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6. 춘희(3)
작성일 : 18-12-01 21:38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458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길은 마을의 다른 곳보다도 곧고 반듯하게 잘 닦여 있었다. 확실히 비만 오면 진흙투성이로 변하는 제 집 앞의 길과는 달랐다. 춘희모는 마치 이것부터가 제 딸의 처지와 인철의 처지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을 더욱 다잡았다.

 

 권번에 있던 언니에게서 개중에 가장 얌전하고 고운 한복을 빌려 입은 춘희모는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위세가 대단한 집이라 함부로 발걸음을 들여놓을 수 없는 정인철의 집은 그 위세만큼 돌담이 길게 이어졌다. 높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기와에 앙 다물어지는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 입김이 숨길 수 없는 긴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후우.”

 

 커다란 나무 문 앞에 서자 춘희모 입에서 저도 모르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굳게 마음을 먹고 왔지만, 문 앞에서부터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한 겨울임에도 손바닥에서는 땀이 배여 나왔다.

 

 춘희모는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두들겼다.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안에서 뛰어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시종은 잠시 춘희모를 보고 멈칫 거렸다. 자신은 본 적 없는 이였으나 그는 그녀를 알아본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찌 오시었소?”

 

 “어르신을 만나러 왔소.”

 

 그는 잠시 예서 기다리라 말을 하고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안채로 달려갔다. 그러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집 안 깊숙한 곳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시종을 따라 몇 개의 중문을 지나고 나니, 작은 연못이 있는 조용한 목조 건물 앞에 도착했다.

 

 “어르신, 모셔 왔습니다.”

 

 - 들이게.

 

 안에서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종은 춘희모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몸짓을 했다. 그녀는 긴장된 마음을 애써 부여잡고 툇마루에 올라섰다.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가니 방안에서는 묵향이 진동했다. 그리고 이내 방의 가장 안쪽에서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서책을 읽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춘희모는 자신이 들어온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의 태도에 가까이 다가서지도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읽고 있던 서책을 덮고 고개를 들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춘희모는 더 이상 생각 같은 건 할 겨를도 없이 문 앞에 서있던 그대로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르신.”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으나, 첫마디부터 목소리가 떨려왔다. 하지만 남자는 얘기를 계속 하라는 듯 말없이 그녀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르신, 못난 우리 딸이 당신 아들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호기롭게 ‘당신의 아들’이라 지칭했으나 여전히 말이 없는 그의 모습에 춘희모는 한 가닥 갖고 있던 이성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춘희모는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제 딸만은 자신의 팔자를 닮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있는 힘껏 읍소했다.

 

 “그래서 자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 겐가?”

 

 “인철 도련님과 제 딸 춘희를… 연을 맺어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에 오기까지 그토록 다짐했건만, 결국 춘희모 입에서 인철을 높여 부르고 있었다.

 

 “내가 인철이와 자네 여식이 만나는 걸 모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나?”

 

 “!!!”

 

 “어차피 지나가는 연임을 아니까 그리 둔 것일세.”

 

 “…….”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네. 지금 자네가 한 말은 그 후자일세.”

 

 “어르신.”

 

 춘희모는 인철부의 그 다음 말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그의 말을 막고 봤다. 그러나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엄한 표정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 하나만 묻겠네. 그 아이, 아비가 어찌 되는가?”

 

 “……!”

 

 춘희모는 인철부가 이렇게 물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기에 그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들이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기생의 딸은 받아들일 수 없네. 지금도 내 집에는 인철이와 연을 맺고 싶어 찾아오는 이가 많네. 그들 중에 자네 딸은 어느 위치일 것 같나?”

 

 “그…그렇지만 두 사람이 서로 정을 통했고…….”

 

 “그럼 반대로 물어봄세. 자네가 나라면 어찌하겠나?”

 

 “…….”

 

 춘희모는 인철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기생이 낳은 애비도 모르는 제 딸과 연곡 제일의 가문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이 어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제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춘희모는 차라리 인철부가 여느 대감 집처럼 저를 박하게 대하며 소리를 쳤다면, 강짜라도 부릴 생각이었다. 옷자락이라도 잡고 매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저를 알고 제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저를 대하는 인철부의 모습은 싸울 전의마저 상실케 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 자신조차 처음부터 안 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서 어찌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싸움을 해보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진 것 같아 속이 쓰리다 못해 아려왔다.

 

 춘희모는 눈에 띄는 아무 선술집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술은 그녀를 지탱해주는 힘이었지만, 오늘처럼 자신의 초라함을 몸서리치게 느낀 날의 술은 그녀에게 독이 되었다.

 

 술기운이 오를수록 채 싸워보지도 못해 잃어버린 전의가 점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는 의미 없는 강짜가 한마디씩 튀어나오고 있었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우리 춘희가 어디가 어때서? 애미 잘못만나 고생뿐인 내 딸이 어디가 어떻다고? 잘난 부모 만났어봐. 나도 그깟 집구석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춘희모는 다시 술잔을 채우려다 나오지 않는 술을 따르다 말고 중얼거렸다.

