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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2화. 결심
작성일 : 18-12-05 21:00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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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는 소속사에 들어갈 때 몇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영화를 선택하는 건 오로지 그의 몫이고 일체의 방송 출연은 하지 않는다. 광고나 잡지 촬영도 인터뷰 없는 조건으로 하고 파파라치를 정리하는 데 가장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소속 배우를 먼저 배려해주기로 유명한 기획사는 그의 영입으로 엄청난 주가 상승을 기록했고 그의 요구 조건을 다 승낙했다.

 

  개인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지만 영화 시사회까지 안 나타날 순 없었다. 같이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그에게 질문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질문은 사전에 협의되어 있는 부분들이지만 그래도 주목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직전 영화가 흥행 부분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예술적인 부분에서 찬사를 받았지 않습니까?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오락성이 짙고 소비성이 강한데, 부담감은 없었습니까? 」

 

  입을 떼기 전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마이크를 조금 더 가까이에 댔다.

 

  「 세상에 모든 사람이 존재의 이유가 있듯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들, 시나리오 작가님, 카메라 감독님들, 수많은 스태프 분들과 그리고 배우들 모두 그 영화의 사명감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시거든요. 」

 

  묵직한 목소리가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끝내서 다행이라고 한숨을 돌릴 때 기자가 입술을 뗐다.

 

  「 영화배우로서의 삶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네요, 도진 씨. 」

 

  기자의 목소리는 아주 다정해서 칭찬이라 느꼈겠지만,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서늘했다. 그 눈을 본 사람은 오로지 마주보고 있는 도진뿐이었다. 도진은 흔들림을 꾹 참아내고 웃었다.

 

  「 그럼요. 이렇게 좋으신 분들과 함께하는 걸요. 」

  「 얘는, 창피하게. 」

 

  감독의 너스레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도진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손을 허벅지로 내렸다. 꾹 쥔 주먹의 손톱이 손을 파고들었다. 기자가 던진 가시가 제 살에 박힌 것처럼 아팠다.

 

  그가 대외적인 자리를 피하거나 불편해하는 건 단순히 말을 잘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깊은 속내를 가지고 있으나 낯을 가려 말수가 적은 배우 류 도진 또한, 그가 해야 하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002

 

 

 

  도진은 욕실의 벽을 짚고 꾹꾹 발로 이불을 밟았다. 폭신폭신한 이불은 숨이 죽어 푹 가라앉아있었다.

 

  “다 됐어?”

 

  분주하게 움직이던 해가 문 앞에 잠시 멈춰 서 그에게 물었다.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걸리적거려 묶은 앞머리가 흔들렸다.

 

  오랜만에 도진이 쉬는 날은 겨울맞이 대청소의 날이었다. 꾸깃꾸깃 말린 이불을 꺼내 양쪽 끝을 두 사람이 각자 잡고서 빙글빙글 돌려 꾹꾹 짜냈다. 물기가 거의 떨어지지 않자 도진이 이불을 겹쳐 들고는 테라스로 뛰었다.

 

  늦가을의 햇살은 아직 초여름의 것인 양 작열하고 있어 금방이라도 이불의 물기를 다 흡수할 것 같았다. 깨끗하게 널어놓은 이불을 보니 괜스레 뿌듯했다.

 

  도진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도 없는 푸름은 몇 번이나 덧바른 코발트색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아, 차가워.”

 

  갑작스럽게 머리에 닿는 시원함에 도진이 몸을 웅크렸다. 고슴도치 같은 얼굴로 도진이 고개를 빼꼼 빼서 들었다. 장난을 쳐놓고도 해는 뚱한 표정이었다. 초록 빛깔이 너울질 치는 물을 내밀었다. 도진이 한 컵을 싹 비웠다.

 

  세상에 이보다 더 달콤한 물이 있을까. 도진은 입에 컵을 물고서는 쌍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해가 재빨리 컵을 잡았다.

 

  “그러다 컵 깨려고.”

  “치. 내가 꽉 물고 있었는데.”

 

  입술을 쭉 빼고 툴툴거리는 도진의 옆에 해가 쪼그려 앉았다. 머리 위로 사륵사륵 스치는 바람에는 이불의 섬유 유연제 향이 잔뜩 묻어났다. 도진은 눈부신 풍경보다도 그녀에게 눈을 뺏겼다.

 

  어깨에 닿을랑 말랑 짧은 머리가 쌀랑한 바람결에 나부꼈다. 말린 꽃잎의 색을 품은 입술에 새하얀 얼굴은 가녀린 느낌을 자아냈다.

 

  그러나 옅은 눈썹 아래 속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동자는 어떠한 순진무구함이나 귀여움 대신에 강단으로 뭉쳐 있었다. 한참 앞을 바라보던 해가 조금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감자전이나 해 먹을까.”

 

  그녀가 저린 다리를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완전 좋아! 엄청 좋아. 짱 좋아.”

 

  집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따라 옅은 무지개가 떠오르는 풍경을 외면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성가신다는 이유로 부엌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도진은 거실에서 그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대본을 펼쳐 들었다. 대본 몇 줄 읽고 힐끗 몰래 봤다가 다시 몇 줄을 읽고의 반복이었다.

