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
 1  2  3  4  5  6  7  8  9  >>
 
자유연재 > 현대물
느루 가는 길
작가 : 윤비꽃
작품등록일 : 2018.12.3

신규 간호사 여 운. 고 삼 수험생 오 늘.
힘들고 외로워도 의지할 곳 없는 원룸, 느루빌.
그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의지하며 사는,
오늘을 여운있게 사는 두 여자의 이야기.

 
1화 - 어느 평범한 날
작성일 : 18-12-04 17:10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593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5월의 마지막 날. 여운은 출근을 하기 전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오늘 같이 일하는 선생님은 여운이 가장 무서워하는 한수연 선생님과 조현아 선생님이었다. 조금이라도 덜 혼나기 위해 항상 들고 다니는 차트판에 꽂아놓은 약물과 해야 할 일들을 달달 외웠고 보호자들한테 설명해야 할 것들도 입에 붙이기 위해 계속 되뇌었다. 이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아는 게 없으니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공부할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무작정 공부만 해오라고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병원에 신규 간호사로 출근한지 4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보람보다는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하나 없는, 세상 제일가는 멍청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잘하자. 제발 잘 하자. 제발. 오늘은 실수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 탈 없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넘기고 올 수 있게 해주세요.’

 여운은 종교는 없었지만 신이 있다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기를 바라며 병원 바로 앞 횡단보도를 건너며 계속 중얼거렸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신은 여운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아직은 이 기도를 들어줄 때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잔뜩 혼이 났다. 사소한 버릇까지 하나하나, 먼지 털듯이 혼났다. 숙제도 몽땅 받았다. 내일도 같이 근무하는 날이어서 완벽하게 해가지 않으면 무조건 혼이 날 것이었다. 여운은 두려웠다. 오늘은 혼내는 수준이었다면 내일은 정말로 자신을 태워 없애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일한지 몇 개월이야?”

 “3개월.. 정도..”

 “너 3월에 들어오지 않았어? 3월, 4월, 5월. 내일이 6월이니까 4개월이네. 근데 아직도 이걸 잘 모르겠어? 도대체 몇 번을 알려줘야 하는데?”

 하지만 가장 두려운 점은 아직 근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자신은 이미 넋이 나갈 정도로 수연에게 혼이 났는데 여운의 근무는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너 이제 독립해야 할 때인데 이것도 못해서 어떡하려고. 너 평생 독립 안 할래? 네 동기들은 액팅 독립하고, 신규들 트레이닝도 시키고, 차지도 다는데 너는 평생 이런 식으로 일 하려고? 너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우리가 어떻게 너한테 믿고 일을 맡겨? 너 믿고 퇴근이나 할 수 있겠어? 너 믿고 일을 시킬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그 말도 지긋지긋하다. 내가 지금 너한테 그 말 들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죄송하다고 하면 끝이야? 맨날 죄송합니다.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고. 너 이러고 집 가서 잊어버리지? 집 가자마자 그냥 자지?”

 “.. 아니요..”

 “근데 왜 그러냐고. 왜 나아지는 게 없냐고. 네가 항상 이러는데 우리가 네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건데.”

 현아의 말에 여운은 차오르는 눈물을 기를 쓰고 참는다. 저번에 한 번 눈물을 흘렸다가 선배들이 훈계를 하는데 앞에서 우냐고 또 혼이 난 적이 있었던지라 이번에는 기를 쓰고 참았다. 그런 여운을 현아는 한참을 노려보며 한숨을 쉬더니 그냥 스쳐지나간다. 이제부터 여운은 자리에서 움직여선 안 된다. 그 선배가 ‘너그럽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들어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여운은 들어가서는 안 된다.

 “들어가. 너 내일 두고 볼 거야.”

