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로켓맨 헌트
“요코, 요코!”
나 돌이 2층을 향해 외쳤다. 수복이 다시 2층을 향해 콩 자갈을 던졌다. 베란다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사내들이 긴 칼을 앞세우고 빠르게 앞으로 왔다.
“나 돌, 피해!”
요코가 2층 베란다에서 외쳤다. 요코와 눈이 마주쳤다. 칼을 앞세우고 오는 사내들을 향해 수복이 자갈을 던졌다. 캉, 캉, 사내들이 칼을 휘둘러 자갈을 막았다.
“어쭈, 제법 인데...”
수복은 사내들이 자갈을 막는 걸 보고는, 손으로 자갈을 여러 개 집어서 던졌다. 자갈이 허공에서 퍼져 날아갔다.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칼을 휘둘렀지만, 자갈을 맞고 쓰러졌다. 나 돌은 2층으로 올라갈 방법을 찾았다.
“보고 싶어 왔어요, 너무 보고 싶어서요...”
나 돌은 2층을 향해 외쳤다. 요코가 마당에서 싸우는 현장을 보다가 나 돌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요코가 한쪽 발을 옆으로 들었다. 발에는 굵은 쇠사슬이 묶여 있었다. 나 돌과 수복은 요코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칼을 든 사내들이, 앞에 선 사내가 쓰러지는 걸 보고는 주춤하고 섰다. 수복이 자갈을 손에 여러 개 들었다. 사내들이 잔뜩 웅크리고 뒤로 한발 물러섰다.
“덤벼, 누구든지 앞장서면 죽는다!”
수복이 성큼성큼 걸어서 쓰러진 사내에게 갔다. 사내가 움켜진 칼을 빼앗아 들었다. 나 돌을 안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앞으로 붕, 떠올랐다. 2층 베란다에 올랐다.
“돌, 나 돌, 반가워”
“요코, 보고 싶었어요.....”
나 돌이 손을 내밀었다. 요코가 나 돌의 손을 잡았다.
“어쩌려고, 금방 몰려올 거야, 피해!”
“같이 가요, 같이 가려고 왔어요.”
“움직일 수 없어, 그리고 같이 가면 나 돌이 위험해...”
“요코, 부탁이에요, 같이 가요.”
“위험해.....”
요코가 말끝을 흐렸다.
“형 말이 맞네, 열쇠를 누가 갖고 있지요?”
요코도 나 돌을 보고 싶어 하냐고 물었던 수복은, 요코가 하는 걸 보고 인정했다.
“시게이가, 빨리 가.....”
요코가 나 돌을 응시하며 가라고 했다. 나 돌이 발목을 묶은 쇠사슬을 자를 방법을 궁리하느라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쇠사슬은 벽에 박힌 둥근 쇠에 연결되어 있었다. 쇠사슬 끝에 둥근 원으로 된 쇠가 요코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계단으로 사내 넷이 칼을 들고 올라와서 옆으로 섰다. 수복이 칼을 세웠다.
“누구든지 먼저 날뛰는 놈은 죽는다, 덤벼!”
사내들 옆으로 한 걸음씩 옮기면서 눈치를 살폈다. 수복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요코의 발목을 연결한 쇠사슬을 칼로 내려쳤다. 캉! 불꽃이 튀었다. 쇠사슬이 끊어졌다. 사내들이 동시에 수복을 향해 뛰어올랐다. 수복이 한 손에 들고 있던 자갈을 허공에 던졌다. 악! 두 사내가 자갈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두 사내가 수복을 칼로 찔러왔다. 수복이 가볍게 피하면서 사내를 찔러 갔다. 거실이 세 사람이 싸우기에는 좁았다.
“가요, 빨리요.”
“여기서 나가면 다시는 못 와, 그래도?”
“제가 항상 지켜 줄게요, 아니지, 함께 있을게요.”
요코는 나 돌을 보면서 망설였다. 수복이 사내 하나를 쓰러트렸다. 혼자 남은 사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수복이 칼을 세우고 한 발 앞으로 갔다. 사내가 뒤로 물러나다, 베란다를 밟고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수복도 사내를 따라서 뛰어내렸다. 사내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덤벼, 쫍밥아!”
“아니요, 제발!”
사내가 떨리는 음성으로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다. 수복은 피식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목에 칼을 맞은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수복이 2층을 올려 보면서 외쳤다.
“가자, 형!”“응, 잠깐만!”
나 돌이 요코에게 같이 가자는 눈짓을 던졌다. 요코가 눈을 껌벅이며 망설였다.
“난 뼈 속까지 일본 사람이야, 넌 나철의 후예고.... 그래도 가자!”
요코는 나 돌의 허리를 잡고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야, 시게이가 도착하면 못가!”
요코가 나 돌의 허리를 잡고 담 위에 올랐다가, 밑으로 뛰어내렸다. 수복은 집 안으로 들어가 책상을 뒤져서 서류를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가스 렌지에 불을 켰다. 책과 신문에 불을 붙여 거실에 던졌다. 창문 커튼에 불이 옮겨붙었다.
“쪽바리들아, 뜨거운 맛 쫌 봐라!”
닫힌 방문을 돌아보고는 계단실 벽에 걸려있는 두꺼비 집에서 스위치를 내렸다. 집안에 전기가 나갔다. 방안에서 여자들 비명이 들렸다. 방문이 열리고 여자 둘이 뛰어 나왔다. 거실에 불이 옮겨 붙는 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어, 불이야요, 불으 끄세요.....”
