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부 요코와의 약속

　“룰이 한국 남자 만나지 마라에요? 유치하다...”

　“일에 방해 될까봐 막아, 사실 그렇게 돼버렸고...”

　“일요? 로켓맨 헌트요?”

　수복이 하던 말이 떠올라서, 농담 삼아 던졌다.

　“작전명 로켓맨 헌트 맞아.”“예?”

　담담하게 인정하는 요코의 대답에 당황스러웠다. 요코는 입가에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프로젝트를 시게이가 추진하는 중이야,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시게이는 주로 나와 의논을 하곤 했어, 그에게는 중요한 작전이야, 성공하면 본국에서 지위가 보장 되거든...”

　“김정은 암살 맞아요?”

　“응, 암살하든 못하든 상관없지, 한반도를 분란에 빠트리는 게 목적이니까, 자세한 내용은 말해 줄 수 없어, 이해하지?”

　“알아도 힘이 있나요, 그래도 막고 싶어요. 김정은이 언제 오더라....”

　“삼일절 전날 기차로 온데, 삼일절 기념식 행사에서 참석하는 공식 일정이 잡혀있어.”

　“김정은을 암살한다... 어마 무시한 일이네요.”

　“대단한 일이고,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어... 아마도 성공하지 않을까?”

　“그럼... 막아야지...”

　“여기까지, 재미없다...”

　“꼭, 반드시 막아야지요.”

　다짐하느라 발음에 힘을 주었다. 요코는 대화를 멈추고 유리창 밖을 보았다. 아름다운 요코와 반대 입장에 서 있다는 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요코는 시선을 밖으로 하느라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옆얼굴 선이 매력적으로 흘러내렸다.

　“어떻게 알고 왔지... 아, 카드로 결제했구나.....”

　“뭐가요?”

　“커피값을 카드로 결제 했더니, 출동했네...”

　요코의 시선을 따라갔더니, 거리에 까만 승용차들이 주차하고 있었다. 다섯 대가 일렬로 차를 세우고, 검정 양복의 사내들이 차에서 내렸다.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 살벌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피했다. 양복 사내들 카페 건물을 둘러보고 섰다. 시게이가 맨 뒤차에서 내렸다. 양복들 사이를 지나 카페로 들어왔다.

　“피하자, 날 믿지?”

　“당연하지요, 짐이 돼서 미안해요...”

　위기 때마다 짐이 되는 게 미안하고 싫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요코는 의자를 들어 유리창에 던졌다. 쾅! 유리창은 멀쩡하고 의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3층에 있던 손님들 비명을 질렀다.

　“생각보다 단단하네, 얍!”

　요코가 테이블을 들어 유리창에 던졌다. 유리창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나 돌이 의자를 힘껏 던졌다.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손님들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아래층에서도 비명 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요코가 2층에서 올라오는 계단으로 의자를 던졌다. 앞에 오던 양복이 의자를 맞고 뒤로 쓰러졌다. 양복들 주춤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빨리, 올라가라!”

　시게이가 외쳤다. 요코가 깨진 유리창 밖을 내다 보다, 나 돌의 허리를 잡았다. 나 돌은 가능하면 가볍게 느껴지라고 몸에 힘을 뺐다. 요코가 붕, 하고 뛰어올라 전깃줄을 잡았다. 전깃줄을 잡은 손을 놓으면서 맞은편 건물 2층 실외 계단에 떨어졌다. 거리에 있던 양복들 건물로 올라 왔다. 요코가 올라오는 양복들을 발로 찼다. 양복들 올라오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시게이가 카페 건물에서 나왔다.

　“요코, 그만해! 더 이상은 용서 안 한다!”

　“용서? 개나 줘라, 쥐 새끼마냥 따라다니지 말고 꺼져!”

　“잡아라, 살살 다뤄라!”

　양복들 품에서 두자 길이의 사시미 칼을 꺼내고, 요코가 서있는 계단으로 올랐다.

　“내가 막고 있을 거니까, 위로 올라가서 피해, 더 이상은 무리야, 내 걱정은 말고 빨리 가!”

　“같이 있을게요, 미안.....”

　“잡히면 죽어, 내가 벌 수 있는 시간은 잠깐이야, 빨리!”

　“요코랑 있을 거에요...”

　더 이상 요코랑 있기는 힘들었다. 죽기를 각오하면 죽음뿐이었다. 요코가 손을 내밀었다.

　“약속, 항상 내 곁에 있을 거라고, 깊은 관계, 약속!”

　요코는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요코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으며 웃었다.

　“지금은 피해, 그러고 약속 잊지 마, 우린 깊은 관계라는 약속!”

　요코가 잡은 나 돌의 손등에 뽀뽀를 했다. 나 돌은 입술을 깨물고 돌아섰다.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요코, 사랑해도 돼죠? 제가 잘 때 코를 쫌 많이 골아요, 그럴 때는 깨워서 골지 말라고 하세요, 그럼 코 안 골고 잘 수 있어요, 사랑해요, 영원히 사랑하기로 해요.”

