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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귀(惡鬼)
작가 : 하형
작품등록일 : 2018.12.5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해, 사람들은 그 날을 '해가 타락한 날'이라고 기억했다. 세상은 혼돈에 휩싸였고, 난생 처음보는 악귀들이 대지를 점령하고 시작하는데...
한 편, 부유한 가정에 자라 기사단에 입단했던 파사르는 해가 타락하며 생겨난 의문의 질병에 걸려버린 어머니에 의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어머니마저 직접 죽여야 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파사르는 그 날 이후로 질병에 걸린 '비어있는 자'들과 '악귀'들의 몰살하는 데 온 생을 바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인간들의 모든 대지를 빼앗겨 버린 후, 마지막 남은 도시이자 천연의 요새 '테라피노'에서의 최후의 항쟁을 이어가던 인간들에게 그간 자취를 감추던 신이 나타나는데...

 
5화
작성일 : 18-12-05 09:01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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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르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왈츠를 추는 부모님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았던 모습이었다.

 부모님은 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 왈츠라고 자부하셨고, 무도회가 다가올 날이면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시며 동작을 맞추시곤 했다.

 하지만 지금 두 분이 서로를 끌어안고 추고 있는 춤은 왈츠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슬프고 비극적이었다─아버지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바닥을 끌려 다니고 있었고, 어머니는 맥없이 뒤로 넘어가려 하는 아버지의 겨드랑이를 단단히 받쳤는데, 그런 둘의 몸은 하나의 칼날로 연결되어 있었다.

 파사르는 어머니의 등을 파고들어 아버지의 등을 뚫고 나온 롱 소드의 폼멜(도검의 자루 하단부에 있는 장식, 칼이 손에서 빠지지 않게 하는 걸림턱 역할 또는 무게추 역할을 한다)에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유난히 달빛에 번쩍이는 폼멜에는 아름다운 은색 장미가 새겨져 있었다.

 영혼을 잃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자식마저 죽인 어머니를 발견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을 터였다.

 파사르는 죽음을 각오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껴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아……”

 

 탄식이 세어 나오려 하자, 파사르는 일부로 숨기려 들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흙 위를 사뿐히 거닐던 발소리가 멈추었다.

 파사르는 눈동자가 뒤집어진 어머니의 흰자위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걸 느꼈다.

 

 “파사르? 파사르, 너니?”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바이저(투구의 얼굴가리개)를 내렸다.

 광인이 되었을 어머니의 민낯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그는 아버지가 마무리 짓지 못한, ‘비어있는 자’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죽여야 했다.

 파사르는 롱 소드의 날 끝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피곤함과 스트레스에 끊임없이 괴롭힘 당한 탓인지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이루어지지 않을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이대로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벤투라 영주님의 직속기사단으로써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당신은 지금 일가족 살해사건의 용의자이며, ‘비어있는 자’로 확인되었습니다.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마시고 손을 뒷목에 가져다 대십시오.”

 

 파사르는 철투구 안에 숨어 어머니에게 명령문의 어조로 소리쳤다.

 

 “예? 그게 무슨 소리시죠? 저희 애들은 집에 잘 있을 텐데요.”

 

 어머니의 대답에 파사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릴 뻔 했다.

 기괴하게 까닥거리는 목뼈와 눈깔이 뒤집힌 어머니의 입과 코에서, 그녀가 말 할 때마다 적지 않은 핏물을 토해내는 탓이었다.

 파사르는 정신을 다잡았다.

 ‘비어있는 자’가 되어버렸다면, 그건 가족이 아닌 미치광이라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부인, 움직이지 마십시오.”

 “잠시만요. 제 몸이 좀 불편해서……”

 

 일순간이었다.

 등과 배를 꿰뚫고 있는 롱 소드에 팔이 닿지 않자 어머니는 척추를 부러뜨리는 경악스러운 방법을 택했다.

 옅은 초록빛깔의 실크로 수놓아진 드레스의 긴 소매가 날개처럼 펄럭이자, 파사르는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에 숨을 멈추었다.

 젖혀진 그녀의 머리가 만약 폼멜에 가로막히지 않았다면 종아리에 닿았을 정도였으나, 전혀 고통스러운 기색을 내비추지 않았다.

 잠시 후 바닥을 덮고 있던 붉은 와인색 머리칼이 찰랑였다.

