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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용오름-영웅의 기준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18.12.6

슈퍼히어로 '용오름'이자 대학생인 정일은 여러 범죄를 해결하던 중 잠깐의 휴식을 가지며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정일을 갉아먹기 시작하는데...... 대홍수의 슈퍼히어로 시리즈 <증인들>의 첫 번째 이야기!

 
1화
작성일 : 18-12-06 12:53     조회 : 202     추천 : 0     분량 : 17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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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퍼히어로 ‘용오름’이 [2014년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슈퍼히어로]로 뽑히게 되었다. 2000년도 초반에 등장한 한국 최초의 슈퍼히어로라 불리는 ‘블루로즈’가 의문의 사고로 실종된 이후 벌어진 슈퍼히어로들 간의 치열한 인기 전쟁이 새로운 왕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네티즌들은 용오름을 뽑은 이유로 MH그룹을 연상시키는 MH라이트닝이나 불가살이 제과를 연상시키는 불가살이와도 같은 사실상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라 불리는 슈퍼히어로들과는 달리 어떤 방식의 대가도 받지 않고 순수한 정의만을 추구하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14년 여름 용오름의 주 활동지인 대전에서 용오름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는 팬들이 있었지만 용오름을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몰라서 실패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 편 이번 결과에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사성수 그룹은 SNS를 통해 ‘위기가 없는 세상에 나타난 영웅이 찬양받는 세상은 비정상적인 것 같다.’ 라며 과한 슈퍼히어로 찬양에 경계했다. 용오름의 사이드킥이자 대변인으로 불리는 X는 이번 선정에 대해 ‘사성수 그룹의 4명의 슈퍼히어로가 전부 범죄 조작으로 슈퍼빌런으로 수감되기 전에 사성수 그룹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영웅의 등장은 21세기 최고의 사건이다.’ 사성수 전자의 컴퓨터를 사용해 용오름을 서포트하는 사람으로서 사성수가 포기한 영웅에 대한 희망을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라고 답하며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포부를 보여 주었다.>

 -박재혁 기자-

 

 

 

 

 

 

 

 

 오래 전에는 슈퍼히어로의 존재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경찰이 무능하여 잡지 못한 범죄자들을 보고, 법적 허점을 건드려 유유히 처벌을 피해가는 악한들을 보며 슈퍼히어로가 존재한다면 저런 자들을 처벌하고,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분개했다. 그러나 막상 ‘증인’이라 불리는 초능력자가 등장하고 나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망과 미래에 대한 전망 사이에 크나큰 격차가 있음을 발견했다.

 영웅은 능력이 아닌 마음가짐이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킬 수 있는, 더 나아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즐길 수도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당연히 증인의 비율도 그런 자들이 더 많았다. 슈퍼히어로 하나당 슈퍼빌런이 10명 정도 등장했고, 슈퍼히어로가 구하는 사람들 보다 슈퍼빌런이 해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더군다나 영화 속에서는 히어로보다 매력 넘치는 빌런도 많다. 맨 얼굴을 드러내고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에 비해 화려한 가면을 쓰고 입에서 불을 뿜어 사람을 태우는 것은 심리적인 거부감도 훨씬 적게 들었다. 가면만 벗으면 멀쩡한 대학생이던 인물이 어느 날 가면을 쓰고 자신을 ‘피를 태우는 용’이라 부르며 사람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해 죽이는 것이다. 피를 태우는 용이라 자칭하던 범인은 슈퍼히어로 ‘블루로즈’에게 체포당할 때 까지 2005년 10월부터 11월까지 2달간 20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한다.

 또는 ‘동글이’ 라는 과하게 귀여운 닉네임을 갖고 있는 저런 공 같은 것도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관종, 혹은 연극성 인격장애에 빠진 상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석적인 비치볼의 적, 정, 백색 조합을 사용하고 있는 기괴한 옷을 입고 거대한 풍선처럼 몸을 부풀린 채 도로에서 데굴거리며 심각한 교통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어떤 금전적인 이득을 줄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정일과 시아는 동글이의 행동에서 엄청난 금전적인 이득을 발견했다.

 용오름의 가면을 쓰고, 영화관이 있는 빌딩 정상에 걸터앉아 데굴거리는 동글이를 바라보던 정일이 웃음을 참으려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웃기는 생김새와는 달리 차에 치여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진짜 비치볼처럼 퉁기며 도로를 정신없이 누비는 짓은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꽤나 위험한 짓이었다. 정일이 웃음을 참으려 숨이 거칠어지자 정일의 귀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정일의 귀를 잡아당겼다.

 “오빠, 웃는 건 사건이 다 해결 된 다음에 하라고 얼마나 말했죠?”

 “미안.”

 시아의 지적에 정일이 웃음을 멈췄다. 반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시아는 정일을 거의 완전히 길들여놓은 상태였다. 시아가 말했다.

