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딸은 영재가 확실합니다."
"이 아이 천재인데요?"
"세상에.. 어린 것이 이 정도라니, 이게 말로만 듣던 -"
"와 - 부럽다 부러워."
아직 유치원에 다니던 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들이였다.
그게 어느 정도였나면,
다른 아이들이 영어 알파벳을 쓸 동안 나는 영어 단어를 줄줄이 외워었고, 다른 아이들이 영어 단어를 줄줄이 외울 동안 나는 완벽하게 영어 선생님과 영어로 대화까지 나눌 정도였으니까.
그 밖에도 나는 남들보다 항상 먼저 진도를 나갔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도 나의 천재력은 끝내 어마무시하게 그 빛을 계속 발휘했다. 부모님 역시, 이런 나를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셨고 항상 나에게 갖고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들을 넘치도록 사주셨다.
나 역시 이런 내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나를 뛰어넘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자만심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였다.
내 재능은 "진짜"가 아닌 "가짜"였다는 걸. 6학년이 된 지 보름도 채 되지도 않았던 날이였다. 그때 수학 시험이 있었는데 그 당시 때 문제는 분명 쉬웠었다. 그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콧방귀를 뀌어내며 여유롭게 풀어었다.
역시나 이번 문제도 만점이겠거니 하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 맞을 줄만 알았던 시험지에는 짝대기가 세 개나 그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점을 못 받아 본 시험지에 잠시 당황하였지만 그런 나와는 다르게 선생님은 굉장히 놀라워 하셨다.
알고보니 이 시험지 문제는 애초에 중학교 수준의 난이도라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들한테는 많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세 개 밖에 안 틀린 사람은 나라고 하셨다. 역시 나다.
나만이 또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것이였다. 아이들 역시 부러운 건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가서 엄마랑 아빠한테 자랑해야지~! 그리고 오늘 저녁으로 햄버거 먹자고 해야겠다!"
나의 시험지를 보고 기뻐할 엄마,아빠의 얼굴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가니 이게 웬 떡? 마침 엄마랑 아빠가 식탁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엄마!아빠! 나나, 있지 오늘도 시험에서 - "
"내놔."
차가운 말투였다.
"나 ... "
"내 놓으라고 안들려?"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어리둥절하는 사이 이내 커다란 손들은 내가 들고 있던 시험지를 낚아챘다.
"아! 그거 선생님께서 어렵다고 했 ... -"
"장난해?"
또 다시 차가운 말투.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지금 세 개나 틀려놓고 웃음이 나와? 뭐? 어려워? 나 참..하여간 거짓말도 잘해요."
"그거..다른 얘들은..나보다.."
"다른 얘들이 뭐! 애초에 너는 코 흘리게 같은 걔들이랑 차원이 달라! 수준이 다르다고! 근데도 이게 잘했다고? 환장하겠네."
비수 꽂는 말에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쭈? 지금 눈물이 나와? 쪽팔려서 고개 못 들고 다니는 내 생각은 안해? 됬고, 내일부터 학원다녀. 이게 정신머리하고는 - 아! 빨리 뚝 그쳐! 맞기 전에-"
"아니..(흐윽)그..그거(흐윽)어렵-다고(흑)-나만 그 점수.."
감정에 북받쳐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앞으로 더 잘해야 될까 말까한 시긴데 야, 옆집에 사는 딸내미들은 말야, 이런 문제들은 한번에 다 맞추고 계속해서 공부한다고 하더라. 그러니 너도 잔말 말고 내 말 들어."
눈 앞이 캄캄해져만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원에 다니게 되었으며, 항상 밤 10시를 넘어서야 간신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 아빠는 주무시느라 집안이 늘 어두웠고, 식탁에 올려 둔 밥도 항상 식어서 차가워진 뒤였다.
불과 몇칠전만 해도 분명 화목하기만 집안이였다. 돌아오면 항상 반짝반짝하게 빛났던 방 안. 그리고 상냥하게 웃어주시는 부모님.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밥과 반찬들까지.. 이제 그런 것들은-
"이건 다 나 때문이야."
무심하게 툭 내뱉은 한마디. 곧이어 다른 말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만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니지, 아냐 사실 정말로 천재라면 그런 어렵다고 한 문제들도 거뜬히 다 맞혔야 했었어! 근데 난 뭐야? 나는 고작 그런 문제도..아냐, 애초에 ..아..어쩌면 차라리 이게 나을 지도 몰라.."
잠시 고개를 숙여 뜨거워진 머리를 진정시켰다. 괜찮다. 잠시, 잠시 방심해서 그런거다. 맞아, 사실 줄 곧 만점만 받았기에 혹여나 문제를 틀린 기분은 어떨까 하고 호기심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분명하다. 역시 나다..
실은 그런 문제들은 누워서 떡먹기였을 터..
그리고 딱히 지금처럼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다시 그 시험지를 준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아니 애초에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하잖아? 그야 당연히 나는 모두가 알아봐 주는 천재이니까! 아니 나만이, 나만이 천재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나는 완벽해. 아무도 내 앞길을 막을 사람은 죽어도 없을거야. 식어버린 밥을 대충 입안에 쑤셔 넣으며 방으로 가서 책을 펼쳤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다시 예전처럼 나의 자리를 되찾고, 다시 예전처럼 화목하기만 가정을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 그리고 어느 덧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흘러가고 그렇게 나는 14살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만점짜리 시험지를 받을 수 있었다.(거 봐, 그건 실수였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두 분다 표정이 여전히 좋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시 성적이 떨어지는게 불안하셨는지 되려 학원의 강도를 더욱 더 늘리셨다.
"꾸미는 건 대학가서 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그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자."
나는 엄마의 말에 미용실에 찾아가서 숏컷으로 자를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머리 긴게 더 귀여운 것 같아."
"맞아! 도도하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아!"
"도도하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라니! 이상해~"
"그..그런가? 히히."
"...이제 도도하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는 못 보겠네."
나는 무난하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중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꽤나 유명한 학교여서 그런지, 시설이 확실히 초등학교 때랑 비교도 안 될 만큼 매우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드는 건 왜일까?
그래도 공부 위주로 세워진 학교이다 보니 다른 중학교랑 사뭇 다른 점이 많았는데 특히나 그 중 하나는 우리 학교는 여자반, 남자반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이런 걸 남녀분반이라도 말한다.)
특히 이부분에서 학부모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이제 정말 죽어라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요."
"아휴, 솔직히 걱정했거든요. 이제 사춘기니까 이성을 사귀다가 성적 떨어질까봐."
"맞아요, 맞아!"
괜찮다. 나의 목표는 오직 한가지. 이곳에서 내 존재가치를 높히는 것, 그리고 인정 받아서 다시 예전처럼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 그것이외에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입학 첫날.
이 학교는 신입생들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 매년 이맘쯤 쪽지시험을 치른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행히 쪽지시험 문제들은 하나같이 쉬워보였다.
하긴, 가뜩이나 천재인 내가 학원까지 다니면서 실력을 쌓았는데 이 정도 쯤이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시험문제를 풀면서도 나는 몇번이나 확인하면서 정답을 써내려갔다.
"더 이상 예전같이 하찮은 실수를 하지 않을거야. 꼭 이 학교에서 유명해질 것이다."
다음 날-
나는 결국 만점을 받게 되었다.(이래야지 역시 나야.) 선생님께서도 내게 대단하다고 만점자가 "두 명"이나 있는 건 올 해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상대로, 역시 나..만..잠깐...
"만점자가 두..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