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타락의 군주
작가 : 그림자꾼
작품등록일 : 2018.11.28

한 때 용사였던 자, 한 때 성직자였던 자. 끝 없는 절망에 빠져 타락한 군주가 된다!

[ 영혼을 가진 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가진 자는 타락하기 쉽다. 그대는 그 어떠한 일에도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선한 자는 악한 자가 될 수 있으며, 악한 자가 선한 자가 될 수 있다.

 
변방의 어느 수도원
작성일 : 18-11-29 23:54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857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

 

 “파론 수도사님이 정말로 빼돌렸어요?!”

 

 서재를 정리하던 토마는 엘리를 보며 급히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이 오래된 서재에 오는 건 토마 수도사와 엘리 수녀뿐이었다.

 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깜짝 놀란 눈으로 토마를 쳐다봤다.

 

 “정말인가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네요.”

 

 엘리의 말에 토마는 이마를 짚었다.

 말을 잘못 꺼내고 말았다. 마치 자기가 고자질한 거 같지 않은가?

 기부금 사건은 다른 이들에게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엘리에게는 결국 말하고 말았다.

 언제나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이런 사소한 일조차 다른 이도 아닌, 그녀에게만큼은 입이 가벼워질 때가 많다.

 엘리는 걱정스러운 듯 토마를 힐끔 쳐다봤다.

 마치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고 싶다는 듯 입이 열렸다 벌렸다 반복한다.

 이제 시집을 가고도 넘을 성숙한 여인이지만, 하는 행동은 아직 순수한 소녀 같다.

 토마는 그녀를 보며 자연스레 입이 열렸다.

 

 “아내가 매우 아프신 모양입니다.”

 “네? 정말이에요? 그거 큰일이네요.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다정하신 분이셨는데, 많이 아픈가요?”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많이 괜찮아졌다고는 합니다. 아! 이 이야기, 다른 이들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제가 곤란해지니까요.”

 “물론이에요. 걱정 마세요!”

 

 엘리는 양손을 불끈 쥐며 힘이 들어갔다.

 토마는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짓다 책을 책장 위에 올리렸다. 그때, 눈앞이 희미해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시야가 어둠으로 덮였다. 또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덕분에 들고 있던 책이 미끄러지고 만다.

 책이 떨어지며 그의 머리에 꽂히고 균형을 잃은 그가 그대로 넘어진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는 움츠러들며 토마를 내려다봤다.

 뿌연 먼지가 서재에 가득 차며, 토마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은 채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그 모습에 엘리는 웃음을 참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토마는 괜찮다는 듯 왼손으로 엘리는 만류시켰다.

 

 “괜찮습니다. 쿨럭, 쿨럭... 크흠! 쿨럭...! 아, 나이가 드니 빈혈 기가 오는군요. 쿨럭...!”

 “무슨 소리에요. 애늙은이처럼! 아직 토마 수도사님은 팔팔한 청춘이에요! 한때 용사님이셨던 분이 약한 소리하지 마세요.”

 

 토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쿨럭, 쿨럭...! 그래도 나이가 드니... 끄응, 몸이 성치가 않군요. 기침이 멈추지 않는데 죄송하지만 물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아, 네! 여기서 기다리세요!"

 

 엘리가 방을 나서는 걸 보며, 토마는 입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철 냄새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

 

 가슴이 아파져 온다. 폐에 수십 개의 바늘이 찌른 거처럼 아파진다.

 정신도 혼미해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시야가 아른거리는 것을 겨우 버텨냈다.

 

 “아...!”

 

 그는 손에 묻은 피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멍청한 음성을 내뱉었다.

 

 “...나이가 들면, 병이 드는 법이지.”

 

 토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아직은 살아 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이렇게 아픔이라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몸이 고통스럽지만, 아직 죽을 때는 아니다.

 자신이 죽으면 아이들과 엘리 수녀가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토마는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에 용사였던 몸이다. 이따위 병에 굴복할 소냐? 난 아직 팔팔하다고!”

 

 * * *

 

 “하아... 하아... 파, 팔팔한 줄 알았는데. 역시... 힘들군. 으윽... 겨우 이런 언덕을 조금 오른 걸로 이렇게 숨이 차다니! 마왕을 죽일 때는 절벽도 탔는데... 끄응! 역시 나이 때문이야! 나이 때문이라고! 그래도 날씨는 아주 좋구나!”

 

 토마는 산속의 작은 공터를 보며 땀을 닦아냈다.

 눈이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함박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주변을 보니 산토끼가 깡충 뛰어놀고 있고 그것을 본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토끼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지만 결국 놓치고 만다.

 그 모습에 토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만큼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으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는 것이다.

 

 “또 애늙은이 같은 표정이시네요. 귀여운 손자, 소녀들이 노는 모습이 즐거우신가요? 할아버님?”

