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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귀(惡鬼)
작가 : 하형
작품등록일 : 2018.12.5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해, 사람들은 그 날을 '해가 타락한 날'이라고 기억했다. 세상은 혼돈에 휩싸였고, 난생 처음보는 악귀들이 대지를 점령하고 시작하는데...
한 편, 부유한 가정에 자라 기사단에 입단했던 파사르는 해가 타락하며 생겨난 의문의 질병에 걸려버린 어머니에 의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어머니마저 직접 죽여야 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파사르는 그 날 이후로 질병에 걸린 '비어있는 자'들과 '악귀'들의 몰살하는 데 온 생을 바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인간들의 모든 대지를 빼앗겨 버린 후, 마지막 남은 도시이자 천연의 요새 '테라피노'에서의 최후의 항쟁을 이어가던 인간들에게 그간 자취를 감추던 신이 나타나는데...

 
4화
작성일 : 18-12-05 09:00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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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오 오빠는…… 어때? 많이 아파했었어.”

 “……프레시오는 괜찮아. 지금은 잠깐 잠들어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다행이야, 정말. 늦었지만 오빠를 볼 수 있어서 기뻐.”

 “쉬잇. 괜찮아, 오빠가 금방 치료해줄게.”

 

 파사르는 솔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솔라의 배에 박힌 식칼은 손잡이 어귀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직감적으로 살릴 수 없는 지경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죽어 가는 동생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병원들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니, 서툴긴 해도 의료지식을 가진 위생병들이 있는 위병대 막사로 데려가야 했다.

 

 “아니야, 아니야. 오빠.”

 

 솔라는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하는 파사르의 두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자신을 살리려 노력하는 오빠의 행동이 부질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지금의 슬픈 표정이 아닌, 밝게 웃어주는 오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조금만 참아, 오빠가, 오빠가 치료할 수 있어.”

 “오빠는 옛날부터 거짓말에 서툴렀어. 오빠, 울지 마. 오빠가 울면 나까지 너무 슬퍼지잖아.”

 “아니야!!! 아니야…… 솔라, 아무 말도 하지 마. 오빠가 꼭, 꼭 살려 줄게!”

 “쉬잇, 괜찮아. 괜찮아, 오빠. 난 있지, 오빠들이 웃어 줄 때마다 너무 좋았어. 그 때 기억나? 내가 한 겨울에 벚꽃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오빠들이 거리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치고 다녔었잖아. 눈이 흩날리면 벚꽃과 닮았다고. 동네 어른들이 기껏 바닥을 쓸어놨더니 그새 사고를 쳤다면서 꾸중을 들었었는데…… 오빠들은 실컷 혼이 나면서도 벚꽃보다 더 예쁜 꽃을 봤다고 기뻐하는 날 보면서 웃어줬었지.”

 

 솔라는 “그럼,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는 오빠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파사르는 울음을 참으려하는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솔라가 바라는 표정을 지으려 애써 웃음을 짓기를 반복했다.

 솔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두 갈래로 항상 바보같이 올곧았던 두 오빠는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느 일이라도 해냈다.

 작은오빠는 신음도 내지 못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칼에 찔려 혼자 있을 자신을 다독여주었다.

 그녀가 좋아했던 동화 얘기도 해주었고, 옛날에 있었던 행복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까지 사랑한다고 해주었다. 큰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렇게 못난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부탁에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미안해, 솔라.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어. 못난 오빠를 용서하렴.”

 “고마웠어, 오빠.”

 

 파사르는 다시 한 번 솔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파사르는 울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미소를 지었다.

 솔라는 그런 오빠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오빠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눈을 감았다.

 파사르는 솔리를 처음 만났던 갓난쟁이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추억을 회상했다─봄이면 솔라가 꽃잎을 따 반지와 팔찌 등을 만들어주었다. 여름이면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잡거나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쳤고, 가을이면 그녀를 목마에 태워 잘 익은 열매들을 서리하고 다녔었다.

 그녀가 싫어했던 겨울엔, 프레시오와 함께 집 주변에 눈사람들을 잔뜩 만들어 우스꽝스러운 인형극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파사르는 조금이라도 더, 잠깐이라도 더 시간을 내어 그녀와 함께하지 못했을 까하는 후회에 잠겼다.

 

 “혹시 하늘에 계실 신이시여, 부디 제 어린 여동생을 가엾이 여기어 평온의 도시로 이끌어주십시오.”

