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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7. 춘희(4)
작성일 : 18-12-04 16:23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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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희모가 인철부의 말에 흔들리는 것이 보이자 그녀의 뒤에서 낫을 낚아챈 시종하나가 이내 그녀의 두 팔을 제압해서 잡았다.

 

 그리고 얼마 후,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일본군들이 순식간에 정인철의 집으로 쏟아지듯 들어와 집안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오?”

 

 이때에도 인철부는 꼿꼿한 자세 그대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일본군들 뒤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조순사가 들어왔다. 조순사는 시종에게 두 팔을 붙들린 춘희모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활짝 지어보이며 다가섰다.

 

 “이 팔은 풀고.”

 

 조순사의 가벼운 손짓에 춘희모를 잡고 있던 시종이 쉽게 팔을 풀었다. 조순사의 언행에 인철부뿐만 아니라 춘희모도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였다. 이에 조순사는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친히 설명하기 위해 춘희모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오늘 집으로 쌀 한 섬 갔을 거요. 오늘일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행동이었소.”

 

 “이게 무슨……?”

 

 춘희모는 조순사가 하는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아 쳐다보는데, 곧이어 나오는 조순사의 말에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정윤수! 당신은 나랑 서로 가야겠소. 당신이 독립군의 자금출처라는 신고가 있어서 말이오.”

 

 춘희모는 조순사의 말에 눈이 저절로 커다랗게 변했다. 그리고 저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철부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봐도 조순사의 말은 밀고자가 춘희모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춘희모는 자신은 아니라고 말을 하려했지만, 어젯밤 선술집에서 중얼거린 말들이 떠올라 그대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조순사가 이내 일본군에게 눈짓을 하자, 일본군들은 일사분란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기 시작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들이!”

 

 이에 평온하기만 했던 인철부도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을 쳤다. 그러나 아무리 인철부가 연곡에서 알아주는 세도가라 할지라도 일본군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끌려 나갔다.

 

 일본군에 끌려가는 인철부의 서슬퍼런 눈이 춘희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 몰래 권번을 찾은 춘희는 그곳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며칠째 두문불출하며 방구들을 지키고 있던 춘희모는 벌컥 열리는 방문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정말 밀고했어? 그래?”

 

 춘희는 씩씩 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와 그 옆에 앉았다.

 

 “말해봐. 정말 엄마가 인철 도련님네 밀고한 거야? 그래? 응?”

 

 대꾸 없는 엄마의 어깨를 흔들자, 춘희모가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야. 네 애미를 그렇게 몰라?”

 

 “그렇지? 그런 거 아니지? 그래, 그럴 거야. 나는 아닐 거라고 알았어.”

 

 춘희모는 등 뒤로 들려오는 안심하는 춘희의 목소리에 가슴이 옥죄듯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이내 저를 쳐다보며 평온하게 말을 꺼내던 인철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네가 나를 죽이고 난다면, 자네 여식이 과연 온전하게 이곳에서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

 

 춘희모는 두려웠다. 어차피 자신이야 인철부의 말처럼 이 세상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춘희만큼은 저처럼 살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춘희모가 복잡해진 머릿속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춘희도 저 나름대로 생각을 했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내가 가서 다 해명할게. 엄마가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엄마도 나 때문에 너무 속 끓이지 마.”

 

 춘희모는 생각에 빠져있느라 제 할 말을 던지고 간 춘희의 말을 이해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춘희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춘희를 쫓았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댔지만 추운 줄도 몰랐다. 그런데 인철의 집에 채 도착도 하기 전에 그 집 대문 앞에 무리지어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사람은 춘희일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였다.

 

 아니나 다를까 잰걸음으로 다가가니 사람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 춘희의 옷을 잡아당기며 욕을 하고 있었다. 춘희모는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춘희를 제 품에 가두어 안았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요?”

 

 “하아. 그건 우리가 할 말이야. 예가 어디라고 뻔뻔스럽게 발을 들인다 말이요.”

 

 또다시 사람들의 분탕질이 시작되었다. 엄마에게 안겨있던 춘희에게까지 사람들의 분노가 느껴졌다.

 

 “우리 엄마한테 그러지 마요. 우리 엄마가 그런 거 아니에요.”

 

 “하아,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수십이었어. 조순사가 네 애미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니?”

 

 “……!”

 

 춘희는 떨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고 저를 감싸고 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그런데 저를 쳐다보고 있는 엄마의 눈이 아니라고, 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집으로 쌀 한 섬 갔을 거라고,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이라고 했다. 이래도 발뺌 할 셈이야?”

 

 “엄마, 아니지? 아니라고 해. 그런 거 아니잖아.”

