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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바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작가 : 총수
작품등록일 : 2018.10.24

천상천하 유아독존! 싸가지 끝판'왕' 이산.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그가 처음 눈을 뜬곳은 다름아닌 첫사랑 나비의 자취방?!

서울 카페에서 혼자 자취를하던 만년 사진작가 지망생 '한나비'. 어느 날 주말을 맞이해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의 이불속에는 앞 선을 곱게 풀어헤친 조선의 왕 '이산'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현세로 넘어와 버린 이산이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평생을 그리워했던 과거 잃어버린 첫사랑의 모습과 똑닮은 나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둘의 웃프기만한(?) 아찔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13. 그대와 나만
작성일 : 18-12-03 13:20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6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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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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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녀의 예상대로 곱상한 산이의 입에서는 불같은 그의 성깔을 보여주듯 가시 돋친 대답이 흘러나왔다.

 

 기고만장한 산이의 태도에 나비가 눈을 흘겼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렇게 1초의 망설임도 없을 수가 있다니. 도저히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산이씨는 할머님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싸가지없게 해요. 빨리 사과드려요.”

 

 “아아, 앗! 알았으니 이거는 좀 놓고 말하거라.”

 

 약이 바짝 오른 나비가 귀를 잡고 늘어지자 산이가 호들갑을 떨며 발버둥을 쳤다. 그제야 말뜻을 알아들은 산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비는 살며시 귀를 잡은 손을 놓았다.

 

 하여간, 꼭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우리는 정인사이가 아니라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라네. 그대가 오해를 하기에 잠깐 실수를 한 것이니, 아까의 무례를 용서하시게.

 

 그래, 그래. 정인은 아니지.

 

 잠깐, 부부?

 

 그렇게 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법한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아이구, 아이구 이런 실수를 했구만. 너무 어려 보여서 결혼한 줄은 몰랐네 그려.”

 

 쑥스러운지 할머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가로 저었다.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시길래 저렇게 좋아하시는 걸까.

 

 그리고 할머님 실수는 여기 젊은 멍청한 남자가 한 거니까 죄송해하지 마세요.

 

 잠시 고민하던 나비는 화들짝 놀라 사색을 하고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할머님. 여기 한복 입은 남자랑은 그냥 조금 친한 친구사이에요.”

 

 말도 안 돼. 결혼이라니….

 

 결혼이란 건, 아직 한 번도 꽃피우지 못한 이 한나비 인생에 성공만큼이나 거리가 있는 말이었는데.

 

 “아이고, 그래요? 결혼은 아직 안했다고….”

 

 할머니는 물어볼 때마다 바뀌는 대답에 도통 감을 잡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녀의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동안 말없이 나비를 위압적인 눈초리로 쏘아보던 산이는 옆에 나비를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 당겼다.

 

 “어허, 또 머리가 아픈 것이냐? 이래서 내가 집에서 그냥 쉬자고 한 것이 아니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돌아가자꾸나.”

 

 품에 안긴 나비가 발버둥 치자 산이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머리는 제가 아니라 산이씨가 아프겠죠.”

 

 이 인간이 느끼하게 갑자기 또 왜이래.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나비가 눈을 흘겼으나 산이는 개의치 않다는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아 부끄러워 그런 것이니 혼란스러워 하지 마시게. 헌데, 무슨 연유로 우리의 사이를 묻는 것이냐.”

 

 이정도면 전생에 왕이 아니라 배우였다고 해야 될 거 같은데.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아이고, 그랬구먼. 새색시가 참 부끄러운 것도 많소.”

 

 할머니는 간사한 그의 혀에 완전히 넘어갔는지 박수를 치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많은 이 좁은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치며 오늘 처음 보는 여자를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한 것도 이놈이고 공공장소에서 남사스럽게 질척거리고 있는 것도 이놈인데….

 

 창피함은 왜 항상 내 몫이 되는 걸까.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한복 곱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우리 영감 젊었을 적이 생각나서 물어봤어.”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소녀 같은 미소를 띄었다.

 

 “…그렇구나, 헌데 지아비 되는자는 같이 오지 않은 것이냐?”

 

 “….”

 

 산이는 할아버지를 찾아보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에 대해 묻자 갑자기 조용해진 할머니의 모습에 눈치 빠른 나비가 옆에 있던 산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산이씨.”

 

 나비는 옷깃을 슬쩍 잡아당기고는 산이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무슨 일이냐?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뭣 하러 귀에 대고 말하느냐. 그냥 편히 말하거라.”

 

 “아까 아침에 먹은 저급한 음식들이 산이씨 이번 생에 먹은 마지막 밥이 되고 싶지 않으면 존댓말 쓰세요. 그런 거 묻지도 마시고요. 아셨죠?”

 

 말을 끝마친 나비는 마치 딴사람인 것처럼 살벌한 말과는 상반되게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뽐내고 있었다.

