 정도 운동을 하면 지치는지를 잊어버린 상태였다. 시아가 말리지 않으면 저 속도 이상으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달릴 것이고, 그러면 모두가 정석의 정체를 알게 될 일이었다. 정석이 런닝머신의 시간을 초기화하고 다시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시아는 달리고 있는 정석 옆에 서서 휴대폰을 꺼냈다. 정일이 동아, 혜린, 수종, 려경과 함께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재밌게 놀고, 사고치지 말고 와요.’

 사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정일에게는 조금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정일이 외지에서 용오름의 능력을 쓰면 사람들은 해당 지역에 있는 대전사람 중에 용오름이 있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시아는 정일에게 살인사건 이상의 사건이 아니면 절대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고, 정일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일은 그 곳에서 능력을 사용했다.

 

 

 *****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노래보다는 환호성에 가까운 소리가 수종의 작은 자동차 안에 울려 퍼졌다. 다섯 대학생들은 다 같이 모여 가는 첫 번째 여행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정일은 수종이 미리 뽑아놓은 신나는 여행과 관련된 모든 노래를 연속으로 재생했고, 가사를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팔이라도 흔들었다.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려경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다다!”

 “바다다!”

 “갈매기다!”

 “야! 최수종! 운전 안하고 어디 봐!”

 수종이 함께 창밖을 가리키며 외치자 려경이 비명을 질렀다. 수종이 장난스럽게 웃고 다시 안정적으로 운전을 했다.

 뒷자리에 앉은 동아는 멀미에 시달리느라 혜린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고, 역시 뒷자리에 앉은 정일은 혜린이 동아의 이마에 뽀뽀하는 것을 못 본 척 하며 창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잠시 후 흑혈도로 가는 선착장에 도착한 수종이 차를 멈췄다. 정일은 이곳은 절대 항구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항구의 사전적 정의가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도록 설비한 곳’이고 선착장이 ‘배가 와서 닿는 곳’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은 선착장이 확실했다.

 “자, 내리자 아이들아.”

 밖으로 나가자마자 동아가 수풀로 뛰어가 속을 비웠다. 동아가 걱정된 혜린이 따라가려 하자 정일이 만류했다.

 “내가 갈게. 저거 보면 이제 정 떨어진다.”

 “아, 알겠어.”

 정일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다섯 중 비위가 가장 약한 혜린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가서 미리 예약한 거 확인하고 짐도 싣고 있을게.”

 려경이 혜린의 팔짱을 끼고 수종과 함께 자신들이 타야할 배를 찾아 선착장으로 갔다. 정일이 여전히 속을 게워내는 동아를 딱하다는 얼굴로 보며 등을 두드렸다.

 “고생했다.”

 “이제 시작이지. 배는 타본 적도 없는데.”

 동아는 배까지 타야 하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낄낄댔다. 한 번 더 헛구역질을 한 동아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여행갈 때는 무조건 가까운 데로. 아니면 기차나 비행기로 가자.”

 “그래그래. 가자.”

 정일이 먼발치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는 셋을 향해 팔을 크게 흔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수종이 흑혈도에 가기 위해 타야 할 배를 팔로 가리켰다. 나룻배라 해도 믿을 작은 크기의 여객선에 동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물론 배에 탄 동아는 몇 번 더 물고기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었다.

 “아이고, 학생은 뭘 먹었다고 이렇게 다 쏟아내?”

 선장 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정일은 동아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어차피 배에서 내리면 금방 괜찮아질 테니 도움이 안 되는 걱정보다는 바다를 즐기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았다. 정일은 휴대폰으로 바다와 함께 사진을 찍어 시아에게 보냈다. 사진은 몇 차례 로딩을 반복하다가 전송에 실패했다.

 “확실히 도시는 절대 아니네.”

 정일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래도 섬이 완전 무인도가 아닌 이상 거기는 공유기라도 있을 테니 숙박업소에 도착해서 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종은 갈매기들을 향해 새우깡을 던졌다. 갈매기 십여 마리가 수종과 려경의 머리 위를 맴돌며 새우깡이 물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냈다. 려경은 갈매기 똥이 몇 차례 발치에 떨어지자 불안한 듯 갈매기들을 주시하면서도 갈매기들이(혹은 수종이) 마음에 드는 듯 갈매기 아래를 떨어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선장은 딱한 얼굴로 동아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혜린아, 여기 멀미 심한 손님 차 한 잔만 갖다 줘라.”

