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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King's Road
작가 : Xien
작품등록일 : 2018.11.2

왕도(王道)란 무엇인가? 왕이 될 자는 누가 선택하는 것이고 누가 그 길을 것는 것인가?

강대국 리엔왕국에서 소리없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왕이 되는 자는 누구인가?

 
20화
작성일 : 18-12-07 22:04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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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미 해는 머리 위로 올라 온지 오래였지만 체칠리아와 스케리브는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이미 옷 안은 땀으로 축축해졌고 숨은 거칠어졌으며 말굽이 땅에 닿을 때마다 그 충격이 허리와 엉덩이에 전해지며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주변의 풍경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옆에는 단단히 얼어붙은 호수가 햇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면 설원엔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바람결에 눈들이 흩날렸다. 하지만 지금의 스케리브에게는 이런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앞에서 달리던 체칠리아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던 스케리브도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제야 그들 앞에 한 사람이 두건을 눌러쓰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체칠리아는 그 사람을 보고 속도를 줄인 것 같았다. 곧 그들은 그 사람을 앞질렀고 스케리브는 고삐를 돌렸다.

 

  “저기요! 죄송하지만 가는 방향이 같다면 좀 태워줄 수 있을까요?”

 

  두건을 쓴 사람은 스케리브와 체칠리아가 멈춰서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스케리브는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체칠리아를 슬쩍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케리브는 그것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아! 꼬마야. 혹시 아렌타 시까지 가니?”

 

  두건을 벗자 주황빛 도는 짧은 곱슬머리의 피부가 가무잡잡한 젊은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네. 전 스케리브라고 해요. 저기는 체칠리아구요. 제 일행이에요.”

 

  “난 카렌이라고 해. 정말 고맙구나.”

 

  스케리브가 말에서 내리자 카렌이라는 여자는 두툼한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스케리브가 얼떨결에 카렌의 손을 잡자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했다.

 

  “아렌타 시까지 신세 좀 질게. 아무래도 네가 가벼울 테니 너랑 타야겠지? 사실 여자랑 타는 건 썩 기분 좋지는 않거든. 어머! 그렇다고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어. 내가 설마 널 남자로 보겠니? 호호호.”

 

  카렌이 쾌활하게 웃으며 스케리브를 놀리자 스케리브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귀여운 꼬맹이네. 뭐, 네 일행은 이런 내가 마음에 좀 안 드는 눈치지만. 걱정 말라고. 난 남의 남자는 안건들이거든.”

 

  스케리브는 뒤늦게 카렌의 말뜻을 알아듣고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절대 저랑 체칠리아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네가 그렇게 입에 거품 물고 부정하니까 은근히 기분이 나쁘네? 안녕하세요. 체칠리아라고 합니다.”

 

  어느새 곁에 온 체칠리아가 스케리브를 슬쩍 흘겨보며 카렌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반가워요. 체칠리아. 난 카렌이라고 해요. 남자친구가 참 귀엽네요. 그런 표정 지을 건 없어요. 농담이니까.”

 

  카렌은 호호거리며 체칠리아와 악수를 했고 체칠리아는 그런 그녀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모르는 사람을 돕는 것은 내 성격에 안 맞는 일이지만, 카렌씨를 믿겠어요.”

 

  체칠리아의 말에 카렌의 눈빛이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매우 순간이어서 스케리브는 알아채지 못했다.

 

  “절 꼭 나쁜 사람처럼 말하네요? 뭐, 조심해서 나쁜 건 없죠. 하지만 말이에요. 체칠리아.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매우 다양하답니다. 제가 오늘 당신처럼 어리지만 온몸에 피비린내와 불의 쾌쾌한 냄새를 두르고 다니는 여성을 만났듯이 말이에요.”

 

  카렌이 체칠리아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당신 누구야.”

 

  체칠리아의 말에 카렌은 다시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난 사제에요. 다들 그렇게 안보지만. 스케리브, 어서 말에 타자! 아렌타 시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달려야해!”