 여운을 처치실에 세워놓고 자신은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현아가 끝까지 여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여운이 천천히 탈의실로 들어갔다. 마음이 무겁다. 하루라도 혼나지 않고 넘어갈 때가 없었다.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와중 울컥울컥 넘어오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탈의실을 나왔다. 다음 근무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는데 아무도 제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여운은 재빠르게 병동을 벗어났다. 병동을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다행인지 로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밖은 깜깜했다. 병원을 벗어나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를 기다리는 그 잠깐 사이에도 다리가 너무 아파 그냥 주저앉았다. 이러나저러나 다리가 아팠지만 일하면서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던 다리는 앉기를 원했다. 느루빌로 가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가로 질러야 한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 자느라 불이 꺼진 집도 있었고 TV를 보는 집도 있었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듣기 좋아 눈물이 났다.

 집은 여전히 깜깜했다. 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침대 옆에 주저앉듯 앉았다. 여운은 그때서야 자신이 오늘도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일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오늘 하루 혼나기만 하느라 몰랐는데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제야 갈증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입과 혀가 쩍쩍 갈라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대로 눕는다면 정말 1분도 안 돼서 잠들 것 같은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잘 수는 없었다. 숙제를 해야만 했다. 여운은 힘없이 찾아오라고 했던 것들을 적어놓은 수첩을 펼쳤다. 노트북과 책을 통해 찾은 것들을 액팅 노트에 기록을 하고 외우려고 하는데 눈물이 자꾸 질금질금 나온다. 잠시 진정을 하려고 해도 잘 진정이 되지 않았다. 조급함이 밀려왔다. 얼른 찾고 외워야 하는데. 내일 물어봤을 때 대답 못하면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그런 마음에 얼른 외우고 싶은데 눈치 없는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후, 한심해.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해?

 결국엔 자학이 짙은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질질 짜고만 있는 스스로가 답답하고 한심해서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눈물은 더 한심하게도 그 말에 소리를 내며 다시 터져버렸다.

 멍청하고 바보 같아. 한심하고 답답해. 지금 울어봤자 네게 좋은 게 뭔데. 하나도 없는데 울긴 왜 울어. 뭘 잘했다고 우는데. 도대체 잘하는 게 뭐니. 잘하는 게 없으면 열심이라도 해야지. 나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면 뭐해.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잖아. 성과가 있어야지. 그 결과물이 있어야지. 이 바보야. 멍청아.

 한 번 시작된 자학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끝없는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자기혐오를 하는 자신에게도 혐오가 밀려왔다. 내가 나를 달래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달래주는데. 나까지 이러면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위로를 얻어야 하는 건데. 자신을 멍청이, 바보라고 부르는 내가 너무 싫고 미웠다.

 정말이지.. 누가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원래 처음엔 다 그러는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원래 사람은 다 그러는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늦될 수도 있다고. 늦된 게 잘못 된 건 아니라고.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자고. 내가 기다려주겠다고.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나한테 그렇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날씨가 살랑하니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 그 공기가 참 기분이 좋다고 생각한 늘이는 집에 오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산뜻한 공기가 집을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 예감이 좋았다. 내일 있을 6월 모평을 잘 볼 것만 같았다. 늘이는 개운한 마음으로 씻고 나와 갓 세탁한 깨끗한 잠옷을 입었다. 늘이의 징크스였다. 중요한 시험 전 날, 이런 식의 기분 전환을 해줘야지 시험을 가벼운 마음으로 잘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제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밤바람을 맞으며 잠이 들면 된다. 늘이는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 이게 무슨 소리야..”

 왠지 이대로라면 내일 모평을 잘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 좋게 잠이 들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들어보니 여자의 울음소리 같았다. 아무래도 옆집에 사는 여자가 우는 듯 했다.

 “뭐야, 이 시간에. 술 마셨나?”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원룸에 창문까지 열려있으니 옆집의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히 잘 들려왔다. 늘이는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닫았다. 옆집 여자가 제 좋은 기분을 망친 것만 같았다.

 “아, 미쳤나 봐, 진짜..”

 창문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소리는 희미하지만 계속 들려왔다. 선명하지 않은 희미한 소리는 더 거슬리게 신경을 자극했다.

 모르겠다. 그 울음소리는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고 늘이 역시 언제인지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지만 그다지 개운하지는 않았다. 잠을 설친 기분이었다. 잠을 설쳤어도 자신의 징크스는 일일이 다 체크해 확인했다.

  갓 세탁한 잠옷 입기.

  머리 단정하게 빗어 묶기.

