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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8년 전 입사했던 제약회사가 불법실험 때문에 무너진 이후 신창준은 그저 그런 어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앞에 나타난 한 남학생이 9년 전 보았던 아이란 걸 안 창준은 그에게 도와달라는 제안을 듣는다. 8년전 무너진 회사 때문에 그의 직장동료였던 수진은 자살했다. 처음 봤을 때 열 살이었던 아이는 이제 열아홉이 되어 복수를 하겠다고 창준 앞에서 선언한 것이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창준의 일상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28. 네카 그리고 수능(2)
작성일 : 18-12-09 21:59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3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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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목이 라디오를 틀었다가 수능이 하루 남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내일이 디데이입니다.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아나운서의 단정한 목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넘기려다가 내 주위에 수능을 볼만한 사람이 한명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수험생이란 사실을 제대로 인지한 적이 없었다. D-100 이라는 두꺼운 스케쥴러를 들고 다닌 것도 아니었고, 어딘가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수험생 특유의 불안과 벗어나고 싶다는 압박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선생이 아니니 그런 화제를 나눈 적이 없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얘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면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내일이 수능 날이라는 사실. 그건 대한민국 열아홉 살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삶의 커다란 돗대 중 하나라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아무리 부잣집에 머리도 좋고 대학을 가든 유학을 가든 앞길이 창창한 녀석이라도 수능이 받아쓰기 수준의 무게를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늦은 저녁 여덟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 씨 수능이라고 왜 말 안 해."

 나는 도로를 달리다 거칠게 좌회전했다. 발밑에서 바퀴가 아스팔트를 비집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만 꿈뻑꿈뻑 쳐다보았다. 얼핏 내 등 너머로 뭔가를 찾는 기색을 내보였다. 유난히 소리가 큰 비닐봉투를 다시 한 번 들이밀자 일단 받아들기는 한다. 안을 슬쩍 보더니,

 "...이거 뭐야?"

 "엿."

 엿이긴 한데, 엿이라고 말하니까 이상했다. 그냥 초콜릿 같은걸 살걸 그랬나보다. 내 말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 단어가 단지 단어로만 불릴 때 나오는 분위기를 감지한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아 이런 상황을 '엿'같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흠흠..욕 아니다."

 "언제 알았어?"

 "오늘. 왜 말 안했어. 더군다나 내일이라니.."

 "알아서 챙겨주려나~"

 "..."

 "했지."

 굳는 내 얼굴을 보면서 그는 말꼬리를 올리다 말았다. 여유롭게 반호를 그리다 무표정으로 둔갑하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매번 약올랐다. 이 녀석은 그 사이 날 놀려먹을 생각도 하는데.

 이치호와 말할 때, 굳이 부연설명을 할 필요 없는 그의 상황파악력-이렇게 정의해도 될런지 모르겠다-덕분에 대화는 단조로웠다. 여기 오면서 어느 정도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했건만 그는 엿을 들고 오는 것만으로도 내가 지금까지 자신의 수능일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이제서야 알고 뭔가를 준비해왔구나 알아차리는 것이다.

 독서실 앞에서 편한 옷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나온 그는 엄연한 수험생이었다. 그 앳된 얼굴과 무장한 옷차림-나름 수험생다운-보고 있자니 정말 고3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 만전이냐?"

 "내일 시험? 음..그런가?"

 "야, 오늘 밤새면 안 된다."

 "하핫. 뭐야, 완전 아저씨같네. 난 벼락치기 안 해."

 "난 밤새다 망했거든."

 내 말에 유달리 키득거린다. 시험 전에는 공부만 아니면 다 재미있다고 하더니...얘도 이러나.

 들락날락하는 학생들 때문에 독서실 앞에 서있는 것도 애매해져 나와 그는 1분 거리에 있는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새 후드를 눌러쓴 이치호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까맣다'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그런 그의 말을 듣고서야 하늘을 봤는데, 실로 까만 밤하늘이었다. 실눈을 떠보니 반짝이는 게 하나 보였지만 유심히 보니 별은 아니었다. 낭만도 없이 그냥 까만 도화지처럼 생긴 하늘이었다.

