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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막;궁전_2화
작성일 : 18-12-11 03:32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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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카이샤하스 제국의 궁전, 본궁의 동쪽에 위치한 회의실에 모여앉아 있었다.

 

  넓은 회의실은 대리석과 은으로 장식된 높다란 아치형 천장이 있었다. 회의실 정 중앙엔 세로로 무척 긴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기다란 테이블의 너비가 좁은 쪽은 한 쪽에만 의자가 있었다. 너비 좁은 쪽에 놓인 의자가 상석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그 의자는 다른 의자들에 비해 가장 크고 화려했다.

 

  예의, 그 최고 상석엔 약간 곱슬거리는 흑발을 가진 남자가 턱을 괸 채 의자에 반쯤 눕다시피 하여 기대 앉아있었다. 남자는 짙은 푸른색에 금장식이 달린 조끼와 흰색 하의를 입고 있었는데, 그의 상의와 색이 같은 망토는 그가 턱을 괴고 있는 의자 팔걸이의 반대쪽에 걸쳐져 있었다. 그의 검은 구두엔 금장식이 박혀있었으며 턱을 괴지 않은 손엔 카이샤하스 제국 문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가 앉은 상석 왼쪽엔 푸른빛이 도는 흑색 머리칼을 가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척이나 온화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진 보라색의 황실 정식 지정 공작 제복이 눈에 띄었다. 그의 망토는 잘 개켜져 빈자리에 놓여있었고, 그 위엔 둥그스름한 모자도 가지런히 얹혀있었다.

 

  공작의 맞은 편, 말하자면 가장 상석의 오른편엔 밝은 금발을 가진 남자가 앉아있었고, 그는 나이가 많아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금발의 남자는 상석의 흑발 남자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것과 달리 은장식이 달려있었다. 그의 옆엔 그와 같은 차림을 한 10대 중후반 -가장 어린 아이는 겨우 10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들 네 명이 잔뜩 긴장한 채로 앉아있었다.

 

  회의실엔 정적이 흘렀고, 가만히 앉아서 침묵을 지키던 금발 남자가 상석에 앉은 흑발 남자에게 눈을 흘기며 정적을 깼다.

 

  "……형, 똑바로 앉아."

 

  금발 남자의 말에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있던 흑발의 남자가 얼굴을 구겼다.

 

  "내가 어떻게 앉든."

 

  무슨 상관이야.

 

  잘라먹은 뒷말까지 잘 알아들은 금발 남자가 눈을 찌푸렸다.

 

  "국정 회의 중이라고."

  "푸핫."

 

  비웃음이 한껏 담긴 웃음을 터뜨린 흑발 남자는 자세를 고쳐 앉기는커녕 금발 남자에게 웃음 띤 얼굴로 쏘아붙였다.

 

  "웃기지 마."

 

  흑발 남자가 비아냥거렸다.

 

  "시온, 눈이 있으면 좀 봐라. 여기 있는 사람? 황태자인 나, 황자인 너, 그리고 나머지 네 명."

 

  자신을 황태자라 칭한 흑발 남자가 움찔거리는 나머지 황자들을 가리켰다. 그리곤 여전히 시온과 눈을 맞추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거기다 우리 싸우나 안 싸우나 감시하러 온 레이."

 

  황태자가 자신의 왼편에 앉아있던 남자를 손가락질 했다. 졸지에 삿대질을 당했건만, 레이는 한 치의 기분 나쁜 기미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황태자는 레이를 무시했다.

 

  "자, 국정 회의? 해 봐. 무슨 얘길 하려고? 우리가 뭐라고 해봤자 로안 아저씨가 다 말아 먹을 텐데,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라고."

  "……."

 

  시온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옆에 줄지어 앉아있던 황자들은 졸지에 겁을 집어먹고 테이블만 내려다보았다. 황태자는 곧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온에게 짜증이 나서 의자에 기대었던 상체를 세우며 입을 열었다.

