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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바림: 다시 마주한 그 순간
작가 : 총수
작품등록일 : 2018.10.24

천상천하 유아독존! 싸가지 끝판'왕' 이산.
300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그가 처음 눈을 뜬곳은 다름아닌 첫사랑 나비의 자취방?!

서울 카페에서 혼자 자취를하던 만년 사진작가 지망생 '한나비'. 어느 날 주말을 맞이해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의 이불속에는 앞 선을 곱게 풀어헤친 조선의 왕 '이산'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현세로 넘어와 버린 이산이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평생을 그리워했던 과거 잃어버린 첫사랑의 모습과 똑닮은 나비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둘의 웃프기만한(?) 아찔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11. 다가갈게
작성일 : 18-11-28 15:23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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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또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냐. 도대체 왜….’

 

 산이는 혹여 또 얻어맞는 것은 아닐까 싶어 뒤로 물러선 채 나비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무슨 큰 실언이라도 한 것일까.

 

 무료함을 견디다 못한 과인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사랑하는 이에게 한마디를 건넸을 뿐이거늘.

 

 어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비수가 되어 날아오는 경멸어린 시선뿐이더냐.

 

 원통하구나….

 

 “저기요, 걸리적거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저기 침대 쪽에 가있으세요.”

 

 “그, 그렇게 하마.”

 

 원망 섞인 눈초리로 쏘아보자 산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조용히 물러났다.

 

 이내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산이를 확인한 나비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통화를 이어갔다.

 

 아까의 애교 섞인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낮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리고는 전화를 하는 틈틈이 산이에게 눈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윽.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의 역린을 건드린 듯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산이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정말 알았다니까, 이따가 저녁때까지 맞춰서 갈게.”

 

 산이는 그나마 가까워졌던 사이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 듯 했다.

 

 그래도 어제까지만 해도 명색이 일국의 왕이였는데, 이렇게 역적취급을 받을 줄이야.

 

 이루 말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구나.

 

 “알았어, 그럼 이따 봐.”

 

 후우.

 

 이제야 통화가 끝이 난 것인지, 그녀는 얕은 한숨과 함께 생각에 잠긴 듯 핸드폰과 산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긴장된 마음에 산이는 바짝 마른 입술을 물어뜯었다.

 

 이럴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걸어다닐때부터 배운 제왕학에서조차 배운 적이 없었을 뿐더러, 태생적으로 남의 눈치를 살펴야할 상황이 온 적도 없었다.

 

 일생동안 단 한번도.

 

 왜 기연과 영의정은 내게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인가.

 

 원망스럽기 그지없구나….

 

 깊은 고민의 결과가 나온 것인지 핸드폰에 고정해 있던 나비의 시선이 어느새 산이한테로 옮겨졌다.

 

 묘한 표정의 나비가 서서히 다가오자 눈치가 보인 산이는 은근슬쩍 앉아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산이씨.”

 

 나비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물었다.

 

 아마 다시 무릎을 꿇어야 될 거 같다.

 

 무엇을 잘못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모든 게 다 과인이 변변찮은 탓이겠지.

 

 슬쩍 무릎을 꿇어앉으려고 자세를 고쳐 잡으려 하자, 그녀는 한손에 핸드폰을 쥐고는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아무래도 나가보긴 해야 될 거 같아요.”

 

 “어딜 말이냐?”

 

 담담한 목소리가 산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가보라니….

 

 드디어 나비가 나를 집에서 쫓아낼 생각인가 보구나.

 

 진작 손까지 들었어야했거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아둔하게 눈치 없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냐.

 

 “저희 엄마가 이런 쪽으로는 조금 극성이라 서요. 그리고 저도 집에 안간지 쫌 되기도 했구요. 그래서 아마 집에 같이 가주셔야 될 거 같아요. 오해를 풀어야죠.”

 

 “…끝이냐?”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듯 수줍게 웃으며 핸드폰을 책상위에 올려놨다.

 

 “네, 끝이죠. 무슨 말을 더해요. 근데 왜 불편하게 무릎을 꿇고 계세요?”

