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가 족
나 돌은 몸을 돌렸더니 바로 앞에 사각형이 서 있었다. 깜짝 놀라서 외쳤다.
“죽어!”
주먹을 사각형의 얼굴로 휘 둘렀다. 사각형이 상체를 흔들어 피하고, 손목을 잡아 던졌다. 나무에 나 돌의 몸이 부딪치며 떨어졌다. 사각형이 쓰러진 나 돌을 일으켜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나 돌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따라 가야겠다, 일어나!”
사각형이 다시 나 돌을 일으키려고 몸을 숙이는데, 돌멩이가 날아와 사각형의 머리에 맞고 떨어졌다. 사각형이 비명을 지르고 앞으로 쓰러졌다. 머리에서 피가 튕겼다. 뻐드렁니가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데, 이마에 달걀만한 돌멩이가 맞고, 떨어졌다. 뻐드렁니가 뒤로 쓰러졌다.
“형, 일어나, 빨리 피해!”
사각형과 뻐드렁니는 누워서 피를 흘리며 신음을 토했다. 수복이 나무 뒤에서 나와 일어난 나 돌에게 도망가야 한다고 보챘다. 수복은 왼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다리 다쳤네? 갈 수 있어?”
“가야지, 빨리!”
나 돌은 수복 옆에 서면서, 팔을 부축했다, 수복이 팔을 빼면서 웃었다.
“앞에 가, 어디 갈 때 있어?”
“응, 혼자 걷기 힘들 건데...”
“차타고 가야지, 저기!”
수복의 빨간 승용차가 주차장에 있었다. 절뚝이며 걷는 수복의 뒤에서 뻐드렁니와 사각형이 쓰러져 있는 걸 확인하고 따라갔다.
*..*
한강이 보이는 11층 아파트였다. 종운과 민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종운의 오랜 친구가 외할아버지 가게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집주인은 일 년에 반 이상을 외국에서 지냈다. 종운에게 관리하면서 지내라고 열쇠를 주었다. 나 돌의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었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다. 베란다 밑으로 한강이 흐르고, 올림픽 도로 위로 차들이 장난감처럼 달렸다.
“혼자 치료할 수 있어, 병원은 무슨...”
수복은 왼쪽 허벅지에 한뼘 가량의 칼자국과, 등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간 칼자국이 깊게 패인 상처를 입었다. 수복은 혼자 치료하는 게 빠르고, 흉터도 안 진다고 걱정말라고 했다. 나 돌은 민지가 약국에 나가는 걸 막으려고 겪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약국에 나가면 걔들이 찾아 올건데....”
“언제까지 숨어 지내니.....”
민지도 수복이 당할 정도라면 상당히 위험하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약국에 근무하는 자부심으로 생활하는 민지의 포기는 쉽지 않았다.
“엄마가 다치면 난 못 살아, 그놈들은 살벌해, 인정 사정 없단 말이야.”
“그래도....”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종운은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약국 주차장에서 보았던 장면은 종운의 머리에 박혔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약국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던 참이었다.
“얼마 받는지 몰라도, 내가 두 배 줄 테니까, 집에서 편히 쉬어...”
“뭐, 여기 같이 있을라고? 싫어!”
민지는 종운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한 게 싫었다.
“여기 내 친구 집인데 내가 없으면 말이 돼? 각 방 쓰면 되잖아, 나도 당신이랑 함께 있는 거 싫어, 우리 아들하고 같이 있으려고 할 수 없이 같이 있기는 하지만.....”
나 돌이 중재에 나섰다.
“방은 각방 쓰고, 엄마 월급은 쉬는 동안 아빠가 지급하는 걸로 해, 그래야 안심이 되지...”
나 돌은 말을 마치고 민지의 눈치를 살폈다. 민지는 골똘히 생각하다 던졌다.
“월급은 필요 없고, 우리 아빠에게 빌려 간 돈 갚아, 이자까지!”
“내일 당장 입금해 드릴 거니까, 약국은 끓는 거다.”“진짜? 돌이가 증인이다?”
