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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White Black Magician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1.26

약초꾼 소녀 이든은 산에서 조난당한 동생 유리를 찾으러 갔다가 백발의 마법사 쟝을 만난다. 그의 정체는 금지된 마법에 손을 댄 흑마법사이자 위험한 범죄자라고 하지만, 이든은 이상하게도 이 남자를 포기할 수 없다. 순수한 소녀와 츤데레 흑마법사가 겪는 음모와 사건, 그리고 로맨스.

 
#1-악령(1)
작성일 : 18-11-26 10:40     조회 : 417     추천 : 1     분량 : 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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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가 없다구요?"

 ​

 불신이 가득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한 미성이 차가운 공기를 뒤흔든다. 마을 어귀에 모인 이십여명의 사람들은 다들 하나같이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새하랗게 질린 것은 바로 방금 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를 높이고 만 바로 그녀이리라.

 ​

 아직 소녀티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젊은 여자. 동그란 얼굴선과 짙은 갈색 눈동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마음을 놓게 만드는 부드러움을 지녔고, 반듯한 콧대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딱 보기 좋은 높이였으며, 도톰한 입술에는 야무진 힘이 실려 있었다. 다만 창백해보이는 안색과 흐트러진 긴 머리가 그녀를 수척해보이게 했지만, 지금 여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단장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방금 전 동네 사람의 말을 듣고 받은 충격에서 헤어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발 닿는데는 다 찾아봤다만 코빼기도 안보이지 뭐냐. 하늘로 솟은건지 땅으로 꺼진건지..."

 ​

 와키 산의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체이란 마을은 이십여년 전부터 약초꾼들이 모여 살아온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 약초를 채집하여 생계를 이어가곤 했다. 이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걸음마를 할 때부터 산을 놀이터 삼아 자랐고, 어른이 될 즈음에는 이 크고 넓은 산을 제 손바닥 보듯이 속속들이 꿰뚫게 되었으며, 제 아무리 거친 산길이라도 마치 평지처럼 쉽게 활보하고는 했다. 특히 지금 막 산에서 돌아온 이 남자들은 다들 최소 십년 이상 약초를 캤던 베테랑들이었지만, 오늘은 약초가 아닌 다른 것을 찾기 위해 산을 올랐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

 "그럼 지금 그 애를 혼자 두고 오셨다는 거에요?"

 "곧 해가 지는데 계속 산 속에 있을수는 없지 않니, 이든."

 "그럼 우리 유리는요?"

 ​

 비명을 지르듯이 받아치는 이든의 말에 남자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중년 남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길을 잘 안다고 해도 해가 진 뒤의 산을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두운 시야 때문에 주위를 구분하기도 어려워짐은 물론이거니와 방향을 짐작할 수도 없어 길을 잃을 위험이 컸고, 또한 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어 자칫하다간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그렇지만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기 직전인 지금, 아직 열다섯살도 채 안된 소년이 홀로 산 속에 남겨져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절대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뒷짐을 진 채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염이 지긋한 노인 한 명이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

 "혹시 키오 절벽쪽도 찾아봤는가?"

 "아... 아뇨. 거긴 안가봤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유리 녀석이 설마 거기까지 갔겠어요. 거기는 떨어지면 시체도 못 찾는곳 아닙니까?"

 ​

 남자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설파했지만 노인의 얼굴에 패인 주름은 더욱 깊어진다. 그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더니 이든을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내일 날이 밝는대로 다시 찾아보자꾸나. 다행히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네? 린 할아버지, 하지만...!"

 "이든, 네 마음은 알겠지만 침착해져야 해. 지금 산에 들어갔다간 다 죽는다."

 ​

 린의 말에 이든의 표정이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녀는 노인의 말에 수긍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달리 불안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다.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제 손 끝을 꽉 붙든 이든의 모습에서 동생에 대한 걱정스러움이 가득 느껴진다. 그녀의 마음이 주변의 공기마저 불안케 흔들던 그 때, 사람들 틈새에서 흘러나온 속닥거리는 소리가 이든의 귓바퀴에 닿았다.

