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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일곱 개의 문
작가 : 꽃잎그늘
작품등록일 : 2018.12.6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소녀.
그 소녀가 마법사가 되어 세상을 구할 일곱 명의 천사들의 봉인을 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3화. 그녀의 면죄부
작성일 : 18-12-07 00:05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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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그녀의 면죄부

 

 사육…….

 사육이 되고 있었다.

 뮨은 잠시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마물들의 포악한 습성과 무질서한 행동으로 미뤄봤을 때, ‘지배’ 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격조 있는 말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행위 밖에 없었다.

 ‘사육’ 은, 그들이 다른 종족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단어였다.

 뮨은 입을 꾹 다문 채 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투명한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결심했고,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

 

 유라의 질문이 끝난 다음에도, 유라는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동안 마을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가슴 속에서 꺼내기 위해 기억을 쥐어뜯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섬주섬 옷 속에 손을 넣더니, 길고 하얀 무언가를 꺼내었다.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락 뼈였다.

 뮨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가 꺼낸 기괴한 물건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죠?”

 “언니의 손가락이에요.”

 “…….”

 

 유라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뺨으로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 맺힌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놈들은 마을 입구에 버티고 섰어요. 빠져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보란 듯이 찢어죽이거나 밟아 죽였죠.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려고요.”

 “네…… 그 다음엔요?”

 “집 안에서 인간들을 쫓아냈죠. 그 다음엔 목에 줄을 채우고, 집 밖의 기둥이나 말뚝에 묶어 놓았어요. 남자, 여자, 어린애나 노인 할 것 없이 전부 다…….”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그녀는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 자신의 비참한 기억을 폭로했다.

 

 “나랑 언니도 벗어날 수 없었어요. 목에 사슬이 묶인 채, 몇 주 동안 음식물 찌꺼기나, 놈들이 먹다 남은 동물의 시체로 삶을 연명했죠.”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놈들의 사슬에 묶여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가축처럼 학대당하며 비참하게 살아왔을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뮨은 침착한 표정으로 유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가 탈출을 결심했던 건, 언니 때문이었어요. 언니가…….”

 

 그 다음의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올라온 울음이 목소리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뮨은 조용히 손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차오른 감정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입안에 맴돌던 울음을 감춘 뒤, 겨우 입을 열었다.

 

 “언니가 나를 달아나게 하려고 사슬을 자르려다가 놈들에게 들켰어요. 그놈들은 그 즉시 언니를 끌고 집 안으로 데려갔죠. 집 안에서 한참 동안 비명 소리가 들린 다음에는, 몸이 오싹할 만큼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유라의 눈빛에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 눈빛은 지금까지 나약했던 그녀의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말투도 마치 나무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건조하고 담담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놈들이 나에게 고기를 줬어요. 갓 잡아서 싱싱하고 품질이 좋다며 던져준 그 고기는, 언니의…….”

 “됐어요. 그만.”

 

 뮨은 날카롭게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그녀가 꺼낸 언니의 손가락뼈는 결국…….

 더 이상은 들을 수도 없었고, 말하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만 해도 그 마을에 저항군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전부 다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샬토르 마을을 지배한 마물이 어떤 놈들인지도 파악이 됐다.

 사육이라는 행위를 할 정도의 지능이 있는 놈들. 그 중에서도 악랄하고 잔인한 성격을 가진 놈들.

 바로 ‘설괴’였다.

 원숭이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놈들은, 온 몸이 하얀 털로 덮여있고, 무릎까지 뻗어있는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다. 주로 빙설 지대에 살면서, 자신보다 약한 종족을 습격한다.

 그리고 그 종족을 길들이기 위해 온갖 잔인하고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다.

 지옥의 군단이 세상을 지배했을 때, 인간들이 가장 많이 피해 다닌 마물이 바로 그놈들이었다.

 그들은 일전에 전투를 벌인 룩타와는 다른 의미로 까다로웠다.

 룩타가 힘이 세고 조직력이 좋은 공격적 집단이라면, 설괴들은 머리가 비상하고 신중한 방어적 집단이었다.

 저항군의 입장에서는 공격적 집단보다는 방어적 집단을 상대하는 일이 더 골치가 아프다.

 은밀히 움직여야 하는 조직의 특성상, 웬만한 전투는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괴들이 가지고 있는 잔악함 역시 부담감이 된다.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저항군의 병사들이 포로로 붙잡힐 경우, 놈들이 가하는 고문이나 학대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때문에 패배에 대한 공포감 역시 극명하게 드러날 터였다.

 

 “음…….”

 

 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옥의 군단에게 맞서 싸우고 인간들을 돕기 위해 조직된 저항군이 그들이 내미는 구원의 외침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샬토르 마을을 도울 수 있을까.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

 더불어 패배에 대한 부담감도 덜 수 있는 방법.

 

 …….

 

 유라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푸르고 커다란 눈망울 속에는 절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설괴들로부터, 잔악하고 교활한 마물들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열망.

 뮨은 이내 옅은 한숨을 뱉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듯 결연한 표정으로 유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돕겠습니다.”

 

 그녀의 한 마디에 유라의 얼굴은 꽃이 피듯 밝아졌다.