 

 “…나한테 화가 났던 것이 아니었더냐?”

 

 “아, 아까 통화중에 끼어든 거요? 됐어요. 뭘 그런 걸로 화를 내요, 화 안 났어요.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 소심하시네요."

 

 그녀가 환하게 웃자 산이는 멍하니 앉아 두 눈만 바보같이 깜빡였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않느냐 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내 그녀 옆에 놓인 프라이팬이 눈에 밟혀 끝내 차오른 말은 결국 속으로만 되뇌었다.

 

 “아이고, 주말이라서 늦잠이나 더 자려고 했는데…. 또 할 일이 생겼네.”

 

 나비는 기지개를 키고는 곧바로 화장실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가먼저 씻고 나올 테니 조금 쉬고 계세요.”

 

 “알았다. 과인은 신경 쓰지 말거라.”

 

 그렇게 수건 하나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 나비는 깜빡한 게 있는지 화장실 안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아, 맞다! 엿보시면 안돼요.”

 

 “어허! 나비 너는 지금 과인을 뭐로 보는 것이냐, 공자님 가라사대 자고로 선비라 함은 그 어떤 유혹이 닥친다 한들….”

 

 쾅-!

 

 산이의 일장연설이 시작되려하자 나비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곧바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산이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서도 나비가 남긴 말은 혈기왕성한 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허나, 사내가 칼을 꺼냈으면 적어도 무라도 베야 되지 않겠느냐.”

 

 *

 

 쏴아아.

 

 화장실안 울려 퍼지는 물줄기소리가 적막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의식하고 싶지 않았지만,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그 소리 때문인지 산이의 머릿속에는 온갖 잡념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래, 서로의 미래까지 약조했던 사이거늘 무엇이 부끄럽다고.

 

 이렇게 사내답지 못하게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이냐.

 

 산아! 가즈아!

 

 긴 침묵 끝에 산이는 결심을 굳혔는지 정좌를 틀고 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한걸음, 한걸음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I'm only one call away, I'll be there to save the day.”

 

 발소리까지 죽여 가며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산이는 때마침 나비가 책상위에 던져놓은 핸드폰 벨소리에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울린 벨소리에 당황한 산이는 누구한테 온 것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막 두드리다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뒤집었다.

 

 하아-.

 

 그렇게 소리가 점차 작아지던 폰이 잠시 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자, 산이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하던 바로 그때.

 

 순간, 그의 눈에 비친 책상위에 놓인 아버지의 사진이 그의 발을 붙잡았다.

 

 “아버지가 이리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한나라의 왕인 내가 어찌 불순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산이는 책상위에 액자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끼익-.

 

 때마침 화장실의 문이 살짝 열리면서 나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산이가 얼른 뒤돌아섰다.

 

 “산이씨, 전화 누구였어요? 좀 갖다 주실래요?”

 

 “남녀칠세부동석 이니라.”

 

 “예, 뭐라고요? 안 들려요!”

 

 화장실에 있던 나비는 산이가 물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폰이요, 제 폰 가져다 달라구요!”

 

 "어찌 아직 혼례조차 올리지 않은 여인의 몸을 내 함부로 볼 수가 있겠느냐!"

 

 초조하게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산이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자신과의 계속되는 싸움에 짜증이 났는지 목소리를 드높였다.

 

 “생각을 곱씹어보아도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니, 나비 네가 직접 와서 가지고 가거라.”

 

 “가져다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시지. 뭘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세요.”

 

 끼익, 끼익.

 

 샤워 밸브를 잠그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문밖으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화장실 밖으로 나온 그녀의 발소리에 당황한 산이는 망측한 상상으로 가득찬 머리를 한 대 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비야, 머지않아 내가 네 지아비가 될 사람이라고는 해도 아직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아니거늘, 나비 너는 어찌 그렇게 쉽게 남에게 속살을 보이려 하는 것이냐?”

 

 뚝뚝.

 

 씻고나온 그녀에게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따라 산이의 심장도 따라 격하게 요동쳤다.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앉아있는 의자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눈치 없는 이놈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더욱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진정해라, 진정해.