 “네!”

 동아는 혜린을 바라보았지만 혜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장을 바라보았고, 대답은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혜린은 선장의 딸로 보였다. 우연히도 혜린과 이름이 같은 모양이라 생각한 동아는 축 늘어진 채 혜린이 주는 차를 마셨다. 약간 비린 듯 미끄러운 식감이 해조류로 만든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이건 멀미가 심한 사람들이 마시는 차인데 효과가 좋을 거예요.”

 동아가 잔을 돌려주며 한 번 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멀미에 좋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인지 확실히 나아진 기분이었다. 혜린이 잔을 들고 조종실로 돌아가려던 중 정일과 눈이 마주쳤다. 혜린이 싱긋 웃었다. 혜린의 미소를 본 혜린이 조종실로 돌아가기까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혜린이 들어가고 조종실 문이 닫힌 뒤에야 정일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뭐야.”

 정일이 조종실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그 모습을 본 수종과 려경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반했네.”

 “반했어.”

 “예쁘긴 하더라.”

 “응, 저 언니 눈 봤어? 딱 보는 순간 몸이 확 얼어붙는 것 같다니깐.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야.”

 “그러니깐. 어! 저기 저 섬인가?”

 수종이 멀리서 보이는 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름과 달리 숲이 우거지고 모래사장이 펼쳐진 꽤나 아름다운 작은 섬이었다.

 “자, 학생들! 섬에 거의 도착했어요. 모두 짐 두고 내리지 않게 다 챙겼지?”

 정일이 가까스로 조종실에서 시선을 떼고 섬을 바라보았다.

 “선장님. 저게 그 흑혈도인가요?”

 “응, 그렇지. 왜?”

 정일은 비명을 질렀다.

 여전히 멀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아를 제외한 수종, 려경, 혜린이 깜짝 놀라 정일에게 다가갔다.

 “야, 괜찮아? 뭐야.”

 “왜, 뭐 문제 있어?”

 정일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소름이 돋았네.”

 “아이고, 여긴 젊은 총각들이 다 이리 비실비실해. 저기 멀미하는 총각도 그렇고. 섬에 가면 보양 되는 거라도 먹여야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수종이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고 정일에게 몸을 숙였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뭘 잘못 본 거야?”

 정일이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뭐가 문제인지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정일은 거짓말을 했다.

 “진짜 괜찮아. 사실은 아까, 배가 살짝 흔들려서 넘어질 뻔 했거든.”

 “배가 흔들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수종이 미심쩍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배가 흑혈도에 정박했다.

 “자, 학생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내리세요.”

 배는 모래사장에 그대로 안착했고, 정일과 친구들은 짐이 물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짐을 머리 위까지 들어서 이동하느라 고생을 했다. 멀미 탓에 려경보다도 약해진 동아의 몸 상태도 한 몫 했다. 가장 먼저 모래사장에 짐을 내려놓은 정일이 다른 친구들을 돕기 위해 뒤를 돌았다.

 아까 전보다 나은 점은 이번에는 자신이 왜 비명을 지르는지 알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정일은 또 비명을 질렀다.

 배가 사라져 있었다.

 

 

 *****

 

 

 운동을 마친 시아는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쓰러졌다. 정석은 이제 겨우 조금 만족한 듯 즐거운 얼굴로 시아의 옆에 앉았다. 시아가 후들거리는 팔로 정석을 밀었다.

 “야, 네가 옆에 있으니깐 내가 너무 초라하잖아. 저리 가.”

 “네, 네. 알겠습니다.”

 정석이 시아와 5센티 정도 떨어졌다. 시아가 정석에게 가볍게 눈을 흘겼다. 정석은 시아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우리도 영화 속 비밀기지 같은 거 있으면 좋겠다. 러닝머신 시속 100킬로미터 넘게 무한지속 되는 것도 하나 달아놓고.”

 “100킬로미터 뛸 수는 있고?”

 “100킬로미터 시도할 수는 있지. 여기선 그것도 못하잖아.”

 “아, 그건 그렇지.”

 잠깐 드러누워서 생각에 잠겨있던 시아가 덧붙였다.

