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무조건, 무조건이야!
“어디로 모실까요?”
“출발 하세요, 성북동요!”
나 돌은 무심결에 성북동을 목적지로 정했다. 수복은 눈을 크게 뜨고 나 돌을 보았다.
“보고 싶어, 못 살겠어.....”
나 돌은 묻지도 않았지만, 비장한 목소리로 각오를 밝혔다.
“형이 찾아 가면 좋아 할까?”
“모르지... 문제는 내가 집중할 수가 없다는 거지, 운기 조식을 할 때도 집중이 안 되고...”
“그래... 쫌 전에 그 여자 이상하지?”
“뭐가?”
수복에게 쫌 전에 왜 그랬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구해 줬잖아, 예쁜 여자가 나이 먹은 아저씨한테 당하고 있는데... 그런데 나한테 그 여자가 덤비니까 이상한 거지...”
“뭘 구해줘?”
“여자를, 강제로 끌고 들어갔겠지, 그런데는 나쁜 사람들이 들어가는 거야?”
수복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물었다. 수복의 질문에 웃었다.
“나쁜 건 아니고, 연인들이 쉬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강제로 거길 따라 들어가는 사람은 없어, 원해서 들어가는 거지, 강제로 어떻게 데리고 들어가?”
“꼼짝 못하게, 혈을 집어서... 아닌가?”
수복은 나이 먹은 남자가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혈을 잡는 건 무공이 뛰어난 극소수의 사람만 가능해, 돈 밝히는 여자일수도, 취향이 그런 걸 수도 있어, 그 여자가 덤빈 건 당연한 거지.”
“이상하다... 여자는 알 수가 없어... 전에 그 여자도 일본 놈을 따라다녔잖아?”
수복의 말을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난 일본 여자 만나러 가는데?”
“아, 그렇지!”
수복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가슴이 앞뒤로 흔들릴 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수복이 옆에 있어 든든했다. 그리고 위험을 함께 감수해 주는 수복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
“모르는 번호라 안 받으려다 받았더니, 연락 잘 하셨어요.”
넓은 호프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사거리 2층에 위치해서 아는 사람만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바삭하게 익은 조각난 치킨은 먹음직스러웠다. 민지는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았다. 약국의 오너에게 여러 번 연락이 왔었다. 핸드폰을 잠깐 켜서 연락 온 번호를 확인하고 알았다. 열 번이 넘는 문자가 남아 있었다. 새 번호로 핸드폰을 구입했다.
“치킨이 맛있네요, 전에 친구랑 왔었는데 맛있더라고요.”
민지는 먼저 전화한 게 자존심 상했다. 오너가 여러 번 전화 했어도, 통화를 시도해서 성공한 건 민지였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는 시원하게 목을 넘어갔다. 허리 라인이 패이고,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검정원피스는 민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너는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맥주에 소주를 타서 달게 마셨다.
“충분히 집에서 쉬다 나오세요, 민지씨가 없으니까 삭막하기는 해요... 자주 만나요.”
“집 안에 사정이 생겨서요, 이름 부르니까 가깝게 느껴지네요, 박사님!”
“박사라니요, 저도 이름을 불러 주세요, 박상길 이라고, 상길 씨가 좋겠네요.”
“그래도 되요? 상길씨!”
“그러세요, 민지씨!”
상길은 맥주잔을 들어 민지와 부딪쳤다. 민지는 맥주를 소주와 섞어서 상길의 잔에 가득 채웠다. 상길은 웃으며 민지가 따라 놓은 맥주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맥주잔을 가득 채워 민지에게 주었다. 민지는 잔을 들고 망설이다, 반쯤 마시고 내려놓았다.
“좋네요, 오랜만에 외출이라 그런지 맥주가 시원하네요.”
“제가 따라서 그런 겁니다, 민지씨는 꺾어서 마시고, 저는 완샷하겠습니다.”
“천천히 마시세요, 누가 따라 오는 것도 아닌데...”
“12시 넘으면 쫌 그래요, 통금시간이라...”