 

  영문을 모르는 스케리브는 카렌의 말에 부랴부랴 말에 올라탔다. 체칠리아는 말에 오르는 카렌을 무섭게 쳐다보았지만 이내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스케리브와 체칠리아는 다시 말을 재촉하며 길을 서둘렀다. 스케리브는 남은 길을 가는 동안 카렌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케리브의 뒤에서 쉴 새 없이 쫑알댔다.

 

  “근데 정말 체칠리아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카렌의 장난 섞인 말에 스케리브는 다시 몸서리를 쳤다.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카렌 씨. 전 아직 어린데 지금 일부로 계속 이러시는 거죠?”

 

  “호호호. 들켰니? 하지만 어리다고 사랑도 모를 거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야. 내가 어느 도시에선 13살의 소녀가 사랑의 도피를 떠난 것도 봤단다.”

 

  스케리브는 카렌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겐 이미 그녀가 하는 말은 다 허풍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들 중에서도 굉장히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을 하는 경우를 보긴 했지만 자신도 아직 이성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에이. 그게 말이 되요? 참고로 전 15살이에요. 그리고 이미 카렌 씨는 제게 신뢰를 잃으셨어요.”

 

  카렌은 뭐라고 중얼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그런데 카렌 씨는 사제라고 하셨죠? 얘기 안하셨으면 몰랐을 거에요. 제가 알던 사제님들하고 좀 느낌이 다른 것 같거든요.”

 

  스케리브는 왕궁에 있을 때 사제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왕실의 사제들은 대부분이 조용하고 근엄한 분위기였고, 카렌처럼 농담을 좋아하고 장난기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케리브에게 카렌은 조금 특별하게 보였다.

 

  “그러니? 나도 많이 듣는 말이야. 대부분 사제들은 과묵하고 재미없는 녀석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도 있어. 이런 쾌활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 수도원은 너무 칙칙하고 지루하거든.”

 

  “수도원이 아렌타 시에 있나 봐요?”

 

  카렌은 고개를 저었다.

 

  “도리스 왕국에 있어. 전도를 위해 리엔 왕국에 온 건데, 뭐 형식상은 그렇다는 거지. 도리스 왕국은 너무 촌구석이야.”

 

  “제가 듣기로는 아주 멋진 나라라고 하던데요? 섬이라서 엄청 아름답다고 했어요.”

 

  리엔 왕국은 내륙지역이라 바다를 쉽게 볼 수 없었기에 스케리브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가끔 보는 사람한테나 그렇지. 난 오히려 여기가 바다 짠내가 안 나서 좋은걸.”

 

  “그래도 전 기대돼요. 사실 바다를 본 적이 없거든요. 아무리 카렌 씨가 그렇게 말씀하셔도요.”

 

  카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아렌타 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미 해가 저물어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저~기가 아렌타 시야. 불빛 보이지?”

 

  카렌이 손을 가르킨 곳 앞에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스케리브와 체칠리아가 아렌타 시에 진입하자 카렌은 내려달라고 했다.

 

  “고마웠어. 스케리브.”

 

  “조심히 가세요. 카렌 씨.”

 

  카렌은 체칠리아 쪽을 보며 짧게 인사를 한 뒤 걸음을 옮겼다. 카렌이 가는 모습을 보고 스케리브와 체칠리아도 시내로 가려 할 때 뒤에서 카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체칠리아! 아까 날 의심했던 걸 용서해줄게요! 하지만 나도 당신에게 조그만 선물을 준비했으니 나중에 확인해 봐요! 그럼, 안녕히!”

 

  할 말만 하고 뒤를 돌아 멀어지는 카렌의 뒷모습을 스케리브와 체칠리아는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너한테 뭐 줬어?”

 

  스케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체칠리아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아렌타 시는 꽤 규모가 큰 도시였다. 이미 해가 졌지만 겨울임에도 밖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스케리브와 체칠리아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었으므로 눈에 바로 띄는 여관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말은 저한테 주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날씨가 제법 춥네요!”

