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새 황비를 맞이했다.
기존의 황비와 황빈은 폐비되었고, 이내 황제의 명을 받들어 퇴궐하였다.
에즈호 성 출신인 황비는 그 혈통이나 가문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이후 에즈호 성의 기사단장 파트너로 파티에 참석하였던 평민으로 알려져 귀족계에 큰 파문을 몰고 왔다.
황실 자문회의 성화에 못이긴 황실은 뒤늦게 황비의 혼인 전 호적을 스톤트 백작가의 수양딸로 공표했지만 그 이야기를 믿는 이는 없었다.
또한 황실측은 더 이상의 황제혼이 없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평소 워낙 대쪽 같던 성정으로 소문이 자자한 황제는 한 번 공표한 내용을 두 번 다시 번복하지 않았다.
자문회의 수많은 위원들이 청원을 넣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샤누 루시카 공작은 이미 황실의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한 자문회의 청원을 윤허해주지 않았다…….
<루픽의 시간> 1면에 실린 기사를 요약하자면 위와 같았다.
카우라 황태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이전 황실 파티에 참석했던 황제와 새 황비의 사진이 휴짓장처럼 구겨졌다.
새 황비의 사진이래봤자, 베일을 뒤집어 쓴 모습이 전부였다.
당시 파티에 참석했던 외부인들도 황비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황비가 굉장히 가녀린 체구를 가졌다는 것과 고동색 머리칼을 가졌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녀를 직접 알현할 수 있는 사람들은 황궁의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황족의 최측근에서 일하는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카우라는 까드득 이를 갈며 갈기갈기 찢은 신문을 벽난로에 던져버렸다.
그의 아버지인 로렌스 카이샤하스는 올해로 95세가 되었지만 이름 있다는 귀족의 여식들은 여전히 그의 옆자리를 탐냈다.
제국의 귀족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로부터 황족과 작위를 받은 고위 귀족들은 황실에서 내려주는 불로불사약을 취하면서 한 가주가 젊은 몸으로 백년 가량 영주권을 행사했다.
당장 그의 아버지만 보아도, 나이가 많아 봐야 삼십대 정도로 보였다.
하여 나이든 가주가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찍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해 빨리 결혼했다가 나중에 아들보다 어린 아내를 첩으로 들이게 되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카우라의 아버지가 데려온 여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린이었다.
'왜 하필.'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어릴 적 그가 사랑했던 소녀는, 그의 양어머니가 되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