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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5. 춘희(2)
작성일 : 18-11-30 23:10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4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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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희는 인철이 넣어준 사진을 무릎을 감싼 채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나란히 서있는 춘희와 인철의 사진이었는데, 인철의 말대로 긴장을 해서 그런 것인지 춘희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이 사진은 춘희나 인철에겐 특별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처음으로 나란히 섰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춘희는 인철과와 함께 있을 때면, 늘 그보다 한 발짝 뒤에 서있거나, 반보 뒤에서 걸었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인철은 그런 춘희에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니 옆으로 오라고 했지만, 춘희는 늘 저도 모르게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사진을 찍던 그 날도 말없이 인철을 따라 갔었는데,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사진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옷차림이나 머리 손질에 신경을 썼을 텐데 인철은 이곳에 오는 동안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었다. 쀼루퉁해진 춘희는 자신의 옷차림이나 머리가 걱정이 되었는데, 인철은 그런 그녀를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했었다.

 

 ‘춘희야, 나는 네가 자존심이 강하고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일하고 지기 싫어하는 아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도 좋지만 지금의 네가 더 좋다. 왠지 지금의 네 모습을 남겨두면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매일의 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거든.’

 

 춘희가 사진을 보며 그 날의 일을 떠올리느라 답이 없자, 방문 너머에서 인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나는 가봐야겠구나. 언제 볼지 모르니 그리 울지만 말고 씩씩한 여성이 되어라.”

 

 “……!”

 

 춘희는 인철의 마지막에 저도 모르게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 인철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멀어지는 소리에 춘희의 마음은 애가 탔다. 춘희는 이제 언제 볼지 모르는 그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한쪽 벽에 부딪쳐 활짝 벌릴 수 있을 최고의 넓이로 벌어졌다.

 

 춘희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툇마루를 내려와 섰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선 춘희는 더 이상 쫓아가지도 못하고 반쯤 열린 싸리문을 쳐다본 채, 마른땅 위로 굵은 눈물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춘희야.”

 

 그런데 이미 들릴 일 없는 목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 춘희가 말없이 몸을 돌리자 인철은 이리 나올 줄 알았다는 얼굴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춘희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인철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찡긋거리자 이내 그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인철은 제 품에 안긴 춘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토닥였다.

 

 “나는 네 얼굴이 보고 싶은데… 얼마나 못생겨졌는지 볼까?”

 

 춘희는 진담인 듯한 인철의 농담에 서러운 눈물을 매단 눈을 그의 가슴에 묻었다. 춘희는 지금도 이렇게 따뜻한 그의 품이, 포근한 그의 체취를 내일이면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질 않았다.

 

 그가 없는 삶이 도무지 떠올려지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도 미어지게 아파서 차마 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눈물만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다음 날, 춘희는 아침 일찍 떠나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러나 가족들에 둘러싸여 배웅을 받는 그의 앞에 나설 수 없어 그저 먼발치에서만 그의 마지막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았다.

 

 인철도 혹여 춘희가 나와 있지는 않을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디에서도 춘희는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이 배웅 나올 것을 아는 춘희가 이곳에 나올 리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찾고 있는 것이다.

 

 인철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몇 년은 보지 못할 고향을 눈에 담은 채 기차에 올랐다. 인철이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고 기차가 출발할 때쯤 역사 뒤편의 건물에 몸을 숨긴 채 기차를 바라보고 있는 춘희를 발견했다.

 

 인철이 급하게 창문을 열지만 그의 속을 알 리 없는 기차는 이내 속력이 붙어 그의 맘을 채 전할 새 없이 춘희와 속절없이 멀어져 갔다.

 

 춘희는 인철을 태우고 멀리 사라진 기차를 숨을 죽인 채 한참을 쳐다봤다. 더 이상 꽁지조차 보이지 않음에도 그녀의 무거운 마음이 발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망부석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기찻길 너머를 쳐다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춘희모는 축 쳐진 어깨로 마당으로 들어서는 춘희의 모습에 화가 들끓었지만, 그 마음이 어떤지 알아 오늘만큼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이라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질 않는 춘희를 위해 미음을 끓여 방안으로 갖고 들어왔다. 춘희는 벽을 향해 모로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일어나. 뭔 예쁜 짓을 했다고 구들장을 차지하고 있어?”