 

  "네 눈에 이게 국정 회의로 보이냐? 괜히 아버지가 우리끼리 친하게 지내랍시고 만들어 놓은 자리인 거 몰라서 그래? 그리고, 너희들이 너무나 잘 아는 사실처럼, 난 너희를 믿지도 못할 뿐더러, 너희랑 친하게 지낼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넌 그걸 다 알면서도 내가 앉는 방법부터 눈빛, 옷차림, 행동까지 하나하나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냐? 어?"

 

  시온은 건조한 눈빛으로 황태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황태자는 시온의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곧 짜증을 부리며 다시 의자에 편하게 기댔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시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약간, 뭐랄까……. 그래. 형의 좌우명 같은 거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회의시간에 1시간이나 늦게 나온 형이 큰소리 칠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황태자가 굉장히 불만스런 얼굴로 눈을 치켜떴다. 어머니도 다른 이복동생이 맞는 말만 해대는데 그 맞는 말이 황태자의 심기를 여간 후려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짜증나게도, 그는 그런 황태자의 속내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어느 정도 불쾌하게 했다, 싶으면 옆에서 구경꾼마냥 황태자가 폭발하길 기다리기만 했다.

 

  어린 황자들은 사납고 무서운 황태자 대신 착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시온을 열심히 따랐지만 황태자는 기회만 된다면 시온을 들쳐 업어서라도 어디 야산에 갖다 버리고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형 어머니께 예의 좀 지켜."

 

  쾅!

 

  황태자가 의자의 팔걸이 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허리를 세웠다. 그의 눈엔 혐오감과 분노가 가득했다.

 

  "내 앞에서 그 여자 얘기 꺼내지 마."

  "……형이 어떤 난리를 쳐도 그 분은 지금 우리 어머니야."

  "내. 앞에서. 그. 여자. 얘기. 하지. 말라고."

 

  잇새로 딱딱 끊어서 말하는 황태자는 이미 참을 만큼 참은 듯 눈동자가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온의 눈동자는 모래바람이라도 불어 닥칠 양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가 형 눈치 보는 거 보면-."

  "야. 시온."

 

  시온이 입을 다물고, 가까스로 화를 추스른 황태자가 화난 웃음을 띠었다.

 

  "그게 바로 내가 너희를 싫어하는 이유야. 어머니? 그 여자가? 장난 해? 너넨 그 여자가 어머니로 보이긴 하냐? 진짜 어머니도 살아계시는 놈들이?"

 

  황태자가 시온과, 시온 옆으로 줄지어 앉아있던 황자들과 눈을 맞추며 묻자 어린 황자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시온은 여전히 표정변화가 없었다.

 

  "황자는 황비의 아들이어야 한다. 황자를 낳은 친모가 누구든지, 황제의 대를 이은 황자는 황비를 어머니로 모셔야 한다. 제가 틀린 말 했나요, 레이?"

 

  시온이 레이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레이가 눈을 맞추고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토씨 하나까지도 옳은 말씀이십니다."

 

  레이의 온화한 목소리에 더욱 화딱지가 난 황태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딴 개소리나 지껄일 거면 다신 이런 자리엔-."

 

  똑똑.

 

  가볍게 두 번. 청아한 노크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의실에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문으로 향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남자들은 그 노크소리가 누구의 노크소리인지 알았다. 시온이 곧 밖에서 대답을 기다릴 누군가를 위해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커다란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리고, 가녀린 체구의 여인이 들어왔다. 소매와 치마 끝이 간소하게 마무리 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정말 누가 봐도 세기의 미인이라고 할 법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끝으로 갈수록 굽이치는 고동색 머리칼을 가진 그녀는 깊은 심해의 색을 담은 진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현 카이샤하스 제국의 유일무이한 단 한 명의 황비, 아이린이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자 아이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하얀 치맛자락 한 쪽을 살짝 들어 인사했다.

 

  "황자님들, 황제께서 점심 식사에 부르십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도록 하죠."

