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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Pay first.
작가 : 바울
작품등록일 : 2018.12.1

인기 없는 작가와 찌질한 팬의 아슬아슬한 관계 유지.

 
#4
작성일 : 18-12-06 01:53     조회 : 270     추천 : 1     분량 : 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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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강승아 (7)

 

  휴 하는 긴 한숨과 함께 침대에 무너졌다. 곁눈질한 거울에 속옷과 와이셔츠만 걸친 우스꽝스러운 꼴이 보인다. 자괴감이 들었다. 여태 해본 적도 없는 분칠 역시 그 짓을 하느니 카메라 앱 내의 필터 한 겹이라도 까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걸 씻어낼 생각을 하니 귀찮아 죽겠다. 저 바닥엔 구매한 지 두 달 만에 열린 비비크림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다.

 

  이미 저녁이 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여전히 오후다. 몸이 식고 머리가 차가워지니 질척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언제나 승아의 어깨를 짓누르는 그것들이다.

 

  고아 씨와 승아가 처음 만나고 벌써 4년이다. 4년이 다 뭐람.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며, 누군가에겐 처음 만나 결혼까지 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이 둘은 뭘 했을까?

 

  뭘 하기는, 여전히 서로 극존대하며 거리감을 두고 있다. 계속해서 상기하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고아 씨가 승아에게 오늘처럼 친절한 적은 없었다. 자괴감과 허탈함에 가슴이 쓰리다. 오늘의 승아에게 고아 씨는 감정노동을 했을 뿐이란 걸 내심 잘 알고 있다. 차라리 평소처럼 대충 대했다면 자괴감이 들 일도 없었을텐데.

 

  지금의 상황이 고아 씨를 탓한다고 나아질 문제가 아니란 건 승아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해 본인도 같은 상황이라면 달랐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도 덜 자란 남자들의 도피처란 늘 비슷하다. 자신이 싫을 때 자신을 미워하질 않는다. 남을 미워하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하다. 다만 지금은 그 대상이 고아 씨이기 때문에 제동이 걸렸을 뿐이다.

 

  승아가 만들어 낸 고아 씨에, 오늘도 애증을 한 겹 더 겹쳤다.

 

 

 - 고아 씨 (8)

 

  전체적인 비율부터 눈매, 콧등, 인중 입술로 내려와 턱선까지 유심히 관찰한다. 저 옆에 옅게 베인 땀방울까지 보인다. 고아 씨는 냉장고에서 찾아낸 귤 몇 개를 삼키며 온종일 승아의 사진을 보고 있다.

 

  정말 평범하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다. 어디를 뜯어봐도 잘생긴 구석을 못 찾겠다. 억지로 뭔가 칭찬 점을 찾아낸다면 순둥순둥하게 생겼다? 그런 타입을 좋아하는 여자라면 봐줄 만한 선일지도 모르겠다. 종일 승아의 사진을 보고 있지만 고아 씨의 눈빛은 무미건조하다. 차라리 마지막 하나 남은 귤을 볼 땐 안타까움이라도 들어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고아 씨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사진을 확실히 관찰했다는 생각이 든다. 승아를 인상만으로 그리면 팬더 같은 게 그려질 것 같다. 승아와 팬더, 꽤 어울린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번 선을 그으니 대충 얼굴윤곽이 나온다. 대강의 형태를 잡고 드디어 집중하기 시작할 때쯤 손이 멈췄다. 고아 씨는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사진파일을 열었다. 보통 누군가를 그릴 땐 시작할 때 오래 관찰하고 적어도 그림의 중반부까진 사진을 다시 보지 않는게 고아 씨의 스타일이다. 다시 볼 필요 없이 오래 관찰하기 때문에 중간마다 흘끔거릴 필요가 없다는 게 고아 씨의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문제가 생겼다.

 

  눈을 그리려다 잠시 멈추고, 사진 파일을 다시 열어 확인하고 눈을 그린다. 다음은 코를 그려야 할 텐데, 또다시 손이 멈춘다. 고아 씨는 인상을 잠깐 썼다가, 다시 사진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야 속이 시원한 듯 코를 그려주고, 다음은 입을.. 젠장.