 ​

 "혹시 그 '괴물'한테 잡혀간 거 아냐?"

 "괴물?"

 "거 예전에 캔토 마을 나무꾼이 쥐도새도 모르게 없어진 일이 있었잖어. 티나스 마을에서도 사냥꾼이 없어졌고. 흰색털을 가진 커다란 짐승이 물어갔다고..."

 "괴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

 튀어오르듯이 텨져나온 이든의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그들에게 닿았다. 나름 목소리를 낮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깨닫자 노인들의 어깨가 송구한듯 움찔거린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린이 두 노익장들에게 버럭 호통을 쳤다.

 ​

 "뭣들 하는겐가? 괜히 쓸데없는 말들 하지 말게!"

 "할아버지, 저게 무슨 소리에요? 괴물이라뇨?"

 ​

 가뜩이나 근심이 가득한 이든의 얼굴에는 이제 짙은 공포심마저 드리우려고 하고 있었다. 린은 한숨을 쉬더니 이든을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언성을 낮추고 침착하게 대답한다.

 ​

 "아니다, 이든. 신경쓸 거 없어."

 "하지만..."

 "나무꾼은 술에 취해 발을 헛디뎌서 죽었던 거고, 사냥꾼은 곰에게 쫓겨 실족했던 거다. 둘 다 키오 절벽에서 미끄러져 뒤늦게 발견되서 그러는거야. 괴물이니 뭐니 하는건 애들한테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들려주려고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야."

 ​

 린이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이든은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듯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떨치지 못하더니 갑자기 크게 휘청인다. 그런 모습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든을 부축한다.

 ​

 "이든, 괜찮아?"

 "괘, 괜찮아요."

 ​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꺾일뻔한 두 다리에 긴장감을 주고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괴물에 대해 이야기 하던 수다쟁이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는 이든을 보자 미안해졌는지 허겁지겁 사과를 건넨다.

 ​

 "미안하다, 이든. 에휴, 내가 주책이지."

 "신경쓰지 마라. 유리는 괜찮을게야. 그냥 늙은이들이 노망나서 한 소리려니 해."

 ​

 두 노인이 이든을 위로하려고 부던히 애쓰던 그 때, 하늘에서 하얀 것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놀라서 이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젖혀 위를 쳐다보았다. 하필 이럴 때 눈이라니. 이든은 여지껏 살면서 마주친 가장 절망스러운 첫눈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

 ​

 ​

 

 **

 ​

 ​

 ​

 ​

 사람들이 말릴 것이 뻔했지만, 아니, 만약 다른 사람이 지금 산에 오르겠다고 한다면 이든 역시 그를 말렸을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을수가 없다. 이것저것 다 따져봐도 최악의 상황이다. 해는 지고, 눈은 내리고, 거기다 비박 준비조차 하지 않은채 홀홀단신으로 산속에 남겨진 하나뿐인 동생. 이든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자신 역시 성한 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늦은 밤, 이든은 결국 오른손만으로 용케 산을 탈 채비를 마치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다친 왼팔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는 점이었다.

 ​

 유리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가족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이든을 연신 괴롭히고 있었다. 한달여전 이든은 약초를 캐다가 독나뭇가지에 긁혔는데 상처가 낫지 않아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좋다는 약초는 다 써보고 마을에 있는 의사에게도 보였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었던 것이다. 고민하던 유리는 해독초를 찾아보겠다며 길을 나섰다. 파란 꽃잎을 가진 약초가 해독에 좋다는 것을 어디선가 주워듣고 온 모양이었지만, 그것은 여태껏 이 마을의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뜬구름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이든은 유리가 그 약초를 언급할 때 그냥 옛날 이야기겠거니 하고 무시하라고 했지만 결국 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왼쪽 소매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