 “우리 예상이 맞는 것 같아요. 동글이가 등장하고 거의 동시에 MH라이트닝이 출동했어요. 다행히 오빠가 마침 영화 본다고 나와 있어서 다행이지. 이제 드디어 꼬리를 잡을 수 있나 볼까요?”

 정일이 몸을 일으키고 스트레칭을 했다. 멀리서도 MH라이트닝이 일으키는 푸른 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동글이는 MH라이트닝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얄미운 웃음소리와 함께 자동차를 향해 뒤뚱거리며 달려갔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때려줘!”

 중형 세단 한 대가 동글이를 들이받지 않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연속 충돌을 막기 위한 급커브가 난무했다. MH라이트닝은 번개를 일으키며 달리지만 광속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 아마 MH전자에서 협찬해 준 오토바이를 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MH라이트닝의 운전실력 문제인지 오토바이의 문제인지 MH바이크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정일은 조바심이 났다. 시아의 계획대로면 정일은 MH라이트닝이 모습을 드러낼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교통 상황이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MH라이트닝이 도착하기 전에 사상자가 발생할 것만 같았다.

 시아 역시 정일과 비슷한 생각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빠졌다. 비록 현장에 나와 있는 정일과는 달리 자신의 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아였지만 정일보다 더 다양한 각도에서 현장을 보고 계산할 수 있었다. 잠깐의 고민 후 시아가 말했다.

 “사람부터 구합시다!”

 “그래서 네가 너무 좋아!”

 정일이 시아에게 사랑을 외치고 빌딩에서 뛰어내렸다. 12층의 꽤나 높은 건물이었지만 자살하고는 무관했다. 정일이 땅을 향해 팔을 뻗자 정일의 몸이 5층 정도의 높이에서 갑자기 정지했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 뒤에는 3층, 1층에서 한 번 더 브레이크가 걸린 정일은 아무 피해 없이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급커브를 밟던 자동차가 정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일이 차를 향해 손을 뻗자 자동차가 정일을 들이받기 직전에 정지했다. 차머리가 조금 구부러졌지만 정일이 아니었다면 1층의 카페를 들이받았을 것을 알았는지 운전수는 정일에게 감사의 표시로 환호를 보냈다.

 “용오름! 용오름이다!”

 사람들의 환성에 동글이가 정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순간 정일은 자제력을 잃고 바닥에 쓰러질 뻔 했다. 동글이의 가면은 마치 팬티와 수영복을 찢은 뒤 바느질해 다시 기워서 만든 것 같은 망측한 형태였다. 하지만 동글이는 자신의 가면이 꽤나 진지하게 느껴진 것인지 무게를 잔뜩 잡고 말했다.

 “용오름? 겨우 너 혼자서 날 잡으러 온 거냐? 날 상대하려면 적어도 MH라이트닝 정도는 되어야…….”

 “아 미안.”

 정일이 더 참지 못하고 바닥을 짚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입고 방송국에 들어가면 예능인으로 바로 취직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은 안 해봤니? 요즘 예능인이 얼마나 대센데. 그 가면은 대체 누구 팬티로 만든 거야? 착용감이 그렇게 좋아?”

 정일의 조롱에 동글이의 얼굴이 부풀었다. 아마 나름대로의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 같지만 얼굴 역시 몸처럼 과장되게 부풀어 오르자 눈사람을 연상시켰다.

 “야, 시아야. 저런 걸 보고 있었으면 미리 웃지 말라고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냐.”

 정일이 숨을 가라앉혔다. 정일이 말했다.

 “동글아, 사람 적은 곳으로 갈까?”

 슈퍼히어로가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것은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 적은 곳으로 가자는 것은 정일의 말버릇에 가까운 정도. 큰 기대를 품고 하는 제안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머리끝까지 화가 난 동글이는 몸을 굴려 정일에게 달려들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 굴러다니는 모습이 꽤나 빠르고 변칙적이라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가까이서 실체를 마주하고 나자 치명적인 결점이 드러났다.

 동글이의 머리가 함께 부풀어 오르는 바람에 동글이의 구르기는 반 바퀴를 체 돌지 못하고 급정거를 하고 말았다. 또 다시 숨이 거칠어지려는 것을 억누른 정일이 동글이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는 있기는 한데 어차피 안 할 거 아니깐 알아서 하시고, 당신이 한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난 법조인이 아니니 나한테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하고, 변호인은 선임 되고 질문을 대신 발언하게 할 수도 있고, 돈이 없으면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주겠지만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널 체포할 사람이 도와 줄 테니 나중에 그 사람에게 따로 물어 보도록.”

