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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9. 춘우(春雨)(2)
작성일 : 18-12-06 06:27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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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부모님을 모시고 할머니를 모신 납골당에 가니 그곳에는 장례식 내내 함께 했던 공순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순복은 부모님을 소개해 주자 눈물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한참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사를 했다.

 

 할머니께 인사를 마친 아버지는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싶다며 공순복에게 시간을 내주십사 부탁했고, 공순복은 흔쾌히 허락했다.

 

 납골당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공순복은 돈의동 집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공순복과 함께 가족들은 돈의동 집으로 돌아왔다.

 

 공순복은 돈의동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마당 한편에 자리 잡은 동백나무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무언가 아련한 얼굴로 집을 둘러봤다.

 

 “여기는 그대로요.”

 

 공순복의 말에 아버지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이곳에 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네. 그때는 여기에 빨간 동백꽃이 피어 있었소.”

 

 공순복은 꽃이 지어 파란 잎만 달고 있는 동백나무를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눈이 내려 길 곳곳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교복 위에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친 공순복은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와 집들의 문패를 하나하나 비교하며 골목의 집들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문패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곳이 제가 찾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항상 국극이 열릴 때 마다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덩치 좋은 사내가 커다란 포대자루 2개를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순복은 자신이 집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내 다른 집 대문에 몸을 숨겼다. 왜냐하면 그 대문 앞을 기웃거리던 여고생 2명이 안에서 나오던 사내에게 선물과 편지를 전하자, 사내가 뭐라고 하면서 그 둘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멀리서 찾아온 공순복은 이미 춥고 지쳤는데 보고픈 이의 얼굴한번 보지도 못하고 쫓겨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저절로 힘이 빠져버렸다.

 

 그런데 마침 사내가 차의 트렁크에서 전국에서 온 팬레터와 선물이 담긴 자루를 꺼내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을 보고, 공순복은 재빠르게 열린 문 사이로 몸을 옮겼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얗게 쌓인 눈 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꽃이었다. 공순복은 제가 이곳에 온 이유도 잊은 채, 저도 모르게 그 새빨간 자태에 이끌려 그 앞으로 걸어갔다.

 

 공순복이 너무도 유혹적인 자태에 꽃잎에 손을 가져가는데, 뒤에서 갑작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쁘죠?”

 

 공순복이 고개를 돌리자, 화장기 하나 없는 고아한 얼굴의 여인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네.”

 

 공순복이 그녀의 모습에 넋을 놓은 채 바라보자, 여인은 빨간 꽃에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동백꽃이에요.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죠.”

 

 공순복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다시 꽃을 바라봤다.

 

 “동백꽃…….”

 

 공순복이 꽃이름을 나직이 입에 담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뒤에서 날카롭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어떻게 들어왔어?”

 

 공순복은 그 묵지한 목소리가 지칭하는 ‘야’가 자신임을 알았기에 저도 모르게 제 옆에 서있는 여인의 뒤로 몸을 숨겼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금 전 대문 앞에서 봤던 덩치 큰 사내였다.

 

 “어딜 숨는 게야? 이리 나오지 못해?”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순복이 입고 있던 코트 자락이 잡혔다. 공순복은 그 순간에도 제가 매달릴 곳은 여인뿐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사내는 공순복의 말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힘으로 잡아끌었다. 덩치만큼이나 힘도 좋은 사내에 속수무책으로 공순복이 끌려나올 때였다.

 

 “기골.”

 

 단호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 사내의 힘이 스르륵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공순복의 눈 또한 목소리를 따라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 유순하게만 보였던 여인의 얼굴이 강단이 서린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공순복은 그녀가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저, 혹시… 임…배우님이세요?”

 

 공순복의 떨리는 목소리에 여인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공순복은 그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여기까지의 노고가, 추운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모두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공순복은 그대로 여인의 품에 달려들어 안겼다.

 

 "보고 싶었어요. 꼭… 꼭 한번은 만나고 싶었어요.”

 

 기골은 여인의 품에 안긴 공순복이 못마땅한 듯 했으나, 여인이 제 품에 안겨있는 공순복의 등을 쓸어내리며 토닥이는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순복은 자신의 앞으로 내민 따뜻한 엽차에도 여전히 고개만 푹 숙인 채 앉아있었다.

 

 “들어요. 몸이 좀 따뜻해질 거예요.”

