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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귀(惡鬼)
작가 : 하형
작품등록일 : 2018.12.5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해, 사람들은 그 날을 '해가 타락한 날'이라고 기억했다. 세상은 혼돈에 휩싸였고, 난생 처음보는 악귀들이 대지를 점령하고 시작하는데...
한 편, 부유한 가정에 자라 기사단에 입단했던 파사르는 해가 타락하며 생겨난 의문의 질병에 걸려버린 어머니에 의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어머니마저 직접 죽여야 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파사르는 그 날 이후로 질병에 걸린 '비어있는 자'들과 '악귀'들의 몰살하는 데 온 생을 바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인간들의 모든 대지를 빼앗겨 버린 후, 마지막 남은 도시이자 천연의 요새 '테라피노'에서의 최후의 항쟁을 이어가던 인간들에게 그간 자취를 감추던 신이 나타나는데...

 
3화
작성일 : 18-12-05 08:59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3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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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어디쯤이었는데.”

 

 파사르는 조심스레 손을 더듬거려 벽을 훑었다. 기억 속 촛대들의 위치를 대강 유추해 행동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위치는 변함이 없었으나, 위에 올려 진 초들은 촛농이 모두 녹아 굳어버린 상태였다.

 파사르는 어쩔 수 없이 촛대 옆에 매달린 성냥 한 갑을 움켜졌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어 불을 붙이기가 마땅치 않으니, 성냥 한 개비를 거꾸로 해 입으로 물었다.

 입과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통에 성냥대가리를 성냥갑에 있는 마찰면에 가져다 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개를 입에서 놓치기도 하고, 힘을 너무 세게 주어 몇 개를 부러뜨리기도 한 끝에 성냥대가리에서 마침내 불꽃이 튀었다.

 

 어둠에 가려졌던 복도가 그를 중심으로 한정적으로나마 환하게 피어올랐다.

 파사르는 작은 불꽃에 의지해 이곳저곳을 살폈다.

 요 며칠 간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작은 서랍장 몇 개와 물병이 올려 져 있는 테이블, 가족의 초상화가 담긴 액자들 위로 먼지들이 살포시 내려 앉아 있었다.

 

 “저건 뭐야?”

 

 복도를 나아가는 동안, 주방으로 향하는 벽면 끝에 걸려있는 웬 커다란 자명종 시계가 파사르의 시야에 흐릿하게 잡혔다.

 불과 몇 주 전에 짤막한 휴가를 받아 들렀을 때만 해도 저런 커다란 자명종이 있는 걸 보지 못했었다……

 혹시 모르니 파사르는 거의 타들어간 성냥개비를 새 것으로 교체한 후, 아직 불꽃이 일렁이는 헌 것을 앞으로 던졌다.

 손을 벗어난 성냥개비는 마지막 남은 제 몸을 불태우며 낮은 포물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불꽃을 끝까지 주시한 파사르는 곧 얼어붙은 듯 숨을 멈추었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그가 봤던 건 자명종 시계가 아닌 사람의 발이었다.

 공포심에 헛것을 봤다고 치부하기에는 열 개의 발가락과 큰 흉터를 지닌 발등이 너무나 선명히 보였다 사라졌기에, 파사르는 벌써부터 흐르려하는 눈물을 애써 참아내었다.

 

 “아, 프레시오……”

 

 파사르는 동생의 이름을 낮게 읊조리며, 방금 보였던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동생의 발등에 난 흉터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 상처를 새긴 것이 본인이었으니 잊을 수도 없었다.

 자신의 10번째 생일까지 이틀 남았을 날에, 아버지의 대거(단도)를 가지고 놀고 싶다는 일념 하에 파사르는 어린 동생을 설득했었다.

 당연히 동생은 안 된다며 단호히 거절했지만, 생일선물 대신이라는 형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아버지는 유난히 검에 눈독 들이는 큰아들을 피해 안방에 있는 장식장 제일 꼭대기에 검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의자에 올라서도 닿지 않는 곳이라 의자, 자신, 프레시오를 잇는 3층탑을 쌓는 위험한 도전을 행했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대실패였다.

 오래 돼 좀먹었던 의자의 다리 한쪽이 부러지면서 균형을 잃고 쓰러졌던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침 동생의 손끝에 닿아있던 대거가 튕기면서 애먼 롱 소드를 건드렸고, 장식장에서 떨어진 롱 소드가 동생의 발을 보기 좋게 가격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칼집에 꽂아져 있는 상태라 발이 두 동강 나진 않았지만, 칼집의 무게까지 고스란히 담긴 무거운 날붙이에 짓눌려 버린 어린 아이의 뼈는 꽤나 심각하게 부서졌고, 큰 흉터를 남기고 말았었다.