 

  말투가 싹싹한 청년이 인사를 건네며 스케리브와 체칠리아가 말에서 짐을 내리자 말들을 끌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둘은 짐을 어깨에 메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얼었던 뺨을 녹이는 훈훈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고 달콤한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제야 스케리브는 자신이 아침을 먹고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어서옵쇼! 식사만 하시나요? 아니, 짐이 많은 걸 보니 숙박까지 같이 하시겠소?”

 

  “며칠 묵을 거예요. 일단 밥부터 먹고 올라갈게요.”

 

  “그러시죠. 방은… 하나만 필요한가요?”

 

  주인장이 스케리브와 체칠리아를 번갈아 쳐다보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스케리브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싼 방으로 2개 주세요. 그리고 저희 그런거 아니에요!”

 

  스케리브를 보며 주인장은 씩 웃었다.

 

  “그럼 1층 구석의 방으로 2개를 드리죠. 일단 저녁식사 값까지 10플란(plan)입니다. 아, 저흰 선불로 받고 있어서요. 이 주변에 하도 투기꾼들이 많아 후불로 계산하다보니 돈을 다 털렸다며 여관비 떼어먹는 족속들이 많아서 그럽죠.”

 

  주인장의 말에 체칠리아는 자신의 가방을 뒤지더니 스케리브를 쳐다보았다.

 

  “아까 네 짐에 돈 가방 넣었지? 그것 좀 줘봐.”

 

  자신의 말에 메어두었던 가방을 뒤지던 스케리브는 눈이 커지더니 심상치 않은 얼굴로 가방의 짐을 다 꺼내더니 가방을 탈탈 털었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돈 가방은 나오지 않았다.

 

  “어라? 어디로 갔지?”

 

  스케리브를 지켜보던 체칠리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돈 간수를 어떻게 한 거야?!”

 

  “아니, 난 분명 여기 가방에 넣고 여기 올 때까지 손도 안 댔어. 정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어디로 가냐고.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설마…. 아까 그 카렌이란 여자가 훔쳐간거 아니야?!”

 

  둘의 이야기를 듣던 주인장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아무래도 도둑 맞은 것 같군요. 여긴 큰 도시이긴 하지만 투기장이 있다 보니 그만큼 질 나쁜 놈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요. 손님 중에 더러 지갑을 털렸다는 분들도 있습디다.”

 

  체칠리아는 한숨을 쉬며 일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은 돈으로 여관비를 지불했다. 스케리브는 그런 체칠리아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돈 관리를 하지 않아서 정확히 도둑맞은 금액이 얼마인지 몰랐으나 아돌프 발로우 영주가 준 대부분의 돈이 그 가방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체칠리아가 전에 언뜻 이야기하기로는 아돌프가 준 돈은 꽤 큰돈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돈을 다 잃어버린 것이었다. 스케리브는 차마 체칠리아에게 어떤 말도 붙이지 못한 채 눈치를 보며 불편하게 앉아있었다. 체칠리아는 원목 테이블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뜯으며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고 그 대부분은 모두 카렌을 향한 저주의 말이었다. 스케리브가 어쩔 줄 몰라 할 때 고맙게도 주인장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왔다.

 

  “자, 음식 나왔습니다~ 아가씨 너무 상심마세요.”

 

  “아아악!! 카렌 이 여자를! 반드시 찾아서 가만두지 않겠어!”

 

  갑자기 체칠리아가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면서 소리를 질러서 스케리브는 화들짝 놀랐다.

 

  “미안…. 체칠리아. 나 때문에….”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던 체칠리아가 스케리브를 째려봤다.

 

  “그래, 이 사고뭉치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도리스 왕국으로 갈 뱃삯이 부족해. 그러니 이번엔 네가 돈을 마련해.”

 

  스케리브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근데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내가 무슨 돈을 벌겠어? 설마…. 나 팔아넘기려는 거야?!”

 

  진지한 스케리브의 표정에 체칠리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미쳤어? 어쨌든 내가 네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으니까 내일 부터는 좀 바쁠 거야.”

 

  체칠리아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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