 

 공순복은 너무도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래서 엽차가 든 잔을 조심스레 입술에만 가져다 대었다가 탁자위에 내려놨다. 그때 옆에서 빈정거리는 사내의 툴툴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마실 거면 제대로 마시던가? 새 모이 먹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냐?

 

 공순복은 묵직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가볍게 들리는 저 말투가 거슬려 부끄러움도 잊고 고개를 들어 기골이라 불리는 사내를 째려 봤다. 그러자 기골은 그녀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는 이내 미소까지 흘리며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너도 네 얼굴이 부끄러운가 보구나?”

 

 공순복이 얼굴을 찡그리며 기골을 노려보는데 다시 한 번 나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골, 그만 놀려.”

 

 기골은 여인의 말에 다시 뾰로통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여인의 눈짓에 두 사람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장순복은 기골이 나가자 그제야 제 앞에 앉은 여인을 빤히 쳐다봤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은 고아하게 느껴졌는데, 그 얼굴이 무대에서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저… 저기… 그러니까… 맞아요?”

 

 말이 입에서 헛돌았다. 그래서 겨우 내뱉은 말이 ‘맞아요?’였다. 그러나 이렇게 개떡같이 말했음에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는지 그녀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아마 맞을 거예요. 내가 생각한 그 질문이 맞다면요.”

 

 공순복은 다시 눈가가 뜨거워지려하자 얼른 가방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며 말을 꺼냈다.

 

 “이걸 직접 드리고 싶었어요.”

 

 “왜요?”

 

 생글 웃으며 묻는 천진한 물음에 공순복은 얼굴만 붉힐 뿐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그러니까…….”

 

 생글 웃는 여인의 미소는 너무도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공순복의 가슴을 찌릿하게 찔러왔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무대에서의 그, 아니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확연하게 다른 모습에서 그녀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해서 가출 아닌 가출을 한 거였음에도 공순복은 제 앞에 앉은 여인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뭐가요?”

 

 “아…….”

 

 공순복은 여인의 물음에 자신이 저도 모르게 머릿속 얘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는 그 이후에는 순순하게 자신의 속의 말들이 잇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저는 여자도 공부하면 남자들 못지않게 사회의 큰 일원으로 자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빠보다도 공부는 제가 더 잘했는데, 저만 학교를 못 다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을 나왔어요?”

 

 제 감정에 휩쓸려 말끝을 잇지 못한 공순복의 마지막 말을 여인이 이었다. 그리고 여인은 유리너머 마당의 붉은 꽃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동백꽃이 지는 걸 본 적 있어요?”

 

 공순복은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공순복이 실제 동백꽃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여인은 유리로 비친 공순복의 고갯짓을 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동백은 다른 꽃들과 달리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예쁜 꽃송이가 저 모습 그대로 땅에 떨어져요. 땅에 떨어질 때는 툭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지요.”

 

 공순복은 그녀의 설명에 하얀 눈 속에서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는 동백꽃을 바라봤다.

 

 “나는 동백꽃을 바라볼 때면, 우리나라의 여인들이 생각나요. 추운 겨울날에 꽃을 피우고는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에서 우리내의 모습이 보여요.”

 

 공순복은 동백꽃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 쳐다봤다.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너무도 처연하게 느껴졌다. 담담한 목소리였음에도 그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의 얼굴이 너무도 슬퍼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불행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이토록 아름답게 꽃피우고 지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온실 속 화초는 추운 겨울날에 이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지 못해요.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 꽃을 피운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걸 테니까요.”

 

 자신의 말을 담담하게 얘기하던 여인이 고개를 돌려 공순복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너무도 예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천은 그렇게 시작했어요.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당당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요. 저는,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꼭 그 걸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내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라는 건 없는 거라고.”

 

 “아…….”

 

 공순복은 볼을 타고 내려오던 눈물이 자신의 손등에 떨어지고 나서야 제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공순복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집을 나서기 전, 여인은 공순복에게 빨간 털목도리를 가져와 둘러 주었다.

 

 “고맙습니다. 편지… 해도 돼요?”

 

 “그럼요. 그리고 춘희에요. 임춘희. 지금은 동천의 춘우로 불리고 있지만, 왠지 순복씨는 저를 춘희, 임춘희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이제는 춘희로 불러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네.”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을 한 공순복은 춘희의 부탁으로 기골의 차에 올랐다. 그것이 젊은 날의 임춘희와 마주한 처음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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