 

  “그거 다 읽으면 감자전 줄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도 그녀는 상황을 파악했다. 힐끗 쳐다보니 이제야 의욕에 찬 표정으로 안경을 치켜 올리는 게 보였다. 까만색 커다란 뿔테 안경에 부스스해서 질끈 묶어 놓은 사과 머리까지, 누가 그를 배우 류 도진이라고 믿을까.

 

  산만하지만 순간 집중력이 뛰어난 성격은 연기에도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그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금방 적응하고 푹 빠져들었다.

 

  착, 착, 넘기는 손은 빨랐지만 눈은 정확하게 읽어냈다. 마지막 장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낸 그의 눈동자는 순수한 열망에 젖어있었다.

 

 “다 읽었어!”

 

  금세 쪼르르 식탁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그녀는 프라이팬에서 감자전을 그릇에 담아왔다.

 

  “우와, 맛있어. 막 입에서 녹는다, 녹아.”

  “천천히 먹어.”

  “응응.”

 

  도진은 잔뜩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다람쥐 같은 모양새였다. 따끈따끈한 감자전에 맛있는 양념장까지. 해의 음식 솜씨는 60대의 할머니처럼 어딘가 친숙하고 또 그리운 맛이었다.

 

  그릇 가득히 있던 감자전을 다 먹고 도진이 포만감을 행복처럼 채운 얼굴로 식탁에 엎드렸다.

 

  “시나리오는 어땠어?”

 

  그릇을 씻는 해를 바라보며 도진은 음, 하고 말을 흐렸다.

 

  “남자는 검을 다루는 사람이었는데 한 쪽 눈이 안 보여. 옛날에 전투에서 눈을 베여가지고. 이제는 조용히 대장장이로 살아가는데 죽을 뻔한 남자아이를 구해주려고 검을 쓴 거야. 근데 그 남자아이가 알고 보니 궁의 세자인 거지. 연약하고 위험한 세자. 그 세자네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진은 파워레인저라도 이야기하는 아이마냥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달그락하고 그릇이 부딪히고 물이 쏴악 쏟아지는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말이 다 끝나고 조금 숨이 찬 지 몰아서 숨을 뱉어내는 도진에게 해가 물을 건넸다.

 

  “재밌을 것 같은데.”

  “진짜?”

  “응. 사극은 안 해봤잖아.”

  “지방 촬영이 많잖아.”

 

  소속사에서 그에게 영화 선택권을 철저히 다 넘겨준 건, 뛰어난 안목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아주 단순했다. 지방 촬영이 많은 것은 피했고 촬영 기간이 긴 것도 싫어했다.

 

  첫 영화에서도 주연을 차지했던 그가 두 번째 영화에서 조연을 한 건 주연의 촬영 시간이 무던히도 길었기 때문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하면 잘 어울릴 거야.”

  “진짜?”

 

  해는 그를 다루는 법을 안다. 이럴 때는 채찍보다 당근을. 시나리오 자체는 마음에 든 게 분명한데 그는 늘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었다.

 

  그의 선택을 확정 짓는 건 해의 의견이었다. 빈말하지 않는 그녀의 말을 굳건히 믿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봐. 세계가 넓어지는 건 좋은 거잖아.”

 

  도진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본을 꾹 쥐었다. 여섯 권의 대본 중 다섯 권은 같은 장르였다. 그가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지킬 다짐한 것이 있다.

 

  ‘로맨스는 하지 않는다.’

 

  그는 데뷔 5년 동안 5편의 작품을 했고 단 한 번도 상대 여자배우가 없었다. 배우의 세계에 한계를 가져올지라도, 오래전의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해야.”

 

  그녀가 고갤 돌렸다. 투명한 연갈색의 동공 가득히 자신이 차올랐다. 그는 순간 말을 잃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이 아름다움 앞에. 수만 번을 봤는데도 자신을 사로잡는, 이 사랑스러움 앞에.

 

  “응. 왜?”

  “……."

  “류 도진. 왜?”

  “예뻐서.”

 

  해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떫은 감을 먹은 아이처럼. 그 모습에 그가 푸핫,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진짜 징그러웠어.”

 

  닭살 돋은 팔을 문지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웃음기가 배인 얼굴로 졸졸 쫓아갔다.

 

  “왜애, 해야, 우리 해야, 예쁜 해야.”

  “들어오지 마.”

 

  닫힌 문 앞에서 쿵쿵 두들겨도 열리지 않자 방문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해야, 해야.”하고 노래를 불렀다.

 

  문이 홱 당겨지며 몸이 뒤로 넘어간 건 한순간이었다. 쿵 하고 머리를 찧었다. 고통스러워하기도 전에 자신의 뒤통수를 문지르는 그녀의 작은 손바닥에 그는 눈을 떴다.

 

  “내가 문에 머리 대고 있지 말라고 했지.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애도 아니고! 너 이러다 다음에 크게 다치면 어떡하려고, 진짜.”

 

  좀처럼 음폭의 변화가 없는 해의 목소리가 격앙되고 빨라지는 건 오로지 잔소리할 때뿐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에게 화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도진이 배시시 웃었다.

 

 “지금 웃을 때야? 머리에 혹 생기는 거 아냐?”

 

  엄한 목소리에 화나서 잔뜩 찡그려진 눈썹과 달리 뒤통수를 매만지는 손은 한없이 다정해 그는 웃음이 났다.

 

  모든 연기를 다 할 수 있지만,

  그녀 말고는 누구를 사랑하는 연기는 할 수 없다는 걸, 도진은 아주 현명하게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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