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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8년 전 입사했던 제약회사가 불법실험 때문에 무너진 이후 신창준은 그저 그런 어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앞에 나타난 한 남학생이 9년 전 보았던 아이란 걸 안 창준은 그에게 도와달라는 제안을 듣는다. 8년전 무너진 회사 때문에 그의 직장동료였던 수진은 자살했다. 처음 봤을 때 열 살이었던 아이는 이제 열아홉이 되어 복수를 하겠다고 창준 앞에서 선언한 것이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창준의 일상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25. 준비
작성일 : 18-12-09 21:54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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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훈은 담배를 폈다.

 이전의 그라면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알던 괴짜 뿔테는 정신을 흐리는 뭔가-담배. 술. 기타 등등-를 극도로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담배가 정신을 흐리게 하나요? 당시의 내가 담배를 피면서 물었을 때, 최훈은 나한테서 멀찍이 떨어져 손으로 입까지 막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너도 그거 끊어야 정신이 말짱해.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나는 담배를 끊었다. 물론 최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내게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첫째로 나는 이제 담배가 싫었고 둘째로 나는 최훈과 담배 한대씩 나누며 친밀해지는 듯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기회를 노렸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내 눈치를 봤다는 건 아니었다. 최훈은 일종의 시기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나 또한 그에 대해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싫어도 절로 알아졌다. 최훈과 같은 건물 내에서 서로의 일을 하는 이 모습은, 막상 마주하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예전 같았다. 그건 우습게도 추억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고 이름만큼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뭔가가 있었다. 내가 느꼈다면 최훈도 느꼈을 것이었다.

 수진을 생각하는 데에 이 남자가 제외된 그림이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우리는 항상 셋이었고 굳이 둘로 나누자면 그건 나만 빠진 두 사람이었다.

 

 최훈과 내가 친한 사이였을까. 나는 이 난제에 대해 꽤 진중한 고민을 거듭했다. 싫어도 최훈이 눈앞에서 왔다갔다거리니 어쩔 수 없었다. 치호와 나 사이에 항상 수진이 있었던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나와 최훈의 관계에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 없는 세상에 나와 최훈이 마주보고 서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DM 11호점 오픈일이 다가오면서 야근이 제법 많아졌다. 한참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썰렁한 기운에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단, 최훈을 제외하고.

 그와 단둘이 남아있는, 그걸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곗바늘이 점토에 빠진 듯 나아가질 않았다. 매번 이 상황을 만들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번번이 때를 놓쳤다.

 그래서 그가 나한테 술을 마시자고 한 것. 단 둘이 어색하게 고기와 소주를 시키고선 나오자마자 물마시듯 벌컥벌컥 마신 것. 순식간에 취해버린 최훈이 과거이야기를 꺼낸 것까지 내겐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술 취한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최훈은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따금 생각에 골몰하듯 고개를 숙이거나 술집 형광등을 노려보곤 했으나 대부분 나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꼬부랑거리는 최훈의 말은 그가 예전에 말했던 '말짱한 정신'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치호의 글처럼 최훈의 말에도 내가 모르던, 혹은 보지 못했던 뭔가가 담겨있었다. 그들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 내가 보거나 듣지 않으면 평생 모를, 사실 그래도 별로 상관없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였다.

 최훈이 대니스최가 된 이유는 한 남자가 연관되어 있었다.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서른여섯이었고 남자는 스물여덣이었다.

 묘한 분위기의 남자라고 최훈은 생각했다. 편한 옷차림과 달리 남자에게서는 질서가 느껴졌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고 예의바르다고 세간에서 표현하는 종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어색함을 느꼈다.

 "메뉴얼 같은 걸 정해놓고 행동하는 편이예요. 하지만 이제 그것도 질렸어."

 좀 알게 된 후 남자가 내뱉는 말에 최훈은 그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남자는 꼭 '질려서' 그만두게 되는 일에만 입을 열어 설명하곤 했다.

 네르비카풋(NerviCaput)을 알게된 게 최훈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발견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최훈은 질서에 무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물질이 가지고 있는 불규칙한 형상에, 질서가 아닌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 이거라면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세상을 바꾸는 데엔 이정도 발견 아닌 발견이 필요한 법.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그는 누구나 생각할법한 간단한 방법을 고수했다. 프로젝트계획서를 작성했고, 그 시안을 상부에 보고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결재서류는 김도명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이에 따른 최훈의 판단도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대표인 김도명을 직접만나 담판 짓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남자가 그보다 빨랐다.

 "흥미로운 제안이 있더라구요. 이거 최훈과장, 당신이 쓴건가요?"

 그게 시작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김도욱이라고 했다.

 유학을 권한 건 김도욱이었다.

 "이번 참에 이름도 바꿔보죠. 뭐가 좋을까.. 대니스. 대니스 어때? 대니스 최."

 그래놓고 김도욱은 최훈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사태를 수습할 때처럼 빠른 행동거지였다. 안 그래도 상황의 회전율이 너무 빨라 따라가기 힘든 참이었다. 그가 이유를 물었을 때 김도욱은 '질렸다'고 말했다.