 “오, 근데 방금 그거 좀 명언 같았어.”

 “시도할 수는 있지. 하는 거? 적어놔야지 그럼.”

 정석이 주머니에서 포켓용 수첩을 꺼내 자신이 했던 말을 적었다. 시아가 정석의 수첩을 곁눈질하다 말했다.

 “너희 오빠랑 우리 오빠랑 오늘 여행 간 거 알지?”

 “응. 젠장, 부럽더라. 나는 언제 대학생 되나.”

 “그러게. 나도 대학생 되면 그놈의 흑혈도 꼭 가본다.”

 “나도. 나중에 우리도 애들 모아서 거기로 가자.”

 “돈 많이 벌어야겠네.”

 시아가 혀를 차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바로 눈을 떴다.

 시아의 등이 이상하게 싸늘했다. 잘못 들은 거였나?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인가? 시아가 정석에게 말했다.

 “야, 오빠들 간 데 이름이 흑혈도라고 했지.”

 정석의 표정을 본 시아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 이건 꿈이 아니다. 2. 큰일 났다. 정석 역시 시아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석이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에 들어갔다.

 “흑혈도라는 섬이 있어?”

 “검은 피눈물 흘리는 다람쥐 같은 이야기가 있을 리가 없잖아. 설화의 현실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설화라고 쳐도 기존 설화랑은 너무 달라. 불상이면 모를까 다람쥐가 전쟁을 예견하고 피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분명히 들었어. 너도, 나도. 그럼 흑혈도가 없을 리가……. 있네. 흑혈도라는 섬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시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물론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를 떠나서 그냥 거짓말로 아무 섬이나 지어냈을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왜 거짓말을 했냐는 것과, 왜 가상의 섬을 지어냈냐는 문제는 남지만 최소한 그냥 거짓말일 뿐이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시아는 다른 것이 두려웠다.

 “왜, 우리는 이제 와서야 의심을 한 거지?”

 시아는 이것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규모의 정신 조작. 마찬가지로 고민에 빠져 있던 정석을 뒤로하고 시아는 가장 두렵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우리 정체를 알고 있다.’

 

 

 *****

 

 

 시아와 같은 시간. 흑혈도인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섬에 갇힌 다섯 대학생들도 시아와 마찬가지로 마법에 풀린 듯 한꺼번에 현실로 돌아왔다. 동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야, 얘들아. 내가 혹시 뱃멀미 할 것 같으니깐 배 타지 말자는 이야기 안 했었어?”

 “선착장에 아무 팻말도 없이 배만 한 척 있고, 선장 모녀 말고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혜린도 벙찐 얼굴로 배가 사라진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수종이 숲을 가리켰다.

 “여기, 아무리 봐도 무인도잖아. 너희들 내가 무인도가 가고 싶다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장난친 거 아니지? 아니, 선장님이 분명 흑혈도라고 했는데?”

 “그럼 우리 여기 갇힌 거야?”

 려경이 울먹이며 말했다.

 정일은 해안가로 걸어갔다. 원래부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듯 파도가 정일의 다리를 감쌌다. 정일이 배가 있었던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손에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파도가 정일의 다리를 붙잡고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정일은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뿌리치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혜린이 휴대폰을 꺼냈지만 당연하게 신호가 끊어져 있었다. 혜린이 말했다.

 “일단 여기가 무인도가 맞는지부터 보자. 숲을 넘어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갈게. 혹시 모르니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도 구해보고. 너희들은 여기서 먹을 게 얼마나 있고, 당장 오늘 밤 보낼 수 있는 게 있는지 볼래?”

 “그래, 빨리 다녀와. 조심하고.”

 정일이 숲 속으로 들어갔다. 꽤나 빽빽한 숲이었다. 정일이 식물에 해박하다면 이곳의 식물들이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나무와 풀임을 알아챘겠지만 정일은 식인 식물 급의 과장된 비현실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눈치 챌 수가 없었기에 자신이 붙잡은 나뭇가지가 어떤 종류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래사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정일은 가장 높이 보이는 나무를 향해 손을 뻗고 팔을 뒤로 끌었다. 정일의 몸이 빠르게 솟아올라 나무 꼭대기에 도달했다. 정일은 불확실함 속의 희망에서 확실한 절망을 찾아냈다.