 수능 선물을 산다고 말했을 때 빵집 알바생은 이 아저씨가 조카한테 주는 선물을 고르는가, 자식한테 주는 선물을 고르는가 제 나름대로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아마 적당한 가격대를 고르기 위한 세심한 배려와 영업스킬의 일환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 예리한 눈썰미가 탐탁지 않았다. 이봐 학생 내 딸은 겨우 다섯 살이라고. 생각만 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입 밖으로 내뱉기 직전까지 갔다가 입을 다물었다. 뻔뻔해지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가, 나이를 먹기 때문에 뻔뻔해지나. 아직은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노력했다. 그 노력해야 될 목록이 갈수록 늘어나는 걸 보면, 그 길로 가고 있기는 한가보다.

 마찬가지로 수능을 앞둔 이치호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싸가지 없고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긴 해도 나름 파트너로 대우해주던 때와 달리 오늘의 그는 수험생이었고, 나는 수능조차 까마득한 삼십대 후반이었다. 그 외 다른 구구절절한 이유를 붙일 필요도 없이 간극의 차이가 역력했다.

 나와 이치호는 나란히 공원에 앉아 엿을 나눠먹었다. 호박엿은 딱딱했다. 예전에 가끔 가위를 철컹철컹-여기에는 분명히 서걱서걱이 아니라 철컹철컹이 어울린다-거리며 바로바로 잘라주는 가판 호박엿은 말랑말랑했는데. 어색할 법도 했지만 그냥 조용했다. 나도, 그도 그냥 그렇게 거기에 있었다. 어른으로써 무슨 말을 해줄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괜한 오지랖이다 생각했다. 내게 있었던 시절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열아홉의 나는 분명 그와 전혀 다르다. 전혀 다른 인간이 몇 년 더 살았다고 모든 열아홉 살을 다 아는 듯이 말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먹을 때마다 그는 엿이 너무 달다고 궁시렁거렸지만 결국 다 먹었다. 약속한 듯이 빈 봉투만 남자 우리는 일어섰다.

 "요즘 공부하느라 정신없었어?"

 그가 내 말에 잠시 뜸을 들였다.

 "음..좀 바빴어."

 나는 그 말에 한 주 앞으로 다가온 11호점 오픈 일을 떠올렸다. DM클럽 11호점은 유일하게 1호점보다 큰 규모였다. 회사 내부의 사람들은 모두가 이 큰 이벤트에 주목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11호점이 성공적이 되면 해외진출까지 생각해봄직 하다고 했다. 큰 기업이 되고자 하는 포부는 좋았으나 나는 내 문제든 회사의 문제든 내가 언제까지 최훈 밑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도 DM클럽 11호점 오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들어오는 정보는 되는대로 그에게 넘겨주고 있었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하지만 치호는 매번 실망한 기색도 없이 알 수 없는 얼굴로 적당한 긍정만 내비쳤다. 도명제약에서 있던 일을 그에게 얘기한 이전이나 이후나 나를 향한 그의 태도는 일관되었다.

 얼마 전 내가 알게 된 정보를 그에게 넘겨야할까?

 고민중이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딱딱한 엿이 입천장 한쪽에 달라붙었다. 불편했다. 대체 무엇이 나를 막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난 아직도 이치호, 날다람쥐1호를 믿고 있지 않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몰랐다. 막말로 내가 그를 배신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최훈이 내게 그랬듯이. 도명제약이 내게 그러했듯이. 그들은 아니라고 해도 내가 그렇게 느꼈듯이. 혀를 굴려 엿을 떼어냈다. 쩌억. 내 몸의 일부도 아닌 것이 마치 일부였던 것처럼 미련하게 떨어져나갔다.

 셋은 친했냐는 생뚱맞은 물음에 난 우리는 팀이었다, 고 대답했다. 말하고 나서 셋을 어떠한 울타리 안에 묶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끝이 좋지 못했는데도 굳이 그런 말이 내 안에서 튀어나갔다는 건 스스로도 이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의중만은 여지껏 파악을 못했다. 그런데도 대놓고 물어보지도 못한건 왜인지.

 "그러냐."

 하늘은 여전히 까맸다. 바람이 불자 쌀쌀한 기운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손등에 걸린 엿상자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찌되었든, 무슨 일이 있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오늘 치호에게 해줄 말은 하나였다.

 "수능 잘봐라."

 그가 피식 웃더니 한마디 했다.

 "누구 덕분에 딱 붙겠네. 이미 입천장에 다 붙었어."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시늉을 하는 그를 보고 이번엔 내가 웃었다. 나와 그는 손 한번 흔들고 각자의 길을 갔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밤거리는 어딘지 반짝반짝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나는 남아있던 엿 하나를 이번엔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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