 

  시온이 황태자와 이야기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태자는 으득, 이 가는 소리를 내며 더러운 뭐라도 씹은 표정을 짓더니 의자 한쪽에 걸쳐놓았던 망토를 홱 잡아채 집어 들곤 성큼성큼 걸어 아이린을 지나쳤다. 그런 황태자를 멈춰 세운 건 다름 아닌 아이린이었다.

 

  "저-, 황태자님."

 

  황태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린은 황태자가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조심스레 용기를 내었다.

 

  "황제께서 황자 분들 모두와 식사를 하시고 싶으시다고-."

  "안 먹어."

 

  황태자가 차갑게 내뱉곤 멈췄던 발걸음을 내딛자 시온이 입을 열었다.

 

  "카우라 황태자."

 

  황태자가 다시 멈춰 섰다. 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 간이 받침대에 놓아둔 망토와 모자를 들어올렸다. 시온이 느긋이 아이린이 있는 곳까지 다가와 카우라의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그렇게 불만이면 황제가 돼서 모든 걸 바꿔. 형은 황제가 될 수 있는 황태자잖아."

 

  시온의 얼굴엔 약간의 미소마저 깔려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뒤를 돌아본 카우라의 표정은 성 두어 개라도 충분히 깨부술 것 같았지만.

 

  "……너…….나중에 봐."

 

  카우라가 화를 참느라 입을 꾹 다물며 멀어지자 레이가 시온의 옆에 다가와 말했다.

 

  "나중에 보실 땐 지켜드리지 못 합니다."

 

  그의 온화한 표정에 시온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좀 맞죠, 뭐."

 

  시온의 말에 얼굴이 새하얘진 아이린이 급히 시온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화, 황자님-, 싸우시는 건-. 아, 죄……죄송합니다……."

 

  아이린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시온의 소맷자락을 놓았다. 시온이 그런 아이린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황비 폐하께서 한낱 황자에게 죄송하다니요. 그리고 원래 아들들은 싸우면서 크는 겁니다."

  "……."

 

  잠시 시온을 올려다보던 아이린이 순간 아주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온은 그녀가 늘 짓는 부드러운 미소 외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처음 본 지라 저도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린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린이 그의 눈길을 느끼곤 얼른 표정을 고쳤지만 시온과 조용히 눈을 맞추다 다시 울상이 되었다.

 

  "저……그게……, 무례해 보여서-."

 

  시온이 자신이 크게 뜨고 있던 눈을 알아차리곤 부드럽게 표정을 바꾸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죄송할 것 없습니다. 무엇이 어머니를 미소 짓게 했는지, 그게 궁금하군요."

  "그건……."

 

  아이린이 치맛자락을 잡고 꼼지락 거리다 시온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시온 황자님이…… 왠지 나이에 맞지 않게 말씀하시는 것 같기에……읏."

 

  왠지 또 하면 안 될 말을 한 것 같아 아이린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온은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웃으셔도 괜찮습니다. 가시죠,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시겠습니다."

 

  아이린이 시온의 배려 넘치는 말에 안심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곤 곧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황제가 기다릴 식당으로 향했다.

 

 

 

 

 *

 

 

 

 

  [붉은 정원으로 나와.]

 

  시온은 푸른색 종이에 휘갈기듯 쓰여 있는 메모를 보곤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지금 막 황제, 황비, 황자들과의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딱 봐도 카우라 글씨네. 이렇게 악필은 황궁을 통틀어 카우라 밖에 없지.'

 

  시온은 쪽지를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지곤 방금 벗었던 망토를 다시 들어올렸다.

 

  '언제 나오란 얘기도 없다니. 내가 언제 갈 줄 알고.'

