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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8. 춘우(春雨)(1)
작성일 : 18-12-04 16:30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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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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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끝자락, 임여사가 멀리 떠나고 나서 휴직까지 한 유진은 하루 종일 잠을 자다 배가 고파지면 일어나 밥을 먹는, 생산성 없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의 단잠을 깨우는 비 때문에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돈의동 집에 있으면서 눈이나 비가 알려주는 계절의 변화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비 내리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들려왔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유진은 담요를 한껏 두른 후 툇마루의 유리문을 열어둔 채, 마당을 촉촉이 적시고 있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은 비가 참 다정하게도 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장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을 때, 습기를 머금은 땅에서 올라오는 그 흙냄새가 좋아.’

 

 그때는 그게 왜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말 때문에 유진은 장호에 대한 호감이 생겼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유진과 장호였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만날 인연이 아니었을 사람들이었다.

 

 유진은 제 편견 속 의대생 특유의 시니컬함이 아닌 장호 특유의 따듯한 시선이 좋았다. 제게는 없는 감성을 갖고 있는 그가 좋았다. 장호는 그녀에게 있어 세상을 떠돌다 마지막에 찾게 되는 따듯한 품이었다.

 

 그랬는데, 언젠가 부터는 그 따듯함이 우유부단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장호가 전문의가 되고 유진이 본격적인 방송 일을 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그때마다 기다리는 사람은 늘 장호였다.

 

 유진은 자신들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의 9할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안다. 촬영이라는 이유로 집에 못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호는 늘 ‘일’에 밀려나곤 했었다.

 

 그랬기에 어쩌면 장호의 이혼 얘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진이 장호와의 지난 시간에 젖어 있을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니 장호였다.

 

 유진은 내심 장호도 이 비 때문에 자신이 생각났나 싶어 기뻤다. 그래도 아직은 마음이 조금은 통하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장호의 말에 유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 서류 보내려고 하는데, 어디로 보내면 돼?

 

 “……!”

 

 유진은 장호가 정말 이혼하려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건데?

 

 - 유진아.

 

 헤어질 거면 이렇게 다정하게 이름이나 부르지 말지.

 

 “당신, 여자 생겼니?”

 

 - …….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나간 말에 장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만 대답대신 들려오는 그 묵음 사이에서 장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안해. 돈의동으로 보내.”

 

 유진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면 또다시 자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갈지 알 수 없어, 그가 듣고 싶어 할 말만하고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조금 전까지 다정하게만 보였던 비가 이제는 짜증을 유발하는 비가 되어 있었다.

 

 며칠 후, 서로의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유진과 장호는 어색하게 마주했다. 유진의 부모님이 임여사의 49재에 겨우 맞춰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검게 그을린 피부가 여전히 낯설어 대면 대면한 유진과는 달리 장호는 그녀의 부모와 더 친밀감을 보이고 있었다. 의사라는 공통된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장호의 은사이기도 하니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기 전 장호가 예약했다는 한정식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돈의동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식사시간은 언제나 엄마가 풀어내는 이야기로 시작을 했고,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건 역시나 장호뿐이었다.

 

 다행히 이혼 얘기는 부모님 오시기 전에 장호와 말을 맞추어 놨기에, 부모님께서 출국 하신 후로 미뤄두기로 했다.

 

 돈의동 집으로 돌아 온 아버지는 깨끗하게 정돈된 할머니의 방안에서 한참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아버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유진과 장호의 손을 꼭 잡으며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만 내뱉으셨다.

 

 아버지로서는 최대한의 큰 감정 표현이었겠지만, 유진이 느끼기엔 딱딱하고 무뚝뚝하게만 느껴졌다.

 

 유진은 이렇게 무뚝뚝한 아버지가 낯선 오지에서 의료봉사를 펼치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가 곁에 있어서 가능한 거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엄마보다는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밤이 찾아오자 유진과 장호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부모님께서는 편안하게 계시고 싶다며 유진과 장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저희들을 배려해서 집에서 편히 쉬다가 내일 오라는 말씀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배려가 가히 반갑지만은 않았다. 얼떨결에 장호의 차에 오른 유진은 어색한 침묵에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중간에 내려줘.”