 정일의 귓가에 시아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미국과 한국의 미란다 원칙이 다르다고 열 번도 넘게 말했지만 정일은 어차피 경찰도 아니고, 내가 말 해봐야 효력이 있지도 않은데 멋져 보이는 대사를 인용하는 게 뭐 어떠냐는 식이었다. 시아는 한 가지만 빼고 정일의 의견에 동의했다. 정일의 말은 전혀 멋있지 않았다. 정일이 손등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강아지를 부르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동글이의 몸이 허공에 솟아올랐다. 정일이 가볍게 손을 튕기자 동글이의 몸이 옆으로 튕겨졌다. 동글이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 가로등에 옷 뒤춤이 걸려 허공에 매달렸다. 정일이 손을 털며 만족했다. 그리고 그 뒤에야 MH라이트닝이 도착했다.

 MH라이트닝은 겉모습만으로는 용오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히어로처럼 보였다. 동글이의 가면을 보고 비웃기는 했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이 만든 가면은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았고, 간혹 벌어지는 원치 않는 파손이 벌어질 때 마다 다시 기우는 작업으로 중고라는 느낌이 강했다. 심지어 옷은 그냥 청바지에 흰 긴팔 티셔츠가 전부였으니 말이 필요 없었다. 심지어는 전문 코스튬 플레이어가 만든 용오름 코스튬이 진짜보다 더 멋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반면 MH라이트닝은 돈은 많지만 부모는 없는 어느 만화책의 거부가 창조해낸 것 같이 세련되었다. 가슴에서 시작돼 박력 있게 퍼지는 전기는 테슬라 코일을 연상시켰고, 거친 그림과 달리 실제로는 매끄러운 몸체는 웬만한 주먹질은 느끼지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방탄 효과도 있고, 푸른 가면 위에 붙은 번개모양 더듬이는 한때 머리핀으로 유행할 정도로 귀여운 매력이 있었다.

 MH라이트닝이 가로등에 매달린 동글이를 보고 정일에게 시선을 향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MH라이트닝의 표정은 꽤나 불쾌해 보였다. 정일은 MH라이트닝과 눈을 마주치고 섰다. 외형에서 상대가 안 되지만 흔히 협찬히어로라 불리는 사람한테 꿇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거기에 어디까지나 정일과 MH만 아는 이야기지만 따지고 보면 MH라이트닝과 용오름은 적이다. 그래도 먼저 말을 걸어주는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정일이 입을 열었다.

 “늦었네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사상자가 나올 뻔 했어요.”

 “운이 좋았네. 마침 근처에 있었나 보군.”

 MH라이트닝이 정일의 옷을 턱으로 가리켰다. 난 코스튬도 멋지고 넌 허접한 츄리닝 하나뿐이지 라는 식의 유치한 기싸움을 거는 것이지만 실제로 마침 근처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서 재미있게만 생각됐다.

 당연한 하대 역시 예의는 상대방의 존중이 아닌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일로서는 그리 걸리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게요. 뉴스에서 본 거 영화관에서 한 번 더 보다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정일이 손가락으로 극장을 가리켰다. MH라이트닝은 침묵했다. 정일의 말이 농담인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생각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MH라이트닝이 정일을 무시하고 시민들에게 외쳤다.

 “여러분! 모두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저 MH라이트닝이 구하러 왔습니다! 다친 곳이 있거나 병원으로 이송이 필요하다면 제가 곧바로 병원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MH라이트닝이 정일이 보기엔 황송할 정도로 화려한 MH바이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말이었다면 엉덩이를 토닥거리는 느낌을 연출하려던 모양이다. 정일 반대 방향으로 커브를 돌다가 나무를 들이받은 차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는 대학생 커플이 나왔다.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고 있었지만 자세가 엉망인데도 문제없이 걸어 나오는 것이 부상이 심해서라기보다는 MH바이크를 한 번 타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정일은 그 점을 지적할까 생각했지만 곧 관두기로 했다. 그건 저 협찬 히어로가 판단할 일이기도 하고, 어차피 그 커플이 이 현장에서 가장 큰 부상자들이었다. MH라이트닝이 두 부상자를 뒷좌석에 태우고 몸을 고정시킨 뒤 정일에게 말했다.

 “그럼 난 먼저 가야겠네. 부상자가 있어서.”

 “아, 그럼요. 먼저 가시지요.”

 MH라이트닝은 도망쳤다. 정일과 시아는 그것이 도망친 것이라고 확신했다.

 “빨리도 도망가네요.”

 “그래. 뭐, 다친 사람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슈퍼히어로가 퇴장할 시간이다. 퇴장하기 전에 미련이 남은 정일이 동글이를 올려다보았다.

 “동글아? 실패한 김에 한 번 물어보는데 혹시 누가 널 사주했는지 자백할 생각 없니? 어차피 다 감이 오는데.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경찰이 오는데도 얌전히 매달려 있는 거 아냐? 아니, 여기까지 지시사항이겠지. 안 그래?”

 무기력하게 가로등에 걸려 축 늘어져 있던 동글이가 고개를 들었다. 부풀었던 몸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에도 그리 날씬하지는 않았다. 동글이가 대답했다.