 

  그는 느긋한 손놀림으로 망토를 걸치고 가볍게 모자를 눌러썼으나 그 느낌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머리가 이상하게 눌린 것을 확인한 시온은 머리 정리를 하느라 모자를 세 번쯤 벗었다가 다시 썼다. 한참동안 머리를 만지던 시온은 정돈된 앞머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모자가 편하게 써지고 나서야 흡족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

 

 

 

  궁전의 서쪽 정원. 온갖 종류의 붉은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정원은 무척이나 넓었지만, 시온은 굳이 그 넓은 정원 안쪽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정원 입구에 서자마자 한쪽 구석 나무그늘 밑에, 무척이나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카우라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얼굴 굳힐 필요까지."

 

  시온이 중얼거렸다. 시온은 카우라가 움직이지 않자 그가 움직이기로 결심하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카우라는 시온이 아주 느린 걸음걸이로 다가가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시온이 카우라의 서너 걸음 앞에 서서 먼저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카우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시온은 더없이 느긋했다.

 

  "용건도 없이 바쁜 황자를 불러낸 건 아니겠지?"

  "……."

  "뭐야, 점심 못 먹어서 벙어리라도 된 거야? 우리들 앞에서 어머니를 벙어리로 만든 건 형이라고."

  "너 진짜-."

  "아-, 정말. 형이 어머니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카우라의 말을 자른 시온은 아이린이 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께 형이 밥 안 먹는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내 앞에서 그 여자 말하지 말라고!"

 

  시온이 입을 다물었다. 카우라가 화를 참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쉴 때 시온이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카이 형."

  "카이라고 부르지도 마!"

 

  카우라가 한 번 더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시온이 체념한 듯 눈을 내렸다.

 

  "하, 뭐. 그래, 좋아. 카우라 황태자. 카우라 황태자한테 현재 황비를 진짜 어머니로 여기고 모시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 예의만 지키란 말이야. 어디 공작보다도 직급이 낮은 황태자가 황비한테 반말질인데?"

  "야, 시온."

 

  카우라의 부름에, 시온이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카우라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실소를 흘리더니 예의, 그 화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이해할 수 없는 건, 멀쩡히 살아있는 너희 어머니는 언제 갖다버리고 그렇게 새파랗게 어린 여자한테 대뜸 어머니라고 할 수 있냐는 거야. 난 널 알지. 네 친모 다음 황비에게도 '어머니, 어머니'하며 살갑게 구는 척 하다가 이번에 새로운 황비가 들어앉으니까 그 '어머니'도 철저하게 모르는 척 하더라? 어떻게 그래?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하아, 형. 형은-"

  "넌 이번 황비도 폐비되면 확실하게 제일먼저 쌩깔 놈이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형, 형은 황태자라서 모르나본데-."

 

  "카이랑 시온이냐?"

 

  시온이 말을 멈추곤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거대해 보일 정도로 키가 큰 남자가 깊은 푸른색의 두툼한 망토를 약간 여민 채로 천천히 다가왔다. 조각 같은 얼굴에 흔치 않은 완벽한 금발을 가진 그는 카샤스 제국의 현 황제, 로렌스였다. 황제를 발견하자마자 깍듯하게 인사하는 시온이다.

 

  "황제 폐하, 붉은 정원엔 어인 일로-."

  "그렇게까지 딱딱하게 할 필요 없다."

 

  로렌스가 다가와 시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공주님과 산책 중이었지."

 

  로렌스가 그 근엄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자신의 푸른 망토를 열어보였다. 그 속에서 아이린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카우라는 속에서 울분이 터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우리 공주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황비들에게 그런 식으로 애칭을 부른 적이 없었으면서 꼭 아이린에게만-.

 

  시온은 로렌스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린을 알아보곤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또 뵙네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시온 황자님."

 

  아이린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시온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로렌스가 카우라를 돌아보았다.

 

  "얼굴 보기 힘들구나."

  "……."

 

  카우라가 고개를 대강 주억거리며 인사했다. 아이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피했다. 카우라가 티나게 눈길을 거둔 아이린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보고 있었고, 로렌스는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는 카우라를 가만히 지켜보다 물었다.