 빽빽한 숲은 그리 넓지 않았다. 강낭콩처럼 옆구리가 구부러진 둥근 섬은 숲과 모래사장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너무 단순해서 만화책에서만 보고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는 허구적인 형태에 정일은 눈을 찌푸렸다. 만약에 숲 속에 살고 있는 정글 부족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정일이 생각하고 있는 종류의 인간은 살고 있지 않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거기에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수평선 끝까지 섬이나 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일은 나무에 매달린 채 심호흡을 했다.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 당황하면 죽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절망은 보이지 않는 절망보다 강렬했다. 정일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세 차례 세게 후려쳤다. 강한 통증이 정일을 진정시켰다. 정일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정일은 흑혈도가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는 것 까지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이상 그걸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대신에 정일은 선장 모녀가 자신들을 속이고 무인도에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는? 방법은? 어떻게 그렇게 우리 눈을 피해 사라졌지?’

 사실 방법이야 선장의 딸이 대규모 순간이동이 가능한 증인이라면 배와 선장까지 끌고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하다. 정일은 고개를 흔들었다. 배는 크고 무겁다. 순간이동이 가능하더라도 손상이 없을 수가 없는데 선장에게 생명과도 같은 배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알지도 못하는 대학생 다섯을 무인도에 집어넣을 이유는 없었다. 결국은 이유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단은 돌아가야겠네.’

 정일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정일의 몸이 천천히 땅으로 떨어졌다. 다른 아이들도 섬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고 초조할 테니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정일은 친구들이 있는 방향을 찾아 돌아갔다. 모래사장으로 돌아간 정일은 수종과 려경만 남은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뭐야? 혜린이랑 동아는?”

 “어? 숲에 없었어? 아까 둘이 들어가던데.”

 정일이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았다. 숲이 빽빽하니 엇갈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위험해 보이는 동물은 없었으니 조금 헤메더라도 결국에는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정일이 말했다.

 “아, 그래서 짐은?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무인도구나. 무인도야. 무인도지?”

 려경이 절망했다. 정일의 말로 여기가 무인도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너무나도 최악의 상황이라 직접 말하기 전 까지는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일은 정말 듣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응, 무인도야. 거기에 나무 위로 올라가서 봤는데 수평선 끝까지 아무런 섬도 안 보여.”

 려경이 울먹이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수종이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나무가 저리 높은데 고생했네. 일단 려경이가 정리는 다 해놨어. 3박4일 여행으로 잡았는데 여기 와서 먹을 것도 생각해서 당연히 먹을게 4일치가 되지는 않아. 아껴 먹어도 사흘이면 바닥날 것 같아. 자칫하면 사냥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동물은 많은 것 같아? 위험한 동물은 없으면 좋을 텐데.”

 “그건 아니야. 섬이 작아서 그런가 우리한테 위협이 될 맹수는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정일이 또다시 새로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여기, 동물이 한 마리도 없었어. 곤충도, 새도, 다람쥐 한 마리도 없었어.”

 

 *****

 

 

 한 편 혜린과 동아는 작은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동아야! 어디가!”

 동아와 혜린이 거의 동시에 움직여서 수종과 려경은 동아와 혜린이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혜린은 당황해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을 뿐, 갑자기 숲으로 들어간 동아를 쫓아가는 쪽이었다. 동아가 나뭇가지를 헤치고 숲 속을 달렸다. 마치 꽤 오랫동안 숲에서 살았던 것 같은 과하게 능숙한 모습에 혜린은 당황했다. 거리가 갈수록 멀어져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현실에 발걸음이 느려질 때 쯤 동아가 달리기를 멈췄다. 혜린이 지친 다리에 박차를 가해 동아를 뒤에서 껴안았다. 정신없이 달리느라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온 체중을 실어 달려들었지만 동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혜린이 동아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야, 너 무섭게 왜 그래.”

 동아는 몸을 돌려 혜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동아는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아니야, 나 그냥 멀미가 덜 나아서 그런 거야. 알겠지? 난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동아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동아가 다시 토하려는 줄 알았던 혜린이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지만 동아는 땅을 짚고 힘겹게 숨을 몰아쉴 뿐 더 이상 속을 비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혜린이 동아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고 일으켰다.

 “일어나. 일단 애들한테 돌아가자.”

