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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3.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3)
작성일 : 18-11-28 18:37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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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환이 도착하고 얼마 후, 국립국악원 관계자들부터 국악인들의 조문 행렬이 시작되었다. 유진은 지금까지 아버지에게서도 할머니에게서도 그녀가 배우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기에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정신없이 문상객을 맞이하고, 밤 12시가 다 되어가자 손님이 뜸하였다. 유진은 하루 종일 빈소를 지키며 눈물을 훔치던 공순복 곁에 다가가 앉았다.

 

 “들어가서 좀 쉬세요.”

 

 “아니요. 끝까지 내가 봐드리고 싶소.”

 

 “네. 감사합니다. 그저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요.”

 

 공순복은 유진을 지긋이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진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공순복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눈을 돌렸다.

 

 “손녀분이 할머니를 참 많이 닮았소.”

 

 “그런가요?”

 

 사실 유진과 임춘희는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취향부터 시작해서 성격, 마음 그 어느 것도 맞는 게 없었다.

 

 그런데 외향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임춘희를 닮아 어렸을 때부터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하지만 유진은 그 소리가 가장 듣기 싫었다.

 

 매번 제가 하는 것마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할머니와 닮았다는 소리가 마치 저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 진저리를 치며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진이 상념에 젖은 사이, 공순복도 아득하다 생각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는지 자신의 얘기인지 임춘희의 얘기인지 모를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임배우님이 없었다면 이제까지 살지 못했을 거요.”

 

 공순복은 60여 년 전 여고생시절에 임춘희에게 팬레터를 쓴 사연과 답장으로 받았던 편지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TV에 나오는 요즘 애기들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지. 공연이 시작되는 날이면 종로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었으니까.”

 

 “우리 할머니가 인기 배우였다고요? 목을 다쳐서 말도 제대로 못하시는데,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신 거 아니에요?”

 

 유진을 향해 미소를 짓던 공순복은 임춘희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조선에서 임춘희를 동경하지 않은 처자가 없을 정도였소. 자살소동이 일 정도였으니까.”

 

 자살? 유진은 공순복이 얘기하는 이야기가 과연 자신의 할머니 얘기가 맞는 것인지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았나 봐요.”

 

 “그럴 수밖에 없지. 조선 최고의 국극 배우였는데.”

 

 “국극이요?”

 

 “모르셨소? 하아…….”

 

 공순복은 참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대 최고의 국극배우였는데… 임춘희라는 이름은 그냥 배우가 아니었소. 남장배우였지만 그 이름은 여성국극을 대표하는 이름이었고, 하나의 문화를 상징하는 이름이었소.”

 

 남장? 할머니가 한때 아주 유명한 남장 국극배우였다고?

 

 유진은 지금 공순복의 말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것 같았다. 배우라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게다가 남장배우였단다. 이건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혼란스런 자신의 마음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저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 발인이라 사무실 식구들과 스탭들이 12시가 넘었음에도 찾아왔다. 그리고 별거의 원인이 되었던 윤영과 장호가 3개월 만에 마주했다.

 

 사실 병원 복도에서도 마주쳤지만, 그 때는 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유진은 굳어지는 장호의 얼굴을 보고서야 3개월 전의 일을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유진은 장호가 윤영이 온 이후로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장호가 저와 윤영의 사이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촬영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가깝게 지내는 윤영을 어쩌면 신경 쓸 수도 있겠다고 애써 그를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윤영과의 저의 관계를 의심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것에 대해 장호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편성이다, 편집이다 하는 것들로 바빴고 임여사가 입원하는 바람에 병원도 왔다 갔다 해야 했었다.

 

 그랬기에 자연스럽게 장호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장호는 더 이상 저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는지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냈다.

 

 유진은 저를 피하는 장호를 애써 잡지는 않았다. 얼마 있지 않으면 곧 한줌의 재가 될 임여사에게 오롯이 마음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날은 밝아왔고 임여사와 함께 하는 시간도 끝이 다가왔다. 임여사는 서울 근교의 가까운 추모공원에 모셨다.

 

 장호는 유진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었을 많은 부분들을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 세심한 신경은 추모공원에서 서울까지 돌아오는 길까지였다. 돈의동에 도착하고 둘만 남게 되자 장호는 유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들어가서 쉬어.”

 

 유진은 장호가 저를 혼자 두고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잘못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이제 나도 가봐야지.”

 

 이렇게 친절한 얼굴로 내뱉은 장호의 말이 유진의 가슴을 뾰족하게 찔러왔다.

 

 “전화할게.”