 

 “그냥 집으로 가.”

 

 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상하게 말하는 장호에게 화가 났다.

 

 “이혼하자며? 그런데 나보고 거기에서 자라고?”

 

 “나 혼자 살던 집 아니잖아.”

 

 “하아. 당신은 참 편해서 좋겠다. 그런데 나, 당신이랑 단둘이 있는 거 편하지 않아.”

 

 “그럼 내가 나가서 잘게.”

 

 “후우.”

 

 유진은 가슴이 답답해져 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만 이런 상황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유진이 고개를 돌리자 유리창에 운전 중인 장호의 옆모습이 비춰졌다. 어쩐지 그 모습이 쓸쓸하게 보였다.

 

 몇 개월 만에 돌아온 집은 제가 나갔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달라진 것이 없는 이 풍경이 원래부터 여기가 제자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속이 쓰려왔다.

 

 사실 유진에게 이 집은 들어온 날보다 안 들어온 날이 더 많았다. 그랬기에 오늘은 유독 낯설게 느껴졌다. 부부침실에 들어갔던 장호가 종이가방을 들고 나왔다.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편히 쉬고 있어.”

 

 “여기 있어. 내가 화를 낼 상황이 아니잖아. 오히려 고마워해야하는 상황인데.”

 

 장호는 유진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멍하니 유진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잘게. 지금에 와서 우리가 한 침대 쓸 건 아니잖아.”

 

 “그럼, 내가…….”

 

 “그거 아니면 내가 나가고.”

 

 유진은 장호의 뻔한 반응에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러자 장호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유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알아 더 이상 뭐라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장호는 유진이 갈아입을 유진의 옷과 이불을 방에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소파에 이불을 펴주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유진이나 장호, 어느 누구도 결코 편안하지 않을 밤을 맞았다. 유진은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유진은 몇 번을 뒤척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술이라도 마셔야 이 익숙하지만 낯선, 이곳의 밤이 빨리 지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차피 장호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니 예전에 제가 사둔 맥주가 냉장고 어딘가에 있을 거고, 자신이 마시지 않는다면 그 술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간을 냉장고에 있어야 될 테니 말이다.

 

 냉장고를 여니 역시나 술은 예전 그대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유진은 6개의 캔을 거실의 소파로 들고 왔다.

 

 고층의 아파트라 베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불빛이 호화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유진은 도심의 불빛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유진이 세 번째 맥주를 막 입에 대는데 방문이 열렸다. 장호는 베란다 앞에서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소파에 기대어 맥주를 마시고 있는 유진의 옆으로 와 앉았다.

 

 “안주라도 먹지?”

 

 “맥주가 뭐 술인가?”

 

 장호가 나란히 나열된 맥주 캔을 보더니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시게?”

 

 “왜? 아까워?”

 

 “아니, 당신 술 안 좋아하잖아.”

 

 “응. 그런데 누가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유진이 세 번째 캔마저 비우고 네 번째 캔을 들자 장호가 유진의 손에 들린 캔맥주를 잡았다.

 

 “그만 마셔. 내일 어쩌려고.”

 

 “당신 잊었어?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잊어?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당신만큼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장호는 유진의 손을 놔주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유진이 물었다.

 

 “10년 전에 왜 나랑 사귀었어? 그때 우리 별로 좋지 않았잖아. 뭐하나 맞는 것도 하나 없고, 서로 극과 극이었잖아.”

 

 “그래서……. 나랑 많이 다른 사람이라서.”

 

 장호는 아련한 얼굴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똑같은 질문을 유진에게 했다.

 

 “당신은?”

 

 “비 때문에.”

 

 “비?”

 

 “그런 게 있어.”

 

 유진은 뭔가 부끄러워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장호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은 왜 헤어지고 싶어?”

 

 장호는 잠시 멈칫거리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유진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제는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아서.”

 

 “뭐?”

 

 “그럼 당신은 왜 그러자 했어?”

 

 “처음에는 화가 나서, 그리고 나중에는 당신이 지친 것 같아서.”

 

 유진과 장호는 서로의 대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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