“아, 그렇다 그랬지, 그럼 한 잔 마시고 일어나요.”
갑자기 집 얘기 꺼내는 상길에게 쏘아 붙였다.
“오늘은 각오했는데, 습관이 무섭네요. 천천히 드세요.”
“각오 할 필요 없어요, 12전에는 꼭 들어가거든요.”
“그럼 빨리 마셔야겠네, 오늘을 위하여!”
상길은 앞에 있는 잔을 들어 위하여! 를 외치고 혼자 마셨다. 민지는 치킨을 골라 입에 넣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틀거리고 걷는 행인들이 눈에 띄는 시간이었다. 상길은 바쁘게 마셨다. 그리고 얼마 뒤 혀가 꼬부라졌다. 비틀거리고 일어나 집에 가야 한다고 계산도 안하고 밖으로 나갔다. 민지는 상길의 핸드폰을 챙기고, 계산을 하고 따라 나섰다.
“같은 방향이면 택시로 데려다 줄게요.”
“저는 가까워서 걸어가도 된다니까요, 택시 잡아 드릴까요?”
“아, 잠깐! 어디 가는데요? 저기가 좋겠다!”
건너편에 모텔이 있었다. 민지는 모욕감이 들었다. 돌아서 걸었다. 상길이 따라 왔다.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몰라요, 알아서 가세요.”
“민지씨, 말을 해 보세요, 노래방 가자는 게 화낼 일은 아닌데... 민지씨!”
상길은 팔을 잡아 세웠다. 민지는 옆 눈으로 모텔 옆에 노래방 간판을 확인했다.
“갑자기 피곤해서요...”
모텔 가자는 말인 줄 알았다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살짝 비틀거리며 혀를 꼬았다. 상길이 잡은 손을 끌고 길가에 있는 지하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민지는 못 이기는 척 손을 빼다가 따라갔다. 비틀거리며 내려가는 상길에게 손을 잡히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뭐 부를까? 뭐 좋아하세요?”“아무거나 부르세요.”
상길은 노래방 주인에게 술을 시키고, 자리에 앉지도 않고 벽에 걸린 포스터에서 노래곡목을 찾았다. 상길이 비틀거리며 한 손으로 벽에 기대고 섰다. 포스터를 집중하고 보았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좋다!”
비틀거리며 노래방 기계의 번호를 눌렀다. 경쾌한 전주가 나오자, 손을 위로 올리고 괴성을 질렀다. 민지는 흥이 오르지 않았지만, 탬버린을 탁자에 치면서 박자를 맞추었다. 상길이 일어나라고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상길은 노래에 취해서 민지의 어깨를 잡았다, 허리를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민지는 상길의 품에서 나오려고 몸을 뺐다. 상길이 힘으로 허리를 끌어당겼다.
“하지 마세요, 무조건 무조건이야!”
민지는 몸을 빼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상길은 흥에 겨워 양복을 벗어 긴 의자에 던졌다. 노래방 주인이 캔 맥주 두 개와 과자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갔다. 노래를 마친 상길이 맥주를 따서 민지에게 주었다. 그리고 일어선 채로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셨다.
“노래 불러야지요, 뭐가 좋을까, 뭐 불러 드릴까요?”
비틀거리며 노래 곡목이 적힌 포스터 앞에 한 팔로 벽을 잡고 섰다. 민지는 과자를 먹으면서 상길이 하는 걸 보았다. 상길이 서두르는 짓이 편치 않았다.
“아,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이야! 4356번이네, 좋다 무조건, 짜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상길은 엉덩이를 내밀고 휘청걸음으로 노래방 기계를 눌렀다. 전주가 나오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같은 동작을 했다. 앉아 있는 민지의 손을 잡아끌어 세웠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허리를 잡아당겨 밀착하기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하지 마세요, 취했어요?”“무조건, 무조건이야!”
상길은 노래에 취해 민지의 말은 듣지 않았다. 민지는 상길의 노래 일절이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상길은 또 민지를 끌어 세웠다. 민지는 할 수 없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를 마친 상길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무슨 노래가 좋을까, 뭐 듣고 싶으세요?”