 

 마음과는 다르게 투박한 말이 춘희모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일어나서 밥 먹어.”

 

 여전히 등만 보이며 꼼짝도 하지 않는 춘희의 모습에 춘희모가 한숨을 내쉬는데, 낮게 중얼거리는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가고 싶어.”

 

 춘희모는 순간 제가 잘 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뭐?”

 

 “나도 일본 가고 싶어.”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여자의 몸으로 그 멀리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일본에 유학 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뱃삯만 하더라도 순사의 몇 달 월급보다 많은데 남의 집에서 일하는 처지의 춘희모에겐 그만한 돈도 없었다.

 

 “일본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알아?”

 

 “알아.”

 

 “안다는 애가 옆집 마실 가는 것처럼 말을 해? 쉰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어.”

 

 춘희모는 기가차서 화낼 의지조차 나지 않아 그저 춘희의 말을 무시하려 했다. 그런데…….

 

 “엄마. 우읍…….”

 

 “……!!!”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앉으며 저를 쳐다보던 춘희가 갑자기 입을 가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말들에 춘희모는 밖으로 나간 춘희를 눈으로만 쫓았다.

 

 몇 끼를 먹지 않아 빈속이었던 춘희는 코끝에 닿는 미음 냄새에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마당의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구역질을 해보지만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건 없었다. 물푸개의 마중물로 쓰기 위해 담아 놓은 물을 바가지로 퍼 마시자 그제야 속이 조금 편안해졌다.

 

 입가의 물기를 손등으로 닦고 있는데, 하얗게 질린 얼굴의 춘희모가 춘희의 팔을 낚아채 방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엄마, 아파.”

 

 춘희는 지금 엄마가 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간 얼굴로 여전히 제 팔을 세게 잡고 있는 춘희모를 쳐다봤다.

 

 “너… 너…….”

 

 춘희모는 심장이 벌렁거려 확인해야만 하는 말들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두 팔로 춘희를 똑바로 제 앞에 가져다 놓은 춘희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똑바로 말해. 인철 도련님이랑 무슨 일 없었지?”

 

 “무슨 일?”

 

 “그러니까… 인철 도련님한테 여자로 안긴 적이 있냐는 말이야.”

 

 “!!!!”

 

 춘희는 춘희모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조금 전 자신의 헛구역질에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춘희가 생각하느라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자, 춘희모가 다시 물어왔다.

 

 “너, 그래서 일본가고 싶다고 한 거야?”

 

 그리고 그 순간, 춘희모의 말에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그대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응.”

 

 춘희모는 춘희의 말에 힘이 쭈욱 빠졌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춘희를 살피며 다그쳤다.

 

 “허튼 소리하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두 번은 안 물어 볼 거야. 애가 생길 만한 짓을 한 거야? 그래?”

 

 “응. 나, 임신했어. 도련님 아이야.”

 

 짝-. 춘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춘희의 얼굴이 돌아갔다. 춘희가 얼얼한 뺨을 제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들자 입술을 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물이 엄마의 빨개진 눈에서 뚝 떨어졌다.

 

 춘희모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딸아이의 모습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이 몰아 왔다.

 

 춘희모는 권번에서 기생으로 지내던 시절에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춘희를 낳았다. 춘희만은 자신의 인생을 닮지 말아야 한다고 기원했건만, 기구한 팔자는 비켜갈 수 없는 법인가.

 

 춘희모는 자신의 인생이 끝난 것 같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커다란 돌덩이 같은 것이 가슴에 콱 박힌 것처럼 아파왔다.

 

 춘희는 자신을 쳐다보며 부들부들 떠는 엄마의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사소한 거짓말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 줄은 그 누구도, 말하는 당사자인 춘희도 알지 못했다.

 
작가의 말
 

 사고란 것은 원래 그렇게 의도치 않게 터지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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