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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슬아슬 비밀동거
작가 : 골드보이
작품등록일 : 2018.11.25

남자친구에게 차여, 직장에서 치여, 만신창이가 된 다나는 신비한 점집에서 소원을 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남자가 된 자신을 발견한 다나, 그 남자는 전날 계단에서 부딪힌, 아이돌 뺨치는 기럭지와 외모를 자랑하는 국회의원 강효성이다. 두 사람은 소원의 부작용으로 저녁 7시 반부터 다음날 아침 7시 반까지 12시간 동안 몸이 바뀌게 된다. 사라진 점집을 찾아다니다가 만난 다나와 효성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동거하기로 하는데... 12시간씩 몸이 바뀌는 남녀의 신체 강탈 로맨스. 그들의 아슬아슬한 사랑이 시작된다!

 
오늘부터 같이 살아야 합니다
작성일 : 18-11-25 19:29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6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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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씨, 일어나요.”

 

 다나는 익숙한 여자 목소리에 눈을 억지로 떴다. 알람 소리가 아니라 여자, 내 목소리... 그렇지.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강효성 의원의 집이지.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손님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헉, 다나는 이불 아래로 몸을 더듬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몸이었다.

 

 “봐, 봤어요?”

 

 “뭘요?”

 

 다나는 대답 대신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옷들을 가리켰다.

 

 “아, 옷을 다 벗고 주무시길래 이불을 덮어드리긴 했습니다.”

 

 젠장, 봤구나, 봤어.

 

 “혹시나 잊고 계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제가 본 건 삼십사년 동안 보아온 제 몸일 뿐입니다.”

 

 아직 원상태로 돌아오기 전이구나.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진 않다.

 

 “지금 몇시에요?”

 

 “일곱시 조금 지났습니다.”

 

 아이고, 난 망했다. 오후에 토론회라 일찍 가서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라면 아홉시까지나 갈 수 있으려나.

 

 “저... 거실에 나가 계시면 안 될까요?”

 

 효성이 한쪽 눈썹을 위로 올리며 다나를 쳐다봤다.

 

 “아, 저 옷 입을 거란 말이에요.”

 

 그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거실로 나갔다. 다나는 얼른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거실로 나오자 딸기 쥬스를 컵에 따르던 효성이 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오늘 오전 일정 취소했습니다. 다나씨도 의원실에 못나간다고 연락하시죠.”

 

 “네? 오늘 저희 의원실 토론회 하는 날인데요. 안 가면 저 짤려요.”

 

 “짤려도 괜찮습니다.”

 

 “뭐라구요? 전 하나도 안 괜찮은데요.”

 

 “사실 짤리면 더 좋습니다.”

 

 “허, 짤리면 저는 뭐 먹고 살아요? 의원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네, 책임지겠습니다.”

 

 뭐지? 나를 책임진다고? 이 사람 나랑 몸 좀 바뀌더니 설마... 내 몸매에 반한 건가?

 

 “마침 우리 의원실에 5급 자리가 비었는데... 어떻습니까? 이 기회에 저와 함께 일하시는 게.”

 

 “지금 저 스카웃하시는 거예요?”

 

 “아뇨. 제가 다나씨 이력을 잘 모르니 딱히 스카웃은 아니고... 책임지라고 해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하.”

 

 “5급이면 괜찮은 조건 아닙니까?”

 

 “말씀은 감사하지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의원님들처럼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철새가 아니거든요.”

 

 “지금 저희한테 닥친 문제는 정치적 성향 이전에 생존의 문제인 거 같습니다만. 아, 물론 저는 아직 초선이지만 철새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 이렇게 자기 목숨부터 챙겨도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국회의원들이 사람들한테 욕을 먹는 거-”

 

 쉿, 효성이 다나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팔목의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시계바늘이 7시 29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꼴깍, 다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일 분이 지나갔다.

 

 다음 순간 눈앞이 번쩍, 하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이런 게 변신의 느낌인가, 라고 다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됐다!”