그리고 휘청걸음으로 또 벽을 한 손으로 잡고, 포스터를 노려보았다.
“아, 무조건, 무조건이야! 4356번,4356번 눌러 줄래요?”
상길의 패턴은 같으면서, 조금씩 달랐다. 처음에는 오른 손을 위로 올렸는데, 쫌 전에는 왼손을 위로 올렸다. 번호를 직접 누르다가, 눌러 달라고 했다. 무조건이라는 노래도 처음에는 신나게 부르더니, 두 번째는 발라드풍으로 불렀다. 곡은 같아도 하는 짓은 조금씩 달랐다.
“무조건 좋으세요? 같이 해요!”
민지가 마이크를 들고 상길 앞에서 전주를 따라 불렀다. 상길은 신이 올라서 발을 구르며 뛰었다. 민지가 웃으면서 노래를 같이 부르자, 마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두 손을 흔들면서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었다.
“무조건, 무조건이 좋겠다, 민지씨를 향한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상길이 네 번째 무조건을 부를 때는 분위기를 한껏 잡았다. 민지는 손을 들어 머리 위에서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맞추었다.
*..*
택시가 요코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집 앞에 세우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수복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사진 언덕 아래에 신축 건물 공사장이 보였다.
“형, 잠깐만 기다려!”
수복은 대답도 하기 전에 공사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신발 상자 크기의 누런 종이 상자를 들고 왔다. 종이 상자 안을 보여 주었다. 밤톨만한 자갈이 담겼다.
“콩 자갈이야, 무기가 있어야지, 죽었어!”
“무기?”
전에 뻐드렁니와 사각형이 돌멩이를 맞고 쓰러졌던 장면이 떠올랐다. 종이 상자를 한 손에 들고 자신감에 넘치는 수복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들고 갈게...”
“그러는 게 좋겠다.”
수복이 활동하기 편하게 나 돌이 종이 상자를 들었다. 수복이 앞장서 갔다. 수복의 걸음걸이에는 자신이 넘쳤다.
“저기 있네, 죽었어!”
수복은 요코 집 앞에 사내 둘이 타고 있는 검정 승용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갔다. 운전석 문을 열고 사내를 끌어내어,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사내는 맥도 못 추고 쓰러졌다. 조수석에서 내린 사내가 수복에게 오다가, 사내가 쓰러지는 걸 보고 주춤거렸다.
“이리 와, 덤벼!”
사내는 뒷걸음치다, 돌아서 뛰는데, 나 돌이 발을 걸었다. 사내는 쓰러져 바닥에 뒹굴었다.나 돌이 연달아 사내의 배를 가격했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다 멈추었다. 요코의 집 안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수복이 나 돌을 옆에 끼고 뒤로 갔다, 앞으로 승용차 지붕을 밟고 뛰어 올랐다. 요코의 집 담 위에 섰다. 2층에서 환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마당에 뛰어내렸다.
“나와라, 나 돌과 수복이 왔다, 쫍밥아!”
수복은 쫍밥이라고 외치고 나 돌을 보며 웃었다. 예전에 주차장에서 수복에게 나 돌이 날린 욕이었다. 집에서 검정 양복에 긴 칼을 든 사내들 다섯이 몰려나왔다.
“겨우 다섯이냐, 더 와라 쫍밥아!”
수복은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고개를 크게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 돌이 들고 있는 상자에서 콩 자갈을 손에 들었다. 2층에서 환한 불빛이 베란다를 통해 나왔다. 수복이 자갈을 2층을 향해 던졌다. 캉! 캉! 베란다 유리창에 금이 사방으로 번졌다.
“요코, 요코!”
나 돌이 2층을 향해 외쳤다. 수복이 다시 2층을 향해 콩 자갈을 던졌다. 베란다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사내들이 긴 칼을 앞세우고 빠르게 앞으로 왔다.
“나 돌, 피해!”
요코가 2층 베란다에서 외쳤다.
20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