 

 엘리가 옆에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그녀는 장난기가 담긴 표정으로 토마가 앉은 바위에 옆에 앉았다.

 토마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졌다.

 

 “이왕이면 아버지라고 해주십시오. 아직 팔팔한 나이입니다.”

 “네, 그렇죠? 아직 수도사님은 팔팔한 나이에요. 청춘이에요! 청춘!”

 

 엘리는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마치 뭔가 자랑스러워하는 듯이 말이다.

 그런 소녀 같은 모습에 토마는 그녀를 지그시 쳐다봤다.

 새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붉은 눈을 가진 여인의 하얀 머리카락이 눈처럼 바람에 휘날렸다.

 그 모습에 토마는 미소를 지었다.

 

 “네, 청춘이죠. 다만, 이루기 힘든 청춘이기도 합니다.”

 “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엘리는 의아해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의 눈 덮인 산맥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예뻐요. 눈 오는 날 이렇게 보는 것도 처음···. 에취!”

 

 토마는 쓸게 웃었다.

 그는 입고 있던 두꺼운 털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씌워주었다.

 

 “앗?! 괜찮아요!”

 “감기가 걸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몸이 약하시니 따뜻하시는 게 좋습니다.”

 

 엘리는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저는 건강하···에취!”

 

 토마는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아이들이 눈 뭉치를 던지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엘리는 토마가 준 털옷을 몸에 두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굴리다, 토마에게 말을 걸었다.

 

 “...수도사님.”

 “네?”

 “수도사님의 소원이 뭐예요?”

 

 갑자기 미소 짓고 묻는 엘리의 물음에 토마는 멈칫했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제 소원이라. 글쎄요. 딱히 이렇다 할 건 없습니다. 다만, 저 아이들이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 그리고 추억을 쌓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너무 단순하시네요. 애늙은이 같아!”

 

 엘리 수녀가 쿡쿡 거리며 웃는다.

 

 “...그렇습니까?”

 

 나름 진지하게 말한 것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부정당하니 토마로서는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그럼 제 소원은 뭔지 아세요?”

 

 엘리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모습에 토마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떤 소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그녀와 똑같이 놀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입니까?”

 

 토마의 물음에 엘리는 그를 힐끔 쳐다봤다.

 

 “비웃지 않으실 거죠?”

 “물론이지요.”

 ‘사실 놀릴 거지만···!’

 

 엘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소원. 하지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다.

 토마는 엘리를 보며 장난을 치려던 생각을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말하는 듯싶었다.

 

 ‘이거, 장난을 치지 못하겠어.’

 

 토마는 어색하게 웃었다.

 

 “좋은 소원입니다.”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토마는 마음 한구석에서 뜨끔했지만 애써 침묵을 유지하며 엘리의 대답을 회피했다.

 

 `예리하군. 나처럼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줄 아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엘리는 풀 죽은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도 알아요. 정말로 이루어지기 힘든 소원이라는 걸. 하지만···.”

 

 엘리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아니더라도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을 바래도 되잖아요!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고, 덜 굶주리고, 보다 걱정이 없는 나은 세상...!”

 

 토마는 엘리를 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저는 그런 세상이 찾아오는 걸 보는 게 소원이에요.”

 “...수녀님.”

 

 엘리는 토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냥하십니다.”

 “네? 가, 갑자기 무슨...?!”

 

 엘리는 당황했는지 깜짝 놀라며 얼굴이 붉어졌다. 토마는 웃음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아니요. 아닙니다. 하하! 놀라는 모습이 마치 토끼 같군요.”

 “너, 너무하세요! 놀리시는 거죠? 아까에 대한 보복?”

 “하하!”

 

 웃음을 터트린 토마를 보며 엘리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거 아세요? 토끼는 외로우면 죽어버려요. 계속 곁에 있어도 토끼는 좋아하겠지만, 더욱, 더욱 사랑 받고 싶어해요.”

 “...?”

 “그러니...”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얼굴이 가려진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비치는 피부는 홍당무처럼 빨갛게 물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 수도사님이 저를...!”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의 얼굴에 눈 뭉치가 떨어졌다.

 아이들은 그런 엘리를 향해 눈 뭉치를 든 채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하! 엘리 수녀님이 맞았어!”

 “웃겨!”

 “눈에 맞은 토끼 같아!”

 

 엘리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붉어진 얼굴로 주변에 있던 눈덩이를 잡아 뭉쳤다.

 

 “이 꼬맹이들이?! 기껏 용기를 내서 말하는데···! 좋아. 같이 한바탕 해보자!”

 

 엘리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엘리는 토마를 보며 외쳤다.

 

 “수도사님! 뭐해요! 같이...”

 “수녀님, 당신의 소원은 이루기 힘들 것입니다.”

 

 엘리는 토마의 말에 멈칫했다.