 동아는 순순히 혜린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혜린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부 처음 보는 나무네. 그 흔한 소나무 하나 없이 다 처음 보는 나무밖에 없어.”

 “정말 끝내주는 여행이네. 안 그래?”

 “말할 기운 있으면 빨리 돌아가기나 하자. 정일이가 돌아왔을지도 몰라. 우리 없어진 거 알고 찾느라 난리가 나면 어떻게 해?”

 “아냐, 이 섬은 위험하지 않아. 맹수 한 마리 없는 조용한 섬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

 무심코 동아를 돌아본 혜린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아의 눈이 흰자가 없이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혜린은 눈을 의심했다. 검게 변한 눈동자는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아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들려. 여기에 살아있는 건 우리 다섯 뿐이야. 그리고 앞으로 더 줄어들 거야.”

 동아의 불길한 예언에 혜린은 문득 동아를 어디든 떨쳐 놓고 도망치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대신에 혜린은 동아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야! 쓸데없이 무서운 이야기 할 거면 혼자 걸어가! 나 겁 많단 말이야!”

 동아가 걸음을 멈추고 혜린을 바라보았다. 동아가 혜린의 목을 움켜쥐었다. 혜린이 숨이 막히자 동아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동아의 손이 풀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아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혜린아? 왜 울고 있어?”

 혜린은 그제야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눈을 비볐다.

 “동아야, 너 괜찮은 거 맞지?”

 “응, 갑자기 무인도에 갇혔대서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같이 있잖아? 아마 곧 구조될 수 있을 거야.”

 “그래, 너 좀 당황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했나봐. 빨리 돌아가자. 애들이 기다리겠어.”

 혜린이 동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아가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아, 아. 잠깐만. 이상하다. 그런데, 나 여기가 너무 아픈데?”

 동아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문지르며 신음했다.

 “여기 와서 이상한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이거 무슨 병이라도 생긴 거면 네가 서운해서…….”

 “그만하고 빨리 가자. 응?”

 혜린이 동아의 귀를 잡아당기고 모래사장으로 끌고 갔다.

 

 

 *****

 

 

 동글이는 편의점에 갔다. MH그룹에게 적지 않은 선금을 받은 뒤로 편의점의 싸구려 음식은 손도 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매운 라면이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사치란 싼 것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일에 경제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동글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운 라면들을 집어 들었다.

 용오름에게 도망친 지 이제 일주일이 넘었다. 경찰들도 동글이를 찾을 가망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벽에 붙은 가면을 쓴 자신의 사진 옆에서 셀카를 찍은 동글이는 편의점 알바생이 자신을 힐끗 보고 무시하는 것을 보고 은밀한 쾌감을 느꼈다. 아무도 자신을 못 찾는다. 마치 사회생활이 가능한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나중에 MH라이트닝에게 붙잡힌 뒤 계약에 따라 후송 중에 탈출하고 나면 다시는 가면을 쓰지 않고도, 아니, 아무 일도 안 해도 돈 많은 백수로 먹고살 수 있다. 동글이는 즐거웠다.

 “용오름? 블루로즈? 피를 태우는 용? 에휴, 능력은 이렇게 쓰는 거다. 이 멍청이들아.”

 동글이가 술과 라면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여름이 시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밤은 조금 쌀쌀했다. 동글이는 차가운 술이 든 비닐봉지를 몸에 붙지 않게 살짝 떼고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기에 즐거웠다. 하지만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동글이는 부자연스럽게 지속되는 일정한 발걸음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동글이는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 흘린 척, 플래시를 켠 뒤 뒤를 돌아 세워져 있는 차 밑을 비추며 자신이 걸은 길을 곁눈질했다. 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동글이는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히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데 아무도 없다면 잘못 들었거나, 자신을 피해 숨은 것인데, 지금의 동글이는 살면서 이랬던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동글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방향을 틀어 집을 지나쳐 걸었다.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만약에 일반인이었다면 주소를 들킨다는 고민보다 당장 잡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곧바로 집에 들어간 뒤 상황에 따라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후속조취를 취했을 것이다. 동글이처럼 혼자서 제압할 생각에 집이 아닌 곳으로 유인하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동글이는 걸어가며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찾아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아무래도 함부로 몸을 부풀리는 것은 너무 눈에 띄고 부담스러웠다. 불행히도 동글이의 주머니에 송곳이 들어있었다. ‘이게 왜 들어있더라?’ 동글이는 잠깐 기억을 되짚었다. MH라이트닝의 눈에 넣어준다고 하더니 자기 주머니에 넣고 그대로 걸어놨다가 오늘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아무튼 불행이었다. 동글이는 주머니 속에서 송곳을 몇 차례 굴리고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동글이를 따라오는 걸음은 계속해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더니, 동글이가 속도를 높이자 동글이에 맞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동글이의 숨이 가빠졌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걸었던 골목길이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좁게 느껴졌다. 동글이는 송곳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발걸음 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지자 동글이는 더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았다. 동글이는 눈앞에 보이는 형체를 향해 무작정 송곳을 휘둘렀다. 송곳은 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치며 촉이 부러졌다. 촉이 허공에 튕겨져 나왔다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그대로 동글이의 양 어깨와 허벅지를 찔렀다. 동글이가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송곳이 동글이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동글이가 나오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비명을 삼켰다. 괴한이 말했다.