 “말이 짧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들어줄 것 같니 꼬마야?”

 “비치볼 아저띠, 알려주세용.”

 정일이 손가락으로 쌍권총을 만들어 동글이에게 발사하는 시늉을 했다. 다행히도 가면을 쓰고 있어 윙크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동글이를 치명적으로 오그라들게 하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정일이 원하는 대답을 얻을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은 듯 동글이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는 수 없지.”

 경찰차가 가까이 오자 정일은 자신이 동글이를 내려다 봤던 빌딩으로 손을 뻗었다. 팔을 잡아당기자 정일의 몸이 떨어질 때 보다 빠르게 빌딩으로 솟아올랐다.

 

 

 *****

 

 

 동아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화장실이 급하다고 뛰쳐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일을 딱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정일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배를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재밌더냐.”

 “재밌더라. 나중에 기회 되면 보거라.”

 “그래야겠네. 꼭 이럴 때 속이 아프더라. 다른 애들은?”

 “화장실.”

 “영화 끝난 직후 여자화장실은 미어터질 텐데.”

 “그렇긴 한데 우리가 뭐 급하지는 않잖아?”

 정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용 소파에 앉았다.

 “그건 그러네. 저녁 뭐 먹을래?”

 “혜린이는 일식 먹고 싶다던데. 다른 애들도 상관없다는 듯.”

 “그래, 나도 오랜만에 돈가스가 땡기긴 했어.”

 동아가 정일 옆에 앉아서 화장실 후발대를 기다렸다. 잠시 뒤 수종이 먼저 나왔다. 수종은 정일의 옆에 앉아서 어깨동무를 하고 말했다.

 “정일아, 너 어디 갔다가 여기 있는 거야. 마지막에 남주가 얼마나 멋있게 나왔는지 아니?”

 갑자기 달라붙어서 내뱉는 징그러운 대사에 정일이 기겁하자 수종이 덧붙였다.

 “라고 이따가 려경이 그대로 말한다에 저녁빵 건다.”

 정일과 동아가 내기를 받아들일지 고민했다. 다행히도 대답보다 려경과 혜린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려경은 정일이 보이자 쪼르르 달려가 정일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정일아, 너 어디 갔다가 여기 있는 거야. 마지막에 남주가 얼마나 멋지게 나왔는지 아니?”

 동아가 웃음을 터뜨리자 려경이 의아한 얼굴로 동아를 보다가 곧바로 수종의 멱살을 잡았다.

 “야, 너 또 나 가지고 이상한 거 걸었지?”

 “안 걸었어. 안 걸었어! 그치?”

 수종이 손을 휘저으며 정일과 동아에게 동의를 구했다.

 “걸……지는 않았지? 우리가 거절했으니.”

 “야, 이씨!”

 려경이 수종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15센티도 넘게 차이 나는 둘이기에 잡고 버틴다면 충분히 버티고도 남았지만 수종은 려경의 손길에 따라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기꺼이 려경의 드잡이질에 몸을 맡겨 주었다.

 그냥 둘이 빨리 사귀기나 했으면 좋겠다. 정일, 동아, 혜린의 얼굴에서 동시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려경이 수종의 멱살을 놓고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려경이 수종을 잡고 끌고 갔다. 앉아 있다 갑자기 끌린 수종이 비틀거리며 려경을 따라갔다.

 정일과 친구들은 영화관 아래에 있는 일식집에 들어갔다. 극장 근처인 점이 유일한 장점인 고만고만한 가격의 고만고만한 식당이지만 일행 중에 미식가는 없었기에 별 상관없었다.

 “그래서, 이제 다음 주에 혜린이 시험만 끝나면 우리 다 방학인데 우리 어디 여행 안 가?”

 “안될 건 없지, 네가 또 펑크만 안내면.”

 혜린이 메밀국수를 집던 젓가락으로 정일을 가리키며 핀잔을 줬다. 정일은 이전에도 수능 직후에 여행을 가자 약속을 잡았다가 정일이 시아에게 정체를 들킨 뒤에 심장이 너무 떨려서 동아를 볼 수가 없어 여행을 취소한 경력이 있었다. 정일이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물론 사정을 들으면 친구들도 정일을 이해했겠지만 이야기 할 수 없는 종류의 사정이니 미안해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건 진짜 미안. 아마 이번에는 별 일 없을 거야.”

 “어디로 가게? 국내? 해외? 섬? 산? 계곡?”

 “난 바다! 산을 뭐 하러 가? 힘들어 죽겠다.”

 “그럼 내가 산.”

 “야!”

 려경이 식탁 밑에서 수종을 걷어찼다.

 “뭐야, 그거 찬 거야? 느낌도 안 나는 걸?”

 “왜냐면 내가 맞았으니까.”

 동아가 식탁에 이마를 박고 신음했다. 혜린과 정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혜린이 말했다.

 “아무튼 뭐, 일단은 생각해 두자. 여행이야 가면 좋지. 다들 상관없지?”