 그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 덕분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분명 있습니다.”

 

 토마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마치 나처럼. 당신에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토마의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토마의 표정을 본 엘리는 흠칫 놀라며 넋이 나갔다. 그녀의 눈이 토마를 바라보며 흔들렸다.

 

 “뭐해요! 수녀님! 같이 놀아요!”

 

 아이들은 그런 엘리의 팔을 끌었다.

 

 “응? 아, 아아···. 그, 그렇자. 좋아! 이 누님의 눈 뭉치 실력을 보여줄게!”

 

 엘리는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나와 아이들과 뛰어논다.

 토마는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봤다.

 

  -그러니 수도사님이 저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정도는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토마로서는 그녀의 그 말을 허락 할 수는 없었다.

 

  '...그래, 나로는 안 돼.'

 

 그때, 그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토마 수도사님.”

 

 힘없는 목소리에 토마는 소리가 난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파론 수도사님?

 

 그곳에는 파론 수도사가 힘없이 서 있었다.

 초라하게 그림자가 진 얼굴에는 좌절이 담겨 있다.

 

 “아내가···.”

 

 그는 울먹이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죽었습니다.”

 

 * *

 

 장례식은 초라하게 이루어졌다.

 수도사들이 직접 만든 관에 시신을 올려놓고 관 뚜껑을 닫아 그 위에 꽃을 올려 놓는다. 그다음 밧줄로 묶어 땅을 속에 조심스레 옮겼다.

 대부분 손으로 직접 한 것들이지만, 이 역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장례에 쓰인 비용은 수도원의 기부금을 써야 했다.

 

 “아무래도 돈이 없는 판국에 이게 무슨 짓이지?”

 “기부금을 빼돌려 그 비싼 약재를 쓰고도 죽으면 어쩌라는 거야...?”

 “어이, 말소리가 너무 커.”

 

 “뭔 상관이야. 세상에...! 기부금에, 이제는 장례식 비용까지? 파론 수도사님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

 

 수도사와 수녀들의 속삭임에 엘리는 깜짝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삽으로 땅을 덮고 있던 토마가 땀을 닦으며 파론 수도사를 쳐다봤다.

 

 “수도사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그는 아내가 파묻힌 무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기운 내십시오.”

 

 토마로써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오직 기운 내라는 말밖에 해줄 수밖에 없다.

 그때, 엘리가 그런 토마의 옆에 다가왔다.

 그녀는 손을 뻗어 조심스레 토마의 옷깃을 잡았다.

 이상함을 느낀 토마는 고개를 틀어 엘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웃고 있다. 다만, 억지로 슬픔을 참아내는 듯한 가녀린 모습이다.

 

 “수녀님...”

 

 그때, 토마의 귓가에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러게요. 이번 장례식으로 성황법국에 바칠 기부금이 떨어졌어요. 아무래도 밀린 상태인데...”

 “이거 잘못하다가는 기부금을 빼돌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데...?”

 “버려지게 되겠지요. 심할 경우 추궁을 받고 재판을 받을지도...”

 “성황법국에서 음식과 물, 급료를 지원받고 있었는데 그게 끊기게 되다니? 게다가 재판?"

 "말도 안 돼! 급료가 끊기면 어떻게 합니까? 우린 잘못이 없습니다! 없다고요! 설마 이단 재판에 넘어가 고문을 당하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요?”

 

 토마는 놀란 눈으로 신자들을 쳐다봤다.

 수도사와 수녀들이 모두 분노에 찬 눈빛으로 파론 수도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토마는 깨달았다.

 엘리는 지금 파론의 아내가 죽었다는 슬픔이 아닌, 그러한 수도사와 수녀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참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원망 어린 마음에 무서움을 느낀 것이다.

 분노와 증오, 원망이 담긴 악의적인 기운.

 그 섬뜩한 감정들에 토마마저 마른 침을 삼켰다.

 

 `...다들 감정이 너무 고조되어 있어.`

 

 모두 힘들었을 뿐이다. 지쳐있을 뿐이다.

 토마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 * * * *

 

 성황법국의 수도, 라니아.

 라니아의 중심에는 성직자들이 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궁이 존재했다.

 백색의 외벽과 층층이 올라가는 형태의 나선 모형의 거대한 성.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그곳에는 수많은 귀족과 성직자들이 살며, 그곳을 지배하는 법황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최고의 권위자이자 20년 전 마왕을 무찌른 공로자이며 용사의 동료이기도 한 영웅이었다.

 

 “으음...”

 

 연한 금발과 함께 백발이 무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한 채 그 위에 주교관을 쓰고 있다. 눈은 파란색이었으며, 나이가 든 주름진 얼굴이 구석구석에 눌러앉아 있다.

 올해로 50살이 되는 법황, 셀롬 갓슈란체는 집무실에서 국가 자금이 적힌 명세서를 살피고 있었다.