 

  "뭐 이런 게 다 있어."

 

  남들보다 반 시간은 더 관찰 했는데도 여전히 아예 처음 본 사람처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4년 전에 한 번 보고 못 본 사이니 얼굴이 낯설어도 그리 이상하진 않은 일이지만, 사실 이건 그런 문제를 넘어섰다. 인상이 너무 평범하고 흐릿해서 아무리 오래 봤어도 머릿속에 남는 특징이 없다. 기가 찰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다. 제일 평범한 사람은 어쩌면 특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고아 씨 속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쓸데 없는 생각이다.

 

  기억이 잘 안 난다면 그저 옆에 사진을 띄워놓고 그리면 될 일이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다. 본인의 관찰력에 본인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느닷없이 승아가 나타나 자신의 재능에 도전하는 것 같다. 쓸데 없는 자존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듯 고아 씨도 당장에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사진을 꺼두고 머릿속에 남은 기억으로 어떻게든 그려보려 한다. 인상이 흐릿하니 그림 전체에 뭉개진 부분이 많아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오질 않았다. 그녀의 어떤 팬이라도 이 그림은 대충 그렸단 걸 느낄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막히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다. 어차피 고집을 꺾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단 걸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고아 씨는 짜증을 앞세운다. 지는 듯한 기분을 고아 씨는 지울 수가 없었다.

 

  7년차 작가는 태블릿에서 손을 뗀다. 자신의 그림엔 감정이 너무 잘 드러난다. 어떤 식이든 지금 그림을 그려봤자 자신이 만족할만한 결과는 안 나올 것 같다. 시간은 아직 세시밖에 안 됐다. 기분전환을 하기로 한다. 긴 다리를 쭉 내밀며 기지개를 한 번 펴고 다시 펜을 잡았다. 기분전환마저도 그림으로 해결하는 고아 씨다.

 

  고아 씨는 평소처럼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것을 그릴까 싶어 펜을 끄적이다,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도 귀엽긴 하지만, 맹한 사람을 하도 봤더니 맹한 동물을 그리고 싶어졌다. 거북이나 이구아나, 펭귄도 좋을 것 같다. 혹은... 팬더. 아무래도 오늘 인상적인 건 팬더 뿐인 모양이다.

 

  고아 씨는 누군가가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괜히 주위를 확인하고는 승아의 사진을 다시 열었다. 그리곤 큰 브러쉬를 선택해 눈가를 북북 문지른다. 푸흡.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린다. 연이어 김빠지는 소리만 내던 고아 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린다. 옅은 멍 자국이 맹한 눈가에 너무 잘 어울린다. 칠하고 보니 나름 귀여운 얼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체못하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이번엔 둥글고 검은 코를 그리고는 팬더 귀까지 달아준다. 역시 생각 이상이다.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책상을 쿵쿵 치며 끅끅거리는 고아 씨의 모습은 그녀의 오랜 친구가 보더라도 낯설 것이다.

 

  광대에 일어난 경련을 손끝으로 마사지하면서도 고아 씨의 무너진 표정이 바로 잡히질 않는다. 이렇게까지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억나는 선에서는 그렇다. 차마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지우기엔 너무 아까운 그림이라고 고아 씨는 생각했다. 사실 남의 얼굴에 낙서하면서 재밌어하는 건 그리 도덕적인 일은 아니다. 고아 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고아 씨도 역시 '보통 사람'이라, 어느 정도의 자기합리화는 할 줄 알았다.

 

  어차피 나만 보고 말 건데 뭐.

 

  아주 질 나쁜 장난. 양심엔 좀 찔린다. 사실 꽤 많이 찔린다. 하지만 파일 이름까지 신경 써서 저장하는 걸 잊진 않았다. 파일 이름, 팬더맨.

