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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타락의 군주
작가 : 그림자꾼
작품등록일 : 2018.11.28

한 때 용사였던 자, 한 때 성직자였던 자. 끝 없는 절망에 빠져 타락한 군주가 된다!

[ 영혼을 가진 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가진 자는 타락하기 쉽다. 그대는 그 어떠한 일에도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선한 자는 악한 자가 될 수 있으며, 악한 자가 선한 자가 될 수 있다.

 
변질
작성일 : 18-12-02 22:38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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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롬은 절로 시선을 돌렸다.

 

 “네 녀석, 왜 그리 변한 것이냐? 예전에 그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네 녀석이 왜...?”

 “하,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셀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변화이라니, 저는 그때 그대로입니다.”

 “셀롬!”

 “토마!”

 

 법황, 셀롬 갓슈란체는 탁자를 내려치며 토마를 노려보고 말했다.

 

 “저는 당신을 동경했습니다! 아주 많이, 정말로···. 신과도 같이 우상으로서 숭배할 정도로요! 성직자였던 제가 신을 버리고 당신을 믿을 정도로요!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 영웅이라는 칭호! 평범한 사람이 그 정도로 노력하여 올라갔다는 것에 훌륭함이란 어떤 것인지 느꼈습니다! 정말로 노력한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정말로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셀롬은 떨리는 얼굴로 토마의 바로 얼굴 앞에 가져갔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사이에서 셀롬의 분노가 그대로 전해졌다.

 

 “당신은 저를 속였습니다.”

 “속여? 셀롬. 난...!”

 “평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민이 마왕을 물리치고 성공한다? 마침 동화 속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평범했던 사람도 그렇게 될 수가 있구나? 나 또한 그렇게 올라갈 수 있겠구나!! 하지만, 하지만...!! 왕도, 귀족도, 성직자도, 평민도 아닌···. 하찮은 도망친 ‘노예’ 출신이었다니!”

 “...”

 “그제야 왜 수 많은 왕국이 용사님에게 지원하지 않았는지 알겠더군요. 네, 그들은 지원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죽으라고’ 보낸 용사가 살아 돌아왔다? 그들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을 겁니다. 평민도 아닌, 노예 따위가 마왕을 물리칠 힘을 길렀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하찮은 노예, 평민 할 거 없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지요! 계급의 상하관계를 무시하며 자신들의 일을 내버려 두고 자기들이 귀족, 왕이다시피 행동하겠지요!”

 

 셀롬은 토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신의 분수를 아십시오! 그것에 맞게 행동하란 말입니다! 노예면 노예답게···! 도망친 노예라면 숨어서 살 것이지···! 용사 따위가 되어 나를 왜 이리 망가뜨렸느냐 말입니다-!”

 “...”

 "마왕 토벌이 있고 난 후, 당신의 그 비밀을 알았을 때 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노예가···. 노예 따위가···! 우리를···. `나`를···! 속였구나!"

 

 토마는 이를 악물었다.

 셀롬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숨을 돌리며 말소리를 낮췄다.

 

 “하, 제가 노예 따위에게 명령을 듣고, 말을 따르고, 귀를 기울이며 웃고 즐겼던 추억이···. 그렇게 수치심이 들지는 몰랐습니다.”

 “셀룸, 말이 지나쳐. 옛 동료였던 너라지만 이렇게까지 나를 욕보인다면···.”

 “지금 생각해봐도 굴욕감이 느껴지는군요.”

 “셀룸!”

 “...노예 따위가 감히 법황을 겁박하는 것이냐-?!”

 

 셀롬은 숨을 들이켜곤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이 지나쳤군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용사님.”

 

 셀룸은 감정제어가 되지 않아 급히 문가로 다가갔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그는 방문을 나가기 전에 입을 열었다.

 

 “마물들이 이번대의 ‘마왕’을 선출하였답니다.”

 “...!”

 “이제 곧 마왕 토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셀롬은 토마에게 잘 알아두라는 듯 말했다.

 

 “세율은 4할에서 6할로 올라갈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성황법국은 마물의 군대를 없앨 병력을 징집할 것이며, 장비를 제작할 자금을 모을 것입니다. 이제 새로 선출될 용사분들을 지원해야 할테니까요.”

 

 셀롬은 문을 열고는 말했다.

 

 “...이게 다 세상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 토마 수도사님. 앞으로 나올 후배를 위해 협조 부탁합니다.”

 

 법황은 고개와 함께 허리를 숙였다.

 누군가가 봤다면 놀랄 일이지만, 토마는 그런 셀롬을 보며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저 행동은 예의가 담긴 인사가 아닌, 빈정거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방문을 닫고 나온 셀롬은 웃는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고귀한 척하기는···!”