 셀룸은 수도 주변에 있는 세율과 기부금을 조율하는 일을 도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교회나 수도원이라도 그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 하루 한 끼 식사조차 되지 않는 푼돈이라고 해도 그는 그러한 푼돈조차 신경 쓰고 있었다.

 밑에 있는 신자들을 믿지 못할뿐더러, 그들이 자신을 속이며 배불리 먹고 사는 것만큼은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셀롬은 눈앞에 있는 성직자가 내민 명세서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기부금이 밀려있군요.”

 

 말투는 정중하다. 하지만 신경이 거슬린다는 듯 명세서를 집무실 책상에 내던졌다.

 그것을 본 성직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네, 그게... 그곳은 토마 용사님이...”

 

 셀롬이 성직자를 쳐다봤다.

 눈빛이 매우 날카로우며 불쾌감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느낀 성직자는 말을 고쳤다.

 

 “...아니, 토마 수도사님이 계신 곳입니다.”

 

 법황 셀롬은 손깍지를 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 그분이요? 제 오래 친우이신 분 아닙니까? 그런데 기부금도 그렇고 세금도... 조금 밀렸군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5개월씩이나...?”

 “그게...”

 “설마 용사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할 생각은 아닐 테고... 기부금도 이렇게 적다니? 그곳에 찾는 이가 없고, 힘없는 늙은 놈들 뿐이라도 이건 좀 심하...”

 

 셀롬은 성직자를 힐끔보다 말을 고쳤다.

 

 “아, 이런 실례... 어르신들이 기부하셨다고 하지만 너무 빈약하군요.”

 “그게... 얼마 전 수도사 중 한 명의 아내분께서 돌아가셨답니다. 그것에 대한 장례비용으로...”

 “언제적 일이지요?”

 “일주일 전 정도랍니다.”

 “일주일? 일주일 전일인데 4개월이나 세금과 기부금이 밀려요? 이거 좀 이상하군요. 참으로 이상해요. 혹시 뒤로 빼돌린 자금줄이 있는 게 아닐지 의심스럽습니다.”

 

 셀롬은 입술을 핥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어쩔 수 없군요. 짐 챙기십시오.”

 “...?”

 “그곳으로 갑니다.”

 “네? 아니. 그... 지금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법황폐하께서 직접 그런 누추한 곳에 가실 필요는... 지금 당장 성기사들을 파견하겠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계시는 것이...”

 

 셀롬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참담하다는 듯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누추하다니요? 신께서 지내시는 수도원 아닙니까? 게다가 위대한 주신님의 어린 양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을 가엽게 여겨 축복을 내리러 가는 것입니다. 또한...”

 

 셀롬은 그렇게 말하곤 방긋 미소를 지었다.

 

 “친우를 만나고 싶기도 합니다.”

 “...그, 그렇습니까?”

 

  법황 셀롬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직자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되며 조용히 속삭였다.

 

  "게다가 제가 그런 누추한 곳에 가지 않게끔, 미리 좀 손을 써더라면 편했지 않았겠습니까?"

  "...시, 시정하겠습니다!"

 

  셀롬은 성직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기대되는군요! 다시 토마님을 만나 뵙게 되다니? 예전, 마왕을 무찔렀던 용사입니다. 아주 깨끗하고 고귀하며 위대한 분이시지요! 하지만 그런 용사님이라고 할지라도...”

 

 셀롬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기 쉽지요. 어쩌면 저희가 알고 있는 깨끗한 용사분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성직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눈앞의 이 법황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그런데... 예전에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었죠?”

 

 셀룸은 기대에 찬 얼굴로 성직자를 쳐다봤다.

 

 “네? 아, 그 ‘고대 신의 유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건에 대해 대륙 곳곳을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 소식이...”

 “...그렇습니까?”

 “하, 하지만 고대 문헌에 따르면 고대 신들의 유적은 각각 다른 위치를 알려주는 힌트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단 하나만 찾는다면 어떻게든 주신 아르타르크님의 고대 유적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않으면...”

 

 셀롬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가 늙어버릴 테니까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엇갈림 2018 / 12 / 17 236 0 6800   
9 도플갱어 2018 / 12 / 17 228 0 3841   
8 도플갱어 2018 / 12 / 17 217 0 5269   
7 도플갱어 2018 / 12 / 2 214 0 6508   
6 변질 2018 / 12 / 2 216 0 8229   
5 변질 2018 / 11 / 30 209 0 7170   
4 변방의 어느 수도원 2018 / 11 / 29 209 0 8578   
3 변방의 어느 수도원 2018 / 11 / 29 213 0 6885   
2 변방의 어느 수도원 2018 / 11 / 28 197 0 6694   
1 제 1장 타락의 장 - <프롤로그> 2018 / 11 / 28 381 0 51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마신 유희
그림자꾼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