 

 눈앞에서 ‘진짜’ 강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릿했던 시야도 점차 또렷해지며 진짜 강효성의 얼굴이 보였다.

 

 “우와,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저녁 일곱시 반이 되면 다시 바뀌겠죠.”

 

 “그렇...겠죠?”

 

 “아마도.”

 

 “이제 어떡하죠?”

 

 다나의 물음에 효성이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오늘부터 같이 살아야 합니다.”

 

 “네?”

 

 “정확히 말하면 오늘부터 다나씨의 거주지를 이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지금 저랑 동거를 하자는 말씀이세요?”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꼭 같이 살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은데...”

 

 “생각해 보십시오. 집주인인 저는 보이지도 않는데 여자 혼자 드나드는 걸 경비실에서 눈치 채게 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그건 다나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밤마다 남자가 드나드는 걸 들켰다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주인아주머니에게 괜한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여자가 드나드는 건 괜찮다는 말씀?”

 

 “물론 괜찮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여기서 같이 살아요?”

 

 “혹시라도 누가 물으면, 조카라고 하십시오.”

 

 “네? 조카요?”

 

 “네. 다나씨는 어려 보여서 조카라고 해도 믿을 겁니다.”

 

 졸지에 강효성의 조카가 되다니, 이걸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기껏해야 다섯 살 차이 나는 남자의 조카노릇이라니, 썩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니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어쩔 수 없었다.

 

 “좋아요, 같이 살아요. 이거 해결될 때까지만요.”

 

 “그래요. 앞으로 잘해봅시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뭘 잘해보자는 건지 모호하게 들렸지만 머뭇거리며 손을 잡았다.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정작 그의 몸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온기였다.

 

 다나는 손목에 있던 커다란 시계를 풀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저 그럼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출근할게요.”

 

 “정말 우리 의원실 5급에는 관심 없으십니까?”

 

 “1도 관심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합시다. 그럼 출근했다가 저녁 7시 반 전에 여기로 오십시오.”

 

 “알았어요.”

 

 “올 때 다나씨 집에 들러 옷이랑 짐도 가져오시구요.”

 

 “네네.”

 

 다나는 기껏 입은 효성의 티셔츠와 바지를 벗고 어제 입고 왔던 록페스티벌 티셔츠와 요가바지로 갈아입었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가려는데 효성이 다나를 불렀다.

 

 “다나씨.”

 

 “네?”

 

 “연락처를 교환해야죠.”

 

 “아...”

 

 “핸드폰 줘보세요.”

 

 다나가 효성에게 핸드폰을 건네자 그가 숫자판에 자기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다나의 번호를 확인하고는 그녀의 폰을 돌려주었다.

 

 “그럼 이따 봅시다.”

 

 104동을 나온 다나는 고개를 들어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14층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Y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소원이 이뤄졌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아주 이상한 형태로 말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까지 감을 시간은 없을 것 같아 쇄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바싹 틀어 올려 묶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왔다.

 

 한 손으로는 스킨을 바르고 다른 손으로는 로션 뚜껑을 따는 고난이도 기술을 발휘하며 에센스에 선크림까지 바르고 남색 치마 정장을 입었다.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밖으로 나와 출근을 위한 질주를 시작했다.

 

 *

 

 쯧쯧, 의원실에 들어가자 안보좌관의 혀 차는 소리가 다나를 반겼다.

 

 “죄송합니다.”

 

 다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비서, 요즘 연애해?”

 

 안 보좌관이 내뱉듯 물었다.

 

 “네? 아, 아닙니다.”

 

 “근데 왜 그래? 나사 빠진 사람처럼. 나사가 하나만 빠진 게 아니야. 몽땅 나갔어. 몽땅.”

 

 생각 같아선 그렇게 말하는 안 보좌관의 옥수수를 몽땅 나가게 해주고 싶었지만 저 인간이 내 사정을 알리도 없고 - 알아서도 안 되지만 - 안다고 해도 봐줄 인간도 아니고.