 

 그러다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저, 저기...”

 

 하얀 백발과 붉은 눈을 가진 수녀가 쟁반 위에 찻잔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셀롬을 쳐다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셀룸의 험악한 표정을 본 것이었다.

 셀롬은 자신의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을 풀었다.

 

 “아, 미안합니다. 수녀님.”

 “...”

 “용사님을 잘 부탁합니다.”

 

 셀롬은 엘리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는 급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토마가 이마를 짚고 눈을 감고 있었다.

 

 “저기... 수도사님?”

 

 토마는 엘리의 말을 들어서야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응? 아, 괜찮습니다”

 

 토마는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 미소에 피곤함이 깃들어 있었다.

 

 “...”

 

 셀롬은 조금 전까지 있던 수도원을 쳐다봤다.

 만든 지 20년이 지났지만, 거의 100년간 방치된 건물처럼 허름하고 낡아빠졌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신성한 신을 모시는 곳이라기엔 너무나도 누추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 언제 사라질지 모를 정도로 낡고 허름하군. 이런 곳에서 주신님께 기도를 올리면 오히려 노여워하실 것이야.”

 

 셀롬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성직자들을 쳐다봤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알아본 바로는 토마 수도사님이 기부금이나 세금을 빼돌린 흔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대다수 수도사나 수녀들이 빼돌린 정황이 있어 보입니다.”

 

 단지 몇 시간 만에 그들은 조사했다.

 법황의 전속 성직자라는 권위를 이용해 수도사와 수녀들을 압박하고 심문하는 데 있어 몇 시간도 불필요하다.

 그들은 거짓말이 서툴고 조금만 고함을 질러도 사실을 말할 정도로 담이 작을뿐더러,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잘못이 아닌, 죄를 묻고자 하는 것을 벗어나고자 타인의 잘못을 고발하는 것이다.

 

 “아쉽군요. 용사님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니···. 아직도 깨끗하고 순수한 척하는 것인지? 위선자가 따로 없군요. 그 노예의 더러운 피가 흐르면서도 용케...”

 “그리고...”

 “...?”

 

 셀롬은 성직자들을 바라봤다.

 

 “토마 수도사님께서 치료사를 찾아간답니다.”

 “치료사를요?”

 “네, 약사를 찾아간 모양입니다.”

 “왜...?”

 

 셀롬이 의아해하자, 성직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셀롬은 흥미로움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뭐, 이유가 있겠지요. 차근차근 알아가면 됩니다. 네, 차근차근···.”

 

 셀롬은 낡은 수도원을 쳐다봤다.

 

 “...짓밟아버리면 됩니다.”

 

 

 * * * * *

 

 토마는 눈앞의 노인에게 검사를 받고 있었다.

 약사 켈빈.

 오래전부터 토마의 몸 상태를 봐주던 마음씨 좋은 노인이었다.

 그는 입에 마스크를 쓴 채 토마가 내민 손을 만져보고는 주사기로 그의 피를 뽑아냈다.

 주사기 속의 덩어리진 피가 보였다.

 

 “...역시 위험하군.”

 “그렇습니까?”

 “약으로는 해결이 안 돼.”

 “...그래도 주십시오. 진통 효과는 있으니.”

 

 그 말에 켈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향해 약 봉지를 꺼내왔다.

 테이블 위에 올린 약 봉투 2개를 본 토마는 의아한 듯 그를 쳐다봤다.

 

 “뭡니까?”

 

 기존에 처방받던 약과는 다른 약이다. 게다가 양도 꽤 많았다.

 

 “1년치 약이라네.”

 “1년치요?”

 “그래, 게다가 귀한 약이야. 나도 어렵게 구한 것이니 잘 쓰게나.”

 “저에게 약값이 없습니다.”

 “그냥 가져가게.”

 “네?”

 

 약사 켈빈은 마스크를 짓누르며 말했다.

 

 “자네의 몸이 괜찮아질 게야.”

 

 토마는 그런 켈빈을 쳐다보며 의아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색깔이 보인다.

 영혼의 색이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점차 변해갔다.

 이것은 거짓을 뜻했다.

 켈빈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몸은 ‘죽음’을 선고받았다.

 이 병을 고칠 수 있을 리 없다. 켈빈이 내민 약을 먹는다고 해도 괜찮아질 리 없는 것이다.

 토마는 약을 내밀었다.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귀한 것을 그냥 주시다니요?”

 “그냥 받아. 자네 몸으로 수년은 참기 힘들어.”

 “그래도...”

 “게다가 마지막이라 주는 거야.”

 “마지막?”

 

 토마가 의아해하자, 약사 켈빈은 그의 시선을 마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이제 이 가게도 정리하려고 한다네.”