 눈은 발자국이 어른의 검지 손가락 길이만큼 패일 정도로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그렇잖아도 굵은 눈발에 일었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을 본 이든의 속은 더더욱 타들어간다. 그녀는 유리가 무사하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래, 분명 괜찮을거야. 겨울밤의 산은 분명 위험천만한 곳이었지만 아예 기대할만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와키산에는 체이란 마을을 비롯해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삶고 살아가는 조그마한 마을들이 여럿 있었고, 그 마을 주민들이 산행 중 휴식이나 조난 당했을 경우 등을 대비해 산 군데군데 조그마한 오두막을 만들어두었는데, 그곳에는 며칠밤 정도는 무리없이 버틸수 있을만한 식량과 물품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이든이 알기로 유리는 그런 산장의 위치를 최소 몇 개는 알고 있다. 거기서 잠시 쉬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잠시 눈과 어둠을 피해서 근처 다른 마을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마을 어른들의 말마따나 유리는 아직 어리지만 영리한 아이였다. 아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잘 버티고 있을것이라 저 스스로를 위로한 이든은 다시 한 번 속도를 높였다.

 ​

 "하아..."

 ​

 컴컴하고 눈이 쌓인 산은 생각보다 많이 낯설었다. 한 손으로는 등불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든에게선 두려움이 적지 않게 엿보였으나, 지금 그녀는 동생에 대한 걱정에 온 정신이 쏠려 자신의 감정을 돌볼 틈이 없었다. 이든은 우선 키오 절벽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했듯이 그곳은 금지된 위험구역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상황은 더욱 나빴다. 어둠은 이든의 시야를 가렸고 눈은 유리의 흔적을 감춘다. 가까스로 방향감을 붙든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이든은 점점 유리를 찾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에 나왔던 것인데 막상 이렇게 현실로 마주하고 나니 더더욱 참담해진다. 이든의 허망한 눈동자가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

 그런 상황에서도 용케 키오 절벽 근처에 도착했지만 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에 먹혀 분간할 수 없는 땅과 하늘뿐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캄캄한 시야에 이든은 멍해져 있다가 곧 절망하고 만다. 이래가지고는 수색은 커녕 자기 발밑이나 알아보면 다행일 수준이었다. 절벽 아래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한 치 앞도 잘 보이지도 않는 지금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바람이다. 이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답답했다.

 ​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

 허망한 한숨과 함께 힘없이 뒷걸음질치던 그 때, 뭔가 툭하고 발 뒤꿈치에 부딫힌다. 이든이 깜짝 놀라 발치를 살펴보니 왠지 낯익은 뭔가 눈에 반쯤 파묻혀 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유리의 배낭이었다. 이든은 뒤통수를 후려맞은 듯한 충격에 눈을 번쩍 뜬다. 유리가 진짜 이 근처에 있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미친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유리를 불렀다.

 ​

 "유리! 유리!"

 ​

 허둥지둥 눈을 헤치며 애타게 소리쳐봤으나 되돌아오는 것은 자신을 따라하는 메아리 뿐이다. 뿌드득하고 눈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든은 목이 메이는 것을 있는 힘껏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동생의 이름을 부른다.

 ​

 "유리, 나야! 내 목소리 들려?"

 ​

 그러나 역시나 들려오는 것은 바람소리뿐,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눈에 붙들린 무거운 다리는 정처없이 어둠 속을 방황했고 그러는 동안 체력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축나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용기가 옅어지며 목소리는 작아진다. 비척비척 나아가다가 결국 지쳐버리고 만 이든은 망연자실하니 산 속 어딘가에 멈춰서고 말았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유리. 막막하기 그지없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둘씩 떠오른다.

 ​

 [나무꾼이 없어진 일이 있었잖어... 사냥꾼이 없어졌고... 커다란 짐승이...]

 ​

 혹시 진짜 괴물이란게 유리를 잡아갔을까? 아니면 린의 말처럼 절벽에서 미끄러진걸까? 그러나 그 중 어느것도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이든이 망연자실하니 서 있었던 그 때, 헛헛한 바람소리 틈을 비집고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가 그녀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

 "누나..."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울함에 젖어 힘없이 꺾여있던 고개가 번뜩 치켜들린다. 이든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들은 것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

 "누나..."

 ​

 하지만 한번 더 그 목소리를 듣자 이든이 품었던 미심쩍음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흩어져버렸다. 누이는 힘없는 동생의 목소리에 허겁지겁 대답했다.