 

 “아, 드디어 잡혔네요.”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어머니는 젖힌 몸을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허리에서는 또다시 우드득하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롱 소드의 칼날이 아버지의 등과 배를 타고 그녀의 등허리를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어머니의 붉은 머리카락 색과 어울리는 시뻘건 피가 칼날을 따라 반달을 그렸다.

 

 “어라라? 몸이 조금 불편하네요. 이 이도 많이 피곤했나 봐요. 이렇게 잠들어버리다니, 참.”

 

 그녀는 모조리 부러진 척추 때문인지 이상한 모양새로 뒤틀리는 허리를 매만지며, 흙더미 위로 쓰러져 있는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치켜 뜬 흰자위 위로 잔뜩 날이 선 핏줄들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던 그녀는 롱 소드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말릴 새도 없이 장미 문양의 폼멜이 아버지의 얼굴을 강타했다.

 거친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한 번, 두 번, 세 번……

 폼멜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뼈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지고, 은색의 강철 장미는 어느새 빨간 피로 물들어 갓 개화한 장미처럼 변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안면 전체가 마늘처럼 빻아지고 나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영혼을 빼앗긴 그녀의 몸은 피와 광기로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사람이 아닌 짐승 자체가 되어버린 어머니는 아버지의 살점들에 코를 박고 게걸스럽게 턱을 움직였다

 .

 “영주의 권한을 이임 받은 직속기사단의 일원으로써, 국왕 팔토 3세와 영주 로즈란의 드높은 명예를 걸고 그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망설임은 없었다.

 파사르는 살점들을 파먹느라 정신이 없는 어머니의 목을 노리고 롱 소드를 수직으로 그었다.

 단칼이었다.

 깔끔하게 잘려진 단면 위로 피가 치솟고, 어머니의 머리는 잡초 위를 나뒹굴었다.

 파사르는 그제야 바이저를 들어올렸다.

 철투구에 가려져 있던 좁은 시야가 탁 트이자 숨구멍이 뚫린 듯 서늘한 공기가 입과 콧속을 타고 몸 안에 퍼졌다.

 어째선지 어머니의 목을 직접 베었는데도 슬프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무뎌진 것인지, 사라져 버린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파사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데도 그와 별개로 마음속에선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에 계실 신이시여, 저는 오늘 가족 모두를 잃었습니다. 시련을 주신다는 건 제게 바라는 바가 있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이시여,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모든 것을 앗아갈 정도로 제 운명은 막중한 것입니까? 부디 길을 알려주십시오. 어둠에 갇혀 헤매지 않도록 빛을 내려주십시오.”

 

 마지막이었다. 이젠 모든 것을 불태워야 했다.

 파사르는 아버지, 어머니, 프레시오, 솔라의 시체들을 거실 한 가운데 모아 뉘였다.

 심장에 칼을 찔러 넣는 조의는 행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고통을 느끼며 죽었기 때문이었다.

 파사르는 그들 주위로 벽난로를 지필 때 사용하는 장작들을 쌓고, 등유를 골고루 뿌렸다.

 

 “평온의 도시에서 다시 만나기를.”

 

 파사르는 자신의 검이 아닌 아버지의 롱 소드를 챙겼다.

 '검'은 기사의 의지다.

 주인의 죽음과 함께 매장되는 게 당연했지만, 그 죽음이 석연치 않다거나 올바르지 않았다면 다른 이가 물려받아 그의 명예를 되찾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기사라는 신분을 가지고 ‘비어있는 자’가 되어버린 어머니와 자살을 택했다.

 기사란 복종을 약속한 주인의 검이다.

 그들에게 허락 된 죽음은 전쟁에서의 죽음과 자연의 섭리로 찾아오는 죽음뿐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자결을 했다는 건 기사가 가진 위상을 더럽히고 모욕하는 행위였다.

 파사르는 그런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아주어야 했다.

 

 파사르는 성냥개비에 불을 붙여 장작더미에 던졌다.

 등유에 적셔진 나무가 먼저 불꽃에 타오르고, 곧이어 네 명의 시체에 옮겨 붙었다.

 파사르는 가족들이 화염에 휩싸이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에야 유유히 집 안을 빠져나왔다.

 눈과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시커먼 연기들이 더욱이 시커먼 하늘 위로 솟구쳤다.

 현관문을 통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화재를 경고하는 종소리가 벌써 거리를 울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뒤돌아 본 집은 축제에서나 볼 법한,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대한 모닥불과 닮아있었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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