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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왕비님의 알바일지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2.7

만년 배우 지망생 희우는 오늘도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낙담한다. 그러던 와중 왕비역을 구한다는 알바 공고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는데, 뭐? 진짜 마왕이 왕비를 구하는 거였다고? 1년의 계약기간동안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왕비님의 흔한 알바일지

 
#2-1억을 받았습니다. 근무 시작합니다.
작성일 : 18-12-08 10:09     조회 : 220     추천 : 0     분량 : 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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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천고가 높고 고딕 양식으로 꾸며진 방은 웅장하고도 화려하다. 실크 캐노피가 드리워진 침대와 우아한 다리를 가진 콘솔, 방 가운데 놓인 앤틱한 티 테이블과 쇼파는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것 같았고, 바닥에 깔린 카펫은 함부로 밟았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 처럼 고급스러워 보인다. 가본적은 없지만 유럽의 고성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희우는 고급스럽게 꾸며진 화장대 앞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

 "이게 다 뭐야...?"

 ​

 정신차려, 채희우. 희우는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몽롱한 기분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쓴다. 살짝 두통이 느껴져 관자놀이를 짚는 그녀의 손가락이 혼란스럽다. 희우가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

 "뭐가 어떻게 된 거지...?"

 ​

 그녀는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천천히 복기해보려 애쓴다. 자,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자신은 알바를 찾다가 왕비 역할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면접을 봤고, 혹시나 해서 계좌번호를 보내줬더니 1분도 안 되어서 통장에 1억이 꽂히더니, 2시간 뒤에는 진짜 그 미친놈, 아니, 디노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이렇게 으리으리한 모습으로 어마어마한 방에 앉아있다. 희우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

 "뭐지? 중간이 생각이 안 나..."

 ​

 디노가 집 앞까지 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뒤에 어떻게 자신이 여기까지 왔는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마치 기억의 한 부분이 쏙 빠져버린 듯한 허무한 기분. 그러나 그 때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문가에 디노가 서 있다. 그는 아침에 처음 만날때와는 달리 검은 예복차림으로 갈아입고 어깨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희우는 그제서야 자신이 출근당한(?) 것을 실감했다.

 ​

 "준비는 다 됐죠?"

 ​

 희우는 디노를 직접 보면서도 제 눈을 믿을수가 없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

 "괜찮아요? 피곤해보이는데."

 "어... 조금요..."

 "이런. 그래도 기운을 내 줬으면 좋겠군요. 곧 아주 중요한 자리가 있으니까."

 "중요한 자리요?"

 "당신을 왕비로서 처음 소개하는 자리죠."

 ​

 하, 이거 실화냐. 희우는 여전히 머리가 멍하다. 진짜 하는건가? 그 왕비 역할이라는거?

 ​

 "저, 저기요. 그거 진짜인가요?"

 "뭐가요?"

 "그러니까... 당신이..."

 ​

 마왕이니 뭐니하는 헛소리말이에요, 라고는 차마 못하겠고. 희우가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디노가 숨어버린 질문을 찾아낸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네, 개뻥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진짜에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믿을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 믿기나 보군요."

 ​

 희우는 속내를 그대로 들키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디노는 기분 나쁜 내색도 없이 우아하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

 "가시죠, 왕비님. 이제 시간이 없군요."

 ​

 디노의 에스코트를 받아 희우가 자리에서 일어선 뒤, 그가 리드하는대로 팔짱을 끼고 방을 나섰다. 디노는 방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희우에게 말했다.

 ​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할게요. 앞으로 누구를 만나든 무조건 당당하게 행동해요. 싸가지 없어보여도 좋으니 절대 기죽거나 움츠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당당하게..."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부러 당신을 뽑은거니까."​

 ​

 단호한 그 말을 듣자 희우는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다. 그래, 이미 여기까지 온 거. 뭐가 어떻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미 돈도 받았겠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시종들을 이끌고 복도를 걸어 커다랗고 화려한 흰색 문 앞에 도착하자 그 앞을 지키던 자들이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문지기 중 하나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디노를 보더니 곧 안까지 닿도록 큰 목소리로 외쳤다.

 ​

 "왕자께서 드십니다!"

 ​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길게 깔린 붉은 카펫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중심으로 양쪽에 나뉘어 선 십여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희우는 방금 전 결심과는 달리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릴뻔 했지만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디노가 조용히 희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

 "시선은 앞으로. 저들과 눈 마주치지 말아요."

 ​

 디노의 말에 희우가 턱을 당기고 앞을 쳐다본다. 그래, 당당하게 있으라고 했지. 싸가지 없어보여도 좋다고 했지? 그 정도야 어렵지도 않다. 희우는 자신을 향하는 생경한 눈빛들을 무시하고 거만한 눈빛을 장착한다.

 ​

 "오셨습니까, 저하."