 “동글이. MH그룹에게 고용된 범죄 조작자.”

 동글이가 숨을 못 쉬자 괴한이 송곳을 치웠다. 동글이는 감히 비명을 지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숨을 몰아쉬며 괴한을 올려다보았다.

 “MH그룹이 널 고용했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해 네가 MH라이트닝에게 붙잡히도록 지시하겠지. 그게 언제지?”

 동글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누구지?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만약에 상대가 MH그룹에서 고용된 암살자 같은 거라면 입을 여는 순간 MH라이트닝은 동글이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뉴스가 나오게 될 것이다. 동글이가 망설이자 괴한은 동글이의 입을 움켜쥐고 허벅지를 송곳을 세 차례 찔렀다. 동글이의 몸이 기괴하게 부풀었다가 쪼그라들면서 발버둥 쳤지만 괴한의 손은 흔들림 없이 동글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괴한은 동글이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을 만큼 진정하자 입을 막은 손을 치웠다.

 “3주! 3주 남았어! 그 다음에 다시 연락할 거야!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그쯤이 확실해! 제발 살려줘. 난 그냥 돈 받고 하는 일이고 심하게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잖아!”

 “이제 생길 것 같군.”

 괴한이 말했지만 동글이의 귀에는 송곳이 깊게 들어가 괴한의 목소리가 들어갈 곳이 남아있지 않았다. 괴한은 축 늘어진 동글이의 시체를 업고 동글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괴한과 동글이가 마주한 지점에는 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았다.

 

 

 *****

 

 

 동아와 혜린은 정일이 이미 도착해 있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결국 혼자 돌아왔다는 건 무인도가 맞다는 거지? 그런데 엄청 빨리 왔네. 섬이 그렇게 작아? 확인 제대로 한 건 맞지?”

 동아의 물음에 려경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화장이 전부 번져 엉망이었지만 려경의 얼굴이 밝아졌다.

 “맞아, 너 그냥 걷다가 중간에 돌아온 거 아냐? 내가 들어가 볼게. 내가 가면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려경아 앉아라. 말했잖아.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보고 왔다고. 사람이 살고 있으면 최소한 연기나, 오두막이라도 보일 법 한데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는 게 전혀 없어. 여긴 무인도야. 그것도 마지막으로 사람이 닿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된.”

 정일의 말에 려경이 다시 주저앉았다. 정일이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별자리 보고 위치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없었다. 려경도 이번에는 기대도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혜린이 손을 들었다.

 “북두칠성 보고 방향 잡는 건?”

 “어디가 어느 방향인지 정도는 나도 잡을 수 있어.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어차피 여기가 어딘지 알아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니야? 누구한테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알려주고 구조를 받겠어?”

 수종이 말했다. 수종은 불을 피우기 위해 정일이 모은 나뭇가지 위에 자신의 담배를 쏟아 부은 뒤 라이터를 켰다. 종이로 만든 담배가 일차적으로 좋은 땔감이 됐지만 다섯에게 지독한 간접흡연을 선사했다.

 “이렇게 금연을 하는 거지.”

 수종이 냉소적인 농담과 함께 나뭇가지를 더 집어넣었다. 불이 스러질 듯, 살아날 듯 아슬아슬하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정일이 말했다.