 그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수초가 걸렸다. 뭐가 질렸다는 걸까, 라고 최훈은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에 질렸다는 건지 나름 숙고해보기도 했다. 이윽고 힘든 상황이 지속돼서 지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단순하게, 말 그대로 해석하는 부분까지 나아갔을 때 알아챈 것이다.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고.

 

 최훈이 대니스최가 된 뒤로는 항상 그와 함께했다고 했다. 그리고 후회로 점칠 된 자신의 인생을 한탄했다. "많이 취하셨어요" 내 말에 그는 눈을 부릅떴다. "자네 도움이 필요해. 아직 네카는.." 그렇게 말하다 눈이 완전히 풀리더니 잠이 들었다. 나는 그를 과하게 흔들며 대체 뭔 말을 하다 마냐고 다그쳤지만 술이 떡이 된 최훈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어깨에 이고, 결국 알아내지 못해 집으로 들였다. 최훈을 거실 바닥에 내던져놓고 허기진 목을 달랬다.

 최훈이 네르비카풋을 네카라고 호칭했다. 내 기억속에 그는 항시 풀네임을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네카도 제록부도 나와 수진만 쓰던 명칭이었다. 나는 쥐죽은듯 미동도 않은채 잠들어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최훈이 숙취로 쩍쩍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내일 아침 일어나면 물어볼 말이 있었다.

 

 며칠 뒤 이치호를 만났다. 어느덧 우리가 만나는 장소는 대머리 주인장의 카페 아르테미스가 되었다. 일종의 아지트랄까. 나와 치호가 갈 때마다 그는 우유거품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주인장의 드립커피는 언제나 일품이었다. 나와 치호의 취향은 이곳 카페에선 일치했다.

 최훈은 술을 마시고 주저리주저리 떠든 일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다시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싶기도 했지만 어쩐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네카와 김도욱. 엔씨(N.C)는 전량 폐기되었고 이제는 의학계에서도 쓰이지 않는 용어였다. 김도욱은 도명제약 대표이자 현 DM클럽의 대표인 김도명의 큰아들이었다. 나보다도 어린 그는 DM클럽의 실세나 다름없었다. 김도명 회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고, 앞으로 이 바닥에서 잘나가야 하려면 김도욱한테 붙는 게 현명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최훈의 말을 치호에게 전하면서 나는 그가 내 이전 상사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니스최라는 이름은 어지간히도 내 입에 붙지 않았다. 닭살이 오도독 돋는다는 말이 딱 맞았다. 말하면서도 혹시나 치호가 이미 다 알고 있는건 아닐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치호는 최훈을 알았다. 그러나 대니스최가 최훈이라는건 알지 못했다.

 "네카가 뭐야?"

 "아. 네카라는건 내가 쓰던 말이고.. 엔씨라고 해. 네르비카풋의 약칭이야. 이전에 도명제약 실험사건이라고 하면,"

 치호는 그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도진요에도 가입해있었는걸. 날다람쥐1호와 이치호. 날다람쥐2호라는 그 영감님은 치호에게 날 만난 사실을 말했을까?

 날다람쥐2호는 치호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의지로 움직인다고. 약속이란 뭘까? 정체를 숨기고자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치호를 언급한건 아니지만 충분히 짐작할만 했다. 도리어 그렇게 생각하게끔 유도한 느낌조차 들었다. 적어도 날다람쥐2호는 내가 치호를 해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랑이 부족한 가정. 타인에게서 받는 애정. 그게 뿌리내려 눈 앞의 소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어딘가 차가운 시선이 선재했다. 현상만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결과랄까. 나는 그를 알고 또 그녀를 알았다. 그 입장에 선 나만이 알아줄 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

 드립커피를 홀짝이며 치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페 안은 적당히 따뜻했고 그 덕에 창문 테두리에 미미한 김이 서려있었다. 그가 약간 고개를 숙이자 그새 길어진 앞머리가 그의 이마에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커피에선 아직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잔을 그러쥐었다. 따뜻했지만 뒷목이 굳어가고 있었다. 창 밖 어딘가를 보는 치호의 시선은 생각에 잠긴듯 하여 못내 조마조마했다. 네카를 언급한 이상 날카로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뭔가를 물어본다면 핵심을 찌를 것이고, 제대로 된 대답이든 아니든 그 또한 그에게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도명제약은 어떤 곳이었어?"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 끝이 유달리 뜨겁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뜨거운 커피잔을 세게 그러쥔 모양이었다.

 그 말은 나를 정확히 눌렀다. 그곳이 어떤 곳이었냐고? 그 기억은 수진을 떠올리는 것보다 최훈을 떠올리는 것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도명제약이 건재하고 수진과 최훈이 있던 그곳엔 한참 밝은 미래를 꿈꾸는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닌 내가 있던 곳이라서였다. 하지만 치호의 질문은 나를 속절없이 잡아당겼다. 그의 꼿꼿한 눈빛은 진중했다. 된 반죽에 빠진 것처럼 온 몸에 끈덕지게 달라붙는 과거로 잠식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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