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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5화. 해야 할 일.
작성일 : 18-12-10 22:41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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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신이 빚은 몸매 중에서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이 광고는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은 하나의 '이상'이었다.

 

  옷을 살리는 게 광고 디렉팅의 목적이 되어야 했지만 그를 보는 순간 목적을 잊은 사진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광고 감독의 인터뷰는 그를 찍던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집약해놓은 게 느껴졌다.

 

  사진 속 남자는 상의를 탈의하고 청바지만 입은 채 조금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짜증스럽게 찡그려진 미간과 지그시 깨문 입술이 묘하게 섹시함을 자아냈다.

 

  해는 시계를 흘깃 보았다. 이제 가봐야겠네. 물 한 통을 챙겨 들고는 구석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흔히 울리는 쿵쿵 거리는 음악 하나 없이 위아래에 달라붙는 까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온몸이 다 젖도록 뛰고 있었다.

 

  “류 도진.”

 

  해의 한 마디에 봉인이라도 풀린 듯 앞만 보고 뛰던 그가 바닥으로 넘어지듯 쓰러졌다. 해가 러닝머신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그에게 물을 내밀었다. 도진은 물병을 잡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으아, 죽겠어. 해야.”

 

  한껏 물을 마시고도 건조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하나에 푹 빠지면 시간 개념 같은 건 금세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깨워야만 했다.

 

  그녀는 '신이 빚은 몸매'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오로지 그의 인내이자 노력이다.

 

  그는 원래 잘 먹는데다가 어릴 적에는 또래 아이들이 놀릴 정도로 통통했었다. 헬스장도 소속사의 전문 트레이너도 다 거절했다.

 

  “이제 해랑 놀아도 돼?”

 

  단지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해에게서 소년에게

  005

 

 

  해는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었다. 신발 끈 매듭을 단단히 묶고 몸을 돌렸다. 쿠션을 품에 껴안은 도진이 쪼그려 앉아 불쌍한 강아지처럼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음식 해놨으니까 데워만 먹으면 돼. 이상한 거 한다고 프라이팬 태우지 말고.”

 

  도진이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 나 안 데리고 갈 거야?”

  “어. 떼쓰지 말고 그냥 집에서 쉬어.”

  “나 심심해.”

  “영화도 보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할 거 많네.”

 

  대안들이 마음에 안 들어 잔뜩 찡그리는 얼굴을 뒤로하고 해가 "간다."하고 몸을 돌렸다. 차라리 그가 영화 스케줄 나가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

 

  메마른 나뭇가지들에는 차가운 바람이 걸렸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 때문에 이곳은 유난히 빨리 겨울이 찾아왔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커다란 원목 책장 가득히 책이 빽빽이 꽂혀 있고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도 예쁘게 책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이, 그녀가 일하는 서점이었다.

 

  일단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는 청소기를 돌렸다. 물걸레질까지 끝내고 입구 옆 유리를 뽀득 뽀득 닦아냈다. 테이블부터 서랍장까지 먼지 하나 깨끗이 쓸어내고는 그녀는 붓을 들었다.

 

  “노래라도 틀고 하지.”

 

  가게 안으로 들어선 지호가 그녀가 딛고 올라선 사다리를 잡았다.

 

  “여긴 왜 왔어?”

  “이 불량한 직원. 사장님 아드님이 올 수도 있지.”

  “아, 예. 존댓말이라도 쓸까?”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지호를 따라 그녀도 같이 웃었다. 그녀는 가장 높게 올라가 책들 살살 쓸어냈다.

 

  이 서점은 선우의 것이었다. 정확히는, 죽은 선우의 아내이자 지호의 어머니의 서점이었다. 가게의 인테리어, 책의 배치, 심지어 책장까지도 그녀가 공방을 다니며 제작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곳을 이토록이나 아끼고 소중히 보살펴주는 해가 지호의 눈에는 예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에도 해는 늘 부지런하고 꼼꼼했다.

 

  “누나.”

  “응.”

  “누나 이러고 있을 때 보면, 진짜 우리 엄마 닮았어.”

 

  지호의 말에 해는 잠시 머뭇거리다 "응"하고 대답했다.

 

  “옷장보다 책장 채우는 게 취미인 엄마가 이 책방을 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엄청 우아한 사람 같은데, 음, 그보다는 씩씩했어. 명랑하고.”

  “나랑 전혀 다른데.”

  “에이. 아냐. 책을 대할 땐 엄청 진지해서, 누가 보면 보물이라도 대하는 줄 알았어.”