 ​

 다들 웅성거리며 얼이 나간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긴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한 남자가 유일하게 그들을 정중하게 맞이한다. 디노가 익숙하게 남자의 인사를 받았다.

 ​

 "오랜만이군, 아로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뭐지, 저 침착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이글이글거리는 듯한 묘한 눈은? 희우는 만만치 않은 그의 첫인상에 들리지 않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디노는 아로닌을 지나치더니 낮은 계단 위의 단상으로 올라간다. 그 곳에는 어린아이 키만큼 길쭉한 등받이가 인상적인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는데, 화려한 장식과 금박을 입힌 겉면, 그리고 고급스러운 쿠션까지 뭐 하나 호화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디노가 희우를 오른쪽 의자로 안내하며 말한다.

 ​

 "앉아요."

 ​

 그의 말에 따라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자 압도적인 분위기가 더욱 실감나게 와닿는다. 지금 이곳에서 희우와 디노를 바라보는 시선중에서 호의적인 것은 단 한개도 없는 것 같았다. 긴장감에 목이 메였지만 디노의 손이 팔걸이 위에 얹혀진 희우의 손등 위를 감싸자 신기하게도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

 "다들 내 마지막 시험이 어떻게 되는지 많이들 궁금하셨나 보군. 그대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나, 디노리스 마를로 드 엔스카르트는 반려자와 함께 돌아왔소."

 ​

 디노는 어느새 방금 전 희우를 대하던 것과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당당하다 못해 거만하게 느껴졌고,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오만함과 자만심이 가득하다. 이게 연기라면 진짜 메소드 연기가 아닐까. 희우는 순식간에 바뀐 그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쓴다. 어수선하던 실내가 쥐죽은듯 고요해지더니 사람들의 눈에 경악스러움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디노를 보며 물었다.

 ​

 "스릴을 즐기시나 봅니다, 저하. 굉장히 아슬아슬하군요."

 "운명의 상대를 찾는 일이란 쉽지 않아서 말이지요, 노이르 공."

 ​

 둘 다 입으로는 웃고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금방 불꽃이라도 튈 것 같이 일촉즉발의 분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희우까지 두 사람이 앙숙이라는 것을 짐작케 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러나 그 때, 희우가 넋이 반쯤 나가 있을 그 무렵, 그녀는 문득 자신을 향하는 노이르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살기 등등한 눈빛은 잠시 마주친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대단했고 또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디노가 그녀의 앞을 살짝 막아서서 그를 시야에서 가려준다. 왕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자, 그럼.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까지. 그럼 다들 즉위식 때 봅시다."

 ​

 세상에, 나 대체 무슨 일에 엮여버린걸까.

 희우는 희우는 얼떨결에 디노에게 손목을 잡혀 그대로 끌려나가고 말았다.

 ​​

 ​

 ​

 ​

 ​

 **

 ​

 ​

 ​

 ​

 ​

 의심이 드글드글한 정무실을 나와 처음 도착했던 방으로 돌아온 뒤, 디노는 희우에게 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얼떨떨함 속에서 아까 보았던 화장대 앞에 앉은 희우는 멍하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방금 전 겪은 일이 모두 꿈만 같고 실감이 나지 않아서 아직까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

 "저... 왕비님?"

 ​

 익숙해지려면 한참 걸릴 듯한 호칭에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뜬 갈색 머리의 소녀가 하나 서 있다. 사실 그녀는 한참 전부터 희우 옆에 서 있었지만, 워낙 정신이 없었던 탓에 소녀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

 "네, 네?"

 "이제 그만 침소에 드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

 조심스럽게 휴식을 권하는 소녀의 제안에 희우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는다. 희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장신구를 하나씩 떼어낸다. 다시 보니 소녀는 아까 열심히 자신의 치장을 도와줬던 사람 중 하나인듯 하다. 희우는 슬쩍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

 "저기...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왕비님 시중을 들게 된 로나에요."

 ​

 소녀가 수줍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이는 얼추 십대 후반쯤 되었을까. 꽤 앳되어보이는 인상에 놀란 희우가 로나에게 물었다.

 ​

 "너 몇 살이니? 너도 혹시 알바하는거야?"

 "알바요? 그게 뭔데요?"

 ​

 어리둥절해서 되묻는 표정을 보니 아마 이 곳에 아르바이트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대체 리노는 어떻게 알바로 왕비를 뽑을 생각을 한걸까. 희우는 잠시 딴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

 "아니야, 아무것도..."

 "알바는 모르겠지만 전 170살이에요."

 "그래, 170... 응?"

 ​

 잠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희우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로나를 쳐다봤지만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소녀는 열심히 제 할일에 집중하더니 보람찬 얼굴로 말한다.

 ​

 "그럼 이제 목욕을 하러 가시겠어요?"

 ​

 목욕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권하는 로나의 태도에, 희우는 저도 모르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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