 

  "그래, 또 뭐가 불만인 거냐?"

 

  카우라가 아이린에게서 시선을 떼고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황제는 한 박자 정도는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카우라를 마주보았다.

 

  "……."

  "뭐가 불만이냐고 물었다."

  "……."

  "네가 황자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해 주는 것도 무척 고맙지만 식사시간엔 그렇게 죽자고 오지 않는 이유가 뭐냐?"

  "……."

 

  카우라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로렌스는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품안에 있는 아이린을 내려다보며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카우라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역겨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 어머니껜…… 내 어머니껜-.'

 

  "제 어머니껜-."

 

  머릿속 목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자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된 카우라가 말을 이었다.

 

  "제… 어머니껜……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도…… 입맞춤도…… 포옹도 없이, 그렇게 외롭게 보내버리시곤……, 바로 레베카 황빈을 황비로 맞고…… 레베카 황비가 멀쩡히 살아있을 때에도 새 황비를 들이시어 본 황비를 황빈으로 내리시더니……. 이제 와서 이 새파랗게 어린 여자 때문에 황비와 황빈을 폐비하시다니요-."

  "카이."

 

  로렌스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카우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로렌스는 아이린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카우라가 조용히 로렌스의 말을 기다리자 로렌스가 웅장한 목소리로 일렀다.

 

  "그렇게 막 말하는 것 아니다. 교육을 좀 더 받아야겠구나."

  "……."

  "내일 오전에 레이에게 교육 받아라."

 

  로렌스가 아이린을 끌어안은 채로 차갑게 카우라를 지나쳤다. 카우라가 주먹을 쥐고 화를 참고 있는 모습을 본 시온은 지금 이 타이밍에 형과 말을 섞어 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요량으로 들어왔던 정원 입구를 향해 뒤 돌려던 시온이 아, 하며 다시 카우라를 돌아보았다.

 

  "형. 내가 아까 하려던 말."

 

  카우라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어하며 시온을 바라보았고, 시온이 건조한 얼굴로 말했다.

 

  "형은 황태자라 모르나본데, 평범한 황자로 이 궁전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

 

  시온이 대답 따위 바라지 않는다는 듯 그대로 돌아서 천천히 걸어 정원을 나섰다. 시온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카우라도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뒤를 돌아보면 산책중인 로렌스와 아이린이 보이리라. 카우라는 그런 끔찍한 장면을 애써 봐가면서 자기 자신을 망칠 생각이 없었다.

 

  카우라는 천천히 걸어 자신의 황자궁으로 향했다. 자신의 방에 도착한 그는 피곤한 듯 질질 끄는 발걸음으로 방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의자에 다가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루 종일의 일과가, 좀 속되게 말하자면 거지같았다. 화를 참느라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화난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체할 것이 분명해 보여서 하녀가 가져왔던 점심도 거부한 상태였다.

 

  카우라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깐 눈을 붙였다. 자신을 화나게 하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의 무의식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

 

 

 

  똑똑.

 

  카우라가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탁상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쯤 잤으려나, 카우라가 뒷머리를 긁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

 

  문 밖의 사람은 말이 없었다.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 물으면 시녀나 시종들이 대답 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카우라는 자신이 지금 무척 배가 고프다는 것을 새삼 깨닫곤 짜증스런 얼굴로 직접 문까지 걸어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

  "황태자님……점심을 전혀 드시지 않으셨다기에……."

 

  푸른 눈동자와 예고 없이 정면으로 마주쳐버린 카우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쓸데없이 아름다운 여자였다. 카우라는 심장 한 구석이 아려서 더욱 더 화가 난 눈빛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커다란 덮개가 덮여있는 은 쟁반을 공손히 들고 있던 아이린은 자신을 냉대하는 황태자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뭐라도 드셔야 할 것 같아서-"

 

  카우라는 아이린 뒤에 안절부절 못하는 하녀들을 발견했다. 분명 하녀들은 자신들이 들고 가겠다고 아이린을 극구 말렸겠지. 어느 황비가 황태자에게 음식을 직접 갖다 주겠는가.