 

 “뭐야, 모르는 번호네. 안 받길 잘했네.”

 

 부재중전화를 확인한 그녀는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툭하고 침대위에 던져놓았다.

 

 “근데, 산이씨는 왜 갑자기 또 뒤돌아 있어요. 인제 뒤져서 나올 것도 없어요.”

 

 “그런 것이 아니니 걱정 말거라.”

 

 “네?”

 

 아까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을 내뱉으며 무언가 바뀐 산이의 태도에 그녀는 앉아있는 의자를 자신의 방향으로 돌리려고 힘을 썼지만 의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 하거라.”

 

 “아까부터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이쪽 보고 말해요.”

 

 “이미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장자께서 말씀하시되….”

 

 “그놈의 옛날 사람들 좀 그만 들먹거려요!”

 

 짜증 섞인 소리와 동시에 인내심에 한계가 온 나비가 산이의 의자를 확하고 돌렸다.

 

 *

 

 산이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커다란 손으로 얼굴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푸훕.

 

 아, 이래서 아까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니 그런 소리를 했구나.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왕이라는 양반이.

 

 괜히 놀려주고 싶게….

 

 “왜 눈을 가리고 계세요?”

 

 “너를 위해서다.”

 

 “그래요? 그럼 산이씨 제가 지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어서 그런데 거기 책상위에 있는 옷 좀 집어 주시겠어요?”

 

 “너는 손이 없느냐, 직접 하거라.”

 

 “알았어요, 그럼 제가 ‘직접’ 가져갈게요.”

 

 뚝뚝.

 

 직접 가지러 온다는 말과 함께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에 산이는 책상 위를 허겁지겁 더듬으며 대충 집어던져 놓은 티셔츠를 나비를 향해 던졌다.

 

 실눈을 뜬 채.

 

 그리고 동시에 산이의 환상이 깨졌다.

 

 “그게 지금 무슨 꼴이냐?”

 

 기대와는 다르게 단지 머리를 수건으로 조심스레 올리고 얼굴에 약간의 물기가 묻어있는 그녀의 모습 덕분에.

 

 “…분명 내게 씻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래서 씻고 나왔잖아요. 머리 감고 세수한 거 안보이세요?”

 

 나비가 산이를 놀리듯 물기 머금은 자신의 볼을 살짝 쳤다.

 

 산이는 한편으로는 아쉬운 듯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마음이 놓였는지 슬며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 네가 맞구나.”

 

 “산이씨 딱 보니까 이상한 생각했었구나. 하여간, 남자들이란 이래서 안 된다니까….”

 

 “그런 것이 아니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당돌한 그녀의 태도에 정곡을 찔린 산이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민망한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앞으로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양치 할 때도 문 열고 할 테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실망이라니, 과인을 지천에 깔린 그저 그런 소인배랑 똑같이 보지 말거라.”

 

 “알았어요. 믿어 줄 테니까 산이씨도 얼른 씻고 나오세요.”

 

 씻으라는 나비의 말에 산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위에 걸친 앞 저고리를 풀어헤쳤다. 예상치 못한 탈의에 놀란 나비는 자신의 눈을 살짝 가렸다.

 

 아주 사알-짝.

 

 “알았다. 허나, 과인은 과인의 몸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 정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어오거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어와도 괜찮다는 느끼한 말을 남긴 산이는 정말 문도 닫지 않은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보고 싶지도 않아요. 빨리 문이나 닫아요.”

 

 쏴아아.

 

 나비의 말에 산이는 보란 듯이 문을 더 활짝 열어둔 채 샤워기를 틀었다.

 

 저렇게 장난기 많고 소심한 사람이 한나라의 왕이었다니.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지금 이 광경이 이따금 믿기지가 않으면서도, 그와 함께했던 오늘 일들이 떠오르자 나비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은근 잘생겼다니까, 아무리 봐도.

 

 몸도 좋고….

 

 자연스레 아까 산이의 탄탄한 복근이 떠오르자 민망함에 나비는 그대로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한나비 요즘 외로워서 진짜 어떻게 됐구나.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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