 “맞아, 그래도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 우리가 구조를 기다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탈출을 시도해야 할지를 정할 수는 있잖아. 뭐, 어차피 틀렸지만.”

 “그건 그러네. 동아야, 혜린아. 너희도 불 가까이로 좀 더 붙어. 밤은 추울걸?”

 “아냐. 난 여기가 딱 좋아. 더 붙는 건 너무 덥다.”

 동아는 불이 붙자 엉덩이를 땅에 댄 채로 몸을 뒤로 조금 뺐다.

 “난 추워.”

 혜린이 불 가까이에 달라붙었다. 섬의 밤은 꽤나 추워서, 이제 해질녘인데도 불을 마주한 앞은 화상을 입을 듯 뜨겁지만 등은 서늘했다. 려경과 정일도 불에 가까이 달라붙어 불을 쐬었다. 수종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별이 보일 때가 된 것 같네. 모두 배고프지 않아? 일단 먹고, 내일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어? 배 안 고픈 사람들도 일단은 받아놔. 나중에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깐.”

 “근데…….” 동아가 손을 들었다.

 “먹을 거는 네가 간수하는 거야?”

 동아의 경계 섞인 목소리에 다섯 명 사이에 차가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정색을 하고 있던 동아가 분위기를 읽고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농담이야. 어차피 우리가 서로 속고 속일 사이도 아니니 한 사람이 간수하는 게 낫겠지. 인력 낭비야.”

 동아의 미소에 수종이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래,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이 몸이 먹을거리를 분배하겠노라. 모두 한 줄로 서서 저녁식사를 받아 가거라.”

 “예, 영양사님. 영양가 많고 맛있는 저녁을 분배해 주소서.”

 “급식비도 안내면서 바라는 게 많다?”

 수종이 동아와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저녁거리를 배분했다. 원래 예정이었다면 돼지고기가 가방에서 냉장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운반이 힘들다는 이유로 단 초코바나 과자 등만이 남아 있었다. 쉽게 상하고, 조리하기도 힘든 애물단지가 없다는 건 장점이지만, 먹을 것이 탄수화물과 당 뿐이라는 것은 큰 단점이었다. 정일이 초코바 한 개와 물 한 병을 받았다. 물도 하루에 반병이지만 나눌 방법이 없으니 이틀에 한 병씩 분배한 것이기에 오늘 다 먹어버릴 수는 없었다. 오늘 치 물을 다 마신 려경이 투정을 부렸다.

 “아, 동아 부럽다. 나도 멀미하고 차 좀 받을 걸.”

 “그거 맛 더럽더라. 게다가 먹은 것 보다 많이 토해서 너보다 더 배고프기도 하고, 게다가 그 차를 준 모녀라는 놈들이 수상한 지금 상황에서 그 차가 그리도 부럽더냐.”

 “응!”

 려경이 더 이상 부럽지는 않지만 한 마디도 지고 싶지는 않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혜린은 안심했다. 숲에서 나온 뒤 동아는 거의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일, 수종은 침착했고, 려경 역시 이제 많이 진정한 모습이었다. 수종은 식량을 시원하게 유지한다며 넓은 나뭇잎으로 덮으며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언제 말해야 하지?’

 아무리 지금 괜찮다고 해도 숲에서 보여준 동아의 모습은 도저히 정상이라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중에 의사는 하나도 없었지만 혜린은 말이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풀어놓고 싶은 비밀이 혜린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섯이 원을 그리고(동아가 원의 완전성을 조금 망가뜨리고 있었지만), 불안감은 우정과 사랑으로 희석되고, 등의 추위가 마비로 느껴질 쯤 혜린이 마음을 정했다.

 ‘말하자.’

 “얘들아.”

 혜린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도 혜린을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혜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 할 말이 있어.”

 혜린이 모두의 시선을 끄는 마법의 단어를 읊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혜린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입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린은 자신의 마법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무엇인지, 그 신비로운 힘의 근원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따라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계는 달이 두 개, 혹은 세 개가 떠올라 이곳이 지구가 아님을 강렬하게 어필하고는 하지만 이곳은 특별했다. 혜린은 수많은 별들이 수놓아진 아름다운 검은 하늘 속에서 참을 수 없이 거대한 공허를 느꼈다.

 혜린은 달이 없는 세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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