 “그래, 가자. 나 대전 좀 벗어나고 싶어.”

 동아가 무의식적으로 혜린의 허리를 손으로 감쌌다. 수종과 려경 역시 여행에 긍정적이었다.

 “가자가자. 다음 주에 너 시험 끝나고 그날 학교에서 바로 나가면 어때? 쟤가 면허랑 차 있으니깐 우리가 짐 다 챙겨놓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내가요? 기사요?”

 수종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너희들이 나머지 준비한다고 하면.”

 그 뒤로 여행계획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어디든 좋으니까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어디? 무인도?”

 “오, 좋다! 가볼래?”

 “무인도를 사람이 갈 수 있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지금 검색해볼게. 야, 사승봉도 어때? 나 거기 가보고 싶었어.”

 “잠깐, 검색 좀 해보자. 아, 여기 말이 무인도지 사유지인데? 하긴, 완전히 주인 없는 땅이 21세기에 남아있을 리가 없지.”

 “아.......”

 수종이 실망해 고개를 숙였다.

 “걍 펜션 예약해서 놀자. 무인도는 무슨 무인도야. 펜션도 문 닫으면 사실상 무인도지.”

 동아가 말했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은 지옥과 동의어가 된 세상에서 무인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제안이었다. 수종이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래, 하는 수 없지. 펜션 예약은 누가 할래?”

 “내가 할게.”

 정일이 손을 들었다. 가급적이면 돈을 좀 더 쓰더라도 가기 직전까지는 할 일이 없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고기며 술이며 산다고 돌아다니는 시간은 2개의 신분으로 24시간을 나눠 쓰는 사람에게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예약이야 지역 정해지면 검색해서 아무데나 맨 위에 뜨는 걸로 고르면 되니깐.’

 다른 사람들도 역할이 정해졌다. 동아가 술, 혜린이 고기, 려경이 기타 간식거리와 숯 등의 필수물품을 맡았다. 혜린이 좀 무리한 가격대의 역할이지만 어차피 셋이 같이 장을 볼 테니 알아서 조율할 것이다. 빠른 검색으로 목적지까지 확정지었다. 무인도에 대한 수종의 욕망과 와이파이를 향한 동아의 사랑이 타협한 결과 흑혈도라 불리는 섬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임진왜란 당시 검은 피눈물로 전쟁을 예견한 다람쥐가 있었다는 주민이 두 자릿수에 불과한 서해안의 작은 섬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구진 꼬마가 장난으로 먹물을 칠했다가 타이밍 맞게 전쟁이 터진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목적이 설화 탐사가 아니니 상관없었다.

 ‘이래서 얘네가 맘에 들어.’

 불과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무에서 확정된 계획이 완성되었다. 간만에 여행, 친구들과는 처음으로 가는 외박 여행이라고 생각하자 정일도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일이 무심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시아에게 전화가 일곱 통이 와 있었다. 문자를 확인하자 화가 난 고양이가 으르렁대는 이모티콘과 함께 단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바빠요?’

 정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얘들아. 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가봐야겠다. 우리 그럼 다음 주에 모일까?”

 “그래, 우리도 이제 집에 가자. 여기서 너무 노닥거렸다.”

 혜린이 주방 쪽을 가리켰다. 직원들은 회전률이 높아야 할 극장 아래 식당에서 카페 마냥 식사를 마치고도 한 시간이 넘도록 떠드는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직원들은 참 솔직한 사람들이라 느끼며 정일은 배낭을 메고 먼저 일어났다.

 “그럼 난 먼저 갈게. 다들 다음 주에 보자. 더 조율할 거 있으면 단톡방에 올려.”

 “옙옙.”

 수종이 경례하는 시늉을 했다. 정일이 식당을 나오며 곧바로 시아에게 전화를 했다. 시아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라고 해야죠. 동글이가 도망쳤어요.”

 “뭐야, 어떻게?”

 “쉽게요. 오빠가 간 다음에 경찰들이 오기 직전에 다리가 땅에 닿을 때 까지 몸을 부풀리고 걸어갔어요. 경찰들은 동글이를 찾으려 했지만 알잖아요?”

 “옷 벗은 슈퍼빌런과 일반인은 구분 못 하지.”

 “네. 아무튼 그 뒤에 그 다친 커플들을 병원에 보내고 이야기를 들은 MH라이트닝이 동글이를 잡겠다고 나섰어요.”

 “우리가 선수를 치기 힘들겠네.”

 “네, 이제 추격전이 됐으니까요. 젠장! MH그룹 놈들 똑똑하네. 분명 우리가 선수 쳐서 동글이를 잡더라도 경찰이 오기 전에 빠진다는 걸 계산한 거예요. 그 사이에 동글이가 탈출하면 MH라이트닝한테 두 번째 기회가 오는 거죠. 동글이도 그걸 아니까 처음부터 몸을 제한보다 작게 부풀려서 우리를 속이고, 우리가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은 거겠죠.”