 

 “아아, 세상에. 프레시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제발, 제발 눈 좀 떠봐!”

 

 파사르는 가까이서 바라본 동생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굴을 비춰보니 심하게 매질을 당했는지 왼쪽 머리부터 관자놀이 전체가 심한 상처에 피로 떡칠이 되어 있었다.

 누렇게 때가 낀 하얀 히마티온(긴 장방형의 천을 왼쪽 어깨 앞에서 뒤로 걸치고, 오른쪽 어깨나 겨드랑이 아래로 해서 앞을 지나게 만든 후 다시 왼쪽 어깨에 걸치거나 왼팔에 감는 등의 방식으로 입는 의복) 위로 얼굴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핏물이 흥건히 물들어 있었고, 양팔이 마치 벌을 서고 있는 아이마냥 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파사르는 슬퍼하며 분노했다.

 두 손목에 말뚝이 박아버리는 건 죄인에게만 행하는 벌이었다. 순수한 지식을 열망해 학사가 되려 했던 프레시오에게 어울리지 않는 참혹한 죽음이었다.

 파사르는 차갑게 식어버린 동생의 몸을 눕히지도 못하고 그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어주었다.

 

 “프레시오, 동생아. 정말 미안하다. 형이 조금 더 일찍 왔었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

 

 더 이상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프레시오였지만, 파사르는 행여 죽은 동생의 영혼이 아픔을 느낄까 조심스레 말뚝을 감싸 쥐었다.

 살가죽과 생근육들의 생생한 촉감들이 굳게 박혀 있는 말뚝을 통해 전해졌다.

 사람의 가죽을 꿰뚫은 검에서 느껴지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에 파사르는 연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게다가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허옇게 질려 미동도 하지 않는 프레시오의 표정이었다.

 죽어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얼굴 전체에 피를 칠한 것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온순한 표정으로 잠들어 버린 동생은 뭔지 모를 이질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의 시체를 이렇게 방치할 순 없었다.

 파사르는 더 이상 주체 하지 않고 눈을 꾹 감았다. 단번에 말뚝이 뽑아졌다.

 곧이어 뭉개졌던 살점과 피들이 사방으로 튀겨댔고, 프레시오의 축 처진 몸이 어깨 위로 쓰러졌다.

 

 “혹시 하늘에 계실 신이시여, 제 뜻을 피우지 못하고 잠들은 제 동생 프레시오를 부디 평온의 도시로 이끌어 주십시오.”

 

 파사르는 죽음을 기리는 짧은 기도문을 읊었다. 동시에 프레시오의 평소 잠버릇대로 몸을 옆으로 눕히고 두 손을 곱게 포개어 머리맡에 집어넣어주었다.

 이 세계에서 죽음은 잠을 통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떠한 사유로 숨을 거두든 본인이 가장 편안하다 여기는 자세로 죽어야 별 다른 탈 없이 저세상으로 인도된다고 여겼다.

 

 “오, 오빠? 파사르 오빠야?”

 

 예기치 못한 목소리에 파사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힘없이 간결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단번에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솔라?! 솔라, 너 어디 있어?!”

 “나 여기 있어. 계, 계단이야. 나 움, 움직이고 싶은데……몸에 힘이 안 들어가. 얼른, 얼른 와줘. 나 너무 추워, 오빠.”

 “기다려, 오빠가 금방 갈게!”

 

 파사르는 다시 어둠에 삼켜진 복도를 정신없이 내달렸다.

 이미 한 참전에 꺼져버린 성냥을 다시 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복도에 있는 모든 가구들과 장식구들이 그의 갑옷에 부딪쳐 제각각 사방으로 고꾸라졌다.

 넘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뒤통수를 울려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솔라가 살아있었다.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해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데리고 잊을 수 없는 지옥이 되어버린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솔라, 솔라?!”

 

 주방과 거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복도 중간에 위치한 계단에 다다른 파사르는 들개처럼 두 손을 바닥에 대고 계단 하나하나를 더듬거렸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솔라의 가냘픈 신음소리는 선명해졌다.

 파사르의 심장은 불안함에 터질 듯이 요동쳤다.

 

 “오빠, 왜 이제야 온 거야.”

 

 철판 갑옷이 주는 서늘한 한기에 솔라는 그것이 파사르인 것을 눈치 챘다.

 솔라는 애써 덤덤한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복부에 꽂힌 칼날이 숨을 쉴 때마다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렸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미안해, 오빠가 많이 늦었어. 이제 괜찮아, 괜찮아.”

 

  파사르는 재빨리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여 솔라의 상처를 살폈다.

 이미 계단을 더듬는 동안에 피 냄새를 풍기는 옅은 폭포를 느꼈었다.

 그녀가 다쳤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런데도, 파사르는 그녀의 배를 깊게 파고든 칼날에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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