 지옥 같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헤매온 여정들이, 별빛처럼 스쳐갔다.

 입 밖으로 환호성 같은 인사가 쏟아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단, 조건이 있어요,”

 “네! 말씀 하세요!”

 

 뮨은 벗어두었던 후드를 다시 뒤집어썼다. 그리고 새까만 눈동자로 유라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단호했다.

 

 “저항군은 저를 포함해 단 50여 명만 데리고 갈 거예요.”

 “네? 그, 그건 너무…….”

 “적다고요?”

 

 뮨은 유라를 향해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해요. 이번 전투를 통해 우리의 규모나 존재가 지옥의 군단에게 뚜렷하게 드러난다면 그건 곤란하잖아요. 설괴 놈들은 간악하니까요. 전투를 은밀하고 신속하게 끝내려면 대규모 병력을 끌고 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대신 전투 인원은 정예 요원들로 선별할 거예요. 두려움이 없고, 날랜 단원들로…… 게다가 내가 마법을 쓸 줄 아니까, 그리 불리하기만 한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놈들의 숫자나 규모에 대해서는…… 알고 계세요?”

 

 유라가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뮨을 바라보았다.

 뮨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샬토르 마을에 들어와 생활을 하고 있다면 마을 사람들의 숫자와 비등하지 않나요? 놈들은 야생에서 생활하지 않고, 개인의 영역은 절대 공유하지 않으니까.”

 “맞아요. 한 무리의 설괴들은 한 가구씩 차지하고 살아요. 하지만, 저희 마을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요.”

 “얼마나 되죠?”

 “200가구에요. 인구로 치면 500여 명.”

 

 즉, 설괴들은 500여 마리 안팎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 대답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숨어 있었다.

 아무리 마법을 쓸 수 있고, 선발된 인원이라지만, 겨우 50여 명으로 500여 마리의 마물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그 숨은 질문에 대한 뮨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샬토르 마을의 사람들은, 싸우는 법을 모르나요?”

 “…….”

 

 유라는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뮨을 바라보았다.

 맞서 싸우라고?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체적 능력이나 성향에 있어서, 인간들은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마을의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는 장면을 사람들은 분명 보았다.

 그렇게 맞서 싸울 수 있었다면, 그녀가 이토록 머나 먼 길을 쫓기며 저항군을 찾아올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뮨은 그녀의 표정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침대를 향해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인간은 마물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하지만 언제나 지는 것도 아니에요.”

 

 침대의 바로 옆까지 다가간 뮨은, 머리맡에 있는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유라가 처음 들어올 때 발견한, 오묘한 빛의 펜던트였다.

 

 “놈들은 당연히 우리가 나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게 놈들의 약점이에요. 단 한 번의 공격. 그 한 번의 공격이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면…… 놈들은 인간들보다 쉽게 무너질 거예요.”

 “…….”

 

 유라는 침묵했다.

 그녀의 생각을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뮨은 펜던트를 목에 걸며 유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20년 전, 지옥의 군단이 인간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지옥의 왕 페르세드가, 신이 보낸 여덟 명의 전령들을 이겼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가 있어요.”

 

 뮨의 목에 걸린 펜던트가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빛은, 마치 흉기처럼 위협적으로 번쩍거렸다.

 유라는 문득 강한 살기를 느끼고 주춤 물러섰다.

 뮨은 슬픈 눈으로 펜던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의 전령들은 사실 페르세드를 소멸시킬 수 있었어요. 그 때 그들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뮨은 입을 꾹 다문 채, 빛을 내뿜는 펜던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아기의 울음을 달래듯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었다.

 펜던트에서 쏟아져 나오던 빛은 이내 희미해지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뮨은 고개를 들어 유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작고 순수한 꼬마아이는, 지옥의 왕 앞에 버티고 서서 신의 전령들을 가로막았죠.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당하고 있는 쪽이 약한 쪽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뮨의 눈빛에 회한이 가득 담겼다.

 이내 그녀는 무겁게 입을 뗐다.

 

 “신의 전령들은 망설였어요. 한 명을 생명을 지킬 것인지, 인류의 평화를 지킬 것인지…… 그 짧은 순간에 승패가 결정되어 버린 거예요. 페르세드는 지옥의 문을 열어 그들을 가두어 버렸고, 세상은 더 이상 그에게 맞서 싸울 수 없었어요.”

 “…….”

 “전투가 그래요, 작은 구멍 하나만 있어도 판세가 뒤바뀌는 거죠.”

 “어떻게…… 그 당시의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죠?”

 

 유라의 질문에, 뮨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을 향해 있는 그녀의 시선에서 무겁고 힘겨운 망설임이 느껴졌다.

 한 움큼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펜던트를 손에 꼭 쥔 채 간신히 입술을 뗐다.

 

 “신의 전령들을 가로막은 그 소녀가, 나였으니까요.”

 “아…….”

 

 유라 입 안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뮨은,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요.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이 지옥 같은 세상은 나 때문에 만들어진 거니까…….”

 

 뮨은 고개를 돌려 유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난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 지옥의 군단과 싸울 거예요. 그게…… 내가 세상을 향해 내밀 수 있는 면죄부니까.”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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