나 돌은 웃으면서 끄덕였다. 종운이 뭔 꿍꿍이로 빚을 갚는다고 큰 소리를 치는지 모르지만 표정이나 말투로 보아 거짓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종운이 새끼손가락을 걸자고 내밀었다. 민지가 입을 삐죽이며 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었다. 나 돌은 요코가 하던 게 떠올랐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을 지웠다.
“그러면 상처가 나아?”
“운기조식하면 몸이 원래로 돌아가, 모든 생명체는 복원력이 있거든, 형이 걱정이야.”
“뭐가?”
나 돌도 걱정스러웠다. 요코를 만나기 위해서는 목숨이 여럿 필요할 정도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요코를 안 보고는 못 견딜 만큼 머리에 찼다.
“그 놈이 노리는 건 형인데, 형은 무술을 못하고... 큰일이야.....”
수복은 벽을 뒤로 하고 정좌로 앉아, 나 돌과 눈을 마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복이 키를 커지게 하고, 몸을 가볍게는 만들어 주었지만, 그 정도로는 시게이 일당의 손끝도 못 건드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복의 걱정은 당연했다. 어디든지 함께 다니기로 했는데, 나 돌은 위험만 불러들이고 있었다.
“수가 생기겠지, 안 만날 수는 없어.....”
“일본 여자? 일본말 안하는 예쁜 일본 여자?”
“응.....”
나 돌은 눈을 껌벅이며 미안한 투로 한마디 던졌다. 수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도 그러겠지..... 둘이 사귀기로 한 사이?”“그건 아니지만, 보고 싶어서 미쳐....”
“미치지 마, 그 날은 처음으로 긴 칼 든 패거리하고 싸우느라 애 먹었지만, 죽었어!”
수복은 말을 짧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수복과 대화를 하다보면 나 돌도 말이 짧아졌다.
“같이 지내기 불편하지?”
“아니, 어머니하고 아버님이 편하게 대해 주셔서 좋아, 가족 같아.”
“다행이다, 가족이 맞지...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그렇게 빠른 칼질을 어떻게 피해?”
“빨라? 뭐가 빨라....”
수복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천천히 나 돌을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나 돌은 슬며시 피했다. 수복이 손을 옆으로 천천히 옮겨서 나 돌의 가슴을 겨냥했다.
“이렇게 보여, 이걸 못 피해?”“진짜? 그렇게 보여?”“응, 우리 증조할아버지하고 나철 종사님이 남기신 무술의 깊이는 끝이 없어....”
“단기개천에는 그런 게 없던데.....”
“개구리 권법을 완벽하게 시전 할 수 있으면, 그만큼 공력이 오르고, 그러면 저절로 보여!”
“아, 그렇구나..... 나는.....”
언제 그런 수준이 되느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수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벌써 해 주었을 거였다. 수복은 뭘 묻고 싶은지 알았다.
“형은 할 수 있어,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수복은 운기 조식하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정좌로 앉아 정신을 모으고 배꼽 아래로 긴 호흡을 내려보내고, 숨을 내쉴 때는 잘게 끊어서 내쉬는 요령을 일러 주었다. 수복과 한 이불 속에 누워 수복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들었다.
“크, 프..... 하!”
수복은 잔다고 말하는 순간 잠이 들었다. 크, 프, 하! 로 이어지는 코고는 소리는 방을 울렸다. 수복의 핸드폰으로 코고는 소리를 녹음했다.
“뭐해?”
“녹음.”“왜, 그냥 자!”
수복은 잠결에도 멀쩡하게 말을 하고, 또 금방 코를 골았다. 큰 덩치의 수복과 어울리는 코고는 소리라고 수긍하면서도, 잠이 들지 않았다. 눈앞에 요코의 턱선이 오락가락거렸다. 침을 꼴깍 삼키며, 뒤로 돌아누웠다.
“이제 다 나았어, 나랑 훈련하자.”
“어디서?”
“한강이 좋겠다.”
수복은 아픈 곳이 아물 때까지 일주일을 집에 있었다. 나 돌은 수복과 함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복은 수줍음 많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민지가 거실에 있으면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민지도 처음에는 수복에게 밥 같이 먹자고 조르다, 수복이 진짜로 불편해 하는 걸 알고는 멈추었다.