 

 마음을 가다듬고 노트북을 켜는데 옆에서 세욱이 다나를 작게 불렀다.

 

 “오비서님.”

 

 다나가 세욱을 쳐다봤다. 그의 손에 둥그렇게 말린 토론회 현수막이 들려있었다.

 

 “현수막이 벌써 왔어요?”

 

 다나는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네, 조금 전에 제가 받아놨어요.”

 

 “감사합니다.”

 

 세욱의 손에서 현수막을 받아 책상 안쪽에 세워놓았다.

 

 자료집은 열 시까지 오기로 했고, 보도자료는 토론회 끝나고 수정해서 보내면 되고...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한 의원들 명단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면 된다.

 

 “여보세요. 조인아 의원실 오다나 비서입니다. 오늘 토론회... 아, 최진석 의원님 오늘 불참하신다구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진석 의원을 끝으로 참석 명단 확인이 끝났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열다섯 번쯤 반복했더니 생각하지 않아도 입에서 술술 문장이 튀어나왔다.

 

 일정이 변경됐으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지만 어느 바닥이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게 마련이니까.

 

 

 

 오후 세시. 한 시간 후면 토론회가 시작된다.

 

 회의실에 내려가 다과랑 생수를 세팅해놓고, 마이크 이상 유무도 체크하고, 자료집도 미리 가져다 놓아야 한다.

 

 다나는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고 자료집을 카트에 실었다. 그걸 본 세욱이 얼른 일어나 자료집 싣는 걸 도와주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데...”

 

 세욱은 다나의 말을 못들은 사람처럼 묵묵히 자료집을 싣더니 카트를 끌고 의원실을 나갔다.

 

 입구에 앉아있던 박 비서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세욱의 뒷모습을 훑었다.

 

  다나는 현수막을 들고 세욱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토론회 장소는 도서관 지하 소회의실이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일정이라 의원회관 회의실 예약은 어림도 없었고, 도서관 지하도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다.

 

 “오 비서님, 배는 좀 어때요?”

 

 의원회관에서 국회 본청과 도서관으로 연결되는 지하통로를 지날 때 세욱이 속도를 늦추고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배요? 아, 괜찮아요. 덕분에 나았나봐요.”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이는데...”

 

 “그래요?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봐요.”

 

 몸이 바뀌는 대사건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나는 자신과 보조를 맞추려는 세욱을 추월하고 앞장서 걸었다.

 

 뒤통수에 세욱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아까 의원실을 나올 때부터 세욱에게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이 비서님, 저 도와주시는 건 정말 고마운데요.”

 

 걸음을 늦춰 자연스럽게 세욱의 옆으로 가며 말했다. 그가 카트를 끌던 손을 멈추고 다나의 얼굴을 봤다.

 

 “앞으로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혼자 할게요.”

 

 “아... 저는 혼자 하시기 힘들 거 같아서...”

 

 세욱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아뇨. 이 비서님이 잘못하셨다는 게 아니에요. 저야 이 비서님이 도와주시면 좋죠.”

 

 “......”

 

 “근데 우리 방이 다른 방에 비해 지역구에 있는 직원이 많거든요. 그래서 서울에 직원이 별로 없는 편이잖아요. 이 비서님이 이렇게 자리를 비우면 전화가 들어와도 전부 박 비서가 받아야 하니까... 그래서 제가 마음이 좀 불편해요.”

 

 “아... 거기까지는 제가 생각을 못했어요. 워낙 눈치가 없어서 이 모양이네요.”

 

 세욱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해해요. 저도 하루아침에 터득한 건 아니거든요.”

 

 다나는 덩달아 입맛이 씁쓸해졌다. 세욱과 다나는 말없이 - 의원이 지나갈 때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 빠른 걸음으로 지하통로를 걸었다.