 “...?!”

 “수도의 물값은 비싸. 그래서 이곳을 떠나려고 한다네.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사는 게 좋겠지. 자네가 이 약을 받지 않으면 버려야 해. 그러니 가져가.”

 “...”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약은 항상 같이 있는 수녀 아가씨에게 주게나.”

 “네?”

 “그 아가씨, 몸이 약하잖아. 자주 빈혈이 있는 거 같던데. 약을 먹이면 좋아질 거야.”

 

 켈빈의 말에 토마는 망설이다 손을 뻗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언젠간···.”

 

 토마는 약봉지를 잡았을 때였다.

 켈빈은 약봉지를 잡은 상태로 놓지 않았다.

 

 “...?”

 “...미안하네.”

 

 토마가 의아해하자, 약사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하다 말했다.

 

 “아니, 자네의 병을 치료하지 못해서 말이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지요.”

 

 토마는 나름 치료마법에 능했다.

 심한 질병이나 상처는 약이나 성수보다도 마법으로 치료하는 게 더욱 이롭다. 토마 자신도 치료하지 못할 질병을, 약사가 치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토마는 켈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시골에서 평화롭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그래, 미안하네. 정말로···.”

 "그럼···."

 

 토마가 나가는 걸 본 켈빈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긴장했는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를 쳐다봤다.

 약을 가리기 위해 처진 허름한 천막이 걷어지며 가슴에 십자가를 새긴 백색의 판금 갑옷을 입은 성기사가 걸어 나왔다.

 그를 본 켈빈은 급히 카운터에 올려진 물을 마시며 말했다.

 

 “하, 힘들었습니다! 저 수도사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알아요! 아니, 그것 외에도 알 수 있는 거 같지만···. 말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속였군요. 다시는 이런 일 시키지 마십시오!”

 “약효는···?”

 “환각제입니다! 악몽을 꾸게 만드는 약이죠! 골목길에서 흔히 암거래되는 물건입니다! 성황법국에서는 악마의 약이라며 금지된 물품이지요!”

 

 켈빈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마약의 일종이며 아주 강력합니다! 몸에 통증을 없애주는 대신 몸이 굳어지는 약입니다. 또한, 묘한 쾌락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이지요! 병든 환자에게는 더없이 나쁜 약입니다! 아마 그 수도사는 그것을 맛보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에 약효가 있다 생각해 끊임없이 먹을 것입니다. 그 수도사의 몸 또한 좋지 못한 상태였으니 몸은 계속해서 악화 것이며, 그것이 약 때문이라는 걸 모르게 될 것입니다!”

 “수녀의 것은...?”

 “그것보다 훨씬 강도가 약한 것입니다! 다른 약과 섞였기에 오히려 멀쩡한 사람이 지속해서 복용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지요. 환각조차 느끼지 못하고 몸에도 큰 영향이 없습니다! 다만, 몸이 약한 여성이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켈빈은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닫고는 머리를 감쌌다.

 

 “수고했다.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켈, 켈빈입니다.”

 “그래, 약사 켈빈, 의뢰비다.”

 

 성기사는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던져버렸다.

 바닥에 던져진 주머니에서는 금화가 우수수 떨어졌고, 켈빈은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줍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녔다.

 

 “아아! 돈! 돈...!”

 

 그는 홀린 듯 흩어진 금화들을 움켜잡았다.

 

 “하, 하하! 이, 이제···. 굶지 않아도 돼! 먹고 살 수 있다고! 고생하지 않아도 돼!”

 

 켈빈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 모습에 성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 약사를 조사한 적이 있다.

 가족이 모두 죽고, 홀로 살아온 노인이다. 그런 노인에게 있어 토마는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에게 있어 아들처럼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토마는 전 시대의 용사. 인류의 대표되는 영웅이었다.

 역사서에 기록될만한 존재였으며, 마왕을 죽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용사가 칭송받지 못할망정, 지금은 오히려 버림받고 이렇게 이용당하고 있다.

 미천한 약사조차 그를 배반해버린 것이다.

 20년.

 길면서도 짧은 그 시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에 적합한 시간이기도 했다.

 

 ‘썩을 놈! ...뭐,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닌가?’

 

 성기사 역시 용사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났다.

 그 중 토마는 평민 출신으로 인생의 성공담을, 역대 용사 중 가장 드높은 명성을 가진 자였다. 그런 자를 성기사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왔지만, 지금은 법황을 모시며 용사의 시해를 돕고 있는 판국이다.

 만약 이 제안을 거절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입단속 잘해라. 입을 잘못 놀리면···.”

 

 켈빈은 놀라며 성기사를 쳐다봤다.

 

 “네놈은 이단 재판에 넘겨져 고문을 당하다 죽을 것이다.”