“돈이 어디서 났어? 증권은 아닐 텐데.....”
“더 많이 벌면 알려 줄게, 집에 있으니까 좋지?”
“별로... 날 구속시킬 생각일랑 접어....”
종운은 약속을 지킨다며 외할아버지에게 빌린 돈과 이자까지 갚았다. 민지는 종운이 어디서 돈을 벌었는지 궁금했지만, 종운이 참지 못하고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민지는 집에서 지냈고, 종운은 낮에는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왔다. 민지와 종운은 철저히 각방을 쓰면서, 밥도 따로 먹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어,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봐!”
수복은 주먹을 나 돌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봐!란 소리만 들었지만, 주먹이 눈앞에 있었다. 수복이 때려보라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켰다. 나 돌이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수복이 손으로 주먹을 잡고 웃었다. 수복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실망하지 마, 뜻이 있으면 길도 있어.”
수복은 개구리 권법의 기본 동작을 시범을 보였다. 한강에 부는 바람은 찼다. 고수부지의 누렇게 변한 갈대가 옆으로 누웠다. 한강과 갈대 숲 사이 조그만 공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개구리 권법을 익혔다. 한나절을 연습해도 힘든 줄을 몰랐다. 몸은 예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운기 조식을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걸 알고 있었다.
“몸이 상당히 가볍고, 힘든 줄 모르겠어.”
“당연하지, 일반인은 상대가 안 될 걸, 그 놈들은 일반인이 아니야.”
한강을 나오면서 수복에게 몸의 수준을 알려 주려고 했더니, 수복의 평가는 냉정했다.
한강 들어가는 입구에는 모텔이 많았다. 모텔에서 40대 남자가 나오고, 뒤따라 몸매가 예쁜 20대 여자가 나왔다. 수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가 수복의 앞을 지나면서 담배 연기를 뿜었다.
“야, 담배 꺼!”
수복이 다짜고짜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남자가 큰 덩치의 수복을 보고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수복이 남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주어, 꽁초 주워!”
“아, 예!”
남자는 수복의 기세에 눌려서 얼른 꽁초를 주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수복은 남자가 순순히 말을 잘 듣자, 엉덩이를 발로 찼다. 20대의 몸매 예쁜 여성이 수복과 남자가 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었다.
“뭔데 발로 차세요, 가요!”
여성도 수복의 덩치가 거북했지만, 남자를 데려가려고 끼어들었다.
“꽁초 버리면 안 되지, 나쁜 짓 하니까 찼다.”
수복의 말투는 느릿하고 어색했다.
“벌금 내면 될 일이지, 뭔데 발로 차냐고요?”
“아냐, 난 괜찮으니까 가자..... 갈게요.....”
남자는 수복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성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가려는데 수복이 잡아챘다.
“그냥 가려고? 바지라도 벗고 가야지, 벌금 대신!”
“예?”
수복은 남자의 뒷덜미를 잡고 위로 올렸다. 여성이 중간에 끼어들어 말리면서 고함을 쳤다.
“사람 살려, 경찰 좀 불러 주세요!”
“누가 죽인데, 벌금 내고 가라는 거지...”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 돌이 가자고 수복의 옆구리를 찔렀다, 수복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자를 찻길로 던졌다. 남자가 길바닥에 쓰러졌다. 구경꾼들 웅성이면서 뒤로 물러났다. 나 돌은 앞장서 걷고, 수복이 뒤를 따랐다.
“강도야, 사람 패고 돈 빼었어요, 잡아라, 잡아주세요!”
여성이 사람들에게 하소연 했지만, 사람들은 나서지 않았다. 나 돌은 마침 옆에 선 택시를 잡고 수복에게 타라고 문을 열고 서 있었다. 기사에게 외쳤다.
“빨리 가세요!”
창피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한강 부근은 어려서부터 살던 동네라 아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웠다.
“어디로 모실까요?”
“어디요? 성북동요!”
무심결에 성북동을 목적지로 정했다. 수복은 눈을 크게 뜨고 나 돌을 보았다.
“보고 싶어, 못 살겠어.....”
나 돌은 묻지도 않았지만, 대답했다.
19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