 “망할 놈의 범죄 조작. 우리가 누구랑 싸우는지도 모르겠네.”

 범죄 조작. 증인 사냥꾼과 함께 정일과 시아가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는 문제였다. 범죄, 혹은 범죄자에 맞서기 위해서는 용기와, 능력, 정의감 등 수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어떤 요소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범죄자다. 부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부 갈등이 필요하고,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이 일어나야 하듯 범죄자가 없이 범죄자와 싸울 수는 없다. 범죄자가 없으면 예방을 할 수는 있어도 해결할 수는 없고, 편작의 형제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예방은 이름을 알리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진짜 사람을 위한 슈퍼히어로라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MH라이트닝과 같은 협찬히어로는 범죄가 없는 도시보다는 자신이 쓰러뜨릴 수 있는 선에서 가장 강하고 위협적인 슈퍼빌런이 있는 도시가 더 이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범죄 조작은 그런 협찬히어로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적당히 싸우다가 고용주에게 잡혀주는 일을 하는 증인을 이용한 범죄를 말한다. 정일은 시아가 합류한 후 대전의 히어로 중 하나이자 사성수 그룹의 협찬을 받던 슈퍼히어로인 ‘흑귀(黑龜)’가 다수의 증인들을 고용해 범죄 조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후에 경찰은 사성수 그룹의 나머지 세 슈퍼히어로 역시 마찬가지로 범죄 조작을 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성수 그룹는 범죄 조작과 연관된 모든 증거를 부정하고 네 슈퍼히어로를 체포하는 것에 적극 협조했지만 전국 어떤 계열에서도 독보적인 규모를 가졌던 사성수 그룹의 주가가 급추락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MH그룹을 비롯한 각종 대규모 기업집단 입장에서는 사성수 그룹을 누르고 왕좌를 빼앗을 절호의 기회이건만 아직까지는 더 추락해야 할 바닥이 남은 것인지 변함없이 같은 종류의 범죄 조작을 하는 히어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범죄랑 싸우는 거죠. 기업이든 대통령이든 그게 어디 면죄부가 되나요.”

 “그건 그렇지. 마음이 심란해서 그렇지 내가 대충 한 적은 없잖아?”

 “일단 동글이는 우리가 먼저 잡아야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동글이가 진짜 범죄 조작자면 MH그룹이랑 계속 연락하면서 위치를 보고할 테고, 우리는 동글이 얼굴도 모르니까요. 제가 계속 찾아보고는 있지만 일단은 너무 긴장하지 말고 쉰다고 생각해요. 마침 방학이네.”

 “아, 마침 방학이네 해서 말이야.”

 정일은 시아에게 동아와 친구들과 가기로 한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시아는 의외로 선선히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은 할 일도 없으니 그렇게 해요. 슈퍼히어로도 쉬어야죠.”

 “그래, 고맙다.”

 “아뇨, 그럴 거 없어요. 저번에 저한테 들켜서 여행 못 간 거 있잖아요. 그 때 못 간 여행 이번에 가는 셈 치죠.”

 “그래, 그래. 알겠다. 그럼 다음에 보자. 혹시라도 동글이 찾으면 연락하고.”

 정일이 전화를 끊었다. 날이 따뜻했다.

 “제발 여행 전에 나오지 마라 동글이야.”

 정일이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

 동글이는 무사히 인파 속에 섞여 들어갔다. 경찰이 동글이를 찾으려 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체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지라 성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슈퍼빌런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글이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면을 쓴 동글이는 이곳저곳 튕기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시시한 슈퍼빌런이지만 가면을 벗으면 그는 칙칙한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자취생이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MH그룹에게 선금만으로 전액 장학금이 될 정도로 받은 동글이는 자신의 처지에 충분히 만족했다. 동글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서랍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자신의 스마트폰이 아닌 MH그룹에게 받은 대포폰을 꺼낸 동글이는 등록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옙, 동글이입니다.”

 “뉴스 봤습니다. 용오름에게 제압당하고 도망쳤다고요? 용오름이 그렇게 빨리 왔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그렇게 약한 겁니까?”

 수화기 저편의 변조된 목소리가 동글이를 까내리자 동글이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공평하지 않은 대사였다. MH라이트닝은 더 빨리 올 수도 있었지만, 심지어는 동글이보다 먼저 현장에서 대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과하게 빠른 속도는 오히려 의심을 산다고 시간을 둔 것은 MH그룹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동글이는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돈 많은 사람이 왕이다.

 “아무튼 경찰은 따돌려서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사성수 건 이후로는 경찰에 잡힌 사람은 입을 빼면 보호가 힘들거든요.”

 동글이는 여름이 이렇게 춥다는 것에 놀랐다.

 ‘너무하네. 아직 실패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나?’