 

 여전히 모르겠단 표정으로 산이가 눈썹을 찌푸리자 나비는 남들 눈에는 안보이게 살며시 옆구리를 꼬집었다.

 

 “…알았으니 일단 그 꼬집던 손을 좀 놓아주어라. 내 명심하겠다.”

 

 이내 잠시 뜸을 들이고 있던 할머니에게 산이는 재차 되물었다.

 

 “그래. 바깥양반은 어디갔, 아니 가셨습니까?”

 

 할머니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손가락에 낀 낡은 반지하나를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먼저 좋은 데로 갔지. 아이고, 나도 주책이야.”

 

 그녀는 손등으로 살며시 고인 눈물을 훔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총각 보니까 우리 영감 젊을 때 생각나서 말을 걸었어요.”

 

 차분하게 남편의 죽음을 전하는 그녀의 모습에 산이는 저번 생에 나비를 잃고 아파하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뭐해요, 빨리 사과 드려요. 죄송해요. 할머님. 저희가 눈치가 없었네요.”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비가 호들갑을 떨며 산이의 머리를 붙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산이는 그런 나비의 손을 떼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먼저 떠난 부군이 아주 미남이었나 보군. 하긴 과인을 닮았기에 그대같이 아리따운 이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겠지.”

 

 산이는 조용히 허리를 낮추고는 노인의 주름진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겹쳤다.

 

 “어쩜, 말투까지 우리 영감 젊었을 때랑 똑 닮았구먼. 그래.”

 

 순간 눈이 마주친 그의 모습과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잠시 아무 말 없이 산이의 눈만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용서하세요. 이 사람이 예의도 없고 버릇도 없고 건방지긴 해도 모르고 한말이니 너무 기분 상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혹시 할머님께서 기분이 상한 건 아닌가 싶어 나비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며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 숙인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산이에게 말했다.

 

 “총각, 샥시 있을 때 잘해줘. 나처럼 이렇게 나이 먹고 후회하지 말고.”

 

 할머니의 따뜻한 당부의 말에, 산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뻔뻔스런 미소로 화답했다.

 

 “심려치 말거라, 나 역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적이 있기에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얼씨구, 말은 잘해요.

 

 어떤 말을 하든 막힘없는 그의 모습에 나비는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진짜 말 하나는 청산유수네, 청산유수야. 왕을 무슨 입으로 따냈나….

 

 툴툴대던 나비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는 갑자기 나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지금 옆에 있는 이여자의 손을 이제는 다시 놓을 일이 없을 것이야.”

 

 오그라드는 그의 말에 나비는 행여나 주위 사람들에게 들린 것은 아닐까 얼굴을 붉혔다.

 

 동시에 그의 손을 뿌리치며 안간힘을 써봤지만 곧장 다시 붙잡힐 뿐이었다.

 

 아휴, 인제 될 대로 되라.

 

 할머님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체념한 나비가 어색하게나마 미소 지었다.

 

 “그래요, 잡은 손 이제 놓지 말아요.”

 

 다소곳이 손을 잡은 둘의 모습을 보자 할머니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그리운 듯 중얼거렸다.

 

 “할머님, 죄송한데 방금 뭐라고 하셨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벌써 내릴때가 됐네. 그럼 이만….”

 

 나비가 되묻자 그녀는 대답대신 주름 깊이 패이는 미소를 남기고는 역에서 내렸다.

 

 “…나비야.”

 

 지하철안에서 점이 되어 가고 있는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산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산이씨, 울지 마요.”

 

 태연한척 했지만 그래도 막상 떠나니까 마음이 짠한가보네.

 

 하여간 이래서 미워 할 수가 없다니까….

 

 “왜요, 막상 할머니가 저렇게 가니까 서운해서요?”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우-웁. 속이 울렁거려서 과인은 먼저 내릴 것이니 먼저 가 있거라.”

 

 “우-읍. 웁!”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산이의 모습에 놀란 나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산이는 곧바로 팔을 뿌리쳐 내고는 닫히기 직전의 문을 열고는 그대로 지하철밖으로 뛰쳐나갔다.

 

 …내 감동 당장 돌려줘!

 

 24살 먹고 지하철에서 멀미하는 이 지지리 못난 왕놈아.

 

 *

 

 지하철 밖.

 

 넋이 나간 것처럼 축 쳐진 산이가 나비에게 기대 겨우겨우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진짜 내가 살다 살다! 어휴!”

 

 짜증이 솟구쳐 오른 나비는 올라오자마자 산이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이내 아직까지도 화가 덜 풀렸는지 도끼눈을 치켜뜬 채 산이를 노려봤다.

 

 “세상에 지하철에서 멀미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있다고 쳐도 갑자기 내린다고 그 난리를 치면 어떡해요.”

 

 “그건 과인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까부터 나비 네가 한 정거장,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하는 너를 굳게 믿었건만….”

 

 “우우, 웁.”