 

  "여기까지 왜 온-……거예요?"

 

  카우라가 하녀들의 시선을 느끼곤 짜증을 무릅쓰며 존댓말을 했다. 그런 카우라의 노력을 잘 아는 듯,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녀들이 음식을 올렸는데 드시지 않으셨다고……."

  "그럼 그 쪽이 갖다 주면 먹을 것 같았어요?"

  "……."

 

  카우라의 공격적인 어투에 순간 아이린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카우라는 아이린이 눈물어린 시선을 내리며 은쟁반의 끝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알아차리곤 입을 다물었다. 곧,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웅얼거렸다.

 

  "저…때문에 드시지 않은 것 압니다……. 죄송해서……."

  "죄송하면 식사에 부르지 마세요."

  "……."

 

  카우라도 알고 있었다. 아이린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부름을 아이린이 전달한다는 것을. 거기다 아이린은 비슷한 나이또래인 황자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리 나이또래가 비슷해도, 아이린은 황비였고, 카우라와 시온, 그리고 다른 황자들은 그녀를 '어머니'라 불러야 했다.

 

  카우라는 아이린이 자신의 말에 네, 아니요로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녀를 어떻게 돌려보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카우라의 눈에 그녀의 가녀린 팔이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카우라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티내지 않으려 하며 툭 던지듯 물었다.

 

  "……뭐에요?"

  "……예?"

  "그 안에 뭐가 들었냐고요."

 

  카우라가 아이린이 들고 있던 은쟁반을 턱짓하자 아이린이 은쟁반을 내려다보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황태자님께서 식욕이 없으시다길래…… 씨암탉을 잡았는데-."

 

  카우라의 얼굴이 험악해지며 은쟁반을 빼앗듯이 받아들었다. 카우라가 들어도 무게가 육중했다. 은쟁반, 은 덮게, 거기다 안에 들었을 알찬 씨암탉 무게까지 더해지자 조금만 들고 있어도 팔이 아파왔다. 은쟁반을 빼앗아 들자마자 그것의 무게를 감지한 카우라가 얼굴을 구기고 화를 냈다.

 

  "이 무거운 걸 여기까지 들고 온 거에요?! 제정신입니까?!"

  "……."

  "대체 어느 제국 황비가 이 무거운 쟁반을 황태자에게 직접 갖다 줍니까?! 생각이 있긴 있습니까?! 그리고, 무거우면 무겁다고 말을-."

 

  카우라가 자신이 하려던 말을 깨닫고 입을 얼른 다물었다. 아이린이 어떻게 자신의 몸이 힘들다고 카우라에게 직접적으로 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게 만든 건 바로 카우라 자신인데 말이다.

 

  카우라는 고개를 푹 수그린 아이린을 내려다보다 그녀의 팔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젠장, 로렌스가 보고 뭐라고 할까. 황태자의 별관에 다녀오고 황비의 팔이 후들거린다니, 그럼 대체 난 아버지께 무슨 엄청난 말들을 들어야 하는 거야? 카우라가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알아서 먹을 테니까 돌아가세요!"

 

  카우라가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아이린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카우라는 그 중얼거림이 자신이 잘못 들은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방에 들어와 상아와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에 묵직한 은쟁반을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은 카우라는 짜증을 참으며 눈썹을 문질렀다.

 

  내가 뭣 하러 그런 소릴 한 거지, 알아서 먹겠다니. 거기다 무거우면 무겁다고 말을 하라고? 허, 참 나…….

 

  카우라가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으며 은 덮개를 들어올렸다.

 

  "……."

 

  통닭구이다. 카우라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카우라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고 나서야 포크와 나이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카우라는 통닭구이를 먹을 때 포크나 나이프를 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카우라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차피 혼자니까, 손으로 원 없이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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