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02.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2)
작성일 : 18-11-27 01:51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407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유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할머니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았다. 산소 호흡기를 꼈음에도 임여사의 호흡은 한없이 미약하기만 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음에도 오늘 유진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도 작게만 보였다. 앙상한 손가락과 비쩍 마른 모습에 유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병색이 짙어진 임여사의 모습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는데 유진 가까이에 차가운 체온이 느껴졌다. 유진이 다가선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여기까지 함께 와 준 윤영이 가까이에 서있었다. 유진은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그냥 가지. 뭐 하러 올라와? 사무실도 지금 수습하느라 장난 아닐 텐데.”

 

 “어떻게 그냥 가?”

 

 유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은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했다. 두려웠다. 누군가의 죽음을 혼자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외국에 계신 부모님이 오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혼 얘기를 꺼낸 장호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바로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에 오는 길에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유진의 눈에 임여사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목에 두른 가제 손수건이 들어왔다. 그것을 보니 괜스레 속상했다. 유진의 손이 손수건 끝에 닿았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유진의 말이 채 끝을 맺지 못하고 흐려졌다. 끝이 헤진 손수건이 임여사를 더욱 애처롭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그때, 간병인이 들어왔다.

 

 “오셨어요?”

 

 유진이 간병인을 향해 돌아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간병인이 임여사의 마지막 일상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는 잠도 잘 주무셨고, 아침 식사도 다 하실 정도로 아주 좋으셨어요. 그냥 평소랑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었어요.”

 

 “네. 알아요. 어제 저도 뵈었잖아요.”

 

 간병인은 안타까운 눈으로 임여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식사 잘 하시고, 아침 드라마 보는데 갑자기 숨을 헐떡이셨어요.”

 

 “드라마요? 할머니가 드라마를 보셨어요?”

 

 유진은 임여사가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평소의 임여사는 뉴스조차도 TV로 보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의동 집에는 TV 자체가 없었다.

 

 “네. 병원에서는 시간을 보낼 게 많지 않으니까. 그나마도 오늘은 드라마 중간에 뉴스로 화면이 바뀌어서 제대로 다 보시지도 못했어요.”

 

 “뉴스…? 아…”

 

 유진은 뉴스라는 말에 아까 오전에 사무실에 봤던 뉴스 속보가 떠올랐다. 정인철 그 양반이 오늘 여럿 죽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제야 윤영을 이렇게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감독, 그만 가봐. 가서 수습해야지.”

 

 “괜찮겠어?”

 

 “응.”

 

 그때, 유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국제전화표시가 뜬 걸 보니, 부모님인 것 같았다. 유진은 조용히 복도로 나와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 유진아.

 

 “네.”

 

 - 지금 가는 비행편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구나.

 

 “네.”

 

 - 방금 윤원장이랑 통화했어. 신경 써줄 거야.

 

 “네.”

 

 유진은 평소와 다름없게 들리는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목소리 끝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떨림에서 아버지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저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 유진아.

 

 “네.”

 

 자신의 이름을 너무도 따뜻하고 다정하게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조금 전과는 다르게 물기가 어려 있었다.

 

 - 우리 어머니… 잘 부탁한다.

 

 “네.”

 

 유진은 아버지의 잘 부탁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많은 말들이 담겨있음을 알았기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유진이 아버지와의 전화를 끊을 때까지 가지 않고 옆을 지키고 있던 윤영이 유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윤영의 손을 피하며 말을 꺼냈다.

 

 “그만 가. 와줘서 고마웠어.”

 

 “유진아.”

 

 그때, 복도 끝에서 유진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진과 윤영의 시선이 돌아갔다. 복도 끝에는 장호가 서있었다. 장호는 유진과 눈이 마주친 후에야 빠른 걸음으로 유진에게 성큼 다가왔다.

 

 유진은 제게 걸어오는 장호의 모습을 보자 안도감과 함께 저 깊은 어딘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눈도 그치지 않았는데, 이렇게 추운 날 겉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온 듯한 장호의 모습에 눈이 시큰거렸다.

 

 유진은 장호가 제게 다가오자 그의 품에 그대로 안겼다. 저도 모르는 눈물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참고 있었나보다.

 

 장호는 유진이 제게 안길 줄 몰랐는지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의 등을 감싸 안은 채 가만히 등을 쓸며 토닥였다. 윤영은 두 사람 사이에서 뭐라 얘기할 틈이 없어 보여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임여사는 유진과 장호가 지켜보는 가운데 잠이 들 듯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까지 임여사의 손을 잡고 있던 유진은 아버지 대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부재로 유진과 장호가 상주가 되어 임춘희 여사의 빈소가 차려졌다. 유진은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 장례를 조용하게 치룰 예정이었지만, 다들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부모님의 지인과 유진, 장호의 손님들까지 다른 빈소보다도 떠들썩했다.

