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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2. 춘우(春雨)(5)
작성일 : 18-12-09 14:47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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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제비다방에서 신여성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예술에 관해 논하던 정인철은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 귀가를 했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도 반겨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이렇게 다방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다반사였다.

 

 그나마 오늘은 주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기사와 연관이 있었고, 게다가 신여성이라 불리는 그녀들의 반응이 달갑지 않아 술을 연거푸 마셨더니 다른 때보다 금세 취해서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주제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동백아가씨>라는 국극이었다. 그러나 인철은 그 국극이 탐탁지 않았다.

 

 동천이라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단체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남자 배역까지 여자가 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이 심각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동성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고 이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기는 관중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극중 캐릭터의 모습을 한 배우들이 실제 연인인 것처럼 도심을 활보하고 다녔고, 팬들은 이를 질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몇 달 전에는 극중 남자 배역을 맡은 배우 때문에 자살소동까지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동성 여부를 떠나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인력으로 할 수 없다고 가정해도 이를 부추기는 극단과 배우들의 행태는 도저히 눈 뜨고 봐주기가 어려웠다.

 

 꽤 많은 술을 퍼마신 인철이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집 앞 전신주 앞에 웬 여자 하나가 서있었다. 제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유심히 쳐다보는데, 그녀의 모습이 마치 제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인철이 그녀의 모습을 다시 눈에 담을 때였다. 누군가 그녀를 향한 시선을 가로 막으며 인철의 앞에 섰다.

 

 “기자양반.”

 

 인철이 저를 지칭하는 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덩치가 큰 사내와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사내 둘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정인철이요?”

 

 “누구십니까?”

 

 “알 거 없고, 내 한마디만 하겠소. 기자양반, 펜대는 함부로 놀리는 게 아니요.”

 

 인철은 짧은 대화만으로도 저를 찾아온 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이런 식으로 찾아와 겁박을 주는 걸 보니 역시 내 기사가 잘못되진 않았나 봅니다.”

 

 “겁박으로 느껴지는 걸 보니 우리가 잘못 온건 아닌 것 같군.”

 

 인상을 잔뜩 쓴 사내의 말에 인철의 입가에서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원래가 구린 구석이 있는 쪽이 겁박이라는 걸 하죠.”

 

 “뭐? 구려? 이 자식이…….”

 

 어깨 중 덩치가 큰 사내가 자신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인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인철은 그의 주먹에 맞았음에도 여전히 피식피식 웃어댔다.

 

 이 모습이 덩치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고, 갑작스런 주먹질에 인상만 쓰고 있던 사내가 덩치를 만류했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하면서 하는 짓은 시정잡배가 하는 짓과 별 반 다르지 않네.”

 

 “뭐? 시정잡배?”

 

 혼잣말처럼 실실 쪼개며 내뱉는 인철의 말이 다시 덩치를 자극했고, 덩치는 저를 잡고 있던 동료의 팔을 뿌리치고는 인철을 무자비하게 발로 밟기 시작했다. 인상을 쓰던 어깨도 덩치의 힘을 만류하기 힘들었다.

 

 인철은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커다란 고통이 찾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발로 밟히고 있는 순간에도 여자가 서있던 전신주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내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인은 맞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는지 손으로 입을 막고 서있었다. 인철은 여전히 그녀가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를 향해 뛰어오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극심해지는 고통에 여인의 모습이 자꾸만 흐려지고 있었다.

 

 여기로 오면 안 되는데…….

 

 인철은 누군지도 모르면서, 지금 제게 다가오는 그녀가 걱정 되었다. 이 자들에게 그녀가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으로 오는 그녀를 만류하기 위해 몸을 가누기 위해 버둥거려 보지만 얼마가지 않아 이내 몸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제 코앞까지 온 그녀가 제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에 그녀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누구인지 보고 싶었지만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몇 시간을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춘희의 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발가락은 감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에 다시 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비틀거리며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인철의 모습이 보였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일본으로 떠나기 전 제게 인사를 하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인철의 모습에 춘희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춘희가 인철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던 순간을 생각할 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춘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손에서는 땀까지 배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와의 사이에 커다란 덩치들이 끼어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낯이 익었다. 동천의 사업부 어깨들이었다.

 

 왜 저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사업부 어깨들의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였다. 어제 공연직전 백단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성일보 그 칼럼리스트만 잠깐 손 좀 볼까?’

 

 춘희는 저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를 막고자 입에 손을 가져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봐둘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설마 그 칼럼리스트가 정인철일 줄은 몰랐다.

 

 춘희가 놀라서 멍하니 떨고 있을 때, 어깨들이 인철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를 멀리서만 다시 보려고 했던 마음 따위는 잊고 그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춘희가 달려가 보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그러나 사업부 어깨들도 갑자기 나타난 춘희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듯 했다.

 

 ‘…도련님…….’

 

 머리가 깨진 정인철이 의식을 차리며 눈을 떴다. 인철은 주변을 살핀 후에야 자신의 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인철은 의식을 잃기 전, 저를 부르는 흐릿한 목소리를 들었다. 들릴 일 없는 목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 목소리가 마치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에 들은 목소리라 정확하지 않았기에, 인철은 골목 끝에서 마주쳤던 여인이 누군가를 생각나게 해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철이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손을 머리에 가져가니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누가 자신을 옮겼을지 궁금해 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인철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마루로 나갔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구일까?

 

 순간적으로 어제 전신주 앞에 서 있던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철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인철은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에 기대를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흠흠……. 누구세요?”

 

 그러나 마음과 달리 잔득 기대를 품은 음성이 버썩 마른 목구멍을 타고 튀어나왔다. 여자는 인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어깨가 잠시 들썩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놓쳤다. 큰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서책이었다.

 

 여자는 침착하게 서책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천천히 돌아섰다. 인철은 돌아선 여자의 모습에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어느새 온전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춘희였다.

 

 정인철과 눈이 마주친 춘희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8년만의 재회인데 이 남자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춘희야! 네가 어떻게 여기…….”

 

 춘희는 제 이름을 부르는 인철의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 남자 아직도 나를 잊지 않았구나.

 

 “…도…도련님…….”

 

 인철이 춘희에게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춘희는 너무도 그리웠던 인철의 따뜻한 품에 그저 눈물만 나왔다.

 

 춘희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지만 그를 쫓는 눈을 눈물이 가로 막는 바람에 그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춘희는 인철을 가까이에서 이렇게 느끼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가 보고 싶었다.

 

 인철이 저를 품어주는 것처럼 그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지은 죄가 커서 그의 옷 끝자락만 겨우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를 보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아픈 그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는 핑계로 결국엔 이렇게 그와 마주하고 말았다.

 

 이제는 그와 만나면 안 되는 이유가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가 보태어졌는데, 이제는 그를 만나야하는 이유보다 그를 만나면 안 되는 이유가 더 많아져버렸는데 춘희는 인철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춘우’로 살아가던 춘희는 그의 앞에서 ‘춘우’라는 이름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 찾은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작가의 말
 

 세상에는 쉬운 사랑이란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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