 ​

 "유리, 나야! 어딨어?"

 ​

 그렇지만 유리의 목소리는 마치 안개처럼 흩어져서 어느 쪽에서 들려오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힘겹게 여기저기 헤매어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유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든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근처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는 유리의 목소리가 그녀의 다리를 재촉하고, 몸과 마음이 급해짐에 따라 침착함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 때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 한 줄기가 이든의 옆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가며 손에 든 등불을 꺼뜨리고 말았다. 희미하게나마 밝았던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이든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눈이 뒤덮인 밤의 산 속에서 길을 잃다니. 아차 싶었지만 문득 저 앞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척이 다시 한 번 이든의 주의를 끌어당겼다.

 ​

 "유리! 유리니?"

 "도와줘..."

 ​

 이든은 허둥지둥 그 목소리를 따라갔고, 어느새 유리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성큼 더 가까워져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소리에만 의존한 채 움직이는 이든은 지금 장님이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차마 두려워할 틈도 없다. 유리는 가까이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곧 닿을 것처럼 지척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든에게 용기를 주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팔을 뻗으면 거기에 유리가 있을 것 같다. 맹목적으로 유리를 뒤쫓던 이든은 결국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

 "윽!"

 ​

 아무런 대비도 없이 고꾸라지고 말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소복히 쌓인 눈이 그녀를 받아준다. 그러나 그것을 신호로 유리에 밀려나 잊혀져 있었던 고단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미 산 속의 냉기가 이미 몸 여기저기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었고, 손과 발 끝은 차갑다 못해 딱딱하게 변한지 오래다. 그러나 이렇게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든은 몸을 일으키려고 바닥을 짚었지만 팔에 힘이 빠져 확 꺾이는 바람에 그대로 다시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붕대 안쪽으로부터 스물스물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이든은 겨우 일어나 앉아 멀쩡한 손으로 반대편 소매를 걷어올려 상태를 확인한다.

 ​

 "아읏, 팔이..."

 ​

 아니나 다를까 팔뚝의 상처가 벌어졌는지 붕대는 물론 가장 안쪽에 껴입은 옷까지 상처에서 새어나온 피로 축축하니 젖어 있었다. 출혈이 다시 시작된 것이 꽤 오래된 듯 생각보다 젖은 부위가 크다. 위험하다. 어둠에 묻혀 보이지는 않지만 이젠 입술까지 허옇게 생기를 잃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던 그 때, 또 한 번 들려오는 유리의 목소리가 이든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

 "누나..."

 "유리! 윽..."

 ​

 짐처럼 느껴지는 팔뚝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출혈은 점점 더 심해져 이제 아예 손을 타고 그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지금 이든의 안중에는 오직 유리밖에 없었다. 내 소중한 동생. 하나밖에 없는 나의 가족. 이든은 어떻게든 유리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어지럼증까지 일어 중심을 잡기도 어렵다. 이든은 몸에서 보내오는 위험 신호를 무시하며 몇 번이나 다시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러번의 반복 후 결국 마지막 시도가 실패하고 나자, 파르르 떨리던 몸뚱이는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핏기 없는 볼에 닿는 눈의 차가운 감촉. 그러나 그것은 바닥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안 돼..."

 ​

 마르고 힘없는 입술에서 간절한 말이 새어나온다. 잠들면 안 돼. 눈을 감으면 안 돼. 그러나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릿속이 흐려지고 감각이 점점 둔해지는 그 순간, 자신의 의지와 싸우려 애쓰는 그녀의 귀에 서걱서걱하고 눈을 밟는 발소리가 들린다.

 ​

 "유리..."

 ​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이든이 안타깝게 유리를 찾는다. 이제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시야에 어렴풋이 서린 누군가의 인영. 그것이 유리의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못한 이든이 웃어보이려 하지만 입술 끝자락조차 제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느덧 코 앞에 성큼 다가온 실루엣이 그것이 자신을 향해 몸을 낮출때 즈음, 이든은 결국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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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19-05-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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