일본식 한국말로 수복에게 불을 끄라고 외쳤다. 수복이 여자에게 걸어갔다. 여자 둘이 수복의 얼굴에서 살기를 느끼고, 돌아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수복이 뒤 따라 나갔다. 여자 둘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수복은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크게 하며 제자리에서 뛰었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서, 서스므니다!”
집 안 거실에서 불이 번졌다. 수복이 불이 타는 걸 마당에서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만세, 대한 독립만세!”
수복이 두 팔로 하늘을 찌르며 크게 외쳤다.
*..*
요코의 집이 타는 걸 확인한 수복은 집 앞에서 기다리건 나 돌과 합류했다. 택시를 타고 파고다 공원 옆에서 내렸다. 요코의 발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끊으려고 골목에 들어갔다. 수복이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골목을 나갔다. 오래된 한옥이 옆으로 늘어선 골목 안에 나 돌과 요코가 남았다. 요코는 한옥 앞 돌계단에 앉았다. 나 돌은 요코의 발목에 매달린 쇠사슬을 손으로 잡았다.
“계속 발목에 매달려 있었겠네요? 미안해요...”
“나 돌이 왜 미안해? 룰을 어긴 벌일 뿐이야, 또 어기게 되었지만... 나 돌을 만나는 건 룰을 벗어나는 행위야, 할 수 없지 뭐...”
요코는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었다.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수복이 집을 불 지른 건 제가 사과 할게요... 조금은 이해 못 할 짓을 해요, 미안해요.”
“손맛이 매섭기는 하더라... 부하들한테 미안하지, 상대가 안 되는 고수에게 덤비면서 얼마나 두려웠겠어, 개구리 권법을 완벽하게 구사하던데... 엄청난 고수야.”
“개구리권법이었어요? 잘 모르겠던데... 아직 무술이 뭔지 몰라서 그런 가...”
“개구리 권법을 응용한 동작이었어, 단기개천에 나와 있던 동작을 나누어 펼친 거지, 일본에는 안 좋은 일이지만, 세상에는 완벽히 새로운 무술이 출현한 거지...”
골목은 어둑했고, 폭이 좁아 안정감이 있었다. 요코의 발목을 잡은 동그란 쇠는 은빛이었다. 수복이 야구 방망이만한 가위 같은 걸 가지고 골목으로 들어왔다.
“공사 현장에 마침 얘가 있었어, 단번에 잘라 버릴게.”
수복은 나 돌에게 말하면서, 큰 가위로 바닥을 두드렸다. 나 돌이 요코의 발목을 잡아 내밀었다. 굵은 철근을 자를 때 사용하는 연장이었다. 수복은 요코의 발목과 동그란 쇠 사이에 가위 끝을 집어넣고, 벌어진 가위를 조였다. 가위가 쇠를 잘랐다. 수복이 으음...힘을 가해 두 손으로 쇠를 벌렸다.
“이제 됐다, 걸어 보세요.”
“고맙습니다!”
수복이 쇠사슬을 귀퉁이에 던졌다. 요코가 일어나 발을 구르며 웃었다. 요코의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빛났다. 수복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요코가 구르는 발을 보았다.
“근대 물어 볼 게 있는데...”
수복이 요코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던졌다. 요코가 갸웃하면서 뭐냐고 눈으로 물었다.
“로켓맨 헌트가 뭐죠?”
수복의 질문에 요코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 돌은 수복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로켓맨... 잘 모르겠네요. 왜 묻죠?”
“그냥... 모른다 이거죠?”
수복은 요코에게 확인을 구했다.
“예, 로켓맨 헌트가 무슨 말인지... 왜 그러는데요?”
“모른다면서요? 알아야 정상인데... 진짜 몰라요?”
수복은 집요하게 요코에게 물었다.
“그게 뭔데?”
나 돌은 수복이 알고 싶은 게 뭔지 궁금했다. 요코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모른다는데, 여자는 믿으면 안 된다는 옛말이 맞네... 형한테는 나중에 말해 줄게.”
“지금 말해줘, 요코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복이 요코를 막 대할까 봐 걱정이었다.
“형 얼굴 봐서 참고 있어, 집에서 갖고 온 서륜데 모른다네...”
수복은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위 아래를 잡아 세워 보여 주었다. ‘로켓맨 헌트’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나 돌과 요코는 수복이 들고 있는 서류를 보았다.
“그게 뭔데?”
나 돌이 서류를 보면서 수복에게 물었다.
“이 서류 집에서 나온 건데, 몰라요?”
“모르는데, 알아야 하나요?”
수복이 말투를 바꾸어 물었다.
“당연히 알아야지, 집에서 나온 건데 집주인이 몰라?”
“모른다고 했는데, 말이 걸구나?”
요코가 일어났다. 수복이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나 돌이 수복 앞에 섰다.
“하지 마, 요코에게 함부로 대하지 마, 부탁이야.”
“형 얼굴 봐서 참고 있는 중인데, 말이 걸다고? 하네...”
“두 번 이상 확인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요코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수복에게 명령조로 던졌다.
“말까는 중? 형 때문에 참아 줄 때 정신 차려, 거짓말 치지 말고.”
“수복아, 하지 마!”
나 돌은 수복을 말리려 들었다. 요코가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 건방진 놈!”
요코가 수복에게 분노를 던졌다. 수복이 서류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게 뭔데? 로케맨 헌트가 뭐냐고?”
나 돌이 수복에게 물었다.
“김정은 암살이야!”
수복이 담담하게 뱉었다. 나 돌은 수복이 던진 말의 뜻을 몰랐다.
“김정은 암살...”
나 돌이 중얼거렸다.
2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