 

 “그 잘나빠진 집안이 독립군 자금줄이란 걸 꼰지르던지, 내가 그놈 집안 명줄을 끊어놓든지!”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선술집 한 구석에서 작게 혼잣말처럼 궁시렁 거리던 말이었지만, 애초부터 담아서는 안 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춘희모는 그렇게 한참을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비척 이는 걸음으로 선술집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춘희모와 기둥을 사이에 두고 등을 지고 앉은 자리에 조순사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낮은 목소리에 그의 눈은 번뜩였다. 그리고 뱀 같은 비릿한 미소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날, 밖에서 들려오는 춘희의 헛구역질 소리에 잠에서 깬 춘희모는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며칠째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 비쩍 마른 것 같은 딸의 모습에 자꾸만 어제 먹은 술이 깨지 않아 객기마저 올라오고 있었다.

 

 춘희모는 보이는 것 아무거나 손에 채어 들고 다시 정인철의 집을 찾았다. 절대 춘희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엄마의 삶을 이었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춘희모는 그저 제 딸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 소담스런 가정을 꾸려 살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신분이며 집안 차이가 나는 정인철과의 만남이 탐탁지 않았다.

 

 저처럼 소리를 배우고 춤을 배우고 싶다는 춘희의 말에 화가 났던 춘희모는 인철의 애를 배었다고 하는 춘희의 말에 그녀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정인철의 집의 육중한 문을 두드리자 어제 저를 맞았던 시종이 문을 열어줬다. 문을 연 시종은 낫을 들고있는 춘희모의 모습에 놀라 문에서 물러섰다. 때마침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정인철의 부는 양장을 차려입고 중문을 나서고 있었다.

 

 “어르신.”

 

 춘희모는 저를 보고도 아무 말하지 않는 인철부를 보고 대뜸 강짜부터 놓았다.

 

 “어제 그러셨죠? 저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어제 못한 대답 지금 해야 겄소. 저는 그 짝 입장이 아니어서 잘 모르겄지만, 나는 내 딸 춘희의 애미라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겄소.”

 

 춘희모는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들고 있던 낫을 꽁꽁 언 바닥에 내리 꽂고는 찬 바닥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춘희를 이 집 며느리로 받아주시오. 그러면 나는 이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거요. 어디 찾지도 못하는 그런 곳으로 떠나겄습니다. 그러니…….”

 

 “자네가 내 말을 오해했군, 그래.”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인철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가 쉬이 자네와 대면했다고 해서 내 말이 우습게 보였나 보군.”

 

 그의 낮고 싸늘한 음성에 춘희모와 주변에 있던 시종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람은 모름지기 분수란 것이 있네. 이는 자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집안의 문제라는 말일세. 한 해 농사를 잘 하기 위해서 뭐가 중요한 줄 아나? 종자씨? 아닐세. 밭이라네. 아무리 종자씨를 좋은 걸 쓰더라도 그 밭이 맞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망치게 되는 게지.”

 

 “……!”

 

 “그러니 나는, 내 집안의 씨를 아무것에나 뿌릴 생각이 없네.”

 

 낫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춘희모의 손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던 눈은 빨갛게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춘희모는 낫을 뽑아 일어서서 인철부에게 다가갔다. 시종들이 춘희모를 저지하려 했으나 인철부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어르신은 저와 같이 죽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얻어지는 게 무언가? 내가 죽으면 인철이 자네 여식을 받아 줄 성 싶은가?”

 

 “……!”

 

 춘희모는 인철부의 말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인철부가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는 살 만큼 산 사람이라 미련은 없네만. 자네가 나를 죽이고 난다면, 자네 여식이 과연 온전하게 이곳에서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춘희가 걱정이라며 말을 내뱉는 인철의 부의 모습에 춘희모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고 흔들렸다.

 
작가의 말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9. 바람에 나부끼는 꽃(2) 2018 / 12 / 19 233 0 4611   
18 18. 바람에 나부끼는 꽃(1) 2018 / 12 / 17 254 0 4409   
17 17. 동백아가씨(5) 2018 / 12 / 17 239 0 5252   
16 16. 동백아가씨(4) 2018 / 12 / 12 239 0 4419   
15 15. 동백아가씨(3) 2018 / 12 / 12 238 0 3968   
14 14. 동백아가씨(2) 2018 / 12 / 11 235 0 4008   
13 13. 동백아가씨(1) 2018 / 12 / 9 243 0 4030   
12 12. 춘우(春雨)(5) 2018 / 12 / 9 260 0 4113   
11 11. 춘우(春雨)(4) 2018 / 12 / 8 232 0 4165   
10 10. 춘우(春雨)(3) 2018 / 12 / 7 247 0 4443   
9 09. 춘우(春雨)(2) 2018 / 12 / 6 223 0 4716   
8 08. 춘우(春雨)(1) 2018 / 12 / 4 250 0 4331   
7 07. 춘희(4) 2018 / 12 / 4 261 0 4936   
6 06. 춘희(3) 2018 / 12 / 1 246 0 4588   
5 05. 춘희(2) 2018 / 11 / 30 226 0 4086   
4 04. 춘희(1) 2018 / 11 / 28 239 0 4697   
3 03.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3) 2018 / 11 / 28 253 0 4794   
2 02.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2) 2018 / 11 / 27 250 0 4075   
1 01.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1) (1) 2018 / 11 / 26 428 2 391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그녀에게
최선영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