 

 장호는 전화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유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뒤돌았다.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유진이 멀어지는 장호의 뒷모습에 정신을 차렸을 때, 장호는 골목 끝에서 돌아 나온 택시를 잡아 세워 올라타고 있었다.

 

 장호를 태운 택시가 유진의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차가워진 손끝이 떨려왔다.

 

 유진은 지금 이 떨림이 매섭게 추운 날씨 탓인 건지, 아니면 할머니의 죽음이 실감이 나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걸 깨달아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진이 눈을 뜨자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자신의 방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유진은 자신이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꿈이었던가 싶어 몸을 일으키려는데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상중에 내내 입고 있던 상복이었음을 깨닫자 그제야 꿈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무겁게 축 처지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은 유진은 온 몸이 아파왔다. 그런데 저를 두고 가는 장호의 뒷모습이 떠오르자 몸보다는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어 아픈 가슴을 누르며 진정시키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사이로 돌아간 줄 알았던 장호가 들어왔다.

 

 “어? 일어났어?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어.”

 

 장호가 방의 불을 켜자, 갑자기 밝아진 불빛에 유진의 눈이 부셔왔다. 유진은 혹시 지금이 꿈인가 싶어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밥 먹자.”

 

 다정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말을 건네는 장호가 침대에 앉자 저에게까지 전해지는 반동에 유진은 이것이 꿈이 아님을 알았다.

 

 “왜… 당신이 여기에 있어?”

 

 “다시 돌아왔어.”

 

 “왜?”

 

 “당신이랑 밥 먹으려고.”

 

 “뭐?”

 

 유진을 빤히 쳐다보던 장호가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가 열을 재었다. 그러자 그 순간 유진은 대문 앞에서의 일이 모두 떠올랐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눈물을 떨구던 유진의 이마에 서늘한 손이 닿았다. 자신을 두고 간 남자가 코앞에 서있었다. 그가 제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말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은 다시 돌아온 장호의 모습에 안심을 했던 것인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기듯 쓰러졌다. 그 이후는 아마도 그가 자신을 이 방으로 옮겼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열은 내렸네. 밥 먹자.”

 

 장호는 유진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거두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유진은 장호가 나가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유진이 주방으로 갔을 땐 식탁위에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죽과 임여사 표 백김치와 장아찌가 담겨 있었다.

 

 “죽은 배달시켰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식탁에서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죽을 반쯤 비운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장호는 더 먹으라거나 하는 말은 없었다. 유진 또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가려던 유진은 미닫이 창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모습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저 몇 시간이 지난 줄 알았는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소복이 쌓인 하얀 눈 사이로 보이는 붉은색이 다시 한 번 유진을 잡아 세웠다. 며칠전만해도 나무에 매달려 있던 꽃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저를 예쁘게 바라봐 줄 주인이 이제는 없다는 것을 저 꽃들도 알았는지, 조용히 꽃을 떨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서 떨어질 때마다 유진의 심장도 조각조각 나뉘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임유진, 뭐하는 거야?”

 

 유진은 자신을 돌려세우는 힘에 지금 자신이 맨발로 동백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빨간 꽃송이들을 보고서야 자신이 떨어진 꽃송이를 줍고 있었음을 알았다.

 

 “꽃이 아파서.”

 

 “무슨 소리야?”

 

 장호가 안으로 들어가자며 유진의 팔을 잡아당기지만, 유진은 꼼짝도 않았다.

 

 “할머니가 이 꽃 보고 싶어 했는데, 지금 보니까 이 꽃이 할머니인 것만 같아서.”

 

 “알았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

 

 “있지.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봐.”

 

 장호를 바라보는 유진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땅에 떨어진 꽃송이를 보자, 자신을 두고 등을 돌리고 가는 장호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떨어지는 꽃송이를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의 죽음이 순리와도 같았던 것처럼, 저와 장호도 이리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진 꽃송이가 마치 멀어진 장호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유진의 입술이 억지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유진은 울고 있으면서도 미소를 지어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장호씨, 미안해. 그때 대답 못한 거 지금 할게.”

 

 이제는 유진을 잡고 있던 장호의 손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이혼하자.”

 

 유진의 손에 들린 붉은 꽃송이가 마치 그녀의 심장에서 떨어진 조각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느껴졌다.

 

 불과 며칠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아름답게 피었던 꽃은 지었고, 돈의동 한옥 집을 지키던 임춘희라는 사람은 세상을 달리했고, 자신은 그와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꽃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면 울 독자님들은 과연 무슨 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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