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뚱...멀뚱...

　반지를 낀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린 그레이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라...? 근데 어떻게 부르는거지?'

　정작 중요한 폰틴을 부르는 법이 반지 설명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음....."

　그레이스는 손을 하늘을 향해 쭉 뻗을채 생각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Overmind' 에서는 어떻게 불렀더라?'

　기존에 했던 게임에서도 이런 효과의 아이템을 사용해 본 적은 있었다.

　다만 한두번 써보고 그 절망적인 효율에 바로 경매장에 팔아버렸었다.

　이미 사냥에 성공해 얻은 소환반지는 이미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였기에 사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나와라! 폰틴!"

　자신만만하게 그레이스가 소리쳤다.

　"........."

　하지만 돌아온 것은 민망할 정도의 침묵과 부끄러움 뿐이었다.

　"폰틴 너로 정했다!"

　"나와주세요! 폰틴님!"

　"나오면 안잡아먹지~"

　"지구인들아 나에게 힘을줘~!"

　민망함에 몸서리치던 그레이스가 생각나는대로 이런저런 대사를 막 내뱉었지만,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으..... 어떻게 하면 나오는거야? 이거?"

　그레이스가 하늘 높이 치켜들었던 손을 내렸다.

　더이상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아! 잠깐만 혹시....'

　문득 좋은 생각이 난 그레이스가 주먹쥔 손을 손바닥 위에 콩! 하고 튕겼다.

　폰틴이 생각하는 그레이스는 아카네 여신 본인이었다.

　그렇다는건 여신님처럼 조금 더 권위적이고 오만한 말투로 명령한다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그레이스였다.

　"나의 충성스런 창, 폰틴~ 어서 일어나 나와의 계약을 이행하세요 "

　상대를 유혹하듯 달콤하면서 치명적인 목소리로 그레이스가 속삭였다.

　아카네 여신님이라면 분명 이렇게 했을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레이스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휘오오오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음산한 바람을 타고 검은 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 갑옷을 두른 손과 발, 붉은 피처럼 붉은 빛을 내뿜은 검은 창, 증오로 가득찬듯 붉은 안광을 흘러넘치는 투구

　방금 전 보았던 폰틴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신님의 창, 폰틴, 여신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온몸이 완벽하게 완성 된 폰틴이 그레이스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됐다!!!'

　그레이스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될지는 상상도 못했었다.

　"분부를 내려 주십시오. 제 심장은 당신의 것입니다."

　완벽하게 고개를 숙인 폰틴이 저음의 기품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충성스런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폰틴~ 이제 돌아가도 좋아요~"

　폰틴을 불러냈다고해도 딱히 부탁하고 싶은 일은 없었다.

　그래도 궁금해서 불렀다고 하기에는 어딘가는 미안하니 달콤한 말이라도 들려준 그레이스였다.

　아카네 여신님이라면 이렇게 말했을것 같았다.

　"영광입니다. 여신이시여. 그럼..."

　충성도 100%의 위엄.

　폰틴은 그레이스의 명령에 한마디 토도 달지 않고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근데 이거,,, 부를때마다 이렇게 해야하는건가?'

　건방지면서도 오만한 말투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말투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말투였다.

　물론 좀비들을 발로 즈려밟을때 사용했던 그레이스의 말투가 이와 상당히 유사하기는 했지만 그레이스 본인은 그걸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쓰기는 좀 부끄럽겠네 이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해도 남들과 다른 그레이스의 복장은 숨길수가 없었다.

　앞서 세루리안님이 직접 증명해 준 사실이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확인해볼게 있었지?"

　자신이 손에 넣은 폰틴의 레벨

　'악신의 창' 이라는 이명을 가질 정도의 실력자였다면 그만큼 생전에 강했다는 뜻일텐데 이런 초보중에서도 초보 마을에 출몰한다는게 어딘가 꺼림찍했다.

　강해보이는 외견과 달리 초보자 사냥터 네임드 보스에 걸맞게 굉장히 약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그레이스는 그 불길한 예감을 확인하기 위해 도감을 열었다.

　"어디보자~"

　그레이스의 도감에 등록된 몬스터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폰틴 여깄다!"

　때문에 폰틴의 이름을 찾는건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린아이라도 가능할 정도로 쉬웠다.

　헉.,....

　폰틴의 레벨을 확인한 그레이스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Lv.444....?"

　폰틴의 공동묘지에서 나오는 좀비들의 레벨이 20이였다.

　그런데 뭐?

　거기서 나오는 네임드 몬스터의 레벨이 444?

　게임 기획자가 일부로 그렇게 설계한 것인지, 44라는 수치를 잘못 입력해서 444라는 수치가 되었는지,

　그건 알 방도가 없었지만, 아무튼 폰틴의 레벨은 압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물론 '아카네'님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레벨이었지만 말이다.

　"세상에...."

　그레이스의 스텟이 아무리 높다높다해봤자 그레봐야 15레벨이었다 .

　444레벨의 몬스터에게 단 한방이라도 스쳤다면.....

　그레이스는 방금 전 땅에 엎드린 폰틴의 머리를 짓밟았던 자신의 행동이 떠올리고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잠깐만....'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이 그레이스의 머리에 스쳤다.

　'저거 내가 잡았으면 돈이랑 경험치 얼마나 줬을까?'

　폰틴에게서 그레이스가 얻은것이라고는 반지뿐이었다.

　경험치도 돈도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폰틴이 자결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벨 15의 그레이스가 444레벨의 몬스터를 정식적인 루트로 잡는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레이스의 치터급의 스텟과 폰틴의 충성심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숟가락 살인마' 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 모든건 결국 때리다보면 죽기 마련이었다.

　'으....아까워...'

　스스로 자결을 한 폰틴의 행동을 보아해서 그레이스가 죽을때까지 팬다고 저항할것 같지도 않았다.

　20레벨의 좀비만 열댓마리 잡았는데도 15레벨이 됐었다.

　444레벨의 폰틴을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면.....

　단번에 폭업을 할 수 있는 찬스를 자기 손으로 스스로 걷어찬 그레이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후..... 어쩔 수 없지..."

　거의 10분가량을 그 자리에서 방황하던 그레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큰 찬스를 날려버려서 후유증이 깊었지만, 이래봐도 그레이스는 게임에 관해서는 베테랑이었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아날 수 있는 도피처였던 게임속 세상에서 그레이스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왔었다.

　아쉽고 분한 경험도 그만큼 많이 겪어왔었다.

　"아쉬운만큼 골수까지 부려먹어 주겠어."

　가슴 깊숙히 그렇게 다짐한 그레이스는 걸음을 옮겼다.

　밤은 이미 깊어 달빛과 별빛만이 그레이스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레이스의 눈은 정확히 어둠 너머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