 

 아까의 부끄러운 기억을 잊고 싶은지 능글맞게 대화 주제를 바꿔나가고 싶었지만, 그 역시 아까 지하철 멀미의 여파 때문일까 말이 쉽사리 나오지가 않았다.

 

 “아니, 옛날 임금님들은 막 가마 같은 거 안탔어요? 무슨 그 정도 흔들린다고 그렇게 죽으려고 해요. 진짜.”

 

 “당연히 타고 다녔지. 그렇다면 과인같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두발로 걸어 다녔겠느냐?”

 

 “네, 네 알겠어요. 알겠어.”

 

 거짓말을 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은 강하게 했지만 능청스럽던 산이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프라이팬에 맞았을 때조차 꺾이지 않던 도도한 콧대가 산이의 낯선 표정에 나비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많이 안 좋으시면, 약이라도 사다드릴까요?”

 

 “아니다. 점점 괜찮아 지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거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사실 가마라는 말 때문에 겨우 진정된 속이 다시 한 번 뒤틀렸다.

 

 괜찮다, 괜찮다. 산아. 나비 앞이지 않느냐, 진정 하거라.

 

 그녀의 앞에서 만큼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산이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그 옛날 세자로 책봉되고 궐 밖을 나가 가마에 처음 올랐을 때 발생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

 

 그 옛날 세자시절.

 

 시찰이라는 명목 하에 생에 처음으로 궐밖에 나온 산이는 비록 가마안 이였지만 처음으로 접한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사건은 돌아오는 길에 발생했다. 시찰을 끝내고 궁궐로 돌아오는 길에 가마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어린 산이는 갑자기 가마 위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에 눈을 떴다. 하지만 가마위에서 쏟아졌던 그것은 물이 아니었다. 바로 가마지기의 검붉은 ‘피’였다.

 

 “이게 무슨…. 도대체 무슨 일이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산이가 서둘러 가마지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가 않았다. 그렇게 겁에 질린 산이는 홀로 남겨진 피로 물든 가마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난 다음날에야 순찰을 나온 관군들에 의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궁궐 내에서 가마를 타더라도 한번 흔들리면 행여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어, 항상 오늘은 걷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아무리 먼 거리라 하더라도 직접 두발로 걸어 다녔던 그였다.

 

 이러한 우연을 가장한 일련의 사고 같은 사건들이 전부 자신의 친어머니가 그를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 모두 계획한 일이었다는 걸 안 것은 그로부터 먼 훗날의 일이었다.

 

 철이 들기도 전, 아주 어린 나이부터 늘 암살에 시달렸기 때문에 생긴 안전과민증은 성인이 된 후에도 그를 지독히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하지만 산이는 오늘 이런 아픈 기억들을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좁고 흔들리는 '지하철'을 탔다.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한 여자, 혜령 아니 나비를 위해.

 

 “어서 밥이나 먹자꾸나. 이리 멀리 나왔으니 벌써 허기가 지는구나.”

 

 “밥 안 먹을 건데요?”

 

 나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산이는 숯검댕이 같은 진한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불만을 표해봤지만 그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오늘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슬픈 말이었다.

 

 “분명 나올 때는 산해진미를 사준다고 단언하지 않았더냐? 내 다른 이는 불신밖에 못하지만, 나비 너만은 철썩 같이 믿었거늘.”

 

 아니, 무슨 왕이라는 사람이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농담 조금 했다고 아주 그냥 울겠네, 울겠어.

 

 나비의 농담에 그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는 슬쩍 어지러운 척 눈치를 보며 나비의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그녀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바로 다시 손을 내렸다.

 

 “일단 볼일보고 밥은 그다음에 먹을 거니까 그때까지 참으세요.”

 

 “알았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기분이 풀린 산이는 느긋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진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알기 쉽지.

 

 *

 

 말없이 걷던 그녀는 갑자기 멈춰서더니 이리저리 산이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의아함 가득한 표정으로 조막만한 얼굴을 가득 물들였다.

 

 “이제 보니까 기장이 안 맞네요, 팔이랑 다리 쪽이 조금 짧다. 이번에는 좀 긴 걸로 빌려야겠다.”

 

 “…그러냐?”

 

 짧게 생각을 끝마친 나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몇 걸음 못가 문득 허전한 기분에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잠깐, 뭔가 허전한데?’

 

 아, 맞다. 산이씨!

 

 하루 종일 옆에서 쉴 새 없이 연중무휴 떠들던 목소리가 어느 샌가 들리지 않았다.

 

 혹여나 미아가 된 건 아닐까싶어, 나비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다행히도 산이는 걸음을 멈춘 채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런 모습에 성격 급한 나비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산이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거기서 또 뭐하세요, 빨리 안 오고.”

 

 “어허, 뭐 그리 급하느냐 같이 가자꾸나.”

 

 매일 밤 그리고 그립던 그 모습.

 

 미래를 약속했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손을 흔들고 있는 나비의 모습에 잠시 멈춰 섰던 산이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더 천천히 걷자꾸나.

 

 나비 너랑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걷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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