 두렵지 않은 척 한 마디를 던졌지만 상대방은 듣지 못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글이는 너무 떨려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한 채 자신이 말했다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용건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상으로 봤는데 도대체 슈퍼빌런인지 게릴라 서커스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물론 예술은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할 것이지만 저희는 서커스 연출에 그런 거금을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동글이가 이를 악물었다.

 “그건 그쪽이 원한 요구사항 아닙니까! 지나치게 무섭게 하지 말고 적당한 위협만 주라고요. 큰 위협은 시민들도, 저도, 심지어는 MH라이트닝도 위험할 수 있는데다가 추가금이 든다고 했잖아요.”

 “동글이 씨.” 상대방의 목소리가 변조로도 감출 수 없을 만큼 차가워졌다.

 “제가 인생선배로서 한 마디 하지요.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낸 돈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불한 대가보다 큰 이득을 보더라도 보통은 그리 감사할 줄 모르지요. 반대로 자신이 지불한 대가보다 적은 이득을 본다가 판단될 경우 소비자는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경우 가차 없이 환불을 할 겁니다. 동글이는 대체 불가능한 직장에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당신을 환불해도 되겠습니까?”

 동글이는 살면서 가장 무섭게 환불이라고 읊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를 빨리 마무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잡힐 때는 화려하게 잡혀 드리죠. 됐습니까?”

 “알겠습니다. 돈은 그 뒤에 지불하지요. 한 달 정도 뒤에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는 자숙하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동글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침대를 향해 집어던졌다. 매트리스와 부딪히며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충격음이 들렸다. 화가 나도 휴대폰을 부술 수는 없다는 마지막 한 가닥의 이성의 힘이었다. 그 덕에 화가 나서 휴대폰을 부순 바람에 연락을 못해 일을 망쳤다는 소리를 하는 짜릿한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나게 되었다.

 대신 동글이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벽에 집어던졌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개 같은 MH!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MH! 범죄자 주제에 갑질을 해!”

 스마트폰 액정에 금이 간 뒤에야 자신이 저지른 짓에 회의를 느끼고 휴대폰을 향한 연대책임을 중단한 동글이는 침대에 앉아 속을 가라앉혔다.

 “후,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진짜 위험하게 해 줘야겠네. MH라이트닝이 눈알 없이도 잘 지내나 보자.”

 동글이가 책상에 놓인 연필꽂이에 들어있던 송곳을 꺼내 허공에 휘둘렀다. 증인이 초능력만 사용할 것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고정관념인가 보여줄 생각이었다. MH에게 받은 선금과 즐거움은 모두 잊은 지 오래였다. 범죄 조작자가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슈퍼빌런이 될 만한 자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

 베네치아에는 늑대인간이 살고 있다.

 처음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미터가 넘는 덩치에 인간과의 외적인 공통점이라고는 이족보행이 전부인 그 괴물들은 빨간 모자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모를 수가 없었기에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살기에는 부적합했다. 하지만 늑대인간의 왕 푸른 죽음과 늑대인간들은 벨라루스의 원시림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베네치아에는 흡혈귀가 살고 있다.

 신이 공포의 미학을 담기 위해 만들어낸 듯 관능적인 몸매와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그 몸매를 그대로 살리는 의상을 입고 있음에도 성적인 욕구가 아닌 순수한 공포만이 느껴지는 흡혈귀 여왕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처음에는 두 왕, 질드레와 블라드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성에서 살고 있었지만 신선들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베네치아에는 흑마법사가 살고 있다.

 흑마법사 프렐라티는 신이 에르제베트를 만들다가 실패한 찌꺼기를 뭉쳐놓은 것 같이 생긴 인물이었다. 벗겨진 머리와 온 몸을 휘감은 검고 붉은 기이한 문신들은 취향, 혹은 탈모로 납득할 수 있으나, 상어같이 날카로운 이빨과 회색의 피부는 국적이 아닌 종족이 의심스럽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프렐라티는 자신이 타락시킨 흡혈귀 왕 질드레가 전쟁에서 패한 뒤 질드레를 배신하고,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에르제베트와 흡혈귀 추적자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프렐라티는 양 손을 펼쳐 각각 푸른 죽음과 에르제베트를 겨누었다. 몸의 문신들이 빛나며 푸른 죽음을 겨눈 왼손은 검은 빛이, 에르제베트를 겨눈 오른손은 붉은 빛이 휘감아졌다. 푸른 죽음 역시 등에 메단 자신의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고, 에르제베트는 혈기(血氣)를 품은 눈으로 프렐라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탁 트인 공터에서도 압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지만 그들은 지금 작은 호텔에 들어가 있었다.

 “그만해라 얘들아. 여기 좁다. 집을 다 부술 생각이니.”