 

 초라한 늙은이의 죽음인데, 화환이 복도까지 줄을 서 있었다. 영정사진은 언젠가 마당에 핀 동백꽃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임여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했다. 수줍은 소녀마냥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임여사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유진은 영정사진을 쳐다보다 며칠 전 동백꽃이 피었을 거라며 어서 가서 봐줘야 한다고 읊조리던 임여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제 아침 마당에 붉게 피어있던 동백꽃도 떠올랐다.

 

 “이제 좋은 곳에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 실컷 보세요. 거기는 지지도 않을 거예요.”

 

 손님을 배웅하고 온 장호가 유진의 옆에 앉았다.

 

 “고마워.”

 

 유진의 말에 장호는 말이 없었다.

 

 “우리 할머니, 당신 정말 좋아했는데 이렇게 마지막까지 배웅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유진아.”

 

 유진은 장호가 저를 부르는 그 다정한 목소리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때, 빈소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들리는 통곡소리에 저절로 유진과 장호의 대화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면 어쩌요.”

 

 곱게 양장을 차려입은 지긋해 보이는 연세의 한 할머니가 빈소까지 채 들어오지 못하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유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 누구보다 서럽게 울고 있는 공순복에게 다가갔다.

 

 “저어, 어떻게 오셨어요?”

 

 공순복은 제 손을 잡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유진을 쳐다보고는 놀란 공순복은 되레 유진에게 물었다.

 

 “손녀인가?”

 

 “네.”

 

 그러자 공순복은 유진의 손을 두 손으로 더 꼭 그러잡으며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유진은 저도 이렇게 까지는 울지 못하는데 임여사를 위해 울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제 손을 잡고 우는 공순복을 뿌리치지 못한 채 묵묵히 함께 곁에 있어 주었다.

 

 공순복은 그러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도 빈소를 떠나지 않고 멍하니 영정사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유진은 할머니와 공순복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그저 지금은 공순복을 그대로 두어야 할 것 같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유진아, 잠깐 좀 나와 봐.”

 

 문상객과 인사를 하고 있던 장호가 유진을 밖으로 조용히 불렀다. 유진이 그의 부름에 가만히 복도로 나오니 커다란 화환과 상조용품 박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그게, 할머님 앞으로 온 거라는데?”

 

 유진이 화환의 리본에 적힌 글을 보니 국립국악원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국립국악원에서 왜……?”

 

 유진이 그 이유를 채 묻기도 전에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공순복이었다.

 

 “내가 연락했소. 우리 임배우님을 이리 쓸쓸하게 보내면 안 되지 않겠소?”

 

 “임배우요?”

 

 그러나 공순복은 도리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게 묻는 유진에게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것처럼 경악스런 얼굴로 바뀌었다.

 

 “모르셨소? 할머니가 배우였던 거.”

 

 유진은 무언가 커다란 것에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았다. 제가 알고 있는 할머니는 말 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친우 또한 없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전쟁통에 남편과 헤어져 홀로 아들을 키워내느라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로 아버지가 말하는 ‘안 해본 일’에는 ‘배우’라는 직업은 없었다.

 

 게다가 임여사는 목의 상처 때문에 평생을 목에 가제 손수건을 두르고 살아왔다. 저기 영정사진에도 그 손수건이 둘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배우라고? 유진은 지금 공순복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작가의 말
 

 언젠가 어느 지인의 연락으로 문상을 간 적이 있었는데, 여러개의 빈소가 꽉 차 있었음에도 복도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마도 이별을 하는 방법이 옛날과는 달라진 것이었겠지만, 왠지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9. 바람에 나부끼는 꽃(2) 2018 / 12 / 19 233 0 4611   
18 18. 바람에 나부끼는 꽃(1) 2018 / 12 / 17 254 0 4409   
17 17. 동백아가씨(5) 2018 / 12 / 17 240 0 5252   
16 16. 동백아가씨(4) 2018 / 12 / 12 239 0 4419   
15 15. 동백아가씨(3) 2018 / 12 / 12 239 0 3968   
14 14. 동백아가씨(2) 2018 / 12 / 11 235 0 4008   
13 13. 동백아가씨(1) 2018 / 12 / 9 243 0 4030   
12 12. 춘우(春雨)(5) 2018 / 12 / 9 261 0 4113   
11 11. 춘우(春雨)(4) 2018 / 12 / 8 232 0 4165   
10 10. 춘우(春雨)(3) 2018 / 12 / 7 247 0 4443   
9 09. 춘우(春雨)(2) 2018 / 12 / 6 224 0 4716   
8 08. 춘우(春雨)(1) 2018 / 12 / 4 251 0 4331   
7 07. 춘희(4) 2018 / 12 / 4 262 0 4936   
6 06. 춘희(3) 2018 / 12 / 1 246 0 4588   
5 05. 춘희(2) 2018 / 11 / 30 226 0 4086   
4 04. 춘희(1) 2018 / 11 / 28 240 0 4697   
3 03.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3) 2018 / 11 / 28 254 0 4794   
2 02.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2) 2018 / 11 / 27 251 0 4075   
1 01.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1) (1) 2018 / 11 / 26 430 2 391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그녀에게
최선영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