 

  해가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지호는 잠겼던 추억에서 깨어나 마주한 그녀를 향해 언제나처럼 밝게 웃었다. 해가 그런 지호의 볼을 살짝 튕겨냈다.

 

  “안 웃어도 돼.”

 

  억지로 끌어올렸던 입꼬리가 살짝 떨리는가 했더니 금세 원래 자리를 되찾았다. 해는 몸을 돌려 유리문을 닫았다. 'OPEN'으로 팻말을 돌리고는, 습도와 온도를 맞추었다.

 

  “누나는 이상하게 착해.”

  “별로 이상할 것도 없고 착하지도 않아.”

  “아니야.”

 

  지호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의 믿음은 늘 그렇듯 올곧고 확실했다.

 

  지호가 가고 나자 해는 가장 안쪽에 있는 카운터 옆 푹신한 소파 대신 조금 딱딱한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바른 자세를 유지했다. 그녀의 일과는 늘 이렇게 흘러갔다.

 

  서점의 오픈을 준비하고, 새로 들어온 책을 등록하고 정리하고, 서점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커피나 유자차를 건네고, 계산을 하고, 인터넷 주문을 확인하는 일.

 

  서점 일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고 그녀는 관리직에 가까웠다. 일에 비해 꽤 높은 월급을 줘 해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선우는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음'까지 들어간 일이라며.

 

  “띠리링.”

 

  단조로운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와 문자만 가능한, 아주 오래된 전화기였다. 할머니가 들고 다닐 것 같은 오래된 검은색 핸드폰의 플립을 열었다. 누구인지 볼 것도 없었다.

 

  “응, 왜?”

  “-해야. 밥 먹었어?”

  “응, 좀 전에.

  “-나도 먹었어. 설거지도 다 해놓고, 방금 빨래도 해서 널었어.”

  “청소는?”

  “-했지! 청소기도 돌리고, 걸레질도 했어.”

  “어, 잘했네.”

  “-잘했지? 근데 언제 와아...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책도 막 읽고 했는데.”

 

  도진은 누워서 전화를 하는지 웅얼웅얼 거렸다. 음질이 좋지 않은데도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평상시보다 조금 낮아 더욱이 감미로웠다. 그럼에도 해는 살갑게 반응해주는 법이 없었다.

 

  “나 바빠, 할 말 없으면 끊는다.”

 

  상대편은 대답이 없었다.

 

  “집 갈 때 단팥빵 사갈게.”

  “-응! 알았어! 얼른 와! 잘 기다리고 있을게.”

 

  금세 활기찬 목소리가 돌아왔고 해는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는 테두리 부분이 다 닳고, 문자를 누르는 부분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자판이 많이 지워져 있었다.

 

  도진이 사 준 최신 스마트폰은 쓰지도 않고 반품했다. 많은 기능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녀의 휴대전화는 도진을 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읽던 책 위로 잠시 얼굴을 묻었다. 낡은 종이 냄새가 애처롭게 났다. 지호의 목소리가 선회하는 듯했다.

 

  ‘왜 동물들도 알잖아. 이 사람이 자신을 아끼는지 아닌지. 동물도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어? 더 잘 알지. 누나가 좀 냉정하게 말하고 무뚝뚝하게 대해도 상대방은 알아. 누나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정한지 아닌지.’

 

  제 아빠를 닮아 똑똑해서인지 제 엄마를 닮아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지호는 늘 명확하게 생각을 정리해 말한다. 매번 횡설수설하는 도진이나,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해와 달리. 게다가 지호는 순수하고 솔직하다.

 

  그런 지호는, 종종 정곡을 찌른다.

 

  ‘누나가 그 형이랑 있는 거 보면 단번에 알겠던데. 누나가 그 형을, 엄청 아낀다는걸.’

 

  지호는 옅게 웃었다. 지우개로 슥 한 번만 움직여도 금방 지워질 듯이.

 

  ‘잃을까 봐 무서운 거지?’

 

  해는 그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고 떠올렸지만 생각나질 않았다.

 

  늘 공간을 메우는 도진의 목소리가 멈추면 해가 고갤 돌려 확인한다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먼저 끊겠다고 해놓고도 그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그녀를 모를 것이다.

 

  하지만, 지호의 이야기는 틀렸다. 그녀는 그를 잃게 될까봐 두려운 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알고 있다.

 

  그녀는 반드시 그를 잃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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