 

 *

 

 토론회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늦은 여섯 시 반에 끝났다. 열띤 토론이 이뤄져서라기보다 발제자들이 주어진 시간보다 길게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고생했어.”

 

 현수막과 남은 자료집, 생수를 챙겨 의원실로 복귀하자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던 안 보좌관이 의원실을 나가며 말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와서 노트북 전원을 끄려는데 박 비서가 다나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방글방글, 저 가식적인 미소. 다나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오비서니임.”

 

 “네, 박 비서님.”

 

 “제가 오늘 병원에 가야 돼서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근데요... 보좌관님이 이 서류 의원님 댁에 갖다드리라고 하셨거든요.”

 

 박 비서가 다나에게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그다음에 나올 말은... 아,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알았어요. 제가 갖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역시 오 비서님밖에 없어요. 저 그럼 퇴근합니다.”

 

 박 비서가 후다닥 의원실을 나갔다.

 

 오늘도 서초동에 들렀다가 집에 가야겠구나 생각하다가 시계를 보고 앗, 소리를 질렀다.

 

 이런 멍청이. 일곱시 반까지 강효성 의원 집에 가야 하는데!

 

 “왜요?”

 

 다나의 비명소리에 세욱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저도 오늘 일찍 가야 하는데... 깜박했어요.”

 

 “주세요.”

 

 “네?”

 

 “제가 갈게요.”

 

 “아뇨, 아뇨. 퀵서비스 부르면 돼요.”

 

 “의원실 경비처리 되는 거 아니잖아요. 저희집 양재라 의원님 댁에서 가까워요.”

 

 “아... 그럼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그럼 다음에 밥 사주세요.”

 

 “당근이죠, 맛있는 걸로 쏠게요.”

 

 “기대할게요.”

 

 “그럼 죄송하지만, 저 먼저 가겠습니다!”

 

 다나는 쏜살같이 회관에서 나와 국회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빈 택시를 잡아탔다.

 

 다나보다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그녀를 보며 뭐라 소리를 질렀다.

 

 “광흥창역이요.”

 

 다나는 고개를 숙이고 행선지를 말했다.

 

 “저 남자가 아가씨보다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은데?”

 

 “네, 맞아요. 근데 제가 지금 너무너무 급해서요. 좀 봐주세요, 기사님.”

 

 택시기사가 룸미러로 다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예쁜 아가씨가 볼일이 급하구나, 뭘 잘못 먹었길래.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아저씨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 건데요. 제가 급한 건 그런 볼일이 아니라...

 

 

 

 어쨌거나 택시기사의 오해 덕분에 다른 때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다.

 

 다나는 옷장 옆에 박혀있던 커다란 여행 가방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일본에 교환학생 갈 때 썼던 회청색 하드케이스 캐리어였다.

 

 가방을 열고 속옷부터 챙겨 넣었다.

 

 다음은 스타킹, 양말, 숄더백 하나, 토드백 하나. 마지막으로 정장 세벌과 평상복 몇 개를 넣고 나니 캐리어가 폭발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화장품은 배낭에 넣고 운동화를 신고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벌레들아. 나 없는 동안 집 잘 지키고 있어.

 

 제 몸집만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오며 시간을 확인하려는데 핸드폰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등에서 진땀이 배어나왔다.

 

 사무실에 두고 왔나? 아님 토론회장에? 그것도 아님 도서관 화장실에? 아니야. 오늘 메고 갔던 가방 안에 있을 거야. 그 가방 지금 캐리어 안에 넣었으니까, 강 의원 집에 가서 찾아보자.

 

 7시 20분쯤 됐을 것 같은데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불안했다. 손목시계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104동 입구에 도착, 효성에게 인터폰을 했다.

 

 바로 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숨을 돌리며 왼편에 있는 LED 광고판 위에 찍힌 숫자를 본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7시 28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5층을 지날 때 29분으로 바뀌었다.

 

 큰일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자로 바뀌면 CCTV에 그대로 찍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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