 

 켈빈은 겁을 먹고는 금화를 떨어뜨렸다.

 눈앞의 존재가 누군지 깨닫곤 몸을 떨고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상대는 대륙을 지배하는 성황법국의 성기사.

 마음만 먹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천한 약사 하나 죽인다고 죄가 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말 한마디, ‘이단을 처단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합법이 되는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

 

 엘리는 눈을 반짝이며 성황법국의 수도, 라니아 시장 주변을 둘러봤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웃고 즐기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천막을 친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을 향해 미소 짓고 손을 흔들었고, 소리를 치며 물건을 팔기 위해 노력했다. 손님들은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가격을 내리거나 쓸만한 물건인지 만져보며 물건을 사간다.

 주변에는 허름한 가죽과 경갑을 걸친 용병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수도를 수호하기 위해 온몸에 백색의 판금 갑옷과 원통 모양의 투구를 쓴 성기사들이 거리를 걷는다.

 엘리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잘 다듬어진 길가와 주변에 벽돌로 쌓아 올린 깨끗한 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런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 보면 아주 크고 웅장한,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성채가 보였다.

 커다란 벽과 그 위에 백색의 바탕에 황금색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웃음소리와 행복한 모습이 보이는 수도, 라니아.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

 엘리는 그렇게 들어왔다.

 하지만...

 엘리는 시선을 달리했다.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그것은 겉모습에 불과했다.

 곳곳에는 불행한 이들이 가득하다.

 골목길을 쳐다보면 지금 보고 있던 겉모습이 모두 거짓인 양 지옥이 펼쳐졌다.

 감옥에 갇혀 있는 노예들을 보며 채찍질을 하는 노예 상인이나, 먹을 것을 구걸하는 이들, 몸을 팔아 돈을 취하는 이와 약을 사며 취하는 이들, 폭행과 협박을 하는 이와 그것을 당하는 이.

 그것이 금지된 일이라고 해도 성기사들은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

 엘리는 흠칫 놀라며 옆을 쳐다봤다.

 바로 옆에 천으로 덮인 마차가 지나간다.

 그 마차는 쇠창살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인간이 아닌, 아인종들, 인간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종족이 갇혀 끌려가고 있었다.

 목과 손에 족쇄를 채우고, 몸을 겨우 가릴 듯한 넝마를 걸친 아인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짓고 두려움에 차 있었다.

 마차가 멈추고 노예상은 허리를 펴며 물을 마셨다.

 그 모습에 노예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물을 쳐다봤다.

 그들로서는 목이 너무나도 마른 것이다.

 엘리는 급히 품에서 물병을 꺼내 다가가 쇠창살에 손을 내밀었다.

 

 “...이거 마실래?”

 

 멈칫한 아인.

 녹색의 피부와 주름진 얼굴, 아래 입에서 송곳니가 튀어나오고 길쭉하고 큰 코를 가진 근육질 오크는 엘리를 보며 뒤로 물러섰다.

 평범한 사람들이 본다면 두려워 접근조차 하지 못할 괴물의 모습이다.

 오크는 그런 엘리를 경계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물병을 잡았다. 그리고 목을 축이며 몸을 떤다. 물을 마시고 나자 다른 노예들에게 나눠줬다.

 오크는 물이 다 떨어진 걸 확인하고 물병을 다시 엘리에게 내밀었다. 엘리는 그 물병을 잡을 때, 오크가 입을 열었다.

 

 “고...”

 “...?”

 “고, 고맙다. 인간. 고마워.”

 

 엘리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지더니 기분이 좋은 듯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응!”

 

 * * * * *

 

 노예상이 다시 마차에 타 출발했고, 엘리는 쇠창살에 갇힌 오크를 바라보며 울상이 되었다.

 

 “...불쌍해.”

 “무엇이 말입니까?”

 

 엘리는 흠칫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금방 갔다 오겠다던 토마가 돌아온 것이다.

 

 “어디 갔다고 오셨어요?”

 “약을 사러 갔다 왔습니다.”

 

 엘리는 화들짝 놀라며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요.”

 

 토마는 엘리에게 약봉지를 내밀었다.

 

 “이건...?”

 

 엘리는 약 봉투를 받고 토마를 쳐다봤다.

 

 “빈혈에 좋다고 하더군요. 귀한 약재이니 잘 쓰십시오.”

 “귀, 귀해요? 비싼가요?”

 “아니요. 약사분께서 서비스로 주셨습니다. 이제 가게를 정리한다고 말이죠.”

 

 엘리는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토마가 쥔 약 봉투로 향했다.

 

 “그 약은 뭔가요?”

 

 토마는 자신이 들고 있는 약을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보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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