 

 파스르는 솔라가 숨을 거둔 후에야 그녀의 배에 박힌 식칼을 천천히 빼내었다.

 아직 따뜻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죽은 솔라의 시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파사르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프레시오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영혼이 행여 고통을 느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혼들은 생전의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미세하게 공유한다고 배웠다.

 의아하게도 그 때가 아니면 더 이상 감각이란 것을 느끼지 못할 테니, 떠나는 이를 향한 마지막 인사치례라는 것이었다.

 죽은 이의 심장에 깨끗한 물로 씻은 단도를 찔렀다 빼며 조의를 기리는 풍습들도 ‘당신이 한 때나마 살아있었다는 걸 잊지 마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행위였다.

 

 파사르는 솔라의 몸을 안아 올려 프레시오의 옆에 눕혀 주었다.

 그녀는 반듯이 누워 자는 걸 좋아했지만, 오빠들과 잘 때면 품 안에 파고들길 선호했었다.

 파사르는 얌전히 잠든 남동생의 품 안에 얼굴을 파묻은 막냇동생의 모습을 재현해주었다.

 그는 이제 저 멀리로 떠나가고 있을 두 동생이 영원한 평온에 닿기를 다시 한 번 기도했다.

 파사르는 정신을 가다듬고 얼마 남지 않은 성냥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가 유추하기를, 아버지도 아마 상황이 이렇게 된 후에야 도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식들도 아끼고 사랑했지만,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만일 어머니가 정신을 놓기 전이나 혹은 직전에 집에 도착했더라면, 아버지는 망설이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죽음을 기도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프레시오 솔라는 무사했었을 것이고.

 

 “아버지, 어머니.”

 

 파사르는 계속해서 신경 쓰이던 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현관에서부터 그를 맞이했던 차가운 바람이었다.

 어머니는 추위에 약하셨다.

 가을,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에도 불볕더위가 내리쬐지 않는 이상 창문을 열어 놓으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런데 집 안 어디에선가 서늘한 공기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었다.

 파사르는 성냥에 의지해 흘러들어오는 바람을 역으로 따라갔다.

 역시나 근원지는 주방이었다.

 솔라를 구하기 위해 계단을 기던 중 얼핏 찬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던 주방엔 뒷마당과 잇는 문 하나가 있었는데─뒷마당에는 식료품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땅을 파 만든 팬트리(일종의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오가기 편하도록 주방에 별도의 문 하나를 만든 것이었다.

 

 주방에 들어가기 전, 바람 덕에 쉽게 꺼져 버린 성냥개비를 새 것으로 교체했다.

 이제 성냥갑은 텅텅 비어있었다.

 마지막 남은 성냥이니 파사르는 얇은 막대기가 부러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해했다. 다행히도 불은 번쩍였고, 성냥의 짧은 생명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주방 안을 살폈다.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는지 절인 생선과 빵, 치즈와 채소들이 식탁 위에 놓아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음식들이 전혀 잘라지지 않았고 식탁 위에도 나이프나 포크 같은 식기구들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만일을 대비해 프레시오 혹은 어머니 본인이 날카로워 보이는 것들을 숨겨두고 사용하지 않았으리라.

 

 파사르는 바람이 관통하고 있는, 뒷마당과 연결 된 문으로 향했다.

 가까이서보니 문은 열린 게 아니라 경첩채로 떼어져 쓰러져있었다.

 딱히 내려친 흔적도 보이지 않고, 이런 경우는 대게 갑작스레 쏠린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것이었다.

 

 “후훗, 여보. 이렇게 췄다간 올 여름에 있을 무도회에 참가하지 못한다구요.”

 

 하프의 연주처럼 곱고 청아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이 넓은 도시 내에서 목소리만으로도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어머니뿐이었다.

 파사르는 쓰러진 문이 남긴 공허한 사각의 틈새로 바깥을 살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고, 대지에 얼어붙지 않은 새하얀 서리를 내렸다.

 그리고 파사르는 달이 만들어 준 조명 아래서 왈츠를 추고 있는 남녀를 보았다.

 연주되진 않았지만, 상상속의 사중주에 맞추어 남녀는 나비처럼 사뿐히 스텝을 밟고 있었다.

 느리면서도 빠르게,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게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돌기도 하고, 허리를 꺾어 얼굴을 쓰다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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