 

 

 - 강승아 (8)

 

  뒷처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여기저기 던져진 옷을 개는 일이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청소하는 김에 정리할 구석을 하나씩 늘리다 보니 끝날 때쯤엔 대청소에 가까웠다. 샤워는 오늘만 두 번째다. 창 밖에서 비치는 주황빛 햇살이 예쁘게 방을 채운다. 승아는 문득 오늘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은 사실을 상기했다. 오늘은 아예 늘어지게 쉴 생각이었는데.. 사서 고생한 느낌이다.

 

  냉장고를 뒤져봐도 먹을만한 게 없다. 찬장도 확인했지만 남은 라면마저도 어제 먹은 게 전부였던 모양이다. 장을 보든가 뭔가를 시켜먹든가 해야 할 텐데, 잔고에 얼마쯤 남았는지 확인하기가 두렵다. 적어도 대충 예상은 간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커미션 신청이 생각보다 후폭풍이 크다. 사진도 사진이고 청소도 청소지만, 지금 잔고가 꽤 아슬아슬한 걸로 알고 있다. 5만 원은 그렇게 허투루 쓸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돈이 생각보다 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돈을 쓸 때마다 일일이 잔고를 확인한 것도 아니니 괜한 불안일 수도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켜 잔고를 확인한다.

 

  아.

 

  다음 아르바이트 급여 날까지 며칠 남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지만, 그 며칠 동안은 라면 같은 걸로 때워야지 싶다. 커미션을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밥 정돈 먹었을텐데.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렇다고 며칠 제대로 안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다만 씁쓸한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늘 한 일이라곤 전날 술 먹고 퍼질러 자다가 학교는 빼먹고 예정에도 없던 큰돈이나 쓰고. 전부 내가 원해서 한 일이라 누군가에게 전가할 책임도 없다. 저녁은 잠시 미루고 침대로 돌아가 담배부터 찾는다. 진한 황혼이 노곤하다. 승아가 알기로는 고아 씨도 흡연자다. 고아 씨를 만난다면 같이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 흡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해본 적은 없어서 정말 좋은지는 몰라도 말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동기들과 같이 흡연한 적도 많았지만, 개중에 여자는 없었다. 아니 사실, 꼭 흡연이 아니더라도 여자는 별로 없었다.

 

  샤워 후 대충 말린 부스스한 머리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는다. 여자가 먼저 다가올 정도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싶다. 키도 그리 작은 편도 아니고, 덩치도 있어 보인다. 남자들 대다수가 본인이 중간 정도의 외모는 된다고 착각하고 산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승아 역시 대다수의 남자가 그렇듯이. 내심 본인은 착각이 아닐거라 생각하며 살고있다.

 

  만약, 고아 씨가 자신 옆에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둘은 어울릴까? 본인도 그렇게 나쁘진 않지만 작가님은.. 아무래도 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승아는 생각한다. 버릇처럼 사람 사이에 급 같은 게 어딨느냐며 상기하지만 정작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도 승아 본인이다. 같이 있어도 잘 어울릴 거라는 자신감이 없는 스스로가 안타깝게 느껴지다가, 너무 궁상이지 싶어 연거푸 불만 붙이며 시간을 보냈다.

 

  땅거미가 지고 찬바람이 창을 타고 올라올 때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림을 언제 완성해서 보내준다는 말이 없었다.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걸릴지 감이 안 온다. 그렇지만 적어도, 연락이 한번은 더 온다는 건 사실이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기대하는 자신이 비참하게 즐겁다. 웃음은 나오지만 비웃음인지 허탈함인지 본인도 구분이 잘 안 간다.

 

  고전적인 꼬르륵 소리가 난다. 이젠 배가 찌릿하게 아플 지경이다. 끼니를 더 미룰 수는 없다. 오늘만은 하루 치를 다 먹어야 하니 싸고 양 많은 것을 찾기로 했다. 집히는 외투를 대충 입고 밖으로 나갔다.

 

 

 - 메시지 (3)

  승아님 많이 기다리셨죠. 그림 완성됐어요(웃음)(웃음).

 

 .

 
작가의 말
 

 하루 늦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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