  새 양말 신기.

  새 컴퓨터용 싸인펜 챙기기.

 징크스.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으로 여겨지는 것. 이걸 행하지 않으면 나에게 악운이 올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누군가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늘이에게는 꽤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해소할 수 없는 불안감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사소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들이었다. 오늘은 이런 징크스를 다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심란했다.

  [바람은 자도 마음은 자지 않는다.]

 모의고사의 필적란이 꼭 제 얘기인 것만 같았다. 고 삼이 되어 예민해진 마음은 작은 소리에도 잠을 자지를 못했다. 이러면 제게 좋을 게 하나 없는데. 큰 숨을 내쉰 늘이는 감독관의 말에 맞춰 모의고사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늘아, 잘 봤어?”

 “그냥 저냥.. 너는?”

 “나도 뭐.. 아, 6월 모평 점수가 수능 점수라던데. 이 점수면 너무 암울한데.”

 그러게. 이 점수면 수능이 정말 암울하네. 늘은 한숨을 쉬며 모의고사 시험지를 뒤적거렸다. 어제 잠도 설쳐 피곤해 집중력이 떨어져서 시간 배분을 잘못해 굉장히 빠듯하게 시험을 끝냈다. 그럼에도 평소와 같이 봤다는 건 잘 봤다는 걸까. 컨디션만 괜찮았으면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었을까.

 실없는 생각이었다. 징크스고 뭐고, 이것이 제 실력임을 늘이는 알았다. 실수를 한 것도 없었고 시험 난이도도 생각한 만큼이었다. 시간 관리는 늘이에게는 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럼에도 늘이에게는 ‘탓할 것’이 필요했다. 그 ‘탓할 것’에서 위안을 얻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능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 암울했으니까.

 늘이는 한숨을 쉬고 시험지와 책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도서관에서 모의고사 오답을 정리했다.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아득바득, 어떻게든 끝내기 위해 노력했다. 중요한 시험이 끝났다는 마음에 오늘은 쉬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시험을 잘 봤다고, 성적이 올랐다고 말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제 성적은 너무나도 변화 없이 초라했기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 그럴 수가 없었다. 나름 잘 정리된 오답노트를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이,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이곳에 앉아 있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모의고사가 끝났음에도 제자리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 자신이 너무나도 기특해 오늘은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하는 고 삼이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오락은 핸드폰으로 영화나 예능을 보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거였다. 뭘 먹을까, 배달음식을 시켜먹을까 하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지금 이 시간에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저번에 배달부가 돈을 건네받겠다며 갑자기 문을 억지로 젖히며 몸을 쑥 들이밀었던 적이 있었던 이후로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오늘의 ‘맛있는 음식’도 편의점 음식이었다. 자신이 비루한 자취생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얼른 먹고 자야지, 라는 마음으로 빌라로 들어서는데 한 여자도 함께 빌라로 들어온다. 늘이의 뒤를 이어 계단을 오르는 여자의 눈과 코끝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손에 든 종이가방 틈으로는 익숙한 유니폼이 들어있었다. 여기 사는 3년 동안, 아플 때마다 갔던 병원의 유니폼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간호사인가 보다. 며칠 전 봤던 간호사 태움과 관련된 뉴스가 생각이 나, 그 빨개진 코끝과 좀 부은 듯한 눈두덩이가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늘이는 301호 앞에 섰다. 그 여자는 늘이를 지나쳐 302호 앞에 섰다. 그제야 늘이는 저 여자가 자신의 옆집에 사는 여자임을 알게 됐다. 저 여자였다, 어제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늘이는 아직도 코를 훌쩍이고 있는 그 불쌍한 모습을 한 번 힐끔 보고는 머릿속으로 역시 간호학과는 가지 말아야겠어, 라고 생각하며 문을 닫았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욥!!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4 3화 - 버스 민폐녀 2018 / 12 / 7 253 0 5580   
3 2화 - 답답하고 숨이 막힐 때 2018 / 12 / 5 242 0 4168   
2 1화 - 어느 평범한 날 2018 / 12 / 4 243 0 5936   
1 pro - 느루빌 (2) 2018 / 12 / 3 454 1 240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