 

 춘희는 사람들의 뭇매를 받으면서도 제 엄마의 옷자락을 간절히 잡으며 물어왔다. 그러나 춘희모는 입술을 사리물고만 있을 뿐 춘희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춘희모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춘희의 얼굴에서는 절망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높다란 담장너머에서 여러 명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춘희와 춘희모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곡소리를 따라 대문 앞으로 뛰어갔다.

 

 “아이고, 대감마님.”

 

 대문이 열리고 대문안팎으로 함성 같은 곡소리가 들렸다. 깊은 절망감에 잔득 일그러진 춘희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떨어졌다.

 

 춘희모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거짓말이 인철부가 독립군 자금줄이란 사실을 잉태하였고, 그 결과 일본군 손에 모진 고문을 당한 정인철의 부가 지금 막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춘희모는 춘희를 데리고 이 자리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녀가 넋을 놓고 앉아있는 춘희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데, 어디선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왔다.

 

 얼른 춘희를 감싸 안으며 돌을 막아보지만 이내 다른 곳에서 날아온 돌에 춘희모의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가자, 춘희야. 얼른 일어나.”

 

 그러자 춘희는 제 팔을 드는 엄마를 쳐다보며 원망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왜, 왜 그랬어? 왜?”

 

 춘희모는 저를 보는 딸의 시선에 맥없이 힘이 풀려버렸다. 너를 위해서 그랬다고,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서 그랬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저를 보는 춘희의 눈을 보자 그 말이 턱 막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줄 모르는 춘희는 저쪽 대문 앞에서 통곡하여 우는 사람들의 슬픔보다 제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저를 쳐다만 보며 숨죽이고 있는 엄마의 슬픔이 더욱 가슴 아프게 들려왔다.

 

 그때, 누군가가 근조등(謹弔燈)을 문 앞에 내걸고 있었다. 춘희는 제 엄마의 슬픔도, 인철부에 대한 죄책감도 차마 떨쳐버릴 수 없어 그 자리에 엄마를 두고 일어나 어딘가로 뛰어갔다.

 

 춘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뛰었다. 한참을 뛰고 보니, 마을의 뒷산이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사방이 깜깜했으나 오히려 춘희는 누구도 저를 발견하지 않을 것 같아 안심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춘희는 이 와중에 멀리 타국에서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인철이 걱정되었다. 이런 제자신이 너무도 싫었지만 앞으로 인철을 어찌 봐야 하는 걱정이 뒤따라 왔다.

 

 춘희는 지금의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숨길 수만 있다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기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춘희는 정오가 가까워오는데도 기척이 없는 엄마의 방문 앞에 섰다. 툇마루 앞에 제멋대로 놓인 엄마의 신발이 지금 엄마와 저의 사이처럼 느껴져 신발을 가지런히 놓은 후 엄마를 불렀다.

 

 “엄마.”

 

 시간을 두고 몇 번을 엄마를 불렀으나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엄마, 나 들어간다.”

 

 여전히 대답이 없자 춘희가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어지러이 펼쳐진 이불만 보일 뿐,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발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멀리 간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신발이 여기에 있으면 엄마는 어디를 간 거지? 춘희는 방에서 나와 집 안팎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춘희가 꽁꽁 언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온 시간은 짙은 어둠이 아주 낮은 곳까지 내려앉은 시각이었다. 집은 누가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어제 들어 온 것인지, 아니면 오늘 집을 나간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집을 찾아온 옆집의 아주머니의 얘기로 어제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아주머니는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의 도랑에서 엄마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전해줬다. 춘희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아주머니가 하는 말들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가 발견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아주머니는 멍하니 있는 춘희의 손을 이끌고 엄마가 발견되었다는 마을 초입의 도랑까지 데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두툼한 거적 사이로 삐져나온 맨발을 보고나서야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실족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엄마를 덮고 있는 거적을 들춰보니 꽁꽁 언 엄마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제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은 상처 때문에 흐른 피였다.

 

 사람들은 춘희를 안타깝게 쳐다보면서도 엄마를 두고 말이 많았다. 춘희가 인철의 아이를 가졌으니 인연을 맺어 주십사 찾아갔다는 얘기와 그러다 순사들이 인철의 집에 들이 닥쳤음을 알게 되었다.

 

 춘희의 억장이 무너졌다. 제 사랑을 지키려고 내뱉었던 거짓말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엄마를 원망하며 엄마의 얘기는 듣지도 않았었다.

 

 사람들은 밀고자라는 이유로 장례조차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옆집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한 밤중에 뒷산 야산에 엄마를 묻어야만 했다. 땅이 꽁꽁 얼어 삽질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밤새워 돌을 주어와 높이 쌓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춘희는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 없이 야반도주하듯 연곡을 등지고 기차에 올랐다. 이제 연곡(緣哭)은 춘희의 고향이 아니라 지옥과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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