　“미투, 코를 콱 막을 거야, 빨리 가, 빨리!”

　요코가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양복을 발로 차면서 외쳤다. 돌아서 뛰었다. 3층 건물의 옥상에 올랐다. 옆에 건물 옥상까지는 거리가 가까웠다. 뒤로 물렀다 앞으로 뛰어 건물을 건넜다. 밑을 내려 보았다. 요코가 계단을 올라오는 양복의 칼을 피하고, 손목을 잡아 비틀고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며 양복들을 찔렀다.

　“저기 있다, 잡아라!”

　시게이가 나 돌을 발견하고 외쳤다. 옆 건물은 5층이었다. 뒤 쪽 건물은 너무 멀었다. 요코가 전깃줄을 잡았던 걸 떠올렸다. 옥상에 있는 전깃줄과 뒤 건물 사이에 굵은 전기 줄이 연결 되어 있었다.

　“할 수 있겠지.....”

　전 같으면 어림도 없었지만, 수복이 몸을 치료하고 난 후에는 가벼웠다. 전깃줄을 흔들어 튼튼하게 연결 되었는지는 확인했다. 전깃줄을 잡고 발을 구르면서 옆으로 이동했다. 손목의 힘이 강해졌는지, 몸무게가 가벼워졌는지 구분을 할 수 없었지만, 왼손, 오른손을 앞뒤로 바꾸면서 뒤 건물 쪽으로 옮겼다. 나 돌이 있던 건물 옥상에서 소리가 들렸다.

　“에라, 얍!”

　짧게 뱉으며, 뒤 건물 2층 철 계단으로 뛰었다. 계단 난간에 발이 걸리면서 건물에 머리를 부딪치며 계단을 굴렀다. 양복들이 옥상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몸을 건물 안으로 숨겼다.

　“어디 있는지 잘 뒤져!”

　명령에 대답하고 움직이는 기척이 들렸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 발의 통증이 온 몸에 퍼졌다.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고 일어나 앉았다. 색이 바랜 계단실과 실내로 통화는 입구에 앉아 있었다. 양복들에게 들키면 끝장이었다. 기어서 문을 열었다. 사무실 건물이었고, 밤이 늦어 복도는 어둠만 가득 찼다. 이비인후과, 치과, 성형외과 간판이 붙어 있었다.

　“어휴, 미치겠다...”

　다리 통증에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켰다. 수복의 통화 기록이 여러 개 떴다. 문자도 저장되어 있었다.

　“미안해 수복아....”

　수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형 어디야, 나 원서공원이야, 연락해..... 아빠랑 엄마랑 싸워, 엄마가 한 잔 했거든....”

　계단 벽에 걸린 우편함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수복의 번호를 눌러 문자로 사진을 전송하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응, 다쳤어 쫌 많이...... 올 수 있지? 그 놈들이 날 찾고 있어 꼼짝도 못해, 조심해...미안!”

　수복과의 통화는 짧게 끝났다. 수복은 한달음에 온다고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리의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요코.....”

　요코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엉덩이 걸음으로 건물 뒤 외부 비상계단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기어서 밖으로 나갔다. 철 계단의 차가움이 손에 전해지면서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귀를 곧추세웠다.

　“그만하고 항복하시지, 더 이상은 안 봐준다!”

　시게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여자들이 놀라서 지르는 앙칼진 비명소리가 섞여 들렸다.

　“누가 할 소리를, 설치는 놈은 죽는다!”

　요코의 은은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았다.

　“요코, 요코!”

　살아 있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복잡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요코를 불렀다.

　“빨리 잡아와라, 뒤쪽에서 들렸다.”

　시게이가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코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신경만 쓰이게 만들었다는 자책이 들었다.

　“여기 있다 시게이, 더 이상 요코를 괴롭히지 마라, 쫍밥아!”

　시게이를 도발하면서 속이 시원해졌다. 양복들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건물 일층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건물입구는 방화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철 계단은 몸을 숨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문을 열고 기어서 들어갔다. 어둑한 복도 귀퉁이에 화장실이 보였다. 여자 화장실로 기어 들어갔다. 청소 도구가 보관 된 문을 열고 안에서 잠그고 다리를 오므렸다.

　“으..... 미쳐....”

　신음을 토했다. 쨔르르!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자국 소리에 숨을 죽였다. 화장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용품 보관 창고 문을 움켜잡았다. 문을 열려고 잡아당기다, 안에서 잠근 걸 확인한 양복이 외쳤다.

　“여기 있다, 야, 나와!”

　양복은 확신에 차서 외쳤다. 문을 움켜잡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로차고 두드렸다. 그러더니 문 위로 올라왔다. 시게이 부하인 사각형이 위에서 내려 보았다.

　“여기 있다, 넌 죽었어!”

　“여기 있으면 어쩔래!”

　잡았던 손잡이를 힘껏 밀쳤다. 사각형이 문에 걸려, 어, 어, 비명을 질렀다.

　 2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