 에르제베트와 푸른 죽음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번 보면 잊어버릴, 특별할 것 없는 적당히 생기고, 적당히 즐거운 30대의 적당한 아시아계 남자였다. 낮은 존재감과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는 점이 남자의 존재감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었다. 괴물들 사이에 선 남자의 모습은 많이 쳐줘 봐야 에르제베트의 간식이 담긴 가죽 도시락 정도였지만 푸른 죽음과 에르제베트는 남자의 말에 공격태세를 풀었다. 프렐라티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에르제베트를 조롱했다.

 “뭐야, 도시락의 개가 된 거야? 어쩌다 그런 꼴이 됐다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저런 꼴을 표현할 단어가 인간의 언어에는 없는 게 안타깝구만.”

 “구석에 몰린 쥐새끼가 돼서 밟으면 찍소리도 못 하고 죽을 얼간이가 입만은 불가살이보다 죽이기 힘들겠구나.”

 “밟아볼래? 쥐도 쥐 나름일걸.”

 프렐라티의 몸에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났다. 에르제베트가 무의식적으로 혈기를 끌어올렸다가 남자의 눈치를 보고 다시 가라앉혔다. 프렐라티는 고민했다. 늑대인간과 흡혈귀 모두 혼자 상대하기엔 버거운 적이었지만 푸른 죽음과 에르제베트 모두 아무 움직임이 없는 지금 싸운다면 도망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다만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지만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에르제베트가 아니었다. 프렐라티가 시험 삼아 몸에서 돋아난 가시 중 하나를 남자에게 쏘아 보냈다. 일반인은 제대로 보지도 못할 속도지만 프렐라티에게는 인사 수준의 공격이다.

 프렐라티는 갑작스러운 바람에 눈을 찌푸렸다. 푸른 죽음의 검이 어느새 남자와 프렐라티 사이를 가로막아 가시를 방어한 뒤였다. 남자는 공격을 보지도 못한 듯 했다. 푸른 죽음이 으르렁댔다.

 “데우스.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거냐? 그렇다면 에르제베트에게 넘겨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 그건 아니야. 이제 이야기를 좀 해봐야지.”

 데우스라 불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최초의 증인이자 인류의 구원자, 늑대인간의 구원자, 흡혈귀의 구원자, 그리고 네 구원자다. 편하게 데우스라고 불러.”

 “난 프렐라티. 최강의 마법사이고, 인류의 파괴자, 늑대인간 살육자, 흡혈귀의 배신자, 그리고 널 죽일 사람이다.”

 프렐라티가 대답했다. 문득 자신이 늑대인간과 싸운 적이 없다는 점을 떠올린 프렐라티였지만 원래 허세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무시했다. 데우스는 눈을 찌푸리며 웃었다.

 “난 진심인데 넌 가심이네.”

 “증명할 수 없으면 믿는 바가 진리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럼 증거를 보여줄게.”

 데우스가 에르제베트를 쳐다보았다. 에르제베트가 프렐라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프렐라티는 순간 움찔했지만 질드레와의 오랜 시간을 통해 에르제베트의 행동이 공격이 아닌 것을 알고 다음 동작을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움직이지 마. 너도 알겠지만 공격하는 게 아니니깐.”

 에르제베트가 프렐라티의 이마에 검지와 중지손가락을 댔다. 프렐라티의 눈이 붉게 물들며 에르제베트가 보내는 영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비명, 비명, 비명. 죽음.

 프렐라티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이건.”

 “피할 수 있는 미래.”

 데우스가 대답했다. 프렐라티는 이해했다.

 “좋아, 좋아. 이런 미친놈들. 너희들 날 죽이려고 쫓는 게 아니구나. 나 역시 도시락의 개로 만들 생각이야.”

 “기왕이면 도시락의 친구는 어때? 우린 그래도 매달 회식도 한다고.”

 “나를 어떻게 설득할 생각이지? 나는 회식이나 구원으로 설득할 수는 없을 텐데?”

 에르제베트는 자리로 돌아가 프렐라티의 이마에 댄 손가락을 불쾌한 표정으로 털었다. 데우스도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한 명도 희생하지 않기 위해 70억을 벼랑에 떨어뜨리는 자들에 맞서서 70억을 구하기 위해 60억을 죽일 생각이야.”

 프렐라티의 표정이 밝아졌다. 프렐라티는 데우스의 제안을 깨달았다.

 “네 역할은 60억을 죽이는 거야. 내 친구가 되면 앞으로 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해줄게. 단 내가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방식대로만. 그래도 아마 네 취향에 맞을 거야.”

 프렐라티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살짝 가라앉았다.

 “네가 내 취향을 어떻게 알지? 네 방식이 내 취향이 아니라면 널 죽여도 되나?”

 “안 그래도 다음 주에 기회가 생길 거야. 들어보고 결정해.”

 데우스가 프렐라티에게 말했다. 데우스의 계획을 들은 프렐라티는 크게 기뻐하며 데우스에게 다가가 데우스의 손을 잡았다.

 “친구야! 반가워! 우리 친하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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