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됬어?"
"응..조금"
얼마나 울었을까. 두 눈은 이미 빨갛게 부었고, 하도 울어대서 눈물샘이 마른건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까 때려서 미안."
"신경 쓰지마. 내가 심한 말 한 건 사실이잖아."
"...내가 먼저 꺼낸 말이였잖아."
"그건 그래."
"..뭐야 그게.."
별 시덥지 않은 말들. 하지만 유치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이런 대화 꽤 오랜만일려나,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어?"
"아...그거..뭐, 예상대로야. 그 뒤로 나 때문에 닻별이는 이사갔어. 전학도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야지만 가능하다고 하더라."
사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이 일이 있었는지 조차 완벽하게 잊어버릴때까지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릴 생각이였다. 뻔뻔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괜찮다. 잊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내 물건을 점심시간 때 몰래 닻별이의 사물함에 넣었어.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했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잊을려고 노력을 해도, 설령 시간이 흘러 진짜 그 일을 잊었다하더라도 과거의 죄는 없었던 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종이를 찢고나서 종이한테 아무리 사과해 봤자 종이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일 따윈 없는 것처럼.
"<물건이 사라졌다.>라고?"
"..."
부정할 수 가 없었다. 전부 사실이니까.
"닻별이를 싫어하는 얘들이 은근 많았어. 그래서 난 그걸 이용한거고.. 여기서 문제, 만약 가득이나 평판이 안 좋은 아이가 누군가의 그것도 자신의 친구의 물건을 훔친 범인이라고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그것의 기반으로 달려들겠지. 마치 피를 본 굶주린 피라냐들 처럼 씹을 거리가 생겼으니 말이야."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한가지 더, 닻별이는 타인의 시선을 다른 사람들보다도 유독 더 민감하게 받아드리는 편이야. 그런 얘가 이제 나쁜소문의 중심이 된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앞에서든 뒤에서든 욕을 들으면서 살아야 한다면?"
"꽤 치밀하구나 너- "
"덕분에 그 후로 닻별이는 완벽하게 주위로부터 외톨이가 되었어. 닻별이도 그걸 알고 나서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더라. 심지어 시험치르는 날까지말야. 그 때문에 성적도 무효처리가 되어버렸지."
"...기뻤어?"
"기뻤어."
"계획대로 일이 술술 진행되니까 너무 기쁘더라고? 심지어 너무 신나서 쉬는 시간 몰래 화장실에서 큰소리로 웃어될 정도였으니까, 이걸로 전부 끝났다고 - 이제 나의 앞길을 막을 녀석은 진짜 없을 거라고 - 그런데.."
투툭-
나오지 않을것만 것만 같았던 눈물을 다시 끔 볼을 타고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이 따가웠다.
"그래..분명 그랬을 터인데..아니..부.분명 그랬어야만 했어.."
"알고.. 있었구나? 닻별이."
몸이 크게 떨려왔다. 마치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말라고 몸이 경고하는 듯이- 하지만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간신히 치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잠시 후, 꾸깃꾸깃한 메모장이 주머니 사이에서 조심스레 머리를 내 밀었다.
"그건?"
꾸깃꾸깃한 메모장에는 빨간글씨가 써져있었다.
"아직도 처음 이걸 발견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느껴져. 머리가 잠시동안 띵해지더니 곧 터질듯한.. 그래 그리고 꺠닭았어."
<몇번이나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넌 끝내 네 생각만 하는구나. 널 믿은 내가 바보였어. 너 같은 건 정말 싫어.다시 보진 말자.>
"아 뭔가 잘못됬구나."
"..너"
"..아하..하! 역시 좀 바보같다 그치? 역시, 난 죽을 놈이야. 이제 와서 이런 메모장을 보고 나서야 후회한다니..생각만 해도 웃기지 않아? 정말 뻔뻔해. 이제 와서 이런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아는 주제에..그런 데도.."
"글쎄..너가 정말 뻔뻔한 아이라면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 드리지도 않았겠지."
움찔-
"..도대체..뭐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말했잖아, 마녀라고, 흠.. 그래도 적어도 너가 사실대로 선생님한테 실토하다가 도리어 꼬리 잡혔다..까지는 알고 있어."
"..뭐야 다 알고 있는거잖아 그럼.."
"..."
"..맞아 그리고 더 최악인 건 지금 우리반 담임선생님이 그 선생님이고, 나한테 그러더라 이 일은 아무한테도 말 안할테니 대신 내 말을 잘 들으라고, 아니면 방금 했던 얘기 그대로 부모님께 전부 알린다고..웃기지? 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 까발린거지?"
"도움이 필요해서였겠지"
다시 한번 내 몸은 움찔거렸다.
"..정말 맞는 말만 해대네..아, 그리고 갑자기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런데 혹시 몇살이야?"
"왜?"
"아니 그냥.."
"음..18살?"
"헉..언니..였네?"
갑자기 반말했던 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뭘 - 새삼스레..그냥 반말해줘, 그게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해."
소녀는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얼굴을 보며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됬다.
"끙..그럼 이름이 뭐야?"
"그건 안 가르쳐줘."
"..응? 어째서?"
"그건 비밀이거든."
"..허"
이름이 비밀이라니..어이가 없었다.(자기 이름 알려주면 지구 멸망하나? 나 참.)
"그나저나 동생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건가요?"
"아! 난 댁이랑 다르게 이름 있거든?! 동생님이 아니라 -..아차! 우리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응?"
"우리 아까부터 쭉 지하철 입구에서 너무 소란스럽게 있었잖아!! 까닥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으로 신고 당할지도 몰라.."
"이제 와서?"
"아무튼! 우선 자리부터 피하고 얘기..아?"
"몇 번이고 말했잖아? 난 마녀라고.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자."
주위를 둘러보니 놀랍게도 우리가 있는 장소는 지하철 입구가 아닌 한강다리 한 가운데에 앉아있었다.
"이..이게 말이 돼?!"
"말이 안될까?"
"서..설마..그럼-혹시 내 과거를 알아챈 것도.."
"네가 생각한대로야. 손을 잡으면 그 사람의 과거를 어느정도 볼 수 있거든."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정말 내 눈앞에 있는 존재는 정말 마녀 아니 그 이상이란 말인가? 나도 모르게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아, 그래도 그건 못 도와줄 것 같아. 아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도 안 도와줄거지만~ 그건 너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거든."
"무..무슨"
"사과하고 싶잖아?"
"...?"
그 말을 이해하기 까지 몇초가 걸렸다.
"데려다 줄게 닻별이가 사는 곳"
"..."
"...."
"....."
"........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